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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17권, 명종 9년 10월 22일 기축 2번째기사 1554년 명 가정(嘉靖) 33년

영의정 심연원 등이 미관의 축성에 관해 의논하여 아뢰다

영의정 심연원, 우의정 윤개, 병조 판서 윤원형, 지충추부사 장언량(張彦良), 공조 판서 홍섬, 이조 판서 이준경, 병조 참판 정응두, 병조 참의 김홍윤(金弘胤)미관(彌串)에 성 쌓는 일을 의논드렸다.

"미관은 곧 권관(權管)이 있는 곳이지만 중국의 지경과 단지 강 하나로 막혀 있어 중국인들이 건너다 보게 되는 지역이므로 마땅히 성을 쌓아 다소나마 체모와 기세를 갖추어야 하기는 합니다. 다만 그곳은 거주하는 백성이 드물고 입번(入番)하는 군사도 적으므로 비록 작은 성을 쌓더라도 권관이 자체의 힘으로 쌓을 수는 없고 반드시 온 도(道)의 힘을 빌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직로(直路)의 요해지인 정주(定州)·가산(嘉山)과 같은 데는 본래 성이 없고 선천(宣川)·귀성(龜城)에는 비록 옛 성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모두 무너졌고 광량(廣梁)·노강(老江)·선사포(宣沙浦) 같은 모든 진(鎭)에도 역시 모두 성이 없으므로, 조정의 의논이 매양 이를 염려하면서도 역사가 커서 갑자기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년부터는 본도의 농사 형편을 보아 농한기에 수군(水軍) 및 모든 곳의 궐군(闕軍)을 부려 힘이 닿는 대로 새 성을 차근차근 쌓고 옛 성도 또한 수축하여 영구한 계획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를 중히 여길 것 같으면 작은 성보(城堡)인 미관 같은 곳은 남은 힘을 사용하여 쌓아야 하고 그다지 급급하게 할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중국인들이 강을 건너와 물건을 매매하는 짓이나 우마(牛馬)를 도둑질하는 짓은 성을 쌓아 금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중요한 곳의 성을 뒤로 미루고 작은 성을 먼저 쌓아서는 안 됩니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7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39면
  • 【분류】
    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領議政沈連源、右議政尹漑、兵曹判書尹元衡、知中樞府事張彦良、工曹判書洪暹、吏曹判書李浚慶、兵曹參判丁應斗、兵曹參議金弘胤、議彌串築城事曰:"彌串, 乃權管所居, 而與上國地界, 只隔一江, 爲唐人瞻視之地, 則宜有城子, 稍存體勢。 但彼處居民鮮少, 入番軍士亦寡, 雖小城權管, 不能以其力設築, 必假一道之力, 則直路要害, 如定州嘉山, 則本無城子, 宣川龜城, 則雖有舊城, 幾盡頹圮, 廣梁老江宣沙浦諸鎭, 亦皆無城。 朝議每以此爲慮, 而役鉅不能卒擧。 可自明年, 觀本道農事, 於農隙, 役水軍及諸處闕軍, 隨勢所至, 新城漸築, 舊城亦修, 以圖永遠之計。 若以此爲重, 則如彌串小堡之城, 所當用餘力築之, 不甚汲汲。 況唐人渡江買賣, 奪竊牛馬之事, 非築城所能禁也。 不可後其重處, 而先築小城。"


    • 【태백산사고본】 12책 17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39면
    • 【분류】
      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