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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16권, 명종 9년 5월 19일 무오 3번째기사 1554년 명 가정(嘉靖) 33년

호인의 정세에 대한 함경북도 절도사 이사증의 치계에 대해 논의하다

함경북도 절도사(節度使) 이사증(李思曾)이 치계(馳啓)하기를,

"야인(野人) 나시합(羅時哈)이 고하기를 ‘골간(骨幹)의 적호(賊胡) 등이 기라오(其羅吾)·탈훈(脫訓) 등 부락에 청병(請兵)하고 아지내선(阿之乃船) 30척과 자피선(者皮船) 1백여 척을 이달 8∼9일간에 이미 호라도(呼羅島)에 정박시켰으며, 또한 자피선 1천여 척과 마병(馬兵)이 동력(同力)하여 뒤따라와 이달 12∼13일 사이에 호라도에 모이고 14∼15일에서 20일 사이에 조산(造山)과 경흥(慶興) 등처에서 작적(作賊)하자고 약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대신들과 병조(兵曹)·비변사(備邊司)의 변사(邊事)를 아는 여러 사람을 명소(命召)하여 함께 의논하여 조치하게 하였다. 영의정 심연원, 좌의정 상진, 우의정 윤개, 병조 판서 윤원형, 우찬성 안현(安玹), 지중추부사 장언량(張彦良), 공조 판서 이명규(李名珪), 동지중추부사 방호의(方好義), 첨지중추부사 장세호(張世豪), 동지돈녕부사 송숙근(宋叔瑾), 동지중추부사 이광식(李光軾), 상호군 윤담(尹倓), 병조 참판 정응두(丁應斗), 참의 유강(兪絳), 참지 박영준(朴永俊)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지금 북도 병사의 계본(啓本)을 보니 골간이 작적한다던 날짜는 이미 지났는데 이제야 조치하니 이미 때가 늦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패배하지 않고 돌아간다면 반드시 다시 올 것 같습니다.

대개 변을 듣고 조치하는 것은 제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늘 걱정입니다. 더구나 골간과는 이미 틈이 벌어져 수삼년 동안이나 상천(常川)에서 엄히 경계하며 방비하고 있습니다. 전 우후(虞候) 최호(崔豪)는 파산(罷散)중에 있으나 무재(武才)가 뛰어나니 특명(特命)으로 서용(敍用)하여 조방장으로 칭호해서 군관(軍官) 5명을 금군(禁軍)을 막론하고 각별히 뽑아 거느리고 조산보(造山堡)에 가서 머물며 유사시에 대비하게 하소서. 본도(本道)의 우후 어수연(魚守淵)은 지금 창성(昌城)에 있으니 바로 교대 임명하여 급히 부임하게 해서 무이보(撫夷堡)에 상주하면서 방비에 대한 일을 조치하게 하소서. 남도(南道)의 무재있는 군사의 수효를 헤아려 뽑아 부방(赴防)068) 하게 하고 북도(北道)에 있는 내수사의 노예와 공사천(公私賤) 중에 무재 있는 자를 가려 뽑아 사변(事變)이 있게 되면 그 위급함에 따라 싸움을 돕게 하소서. 그리고 도내(道內)의 군량(軍糧)은 관찰사로 하여금 차차 수송하여 궤향(饋餉)하게 하소서. 조방장은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안 되니 1년마다 서로 바꾸게 하소서. 궁전(弓箭) 및 방포(放砲)하는 기구와 파진군(破陣軍)은 지난 3월에 이미 내려보냈고 현자총통(玄字銃筒)과 철환(鐵丸)도 조방장에게 헤아려 주어 내려보냈습니다만, 본도에 명령하여 철환을 많이 만들어 항상 쏘는 법을 익혀 적병을 막게 하라는 뜻으로 하유(下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번에 이 사변을 보고한 호인(胡人) 나시합은 전에 보고한 말도 사실이었으니 전의 공으로 상경(上京)하여 벼슬을 제수받은 야인의 예에 따라 의복과 청홍면포(靑紅綿布)를 넉넉하게 마련하여 내려보내 상으로 주고 이번 보고가 사실이라면 각별히 상경시켜서 높은 품계를 주고 논상할 것을 아울러 하유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잉거도(仍巨島)에 진(鎭)을 설치한 것은 이미 앞서 잘못한 것인데 초관(草串)의 참벌(斬伐)은 뒤에 재차 잘못한 것이다. 군졸들은 비만(飛輓)069) 하기에 고달프고 조정에서는 의논하기에 피로하니 이는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인가. 변경을 지키는 장수들의 공을 좋아하여 일을 만들어 내는 마음은 진실로 열어 놓아서는 안 되는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6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199면
  • 【분류】
    정론(政論)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부방(赴防) / 군사-병참(兵站) / 인사-관리(管理) / 역사-사학(史學)

  • [註 068]
    부방(赴防) : 다른 도의 군사가 서북 변경을 방비함.
  • [註 069]
    비만(飛輓) : 군량을 운송하는 것.

咸鏡北道節度使李思曾馳啓曰:

"野人 羅時哈告曰: ‘骨幹等, 請兵於其羅吾脫訓等兩部落, 阿之乃船三十隻、者皮船百餘隻, 今日初八九日間, 已泊于呼羅島。 又者皮船千餘隻及馬兵, 同力隨後出來, 今月十二三日間, 聚到呼羅島, 今月十四五日二十日間, 造山慶興等處, 作賊定約’ 云。" 上命召大臣及兵曹、備邊司知邊事諸人, 同議措置。 領議政沈連源、左議政尙震、右議政尹漑、兵曹判書尹元衡、右贊成安玹、知中樞府事張彦良、工曹判書李名珪、同知中樞府事方好義、僉知中樞府事張世豪、同知敦寧府事宋叔瑾、同知中樞府事李光軾、上護軍尹倓、兵曹參判丁應斗、參議兪絳、參知朴永俊議啓曰: "今觀北道兵使啓本, 骨幹作賊日期已過, 及今措置, 恐不及矣。 然若不敗衂而歸, 似必復來。 大抵聞變措置, 常患不及。 況與骨幹, 仇隙已成, 數三年間, 當常川戒嚴備禦。 前虞候崔豪, 雖在罷散, 武才出衆, 特命敍用, 助防將稱號, 軍官五人, 勿論禁軍, 各別擇率, 往造山堡留防待變; 本道虞候魚守淵, 今在昌城, 劃卽除交代, 疾馳赴任, 常住撫夷堡, 措置防備; 南道有武才軍士, 量數加抄赴防; 北道內需司奴子及公私賤有武才者抄擇, 若有事變, 隨其緩急, 竝令助戰。 道內軍糧, 令觀察使, 次次移轉餽餉; 助防將不可久留, 使之周年相遞; 弓箭及放砲諸具、破陣軍, 去三月, 已曾下送, 玄字銃筒及鐵丸, 量授助防將下送; 亦令本道, 多造鐵丸, 常常習放以禦敵兵。 將此意下諭何如? 今此事變進告胡人 羅時哈, 前日進告之言亦實。 以前功, 依上京授職野人例, 衣服及靑紅綿布, 從優磨鍊下送賞給, 今此進告若實, 各別上京, 高品授職論賞事, 竝下諭何如?"

【史臣曰: "仍巨島設鎭, 旣誤於前, 草串斬伐, 再誤於後。 軍卒疲於飛輓, 朝廷勞於謀議, 是孰使之然哉? 邊將喜功生事之心, 固不可啓也。"】


  • 【태백산사고본】 11책 16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199면
  • 【분류】
    정론(政論)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부방(赴防) / 군사-병참(兵站) / 인사-관리(管理)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