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이 전대 서얼의 현직 서용에 관한 사실을 전하다
정원이 아뢰기를,
"서얼에 관한 일은 태조조에는 일기(日記)가 없고, 태종조도 편찬한 것이 대부분 없어져 고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세종(世宗)과 문종(文宗)의 양조의 일기를 고찰해 보니, 대체로 서얼에 대한 방금(防禁)은 이미 오래되어 관직을 제수한 것이 비록 태종조에 비롯되었다고는 하나, 동서반(東西班)의 정직(正職)이 아니라 삼의사(三醫司)158) 의 직이었으며, 이전에는 비록 겸사복(兼司僕)·갑사(甲士)라도 소속을 허락치 않았었습니다. 또 소위 현직(顯職)이라는 것은 대간·시종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서반의 정직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육전(經濟六典)》에 기록되어 있는 ‘서얼은 현직에 서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도 동서반의 벼슬길을 허통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서얼들이 올린 소장(訴狀)에 ‘대언(代言) 서선(徐選)의 진언으로 인하여 비로소 현직에 서용하지 말라는 명이 내려졌다.’고 했는데, 신들도 그렇게 생각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고찰해보니, 우리 나라에서는 서선 이전에는 서얼이 삼의사(三醫司)의 직도 얻지 못하다가 서선의 진언으로 인하여 비로소 한품 수직(限品授職)159) 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도 서얼들은 도리어 서선으로 말미암아 벼슬길이 막혔다고 하니, 이는 실로 외람되게 속이는 말입니다. 예로부터 서얼 중에 어찌 채용할 만한 재기(才器)를 가진 자가 없었겠습니까마는, 항상 국법에 통제되어 감히 분수를 뛰어 넘을 마음을 갖지 않았었습니다. 그간에 간혹 한두 사람에게 허통한 일은 있으나, 이는 모두 국가에 큰 공로가 있어서 한때 특은(特恩)을 받은 것입니다. 일기를 상고한 소견이 이러하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5권 51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171면
- 【분류】정론(政論) / 가족-가족(家族) / 신분(身分) / 인사(人事)
○甲辰/政院啓曰: "庶孽事, 太祖朝無日記, 太宗朝則所編多逸。 只考世宗、文宗兩朝日記, 則大抵庶孽之防已久。 授職雖曰始於太宗朝, 而亦非東西班正職, 乃三醫司之職也, 雖如兼司僕、甲士, 前此亦不許屬矣。 且所謂顯職者, 非止謂臺諫、侍從也, 凡東西班正職, 通謂之顯職也。 然則《經濟六典》所載庶孽不(叔)〔敍〕 顯職者, 恐非許通於東西班仕路也。 庶孽等所訴內: ‘有因代言徐選陳言, 始勿敍顯職’ 云。 臣等亦疑其或然也, 乃今考之, 則吾東方自徐選之前, 三醫司之職, 庶孽猶不得爲之, 至徐選陳言, 始開限品授職之路, 而庶孽等反謂自徐選防之, 此實冒濫欺誣之言也。 自古此類, 豈無才技之可取者, 常爲國防所制, 無敢有越分之心。 其間或有一二許通之人, 皆以勳舊之故, 而出於一時特恩也。 參考日記, 所見如此, 故敢啓。" 傳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11책 15권 51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171면
- 【분류】정론(政論) / 가족-가족(家族) / 신분(身分)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