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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19권, 명종 10년 11월 19일 경술 1번째기사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단성 현감 조식이 상소하다

새로 제수된 단성 현감(丹城縣監) 조식(曺植)이 상소하였다.

"삼가 생각하건대, 선왕(先王)께서 신의 변변치 못함을 모르시고 처음에 참봉에 제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왕위를 계승하심에 미쳐서는 두 번씩이나 주부(主簿)에 제수하시었고, 이번에는 또 현감(縣監)에 제수하시니 두렵고 불안함이 산을 짊어 진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한번 대궐에 나아가서 천은(天恩)에 사례하지 못하는 것은, 임금이 인재를 취하는 것은, 장인(匠人)이 심산 대택(深山大澤)을 두루 살펴 재목이 될 만한 나무를 빠뜨리지 않고 다 취하여다가 큰 집을 짓는 것과 같아, 대장(大匠)이 나무를 구하는 것이고 나무가 자발적으로 쓰임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전하께서 인재를 취하는 것은 임금된 책임이고 신이 염려할 바가 아니므로 그 큰 은혜를 감히 사사로운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머뭇거리면서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뜻은 마침내 측석(側席)137) 밑에서 감히 주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나아가기 어렵게 여기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신의 나이가 60에 가까왔으나 학술(學術)이 거칠어 문장(文章)은 병과(丙科)의 반열에 뽑히기에도 부족하고 행실은 쇄소(灑掃)하는 일을 맡기에도 부족합니다. 그리하여 과거를 구한 지 10여 년에 세 번이나 낙방하고 물러났으니 당초부터 과거 공부를 일삼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설사 과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좁은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고 크게 일할 수 있는 온전한 인재는 아닌데, 더구나 사람의 선악이 결코 과거를 구하느냐 구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미천한 신이 분수에 넘치는 헛된 명성으로 집사(執事)를 그르쳤고 집사는 헛된 명성을 듣고서 전하를 그르쳤는데, 전하께서는 과연 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십니까? 도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문장에 능하다고 여기십니까? 문장에 능한 자가 반드시 도가 있는 것이 아니며 도가 있는 자가 반드시 신과 같지는 않다는 것을 전하께서만 모르신 것이 아니라 재상(宰相)도 모른 것입니다. 그 사람 됨됨을 알지 못하고 기용하였다가 뒷날에 국가의 수치가 된다면 그 죄가 어찌 미천한 신에게만 있겠습니까. 헛된 이름을 바쳐 몸을 파는 것보다는 곡식을 바쳐 벼슬을 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신은 차라리 제 한 몸을 저버릴지언정 차마 전하를 저버리지 못하겠으니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전하의 국사(國事)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하여 천의(天意)가 이미 떠나갔고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1백년 된 큰 나무에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다 말랐는데 회오리 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올지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이 된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조정에 있는 사람 중에 충의(忠義)로운 선비와 근면한 양신(良臣)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형세가 이미 극도에 달하여 미칠 수 없으므로 사방을 돌아보아도 손을 쓸 곳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소관(小官)은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면서 주색(酒色)이나 즐기고, 대관(大官)은 위에서 어물거리면서 오직 재물만을 불립니다. 【이 말은 당시의 병통을 바로 지적한 것이다. 오늘날 공도(公道)는 쓸어버린 듯이 없어졌고 사문(私門)이 크게 열려, 떼 지어 쫓아다니는 자는 공사(公事)를 받들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일삼으면서 아무 것도 하는 일없이 세월을 보내며 나랏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모르니, 통탄스럽다. 조식(曺植)은 초야(草野)의 일사(逸士)로서 한때의 고명(高名)이 있었는데, 비록 부름을 받고 나아간다 하더라도 어찌 해 볼 수가 없음을 스스로 알았다. 이 때문에 소(疏)를 올려 진언(進言)하면서 당시의 폐단을 절실하게 비판하였으니, 또한 강직하지 않은가.】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으며, 내신(內臣)은 후원하는 세력을 심어서 용(龍)을 못에 끌어들이듯이 하고, 【이것은 이리와 승냥이 같은 무리가 정권을 잡고 있다는 뜻인데, 그 말의 뜻이 은미하고도 심장하다.】 외신(外臣)은 백성의 재물을 긁어들여 이리가 들판에서 날뛰듯이 하면서도, 가죽이 다 해지면 털도 붙어 있을 데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신은 이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길게 탄식하며 낮에 하늘을 우러러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며, 한탄하고 아픈 마음을 억누르며 밤에 멍하니 천정을 쳐다본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자전(慈殿)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寡婦)에 지나지 않으시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단지 선왕(先王)의 한낱 외로운 후사(後嗣)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백(千百)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億萬) 갈래의 인심(人心)을 무엇으로 감당해 내며 무엇으로 수습하겠습니까? 냇물이 마르고 【낙동강 상류가 끊긴 것을 말하는데, 갑인년 겨울에 이런 변고가 있었다.】 곡식이 내렸으니[雨粟] 【근래 몇년 동안 이런 재변이 있었다.】 그 조짐이 어떠합니까? 음악 소리가 슬프고 흰옷을 즐겨 입으니 【당시의 음악소리가 애절한 것이 많고, 복색(服色)은 흰 것을 숭상한 것을 말한다.】 소리와 형상에 조짐이 벌써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시기를 당해서는 비록 주공(周公)·소공(召公)과 같은 재주를 겸한 자가 정승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인데 더구나 초개 같은 한 미신(微臣)의 재질로 어찌하겠습니까? 위로는 위태로움을 만에 하나도 지탱하지 못할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을 털끝만큼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니 전하의 신하가 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변변찮은 명성을 팔아 전하의 관작을 사고 녹을 먹으면서 맡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또한 신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둘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신이 보건대, 근래 변방에 변이 있어 여러 대부(大夫)가 제때에 밥을 먹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은 이를 놀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사건은 20년 전에 터졌을 것인데 전하의 신무(神武)하심에 힘입어 지금에야 비로소 터진 것이며 하루 아침에 생긴 사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소 조정에서 재물로써 사람을 인용하여 재물을 모으고 백성을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이에 마침내는 장수로서 적합한 사람이 없고 성(城)에는 군졸(軍卒)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적들이 무인지경에 들어오듯이 들어온 것이 어찌 괴상한 일이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대마도(對馬島)의 왜(倭)가 적왜와 몰래 결탁하고 안내하여 만고(萬古)토록 무궁한 치욕을 끼친 것인데, 왕령(王靈)을 떨치지 못해서 담이 무너지듯 패하였습니다. 이것이 어찌 구신(舊臣)을 대우하는 것은 주(周)나라 법보다도 엄격하면서 【아마도 남정(南征)한 장사(將士)에게 형(刑)을 준 것을 지목한 듯하다.】 구적(寇賊)을 총애하는 은덕은 도리어 망한 송(宋)나라보다 더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세종 대왕께서 남정하시고 성종 대왕께서 북벌(北伐)하신 일로 보더라도, 어느 것이 오늘날의 일과 같았습니까?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피부에 생긴 병에 불과하고 심복(心腹)의 병통은 못 됩니다. 심복의 병통이란 결리거나 맺히며 찌르거나 막혀 상하(上下)가 통하지 못하는 것이니, 바로 이럴 때에 경대부(卿大夫)가 목구멍이 마르고 입술이 타도록 분주하게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근왕병(勤王兵)을 불러 모으고 국사(國事)를 정돈하는 것은, 구구한 정형(政刑)에 있지 않고 오직 전하의 한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노심초사하여 큰 공을 세우는 그 기틀도 진실로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바는 무슨 일입니까?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풍류와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활 쏘기와 말 달리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시는 바에 존망(存亡)이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어느 날 척연히 놀라 깨닫고 분연히 학문에 힘을 써서 홀연히 덕(德)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를 얻을 수 있다면,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 속에는 만 가지 착함이 갖추어지고 백 가지 덕화(德化)도 이로 말미암아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들어서 시행하면 나라를 균평(均平)하게 할 수 있고 백성도 교화시킬 수 있으며 위태로움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요체(要諦)를 보존한다면 거울은 그대로 비추지 않음이 없고 저울은 공평하게 달지 않음이 없으며 생각은 사특함이 없을 것입니다.

불씨(佛氏)의 이른바 진정(眞定)이란 것은 다만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일 뿐이니,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는 데 있어서는 유교(儒敎)와 불교(佛敎)가 한 가지입니다. 【조식의 이 말은 잘못이다. 불씨의 학설(學說)에 어찌 위로 천리를 통달하는 것이 있겠는가.】 다만 인사(人事)를 행하는 데 있어 실지를 실천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 유가(儒家)가 배우지 않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불도(佛道)를 좋아하십니다. 만약 불도를 좋아하는 마음을 학문을 좋아하는 데로 옮기신다면 이는 우리 유가의 일이니, 어찌 어렸을 때에 잃어버렸던 아이가 제집으로 돌아와서 부모·친척·형제·친구를 만나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정사(政事)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사람을 임용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닦음으로써 하고 몸을 닦는 것은 도(道)로써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사람을 등용하는데 자신의 몸을 닦음으로써 하실 것 같으면 유악(帷幄) 안에 있는 사람치고 사직(社稷)을 보위(保衛)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 아무 일도 모르는 소신 같은 자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 사람을 헛된 명성만으로 등용한다면 잠자리[衽席] 밖에는 모두 속이고 저버리는 무리일 것이니 주변 없는 소신 같은 자가 또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뒷날 전하께서 덕화를 왕도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신다면 신도 마부의 말석에서나마 채찍을 잡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이니, 임금을 섬길 날이 어찌 없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사로잡는 것으로 백성을 새롭게 하는 요체를 삼으시고, 몸을 닦는 것으로 사람을 임용하는 근본을 삼으셔서 지극한 이치를 세우도록 하소서. 지극한 이치가 지극한 이치로서의 구실을 못하면 나라는 나라로서의 구실을 못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예찰(睿察)하소서."

사신은 논하다. 조식은 일사(逸士)로 시골에 있었다. 비록 작록(爵祿) 보기를 뜬 구름 같이 여겼지만, 오히려 임금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정성스럽게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 언사(言辭)에 드러났고 간절하고 강직하여 회피하지 않았으니, 명성을 거짓으로 얻은 자가 아니라고 말할 만하다. 어진 사람이다.

사신은 논한다. 세도(世道)가 쇠미해져서 염치(廉恥)가 모두 상실되고 기절(氣節)이 쓸어버린 듯하여, 유일(遺逸)이란 이름을 칭탁하고 공명(功名)을 낚는 자가 참으로 많은데, 어질도다. 조식이여! 몸가짐을 조심스럽고 조촐하게 하며 초야(草野)에서 빛을 감추었지만 난초와 같은 향기는 저절로 알려지고 명망은 조정에 진달되어, 이미 참봉(參奉)에 차임(差任)되고 또 주부(主簿)에 임명된 것이 두 번 세 번에 이르렀지만 이미 모두 머리를 저으며 거절하였다. 지금 이 수령의 직임은 영광이라고 이를 만하여 특별히 제수한 은혜는 드물다고 이를 만한데도, 가난한 것을 편안히 여기고 스스로 도(道)를 즐기면서 끝까지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으니, 그 뜻을 높이 살 만하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일을 잊어버리는 데 과감하지 못하여 소(疏)을 올려 의(義)를 지키며 당시의 폐단을 극력 논하였는데 사연이 간절하고 의리가 강직하였으며, 시대를 걱정하고 변란을 근심하여 우리 임금을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곳으로 인도하려고 하였으며, 풍속과 교화가 왕도(王道) 정치의 경지에 도달되기를 바랐으니, 나라를 근심하는 그 정성이 지극하다. 아, 마침내 뜻한 바를 대궐에 진달은 하였지만 은거(隱居)하던 곳에서 일생을 마쳤으니 그 마음은 충성스럽고 그 절개는 고상하다. 오늘날과 같은 때에 이와 같이 염퇴(恬退)한 선비가 있는데, 그를 높여 포상하거나 등용하지는 않고 도리어 그를 공손하지 못하고 공경스럽지 못하다고 책망하였다. 그러니 세도(世道)가 날로 떨어지고 명절(名節)이 땅에 떨어진 것이 당연하며, 위망(危亡)의 조짐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상소가 들어가자, 정원에 전교하기를,

"지금 조식의 상소를 보니, 비록 간절하고 강직한 듯하기는 하나 자전에 대해 공손하지 못한 말이 있으니, 군신(君臣)의 의리를 모르는 듯하여 매우 한심스럽다. 정원에서는 이와 같은 소를 보았으면 신자(臣子)의 마음에 마땅히 통분하며 처벌을 주청했어야 할 것인데 평안한 마음으로 펼쳐 보고 한 마디도 그것을 아뢰지 않았으니, 더욱 한심스럽다. 이런 사람을 군신의 명분을 안다고 하여 천거했는가? 임금이 아무리 어질지 못하더라도 신자로서 어찌 차마 욕설을 하는가? 이것이 현인 군자가 임금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공경하는 일이겠는가? 곡식을 바치게 하고 벼슬에 보임(補任)하는 것은 비록 아름다운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옛날에도 있었으니, 그것은 반드시 백성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요즈음 고매한 명성만 숭상하는데, 백만(百萬)의 생령(生靈)이 모두 굶어 죽더라도 앉아서 보기만 하고 구원하지 않아야 하겠는가?

그리고 내가 부처를 좋아한다고 하였는데, 내가 학식(學識)이 밝지 못해 비록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공부는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찌 불교를 좋아하고 숭상하는 데야 이르겠는가?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말들은 오히려 가납(嘉納)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공손치 못한 말이 자전에게 관계되는 것은 매우 통분스럽다. 군상(君上)을 공경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고 싶으나 일사(逸士)라고 하므로 내버려 두고 묻지 않겠다. 이조(吏曹)로 하여금 속히 개차(改差)하도록 하라. 나의 부덕(不德)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현(大賢)을 굽혀 조그만한 고을에다 두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진실로 왕자(王者)가 할 말이 아니다. 옛날의 제왕(帝王)에게 비교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바가 있다.】 이것은 내가 불민(不敏)한 탓이다. 정원에서는 이를 자세히 알도록 하라."

하고, 인하여 전교하기를,

"소(疏)의 내용 중에 ‘자전께서 생각이 깊으시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寡婦)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공손하지 못한 말이며 ‘전하의 신하 되기가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하였는데, 이것도 공손하지 못한 말이다. 그리고 ‘음악 소리는 슬프고 흰옷을 입기를 즐기니 소리와 형상에 조짐이 벌써 나타났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불길한 말이다."

사신은 논한다. 조식의 소(疏)에 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엄중한 말을 내려 정원이 처벌할 것을 주청하지 않았음을 책망하였으니, 언로(言路)가 막히게 된 것이 이로부터 더욱 심해졌고 성덕(盛德)에 누(累)가 됨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커졌다. 온 나라의 선비들이 상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아서 장차 아첨하며 윗사람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게 될 것이니, 뒷날에 비록 위망(危亡)의 화가 있더라도 누가 기꺼이 그것을 말하려 하겠는가? 임금의 말이 한 번 나오면 사방에 전해지는데 관계된 것이 어찌 중대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전교가 이와 같으니 이는 바로 온 나라 사람들의 입을 막아서 감히 말을 못하도록 한 것이다. 애석하다.

사신은 논한다. 조식은 오늘날 유일(遺逸) 중에서 가장 어진 사람이다. 재능이 뛰어나고 행실이 깨끗하며, 또 학식도 있다. 초야에서 가난하게 살았으나 영리(榮利)를 생각하지 않았고, 여러 차례 불렀지만 나오지 않고 그 뜻을 고상하게 하였다. 비록 수령으로 임명되는 영광에 부임하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곧은 말로 소(疏)를 올려 당시의 폐단을 바로 지적하였으니, 이 어찌 군신(君臣)의 의리를 모르는 사람이겠는가. ‘자전은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이다.’고 한 말은, 조식이 새로 지어낸 것이 아니고 선현(先賢)의 말을 인용하여 글을 지은 것이니, 이것이 어찌 공손하지 못한 말이겠는가. 포상하여 장려하지는 않고 견책(譴責)하기를 매우 엄중히 하였는데, 이것은 보필하고 인도하는 사람 중에 적합한 자가 없어 학문이 넓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정승의 직임에 있는 자도 잘못을 바로잡아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여 조식과 같이 현명한 사람이 등용되지 못하고 초야에 버려졌다. 진언(進言)하는 길이 막히고 현인(賢人)을 불러 들이는 일이 폐기되었으며 다스리는 도(道)가 없어졌으니, 세도(世道)가 야박해진 것이 어찌 괴이하겠는가.

하였다. 승지 백인영(白仁英)·신희복(愼希復)·윤옥(尹玉)·박영준(朴永俊)·심수경(沈守慶)·오상(吳祥)이 아뢰기를,

"신들이 조식의 소(疏)를 보고 또한 미안스러운 사연이 있는 것을 알았지만, 그 도(道)의 감사(監司)가 이미 접수하여 올려보냈기에 정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입계(入啓)하였습니다. 【승지는 후설(喉舌)의 지위에 있으면서 출납(出納)하는 책임을 맡았었는데, 감히 책임을 감사에게 돌리고 어쩔 수 없이 입계하였다는 것을 스스로 진술하였으니, 이것이 진실로 유윤(惟允)의 뜻인가? 물론이 일어난 것이 당연하다.】 다만 입계할 때에 미안스럽다는 뜻을 아울러 진달했어야 하는데, 신들이 망령되게 헤아리기를, 이는 바로 초야(草野)사람이어서 글을 짓는 즈음에 공손하지 못한 데에 관계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니, 이와 같이 광망(狂妄)된 말 【조식의 말을 정말 광망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윗사람의 명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은 진실로 따질 것이 못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아뢰지 않았습니다. 지금 전교를 받고 황공함을 견디지 못하여 대죄(待罪)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죄하지 말라. 감사가 그것을 보았을 것 같으면 미안스럽다는 뜻을 당연히 사유를 갖추어 치계했어야 할 것이고, 비록 치계하지는 않더라도 잘못을 바로 잡아 책망하며 물리쳤어야 옳을 것이다. 감사부터 크게 신자(臣子)의 체모를 상실하였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대개 상소의 내용이 격절하고 강직한 것을 감사가 잘못되었다고 바로잡아 책망하여 물리친다면,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군상(君上)의 과실을 감히 말하지 못하게 하여 마침내는 임금의 총명을 가리우는 화(禍)가 있을 것이다. 대저 인신(人臣)이 임금을 섬김에 있어 그 영(令)을 따르지 않고 그 뜻을 따르는데, 더구나 정령(政令)에 반포하여 그것을 따르게 하는 데이겠는가. 크게 신자의 체모를 상실했다고 책망하였으니 상의 뜻하는 바를 누가 감히 어기겠는가. 아, 이것은 성덕에 큰 누가 될 뿐만 아니라 실로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에 관계되는 것이니 어찌 길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3책 19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30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재정-잡세(雜稅) / 왕실-비빈(妃嬪)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사상-불교(佛敎) / 역사-사학(史學) / 윤리(倫理)

  • [註 137]
    측석(側席) : 임금이 현자를 기다리는 자리.

○庚戌/新授丹城縣監曺植上疏曰:

伏念, 先王不知臣之無似, 始除爲參奉, 及殿下嗣服, 除爲主簿者再。 今者又除爲縣監, 慄慄危懼, 如負丘山, 猶不敢一就黃琮一尺地, 以謝天日之恩者, 以爲人主之取人, 猶匠之取木, 深山大澤, 靡有遺材, 以成太廈之功, 大匠取之, 而木自不與焉。 殿下之取人者, 有土之責也, 臣不任爲慮, 用是不敢私其大恩, 而躑躅難進之意, 則終不敢不達於側席之下矣。 抑臣難進之義, 則有二焉。 今臣年近六十, 學術踈昧, 文不足以取丙科之列, 行不足以備灑掃之任。 求擧十餘年, 至於三刖而退, 初非不事科擧之人也。 就使人有不屑科目之爲者, 亦不過悻悻一叚之凡民, 非大有爲之全材也。 況爲人之善惡, 決不在於求擧與不求擧也。 微臣盜名, 而謬執事, 執事聞名, 而誤殿下, 殿下果以臣爲何如人耶? 以爲有道乎? 以爲能文乎? 能文者未必有道, 有道者未必如臣, 非但殿下不知, 宰相亦不能知也。 不知其人而用之, 爲他日國家之恥, 則何但罪在於微臣乎? 與其納虛名而賣身, 孰若納實穀而買官乎? 臣寧負一身, 不忍負殿下。 此所以難進者一也。 抑殿下之國事已非, 邦本已亡, 天意已去, 人心已離, 比如大木, 百年蟲心, 膏液已枯, 茫不知飄風暴雨, 何時而至者久矣。 在廷之臣, 非無忠義之士, 夙夜之良也, 已知其勢極而不可及, 四顧無下手之地。 小官嬉嬉於下, 姑酒色是樂, 大官泛泛於上, 唯貨賂是殖, 【此言正中當時之病。 今者公道掃地, 私門大開, 逐隊隨行者, 不以奉公爲念, 唯以利己爲事, 悠悠度日, 謾不知國事之爲何如, 可勝痛哉! 植以草野之逸士, 負一時之高名, 自知雖就徵, 而不能有所爲, 故陳疏進言, 譏切時弊, 不亦讜乎?】 河魚腹痛, 莫肯尸之, 而且內臣樹援, 龍挐于淵,【此豺豺當道之意, 其辭(肯) 〔旨〕微且深矣。】 外臣剝民, 狼恣于野, 亦不知皮盡而毛無所施也。 臣所以長想永息, 晝而仰觀天者數矣, 噓唏掩抑, 夜以仰看屋者久矣。 慈殿塞淵, 不過深宮之一寡婦, 殿下幼沖, 只是先王之一孤嗣。 天災之百千, 人心之億萬,何以當之, 何以收之耶? 川渴, 【謂洛東江上流絶也。 甲寅冬, 有此變。】 雨粟, 【近數年有此異。】 其兆伊何? 音哀服素, 【蓋謂當時樂聲多哀, 服色尙素也。】 聲像已著。 當此之時, 雖才兼, 位居鈞軸, 亦末如之何矣。 況一微臣材如草芥者乎? 上不能持危於萬一, 下不能庇民於絲毫, 爲殿下之臣, 不亦難乎? 若賣斗筲之名, 而賭殿下之爵, 食其食而不爲其事, 則亦非臣之所願也。 此所以難進者二也。 且臣見近日邊鄙有事, 諸大夫旰食, 臣則不自爲駭者, 嘗以爲此事, 發在二十年之前, 而賴殿下神武, 於今始發, 非出於一夕之故也。 平日朝廷, 以貨而用人, 聚財而散民, 畢竟將無其人, 而城無軍卒, 賊入無人之境, 豈是怪事耶? 此亦對馬 陰結向導, 作爲萬古無窮之辱, 而王靈不振, 若崩厥角。 是何待舊臣之義, 或嚴於典, 【疑或指南征將士之受刑者。】 而寵寇賊之恩, 反加於亡耶? 視以世宗之南征, 成廟之北伐, 則孰與今日之事乎? 然若此者, 不過爲膚革之疾, 未足爲心腹之痛也。 心腹之痛, 痞結衝塞, 上下不通。 此乃是卿大夫乾喉燋唇, 而車馳人走者也。 號召勤王, 整頓國事, 非在於區區之政刑, 唯在於殿下之一心; 汗馬於方寸之間, 而收功於萬牛之地, 其機在我而已。 獨不知殿下之所從事者, 何事也? 好學問乎? 好聲色乎? 好弓馬乎? 好君子乎? 好小人乎? 所好在是, 而存亡繫焉。 苟能一日惕然(驚)〔警〕 悟, 奮然致力於學問之上, 忽然有得於明新之內, 則明新之內, 萬善具在, 百化由出。 擧而措之, 國可使均也, 民可使化也, 危可使安也; 約而存之, 鑑無不空, 衡無不平, 思無邪焉。 佛氏所謂眞定者, 只是存此心而已, 其爲上達天理, 則儒釋一也。 【植之此言誤矣。 佛氏之學, 豈有上達天理者?】 但施之人事者, 無脚踏地, 故吾家不學之矣。 殿下旣好佛矣。 若移之於好學, 則此是吾家事也, 豈非弱喪而得其家, 得見父母、親戚、兄弟、故舊者乎? 況爲政在人, 取人以身, 修身以道。 殿下若取人以身, 則帷幄之內, 無非社稷之衛也, 容何有余昧昧之微臣乎? 若取人以目, 則衽席之外, 盡是欺負之徒也, 亦何有余硜硜之小臣乎? 他日殿下致化於王道之域, 則臣當執鞭於廝儓之末, 竭其心膂, 以盡臣職, 寧無事君之日乎? 伏願殿下, 必以正心, 爲新民之主, 修身爲取人之本, 而建其有極。 極不極則國不國矣。 伏惟睿察。

【史臣曰: "以逸士而在畝畎, 雖視爵祿如浮雲, 而猶不忘君, 惓惓有憂國之心, 發於言辭, 切直不避, 可謂名不虛得者矣。 其賢矣哉!"】

【史臣曰: "世衰矣, 道微矣。 廉恥頓喪, 氣節掃如, 托名遺逸, 擬賭功名者, 固多其人矣, 賢哉! 也, 持身修潔, 韜光草野, 蘭香自聞, 名達朝廷, 旣差參奉, 又除主簿者, 至再至三, 旣皆掉頭, 而且今五馬之職, 可謂榮矣, 特授之恩, 可謂稀矣, 而安貧自樂, 終不肯就, 其志可尙也。 然非果於忘世, 陳疏抗義, 極論時弊, 辭懇義直, 傷時憂亂, 欲納吾君於明新之地, 冀致風化於王道之域, 其憂國之誠至矣。 嗚呼! 畢達所志於紫宸之上, 而以終天年於衡門之下, 其心則忠, 而其節則高矣。 當今之時, 有如此恬退之士, 而不之尊尙褒用, 而反責之以不恭不敬, 宜乎世道之日卑, 而名節之板蕩矣。 危亡之漸, 蓋已成矣。"】

疏入, 傳于政院曰: "今觀曺植之疏, 雖似切直, 有不恭之辭於慈殿, 似不識君臣之義, 至爲寒心。 政院見如此之疏, 於臣子之心, 所當痛憤請罪, 而安心披見, 無一言啓之, 尤爲寒心。 此人可謂知君臣名分而擧薦乎? 君雖不賢, 以臣子, 豈忍發辱言哉? 是乃賢人君子愛君敬上之事乎? 納粟補官, 雖非美事, 古亦有之, 必重民命也。 今者徒尙高名, 坐視百萬生靈, 盡塡溝壑, 而莫之救乎? 且以予爲好佛。 予學識不明, 縱不能爲明新之功夫, 豈至於好尙佛敎哉? 雖然, 如此等語, 猶可嘉納, 不恭之言, 涉於慈殿, 極爲痛憤。 欲治不敬君上之罪, 而名之曰逸士, 故置而不問。 其令吏曹, 速爲改差。 不量予之否德, 欲屈大賢於小縣, 【斯言固非王者所可道之言也。 比之於古之帝王, 則誠有所愧矣。】 是予不敏之過。 政院知悉。" 仍傳曰: "疏辭以爲, ‘慈殿塞淵, 不過深宮之一寡婦’, 此乃不恭之言也。 ‘爲殿下之臣, 不亦難乎?’ 此亦不恭之言。 ‘音哀服素, 聲像已著’, 此乃不吉之言也。"

【史臣曰: "曺植之疏, 非但不爲答之, 反下嚴辭, 以責政院之不請罪。 言路之塞, 自此尤甚, 而盛德之累, 由玆益大。 一國之士, 知好惡之所在, 而將爲諂諛承順之歸, 他日雖有危亡之禍, 而誰肯言之哉? 王言一出, 四方傳之, 機關豈不重且大乎? 傳敎如是, 是乃杜一國之口, 而使之莫敢言也。 惜哉!"】

【史臣曰: ", 方今遺逸之最賢者也。 才高行潔, 又有學識。 窮居草野, 不慕榮利, 累徵不就, 高尙其志。 雖不赴五馬之榮, 而猶懷憂國之心, 抗疏直語, 正中時弊, 則是豈不識君臣之義者乎? 以 ‘慈殿爲深宮之一寡婦’ 之語, 非之造作, 乃用先賢之言, 而措辭, 則是豈不恭之語乎? 褒奬不擧, 而譴責甚嚴, 是由輔導之無其人, 而學問之不博而然也。 在台鼎之任者, 又不能匡救而解釋之, 有賢如, 虛棄草澤而莫用焉, 進言之路塞矣, 招賢之事廢矣, 致治之道滅矣。 世道之澆薄, 何足怪哉?" 承旨白仁英愼希復尹玉朴永俊沈守慶吳祥啓曰: "臣等見曺植之疏, 亦知有未安之辭, 而其道監司, 旣受而上送, 院則不得已入啓。 【承旨居喉舌之地, 任出納之責, 而乃敢歸於監司, 自陳其不得已入啓云, 是固惟允之義耶? 物論之激發宜矣。】 但入啓時, 當竝達未安之意, 而臣等妄料, 此乃草野之人, 必是措辭之際, 不覺涉於不恭, 如此狂妄之言, 【植之言果可謂狂妄乎? 此不免承順之罪矣。】 固不足數, 故不爲啓之。 今承傳敎, 不勝惶恐待罪。" 傳曰: "勿待罪。 監司若見之, 則未安之意, 當具由馳啓, 雖不馳啓, 紏正責退可也, 而自監司, 大失臣子之體也。"】

【史臣曰: "凡疏辭之切直者, 若監司紏正責退之, 則是使人不敢言君上之過失, 而終有壅蔽之禍矣。 大抵人臣之事君, 不從其令而從其意。 況布之於政令, 而使從之乎? 責以大失臣子之體, 則上意所在, 誰敢有違乎? 噫! 此非但爲盛德之大累, 實治亂興亡之所關, 豈不慨然長歎乎?"】


  • 【태백산사고본】 13책 19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30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재정-잡세(雜稅) / 왕실-비빈(妃嬪)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사상-불교(佛敎) / 역사-사학(史學)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