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에 나아가니 지경연사 임권 등이 과거 시험과 변방의 일에 관해 아뢰다
상이 조강에 나아갔다. 지경연사 임권(任權)이 아뢰기를,
"과거(科擧)의 일은 조종조로부터 이미 일정한 규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법 조항이 번잡하고 지공(支供)이 가지가지이어서 폐단이 매우 큽니다. 또한 각도에 모두 경시관(京試官)을 보내야 하니, 이런 흉년에 허비하게 되는 것이 또한 얼마이겠습니까? 만일 부득하여 시험을 보이려고 한다면 풍년 들기를 기다렸다 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영경연사 상진이 아뢰기를,
"이번에 시라손(時羅孫) 【오랑캐의 이름이다.】 만은 천주(天誅)를 면했는데 번번이 와서 사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으니 조산보(造山堡)가 포위당했을 때에 오랑캐 하나가 소리 높여 크게 외치기를 ‘나는 시라손이다. 내가 조선에 죄를 지은 일이 없는데 나의 세 아내를 잡아갔다. 죽은 자는 그만이지만 아내 한 명은 살아 있다 하니 나에게 돌려준다면 원수를 맺거나 원망하지 않겠다.’ 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온 호녀(胡女) 3인 중에 분명히 시라손의 아내가 있는 모양인데 물어보니 모두 숨겼고, 시집가라고 하면 죽음으로써 맹세하기를 ‘차마 원수들과 결혼하겠느냐.’고 했다니, 이는 열녀와 같은 지조입니다. 우리 나라에 비록 이 여인들을 둔다 한들 어디다가 쓰겠습니까.
옛적 한(漢)나라 때에 흉노(匈奴)들이 난을 일으키자 서민의 딸을 공주라 하여 주었고, 당 태종(唐太宗)은 또한 방현령(房玄齡)과 의논하여 공주를 시집보냈으니, 모두가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여인들을 억류해 둔다 해서 국가에 중요할 게 없는데 어찌 본토로 돌려보내기를 싫어하겠습니까."
하고, 참찬관 정유길(鄭惟吉)이 아뢰기를,
"당초에 변방의 사단을 만들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백년이나 태평하던 지역에 이토록 흔단이 생기게 한 것은 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순고(金舜皐)를 가리킨다.】 상께서 사람을 임용하실 적에 어렵게 여기고 삼가서, 맡길 만한 사람이 있으면 전적으로 맡기고 독실하게 믿은 뒤라야 일이 잘 될 수 있습니다.
신의 증조 정난종(鄭蘭宗)이 북도의 절도사가 되었을 적에 성묘(成廟)께서 북방의 일을 모조리 위임했었는데, 신의 증조가 군(軍)에 임하여 호령이 엄명하여 아랫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가 ‘난종이 모반했다.’고 고했는데, 성묘께서 ‘정동래(鄭東萊) 【정난종이 동래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한 말이다.】 가 모반했겠는가?’ 하고, 그 사람을 추국하였더니 과연 무고한 것이었으므로, 성묘께서 명을 내려 효유하기를 ‘간사한 사람이 무고하였기에 과연 이미 정형(正刑)을 보였으니, 경은 안심하고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상께서도 진실로 적임자를 얻어 위임하시되 의심하지 않으신다면, 변방 방비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하고, 상진이 아뢰기를,
"북도의 일은 마땅히 중신에게 위임하여 보내야 하는데, 시끄러운 말세라 정난종을 무고한 것과 같은 일이 있을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상의 갚은 생각으로 가려서, 성묘께서 정난종을 대우했듯이 위임하신다면 잘될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20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재정-국용(國用)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癸亥/上御朝講。 知經筵事任權曰: "科擧之事, 自祖宗朝, 已有定規, 今者法條浩煩, 支供多端, 其弊甚鉅。 又於各道, 皆遣京試官, 其爲荒年之費, 亦幾何哉? 如不得已而欲試爲之, 則待豐年爲之, 尙未晩也。" 領經筵事尙震曰: "今者時羅孫, 【胡人名。】 獨漏天誅, 每來構釁。 詮聞造山堡被圍之時, 有一胡高聲大呼曰: ‘我乃時羅孫也。 我無得罪於朝鮮, 而擄我三妻。 死者則已矣, 聞一妻生存。 請還給我, 則我無讎怨矣。’ 今來胡女三人中, 必有時羅孫之妻, 而問之則皆諱, 使之嫁夫, 則以死自誓曰: ‘忍結婚於讎人乎?’ 此似烈女之操也。 我國雖存此女, 其何用乎? 昔漢之時, 匈奴爲亂, 以家人女爲公主而給之, 唐 太宗亦議于房玄齡, 以公主出嫁焉, 皆爲安邊而然也。 此女雖拘留, 不足爲國家之輕重, 則有何嫌於還其土乎?" 參贊官鄭惟吉曰: "當初不作邊釁則善矣, 而使百年昇平之地, 開釁至此者, 以有喜事之人故也。 【指金舜皋】 自上其於用人之際, 其難其愼, 有可委者, 則任之專, 而信之篤, 然後乃可以有爲也。 臣曾祖鄭蘭宗, 爲北道節度使, 成廟盡委以北方之事, 臣(袒)〔祖〕 莅軍, 號令嚴明, 不貸下人。 時有不好其所爲者告曰: ‘蘭宗叛。’ 成廟曰: ‘鄭東萊 【鄭蘭宗封東萊君故云。】 叛乎?’ 旣推其人, 則果誣焉。 成廟命諭之曰: ‘此姦人誣告, 故旣示正刑矣, 卿其安心勿疑。’ 自上苟能得人而任之, 任之而不疑, 則其於備邊, 何難之有?" 尙震曰: "北道之事, 當委遣重臣, 而末世囂囂, 有如告蘭宗之事, 未可知也。 若自淵衷, 擇而委任, 如成廟之待鄭蘭宗, 則庶幾得矣。"
- 【태백산사고본】 12책 1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20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재정-국용(國用)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