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서원에 임고라는 이름을 내리다
예조가 아뢰기를,
"전대(前代)의 서원(書院) 규정을 두루 고찰해 보니 모두 지명(地名)으로 이름을 지었고 별도의 뜻을 취하여 편액(扁頟)을 만든 것은 없었습니다. 송(宋)나라 때의 네 서원도 모두 지명으로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려서 총애하고 아름답게 여겼으니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숭양서원(崇陽書院)·악록서원(嶽麓書院)·응천부서원(應天府書院)과 같은 것이며 그 나머지 태실서원(太室書院)·수양서원(睢陽書院) 등등 많습니다. 이번의 영천서원(永川書院)도 딴 명의(名義)를 세우려고 할 것이 없기에 영천의 별호인 임고(臨皐)·익양(益陽)을 서계합니다."
하니, ‘임고’라는 이름을 내렸다.
사신은 논한다. 우리 동방에 처음에는 서원이란 명칭이 없었다. 주세붕(周世鵬)이 개연(慨然)히 유학(儒學)을 흥기시키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 선유(先儒)들이 도를 강론하던 곳에 집을 짓고서 많은 선비들이 독서하는 곳으로 삼았으니 곧 주문공(朱文公)이 백록동에 서원을 세웠던 뜻이다. 이후부터 호응하여 주창하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우리 나라에도 서원이 무릇 두서너 군데가 되었는데 영천의 서원은 그 중 하나이다. 우리 동방에 문학(文學)이 융성해질 것이 반드시 이로부터 비롯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주세붕의 유학에 대한 공로가 어찌 적다 하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2책 17권 49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37면
- 【분류】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고사(故事) / 역사-사학(史學)
○禮曹啓曰: "歷考前代書院之規, 皆以地名爲號, 未有別樣取意爲扁。 宋朝四書院, 皆以地名爲號, 至賜扁榜以寵嘉之, 如白鹿洞書院、崇陽書院、嶽麓書院、應天府書院、其餘太室書院、睢陽書院之類, 不一而足。 今者永川書院, 不必別立名義, 就永川別號臨皐、益陽書啓。" 賜號臨皐。
【史臣曰: "東方未始有書院之號, 而周世鵬, 慨然以興起斯文爲己任, 作堂於先儒講道之處, 以爲多士讀書之所, 卽朱文公 白鹿洞之遺意也。 自是以後, 有和而唱之者, 故我國書院, 凡有數三處, 永川則其一也。 東方文學之盛, 未必不自此始, 世鵬之有功於斯文, 豈曰少哉?"】
- 【태백산사고본】 12책 17권 49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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