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관찰사 김주가 총통을 주조하는 건에 대해 장계하다
전라도 관찰사 김주(金澍)가 장계하기를,
"왜변(倭變)이 창궐하여 화(禍)가 극심합니다. 적선(賊船)을 깨뜨리는 기구로는 대장군전(大將軍箭)083) 보다 나은 것이 없으나 총통(銃筒)을 주조할 놋쇠를 준비할 방법이 없어서 이준경(李浚慶)이 여러 사찰의 종을 거두어 총통을 주조하려 하였습니다. 이는 사찰의 무용지물로써 국가가 승전(勝戰)할 수 있는 병기를 만드는 것이니 매우 타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남치근(南致勤)이 일찍이 계청하여 윤허받지 못했기 때문에 거두어들였던 기물(器物)을 즉시 환급(還給)하게 하였습니다. 내원당(內願堂)084) 의 종기(鍾器)는 그만두더라도 중기(重記)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여타 이름없는 사찰의 종으로는 총통을 주조하게 하면 비어(備禦)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니, 정원에 전교하기를,
"비록 내원당의 물건은 아니라 하더라도 모두 사찰의 물건이니, 써서는 안 된다. 다만 왜변 때에 병화(兵火)로 파괴된 사찰들의 유기(鍮器)는 가져다가 써도 된다. 이런 내용으로 하유하라."
사신은 논한다. 내원당이란 이름은 무슨 뜻이며, 원한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사람의 생사 화복(生死禍福)은 운명(運命)에 달린 것이어서 사람의 힘으로 도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부처를 섬김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처를 섬겼으나 무익하였음은 양무(梁武)의 일085) 에서 볼 수 있다. 여러 산에 널려져 있는 사찰에다가 내원(內願)이란 이름을 붙여 평상시 공양(供養)하느라 낭비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인데, 이와 같이 참혹한 왜변을 당한 때에 또 쓸데없이 버려진 종을 아껴서 적을 막는 병기로 주조하지 않으니, 미혹됨이 매우 심하다. 아, 화복이 윤회(輪回)한다는 말이 일단 마음을 가리자 눈앞의 절급한 화란(禍亂)에도 전연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니, 뒷날 변경의 변란을 부처의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어찌 통곡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조정에서 종을 깨서 쓰자고 청하면 오래된 물건이라 미루고, 변장(邊將)이 사찰의 종을 가져다 쓰자고 청하면 내원당의 물건이라고 전교하시면서, 대간이 여러 달 논집(論執)하여도 따르지 않고 관찰사가 쓰기를 청하여도 윤허하지 않았으며, 또 하서(下書)를 명하여 모두 가져다가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불사(佛寺)의 물건만 치우치게 보호하는 듯하여 광명한 덕에 누가 될까 하여 매우 미안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남치근이 계청한 여러 사찰의 종에 대해서 윤허하지 않았는데도 내원당의 종과 기물을 모두 뺏어 갔다 하므로 하서하여 환급하라고 했던 것이다. 지금 대간이 논계(論啓)하고 있는 것 또한 윤허하지 않으므로 하서하게 한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9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90면
- 【분류】정론(政論)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기(軍器) / 사상-불교(佛敎) / 공업(工業) / 역사-사학(史學)
- [註 083]대장군전(大將軍箭) : 무게가 50근, 길이가 6자인 무쇠로 된 화살. 30근의 화약을 폭발시켜 내쏘면 9백 보(步)를 날아간다.
- [註 084]
내원당(內願堂) : 죽은 사람의 화상(畫像)이나 위패(位牌)를 모시고 그 원주(願主)의 명복(冥福)을 비는 법당(法堂)을 원당(願堂)이라고 하는데, 궁내에 있는 것을 내원당이라 한다. 지방에 있어도 이런 일이 부여된 사찰은 내원당이라 한다.- [註 085]
양무(梁武)의 일 : 양 무제(梁武帝)인 소연(簫衍)이 지나치게 불교를 믿다가 후경(侯景)의 반란 때에 대성(臺城)에서 굶어 죽은 일을 말한다.《양서(梁書)》 권1 무제 본기(武帝本紀).○甲寅/全羅道觀察使金澍狀啓:
倭變充斥, 爲禍孔棘。 撞破賊船之具, 無過於大將軍箭, 而銃筒所鑄鍮物, 準備無策, 故李浚慶收合諸寺之鍾, 將鑄銃筒。 是以寺刹無用之物, 爲國家勝戰之具, 允爲便當, 而南致勤, 曾已啓請, 未蒙允許, 故其所收器物, 卽令還給矣。 內願堂鍾器則已矣, 他餘無名寺刹重記不付之鍾, 則鑄成銃筒, 庶補備禦萬一。
傳于政院曰: "雖非內願堂之物, 皆是寺刹之物, 則不可用也。 但倭變之時, 爲兵火燒破諸寺之器, 則可以取用。 以此意下諭。"
【史臣曰: "內願堂之名, 何義也, 所願者, 何事也? 凡人之死生禍福, 有命存焉, 不可以人力而圖之也, 亦不可以事佛而求之也。 事佛而無益, 於梁 武之事, 可以鑑矣。 而遍以諸山之寺, 題爲內願之號, 平日供奉之糜費, 已爲不可, 而當此遭變慘酷之際, 又慳無用之棄鍾, 不造禦敵之兵器, 則其爲惑甚矣。 嗚呼! (論)〔輪〕 回禍福之說, 一蔽於中, 而目前切急之禍, 專不動念, 則他日邊陲之亂, 可以佛而禦之乎? 豈不痛哭也哉!】
政院啓曰: "朝廷則請破鍾, 則諉以久遠之物, 邊將請取用寺刹之鍾, 則敎以內願堂之物。 臺諫累月論執而不從, 觀察使請用而不許, 又命下書, 幷勿取用。 似若偏護佛社之物, 恐累光明之德, 至爲未安。" 答曰: "南致勤啓請諸寺之鍾, 雖不允許, 而內願堂鍾與器物, 盡奪云, 故下書還給之矣。 今者臺諫, 時方論啓, 亦不允許, 故使之下書也。"
- 【태백산사고본】 13책 19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90면
- 【분류】정론(政論)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기(軍器) / 사상-불교(佛敎) / 공업(工業) / 역사-사학(史學)
- [註 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