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에 나아가서 법의 운용에 관해 물으니 대사헌 윤춘년 등이 아뢰다
상이 조강에 나아갔다. 상이 임문(臨文)하여 묻기를,
"법을 각박하게 운용하는 것과 너그럽게 운용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하였다. 대사헌 윤춘년이 아뢰기를,
"법의 운용은 때에 따라 변통해야 합니다. 만일 모든 관사가 해이된 때이면 엄하게 하고 기강이 조금이라도 있는 때이면 너그럽게 해야 합니다. 범죄에 있어서도 과실로 범한 것이라면 너그럽게 하고 고의로 범한 것이면 엄하게 해야 합니다. 주(周)나라 말엽에는 너무 너그러웠기에 망했고 진(秦)나라 초기에는 너무 엄하였기에 또한 망했으니, 임금이 때에 따라 변통해야 합니다."
하고, 영경연사 윤개가 아뢰기를,
"법을 운용할 적에는 마땅히 너그러움과 엄함을 함께 써야 하니, 지나치게 너그럽거나 지나치게 엄하면 모두 폐단이 있게 됩니다. 가령 기쁠 때 쓴 법은 너그러움에 치우치고 노여울 때 쓴 법은 엄한 데 치우치니, 이는 고금의 공통된 병폐입니다. 모름기기 공도(公道)를 쓰고자 마음먹는다면 자연히 이런 병폐가 없어져서 공평 정대한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고, 동지경연사 이준경이 아뢰기를,
"법 쓰기를 각박하게 하면 비록 한때의 통쾌함은 있게 되지만 한없는 폐단이 있게 되고, 너그럽고 온화하게 하면 끝내는 부지할 수가 있는 법입니다. 전조(前朝)에도 법을 씀이 지나치게 너그러웠기 때문에 권간(權奸)이 없는 때가 없기는 했습니다만, 5백 년이나 이어온 것은 법을 너그럽게 썼기 때문이니 그 연유를 따져 보면 충후(忠厚)를 숭상한 효과이었습니다."
하고, 윤개가 아뢰기를,
"우(禹)·탕(湯)·문무(文武)의 공과 덕이 다르지 않았는데 주나라만 8백 년이나 누린 것은 문무가 인의(仁義)로써 굳게 인심을 결속했기 때문에 그 덕택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심어져 자손들이 비록 쇠잔하고 나약했어도 그와 같이 부지하여 이어진 것이고, 진나라는 상앙(商鞅)의 참혹하고 각박한 법을 쓰면서 치세(治世)의 양법(良法)이라고 여겼지만 이세(二世)에 이르러 망했으니, 전대(前代)를 거울삼아 본받는다면 자연히 합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충후를 위주로 한다는 말은 지당하다. 그러나 대사헌의 때에 맞추어 형벌을 쓴다는 말도 후세의 폐단을 바로잡기에 맞는 말이다. 법을 희노(喜怒)나 친소(親疏) 때문에 가볍게 하거나 무겁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형(呂刑)165) 에 ‘상등 형벌의 죄라도 실정이 가벼운 데 맞으면 하등 형벌을 쓰고, 하등 형벌의 죄라도 실정이 무거운 데 맞으면 상등 형벌을 쓴다.’ 했다. 형벌을 쓸 적에 율관(律官)들이 마땅히 죄상의 실정이 가벼운지 무거운지를 살펴서 자세하고 신중하게 조율(照律)해야 하는데 가볍게 하고 있으니 삼가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하였다. 윤개가 아뢰기를,
"’과오나 재변으로 인한 죄는 그대로 놓아주고, 믿는 데가 있어 다시 죄를 범하는 자는 사형한다.’ 했으니, 이는 큰 강령(綱領)입니다. 율(律)은 모두 경서에 있는 성인들의 뜻에 근본한 것인데, 율을 배운 사람들이 근본은 알지 못하고 한갓 지엽적인 데만 매달려서 하기 때문에 무겁게 하고 싶으면 무겁게 하고 가볍게 하고 싶으면 가볍게 하며,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관원도 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옛적에 율학 박사(律學博士)를 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7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2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법-법제(法制) / 역사-고사(故事)
- [註 165]여형(呂刑) : 《서경》의 편명.
○癸巳/上御朝講。 上臨文問曰: "大抵用法深刻, 與寬和孰優?" 大司憲尹春年曰: "用法當隨時變通。 若百司解弛之時, 則用猛; 紀綱稍存之時, 則用寬。 至於罪犯無情則用寬, 故犯則用猛。 周末, 過寬故亡; 奏初, 過猛故亦亡。 人君當隨時而變通之耳。" 領經筵事尹漑曰: "用法當寬猛相濟。 過寬過猛, 皆有其弊。 若因喜而用, 則失之寬; 乘怒而發, 則失之猛。 此古今通患。 須用公道以爲心, 則自無如此之患, 而適於公平正大之域矣。" 同知經筵事李浚慶曰: "用法深刻, 雖有一時之快, 而有無窮之弊, 寬和則終有扶持之理焉。 前朝用法過寬, 故權奸雖無世無之, 然綿歷至於五百年之久者, 以其用法之寬也。 究厥所由, 則以忠厚爲尙之效也。" 尹漑曰: "禹、湯、文、武之功德不異, 而周獨至於八百年之久者, 文、武以仁義固結人心, 故其澤入人深, 而子孫雖衰微殘懦, 扶持綿歷, 至於如此。 秦用商鞅慘刻之法, 自以爲治世之良規, 至於二世而亡。 以前代爲鑑而法之, 則自然得其中矣。" 上曰: "以忠厚爲主之言, 至當。 然大憲因時用刑之言, 亦合於後世之矯弊矣。 夫法不可以喜怒親疎, 爲之輕重也。 呂刑曰: ‘上刑適輕, 下服; 下刑適重, 上服。’ 用刑之際, 律官當審情輕重, 詳愼照律, 而輕易爲之, 可不愼歟?" 尹漑曰: "眚災肆赦, (故)〔怙〕 終賊刑, 此大綱也。 夫律, 皆本於經書, 聖人之意也。 學律者不知其本, 徒因其緖餘而爲之, 故欲重則重之, 欲輕則輕之, 雖治獄之官, 亦不知律, 故爲其所誤也。 古者律學博士之設, 豈偶然乎?"
- 【태백산사고본】 12책 17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2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법-법제(法制)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