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5월 16일 기유 2번째기사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전라도 관찰사 김주가 달량포에 왜선 70여 척이 침략해왔다고 치계하다

전라도 관찰사 김주(金澍)가 치계(馳啓)하기를 ‘5월 11일에 왜선(倭船) 70여 척이 달량(達梁) 【포구 이름이다.】 밖에 와서 정박했다가 이진포(梨津浦)달량포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육지로 상륙하여 성저(城底)의 민가를 불태워 버리고 드디어 성을 포위했다.’ 하였다.

당초에 왜선 11척이 바다 섬 가운데 나타났다가 마침내 육지로 상륙하여 더러는 호각을 불며 불을 놓고 더러는 창을 휘두르며 칼을 빼들고 덤비므로, 가리포 첨사(加里浦僉使) 이세린(李世麟)이 즉각 병사(兵使) 원적(元績)에게 치보(馳報)하자, 원적이 장흥 부사(長興府使) 한온(韓蘊), 영암 군수(靈巖郡守) 이덕견(李德堅)과 나아가서 구원하려고 달량으로 달려갔다가 포위되었다.

이때 태평한 지 오래 되어 기율(紀律)이 해이(解弛)해지고 흉년이 잇달아 군졸들이 지쳤는데, 내부(內部)에는 방략을 계획하는 신하가 없어 조정의 계책이 이미 틀어지고 외부(外部)에는 적개심(敵慨心)을 가지고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가 없어 변방의 수비가 안 되었다. 그러다가 왜구(倭寇)들이 갑자기 밀어닥치게 되자 중외(中外)가 소란해져 모두들 어수선하게 두려워하는 생각만 품고 억제하여 막을 계책을 하지 못했다. 변방의 성들은 바라만보고도 무너졌고 조정은 속수 무책(束手無策)으로 앉아만 있었으며 대신들은 비록 날마다 비변사(備邊司)에 모였지만 계획하는 것이 하나도 시행할 만한 방책이 없었다.

사신은 논한다. 이때의 장수와 재상들은 국가에 변고가 없는 때에는 안일(安逸)·부유(富裕)·존귀(尊貴)·영화(榮華)의 즐거움만 누리고 장구(長久)한 계책을 세우지 않으면서 오직 탐욕을 멋대로 부렸다. 한없는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변방의 장수들에게 책임지워 받아내는 짓을 한 자는 재상들이고, 원수처럼 거두어들여 군졸들을 침탈(侵奪)하는 짓을 한 자는 장수들로서, 구차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고 국사(國事)는 돌보지 않았다. 외부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왔다는 변방의 경보가 이미 이르렀는데도, 조정에는 대신이 없고 외방에는 어진 장수가 없어 조치해 갈 만한 계책을 내지 못하고 단지 전전 긍긍하여 두려워하기만 하였다. 도적의 칼날이 향하는 곳에 감히 무어라 하는 사람이 없어 마침내 국가의 치욕을 가져왔으니 통탄스러운 마음을 견딜 수 있겠는가?

사신은 논한다. 국가가 태평한 세월이 오래이므로 임시 조치만 하는 행정이 많아 기강(紀綱)이 문란해지고 공도(公道)가 없어졌다. 백사(百司)와 군읍(郡邑)의 관원들은 쓸데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서, 오직 권세있는 요로(要路)에 아부하여 좋은 벼슬에 올라가고, 뇌물로 아름다운 명예를 차지하는 짓을 하여 자기 한몸을 위한 일만 할 뿐 국가의 일에 대해서는 소 닭보듯이 하였다. 장수나 재상들은 직무에는 태만하고 항시 은혜는 갚고 원한은 보복하는 짓만 하다가 변방에 한번이라도 풍진(風塵)이 일어나면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내부에는 예비하여 방어해 갈 계책이 없고 외부에는 공격하여 싸울만한 준비가 없으므로, 도적의 칼날이 향하는 곳마다 꺾이지 않는 데가 없어 무인지경에 들어오듯 하였으니 통탄스러운 마음을 견딜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2책 18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68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

全羅道觀察使金澍馳啓曰: "五月十一日, 船七十餘隻, 來泊達梁 【浦名。】 外, 自梨津浦達梁浦, 分東西下陸, 焚蕩城底閭閻, 遂圍其城" 云。 初船十一隻, 見於海島中, 終至於下陸, 或吹角縱火, 或揮搶拔劎, 加里浦僉使李世麟卽馳報於兵使元績, 長興府使韓蘊靈巖郡守李德堅, 將往救之, 馳赴達梁, 因爲所圍。 時昇平日久, 紀律解弛, 飢饉相仍, 軍卒困悴, 內無訏謨籌畫之臣, 而廟算已謬, 外無敵愾禦侮之將, 而邊圍不守。 倭寇猝至, 中外騷然, 皆懷洶懼之心, 罔有制禦之謀。 邊城望風而潰, 朝廷束手而坐。 大臣雖日會於備邊司, 而其所規畫, 無一可施之策也。

【史臣曰: "爲今將相者, 當國家無事之日, 享安富尊榮之樂, 不爲長久之圖, 而惟欲是恣。 谿壑不盈而徵責於邊帥者, 相也; 用乂讎歛, 而漁奪其軍卒者, 將也。 其心以爲苟利於己, 國事其如我何, 及其外夷伺釁, 邊報已至, 而朝無大臣, 外無良將, 無策可措, 徒爲戰懼, 賊鋒所向, 莫敢誰何, 終致國家之辱, 可勝痛哉!"】

【史臣曰: "國家昇平日久, 政多姑息, 紀綱板蕩, 公道泯滅, 百司、郡邑, 徒守虛器, 惟以附權要而躋美仕, 行賄賂而得佳譽, 爲一身之事業, 其於國事, 不啻如之肥瘠, 將相恬嬉, 常以報復恩怨爲事, 至於邊塵一起, 而蒼黃失措, 內無備禦之策, 外無攻戰之具, 賊鋒所向, 莫不摧陷, 如入無人之境, 可勝痛哉!"】


  • 【태백산사고본】 12책 18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68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