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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5월 12일 을사 1번째기사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조강에 나아가니 영경연사 윤개 등이 영·호남의 변방 방비에 관해 아뢰다

상이 조강에 나아갔다. 영경연사 윤개(尹漑)가 아뢰기를,

"신이 경상도 관찰사 권철(權轍)의 계본(啓本)을 보니, 변방의 경계가 있는 듯하기에 비변사(備邊司)와 함께 의논하여 아뢰려고 합니다. 대개 섬 오랑캐의 말을 비록 그대로 믿을 수 없기는 하지만 또한 믿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 영남(嶺南)과 호남(湖南) 두 도는 흉년이 이미 극도에 달하여 부방(赴防)하는 군졸들이 모두 굶주리고 있어 변방 방비가 지극히 허술하니, 만약 사변이 있게 된다면 적을 방어할 계책이 없어 단지 두려워하고만 있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대마도주(對馬島主)의 서계(書契)로 보면, 지금의 도적질하는 자들은 곧 서해(西海)의 도적으로 상국(上國)에 다니는 자들이고 6∼7년 이래로 대마도주가 매양 우리 지경에 와서 침범하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한 것도 과연 헛된 것이 아닌 듯합니다. 지금은 단지 군졸들만 곤궁하여 지친 것이 아니라 군대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도 적임자가 없으니 만일 변이 있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제 계본을 보니 대마도의 서계가 그러했었는데, 혹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속임수를 부리는 것인가도 싶었다. 그러나 문견 사건(聞見事件)과 왜통사(倭通事)가 한 말이 대마도의 서계와 대략 서로 같아 헛된 말이 아닌 듯싶으니 방비하는 일들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다만 두 남도의 흉년이 이러하니 나도 역시 조처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하였다. 윤개가 또 아뢰기를,

"신이 당초에는 경상도의 양맥(兩麥)이 장차 익게 되었다는 것을 듣고서 마음속으로 굶주리던 백성들이 이를 믿고 살아갈 수 있다고 여겼었습니다. 이번에 수해가 이와 같은데 재해를 가져온 까닭을 알 수 없으므로 근심스러운 생각이 한이 없습니다. 다만 신이 자세히 들어보니 비록 수해가 있기는 해도 또한 양맥이 모두 손상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또 어제 전라도 독운관(督運官)이 들어왔는데 전라도에는 수해가 없다고 했습니다. 지난날에 조운(漕運)할 때에 해사(該司)가 이미 불가하다고 여겼고 언관(言官)들도 또한 온당하지 못하다고 했으며 신의 생각에도 역시 완전한 계책이 아닐듯 하다고 여겼으나 다만 성상께서 백성들을 구제하려는 측은한 생각이 있으셨기 때문에 먼 지방까지 잘 조운하고 패선하는 일이 없게 된 것입니다. 대저 흉년 구제하는 계책은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옛적에 주희(朱熹)도 또한 곡식을 바치게 하고 벼슬을 주자는 의논을 했었습니다."

하고, 특진관(特進官) 조광원(曺光遠)은 아뢰기를,

"비변사(備邊司)가 함께 의논하여 비어 절목(備禦節目)을 이미 대략 정했습니다. 오늘 도다시 모여 의논해야 하겠으나 별로 조치할 만한 일이을 것입니다. 다만 요사이 역로(驛路)가 잔약하고 피폐한데 장사(將士)들이 탈 말과 변방 일을 신보(申報)할 역마(驛馬)를 장차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섬 오랑캐의 서계가 이와 같은데 속이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방어할 계책을 미리 강구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대저 적을 방어하는 태세는 남쪽과 북쪽이 다른 것입니다. 만일 북쪽 지방의 군졸을 몰아다가 배를 타고 싸우도록 한다면 반드시 어지러워 넘어지게 될 것인데, 어떻게 힘을 다하겠습니까. 마땅히 수사(水使)와 병사(兵使)로 하여금 배 부리기에 능한 사람을 가리어 수전(水戰)의 방비를 하도록 하고, 활쏘기와 말달리기에 능한 사람을 가리어 육전(陸戰)의 방비를 하도록 하여, 미리 적절하게 배치해 놓는다면 위급할 때 쓰기에 각각 합당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미리 준비하지 않고 반드시 위급해진 다음에 하려고 하면, 배만 부리던 사람은 혹 말을 달리지 못하게 되고 말만 달리던 사람은 또한 배를 부리지 못하여, 가만히 앉아서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될 것이니 그런 뒤에 후회해야 소용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몽린(李夢麟)방호의(方好義)는 모두 외방(外方)에 있고 남치근(南致勤)은 서울에 있습니다. 남쪽을 돌아보아야 할 근심스러운 일이 있게 된다면 위임(委任)할 만한 사람이 단지 남치근 한 사람뿐입니다. 만일 남쪽과 북쪽의 형편이 다른 것을 헤아리지 않아 배부리기에 익숙하지 않은 군사를 몰아다가 바다 위에 있게 한다면 결단코 일을 해가지 못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판서 【이 때 조광원이 공조 판서이었다.】 의 말이 지당하다. 적을 방어하는 계책은 반드시 병사(兵事)를 익숙하게 아는 사람을 구하여 조치를 잘해 가도록 한 다음에야 공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오직 일마다 그야말로 예비해야 하니, 준비를 해놓으면 걱정이 없게 된다.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끝내 경계가 없더라도 또한 해로울 것이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8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67면
  • 【분류】
    과학-천기(天氣) / 교통(交通) / 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구휼(救恤) / 군사-군정(軍政) / 군사-부방(赴防) / 외교-왜(倭)

○乙巳/上御朝講。 領經筵事尹漑曰: "臣見慶尙道觀察使權轍啓本, 則似有邊警, 欲與備邊司, 同議以啓矣。 夫島夷之言, 雖不可盡信, 而亦不可不信也。 今嶺湖二南, 飢饉已極, 赴防軍卒, 率多飢餓, 邊備至爲虛踈。 若果有事變, 禦敵無策, 徒爲憂慮而已。 且以島主書契觀之, 今之作賊者, 是乃西海之寇, 交通上國之人也。 六七年來, 島主每以來侵我境爲言, 果似不虛也。 今者非徒軍卒困悴, 受閫外之任者, 亦無其人, 萬一有變, 不知何以爲之也。" 上曰: "昨日見啓本, 則馬島書契如此, 恐或奸狡之徒, 亦有欺詐之術也。 然近日聞見事件及通事所言, 與馬島書契, 大略相同, 恐非虛語也。 防備等事, 不可緩也。 但二南凶荒如此, 予亦不知所爲也。" 又曰: "臣初聞慶尙道兩麥將熟, 意爲飢民, 可恃以爲生也。 今水災如是, 莫知致災之由, 憂慮罔極。 但臣詳聞之, 雖有水災, 而兩麥亦不至盡損也。 且昨日全羅道督運官入來, 而全羅道則無水災云。 前日漕運時, 該司旣以爲不可, 言官又以爲未便, 而臣意亦恐非萬全之計也。 但自上有惻怛救民之意, 故能漕運遠地, 而無致敗之患也。 大抵救荒之策, 不可緩也。 昔朱熹, 亦有納粟補官之議。" 特進官曺光遠曰: "備邊司共議備禦節目, 已略定矣。 今日當復會議, 而亦別無可措之事也。 但近來驛路殘弊, 將士之騎, 報邊之馹, 將何以備之乎? 今島夷之書契如此。 其欺詐與否, 未可知也, 然備禦之策, 不可不講也。 大抵禦敵之勢, 南北有異。 若驅北方之卒, 爭之於舟楫之間, 則必將眩仆, 其何以盡其力乎? 當令水使、兵使, 擇其能操舟楫者, 以爲水戰之備, 選其能事弓馬者, 以爲陸戰之備, 預爲之所, 則緩急之用, 各有所當矣。 若其備不豫, 必待急難然後爲之, 則操舟者或不能馳馬, 馳馬者亦不能操舟, 坐失事機, 悔之無及矣。 今者李夢麟方好義皆在外, 而南致勤在京。 如有南顧之憂, 則可以委任者, 只致勤一人而已。 若不計南北之異勢, 驅不習操舟之卒, 以臨水上, 則決知其罔濟也。" 上曰: "判書 【時曺光遠爲工曹判書。】 所言當矣。 禦敵之策, 必得諳鍊兵事之人, 俾之善措而後, 有所成功。 惟事事乃其有備, 有備無患。 預爲其備, 而終無邊警, 亦無妨也。"


  • 【태백산사고본】 12책 18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67면
  • 【분류】
    과학-천기(天氣) / 교통(交通) / 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구휼(救恤) / 군사-군정(軍政) / 군사-부방(赴防)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