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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17권, 명종 9년 9월 2일 경자 3번째기사 1554년 명 가정(嘉靖) 33년

홍문관 부제학 정유길 등이 원각사지 이재민의 이전이 부당하다고 상차하다

홍문관 부제학 정유길(鄭惟吉) 등이 상차(上箚)하기를,

"근년에 화재가 잇달아 위로 궁궐의 정침(正寢)에서 아래로 관사와 여염까지 불타 없어진 변이 참혹하여 말할 수 없으니, 장차 어떻게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상께서 원각사 옛터의 화재 만난 인가들을 다시 짓지 못하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성학이 고명하시므로 사특한 말에 현혹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신들이 알고 있습니다마는, 무지한 백성들은 현혹되기는 쉽고 깨우치기는 어려운데 왕언(王言)이 한 번 전파되어 사방에서 의혹이 번진다면 진실로 작은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물며 흉년 끝에 즐비한 집들이 연소되어 이미 생업을 잃게 되었고 압사(壓死)한 사람까지 있게 되었으니 어찌 불쌍하고 측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지금 도성 밖으로 핍박하여 내보냄으로써 저자에 가까이 살며 생활해 가던 계책을 잃게 한다면 민중들의 원망하는 상황을 차마 말할 수 없을 것이니, 이는 백성의 위급을 구휼하여 하늘의 재변에 대응하는 일이 아닙니다. 만일 뒤에 화재가 또 있을 것을 염려해서라면, 서울 안에는 집이 즐비하여 연소될 폐해가 없는 곳이 없는데, 어찌 유독 없어진 절의 옛터에서만 민가를 철거하십니까.

대저 제왕이 행하는 일은 한결같이 광명 정대하게 한 다음에야 인심이 복종하는 법입니다. 지난날에 정업원을 복구할 때에도 후궁들이 살 데라고 했었지만 지금은 부처의 공덕을 노래하는 소리가 대내에까지 울리고, 양종(兩宗)을 세울 적에도 잡승(雜僧)을 도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었지만 지금은 모든 산에 있는 원당(願堂)들이 모두 도둑의 소굴이 되어 있어, 정령(政令)의 미덥지 못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신들이 경악에 있으면서 날마다 세 차례씩 알현하는데도 지금 상의 분부를 받들게 되어서는 오히려 상의 뜻이 있는 데를 알지 못하겠는데, 하물며 무지한 백성들이겠습니까. 전하께서는 하늘의 경계를 두렵게 여기시어 집이 타버린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왕언을 삼가시어 중외의 의혹이 풀리게 하소서."

하니, 양사와 홍문관에 답하기를,

"원각사의 옛터에 초가가 즐비하여 한 사람이 불을 낸다면 뭇사람이 화재를 입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구문 밖 같은 광활한 곳에 옮겨 가 살게 한다면 또한 이와 같은 화재가 없게 될 것이다. 내가 어찌 딴 뜻이 있었겠는가. 그대로 살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7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30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군사-금화(禁火) / 행정(行政) / 주생활-택지(宅地) / 사상-불교(佛敎)

○弘文館副提學鄭惟吉等上箚曰:

近年以來, 火災連綿, 上自宮闕正寢, 下至官舍閭閻, 焚蕩之變, 慘不可言, 不知將何以仰答天譴也? 今者上敎圓覺寺舊基火燒人家, 勿令改造。 聖學高明, 其不爲邪說之所惑, 臣等固已知之矣, 竊恐無知之民, 易惑難曉。 王言一播, 四方傳疑, 誠非細事也。 況飢饉之餘, 比屋延燒, 已失生生之業, 而有至於壓死者, 豈不矜惻也哉? 今若迫出都門之外, 令失近市謀生之計, 則小民怨咨之狀, 不可忍言。 此非所以恤民急而應天災也。 若慮有後患, 則京城之內, 屋宇櫛比, 延爇之害, 無處無之, 何獨於廢寺舊基, 毁撤民居乎? 大抵帝王行事, 一出於光明正大, 然後人心可服。 前者復淨業之時, 以爲後宮之所居, 而今則螺唄之聲, 徹於大內, 立兩宗之時, 以爲沙汰雜僧, 而今則諸山願堂, 盡爲盜賊之淵藪。 政令不信, 至於如此。 臣等忝在經幄, 日承三接, 而今承上敎, 尙未知聖意之所在, 而況小民之無知乎? 伏願殿下, 懼天戒, 以安蕩析之民, 愼王言, 以解中外之惑。

答兩司、弘文館曰: "圓覺寺舊基, 草家櫛比, 一人出火, 而衆人被災。 以故如水口門外廣闊處移居, 則又無如此之災也。 予豈有他意乎? 使之仍居可也。"


  • 【태백산사고본】 12책 17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30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군사-금화(禁火) / 행정(行政) / 주생활-택지(宅地)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