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명종실록19권, 명종 10년 8월 10일 임신 1번째기사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제주 선로사 윤의중이 하직 인사를 고하다

제주 선로사(濟州宣勞使) 윤의중(尹毅中)배사(拜辭)092) 하니, 전교하기를,

"가서 모든 사졸(士卒)들을 위로하라. 각별히 삼읍(三邑)093) 의 정황(情況)과 방비에 관한 일을 두루 살피고 돌아와 아뢰라."

하고, 또 제주 목사 김수문(金秀文)에게 전하라고 명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부덕한 몸으로 외람되이 신민(臣民)의 주인이 되었는데, 국운이 비색하여 해마다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떠돌고 군졸이 피폐됨이 이때보다 심한 적이 없었다. 거기다가 오랫동안 태평했던 탓으로 군령(軍令)이 해이해지고 장수는 전쟁을 모르고 백성은 병화(兵火)를 몰랐다. 그래서 변장(邊將)에 임명된 자들이 방비에 힘쓸 생각은 않고 윗사람 잘 섬기는 것만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세도(世道)가 날로 야박하여졌는데, 이 점에 대해 내가 늘 분개하고 있었다. 금년에는 갑지기 참혹한 변을 만났으니 어찌 통탄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왜구가 분탕질을 칠 때를 당하여 비록 장수에게 명하여 나아가 정토(征討)하게 하였으나 전혀 힘써 싸우지 않고 목숨을 보전할 생각만 한 채 머뭇거리면서 진군(進軍)하지 않다가 영암(靈巖)에서 자그마한 승첩을 거두었을 뿐이니, 어찌 설치(雪恥)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국가의 치욕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오직 경(卿)은 청렴 신중하고 신망(信望)이 두터워 해외(海外)의 관직에 제수되었고 사졸들과 한마음이 되어 방비에 힘썼음은 물론 힘을 다하여 조치함으로써 적병을 무리쳤으니, 그 공이 매우 크다. 그래서 이미 가자(加資)와 사의(賜衣)를 명하였고, 지금 또 특별히 시종신(侍從臣)을 보내어 연회(宴會)를 베풀고 술을 하사하여, 기뻐하며 위로하는 나의 뜻을 보이니, 경은 더욱 충성을 다하고 군졸을 어루만져 방비에 마음을 다하여 길이 해도(海島)의 고을을 보호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수문(秀文)은 방비에 신중하고 전투에 용감하고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지략(智略)이 있는데다가 사졸의 마음을 얻었다. 그래서 적이 변경을 침범하였으나 마침내 패배당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이른바 삼군(三軍)의 명(命)이 한 장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9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9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정(軍政) / 군사-휼병(恤兵)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

  • [註 092]
    배사(拜辭) : 지방관이 부임(赴任)할 적에 전정(殿庭)에 나아가 임금에게 숙배(肅拜)하고 하직하는 일.
  • [註 093]
    삼읍(三邑) : 제주(濟州)·대정(大靜)·정의(旌義)의 세 읍을 가리킨다.

○壬申/濟州宣勞使尹毅中拜辭。 傳曰: "往哉, 竝與其士卒而慰勞之。 各別巡審三邑邊情及防備之事而來啓。" 又命傳于濟州牧使金秀文曰: "予以否德, 叨主臣民, 國値否運, 歲連凶荒, 民生之流離, 軍卒之疲困, 莫甚於此時。 加以昇平已久, 軍令解弛, 將不知戰, 民不知兵。 爲邊將者, 不念勤修防備, 徒以善事相尙, 世道日薄, 予常慨焉。 今年遽遭慘酷之變, 豈不痛歎? 當倭寇焚蕩之際, 雖命將往征, 專不力戰, 但懷保生之計, 逗遛不進, 止於靈巖, 小捷而已, 豈可謂雪恥乎? 國家之辱, 莫大於此, 玆用寒心。 惟卿淸謹望重, 得除海外之官, 與士卒爲一心, 勤修防備, 盡力措置, 能却賊兵, 其功甚大。 是故已命加資賜衣, 今又特遣侍從之臣, 設宴賜酒, 以示予嘉悅慰勞之意。 卿宜益篤忠誠, 撫恤軍卒, 盡心防備, 永保海島之邑。"

【史臣曰: "秀文, 謹於防備, 勇於戰鬪, 有制勝之略, 而得士卒之心, 賊雖犯境, 終不見敗。 此所謂三軍之命, 係於一將之手者也。"】


  • 【태백산사고본】 13책 19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9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정(軍政) / 군사-휼병(恤兵)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