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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15권, 명종 8년 9월 28일 신미 1번째기사 1553년 명 가정(嘉靖) 32년

사간원이 화재의 뒷수습에 대해 제사를 고하다

간원이 아뢰기를,

"대내의 화재는 천고에 없던 일입니다. 상께서 수성(修省)하는 도리에 있어서는 하늘이 견책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유사(有司)의 임무에 있어서는 마땅히 불을 낸 자와 그 불이 처음 일어난 것을 먼저 보고도 끄지 않은 자 및 달려와 아뢰지 않은 자를 자세히 캐내어 그 죄상을 밝힘으로써 그 일을 중하게 다루어서 아래로는 신민의 통분한 마음을 쾌하게 하고 위로는 하늘에 계신 조종(祖宗)의 영혼을 위로하여야 할 것입니다.

의금부는 이미 추국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면 마땅히 수삼일 안에 주야를 가리지 말고 조사해서 죄인이 핑계를 꾸며대기 이전에 여러 방면으로 추궁하여 사실을 알아내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반 달이 되도록 2∼3차례 형신만 하여 마침내 묵은 사건이 되게 해서 간악한 무리들로 하여금 온갖 방법으로 거짓을 꾸며 그 죄를 면하기를 도모하게 만들었습니다. 국가의 중대한 죄를 평소에 보통 일을 추국하는 것과 똑같이 다루었으니, 국가에 기강이 있는데도 이와 같이 하였겠습니까. 전하께서 두려워하여 급급해 하시는 뜻을 생각하지 않고, 그 직무를 태만히 함이 심합니다. 금부의 당상관과 색낭청(色郞廳)을 먼저 파직시킨 후에 추고하소서. 그리고 아직 자복(自服)하지 않은 자들은 【환관 김석련(金錫鍊) 등이다.】 조율(照律)을 정지하고 옥사(獄事)를 끝까지 다스려서 그 죄를 정하소서.

금화사(禁火司)는 불을 끄기 위하여 설치한 것인만큼 항상 종루(鍾樓) 위에 있으면서 연기가 오르는가를 살펴보다가, 즉시 끄는 것이 그 직무입니다. 그런데 대내의 불이 삼경(三更)에 일어났는데도 즉시 알지 못하고 사경(四更)이 되어서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들어가 끄기 시작했으니,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죄가 분명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지금까지 그 죄를 다스리지 않으므로 물정이 모두 온당하지 못하게 여깁니다. 화재가 발생했던 날 상직(上直)했던 관원을 먼저 파직시킨 후에 추고하소서.

동궁(東宮)의 화재가 비록 선왕조(先王朝) 때에 있었던 일이나 동궁을 다시 고쳐서 새롭게 짓는 것은 지금 마침 그 시기를 당했습니다. 동궁의 궁실들은 바로 조종께서 세자(世子)로 계실 때 거처하셨으므로 그 경해(謦咳)가 어린 곳이기 때문에 후사왕(後嗣王)의 추모와 효사(孝思)가 간절한 데인데 하루아침에 모두 잿더미가 되었으니,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그 옛제도를 버리고 새로운 제도로 창건한다면, 이는 경해가 어린 곳을 추모하는 장소마저 길이 그 자취를 없애버리는 것이니, 불행 중에 더욱 불행한 일입니다. 효사하는 도리에 어그러질까 두렵습니다.

이 동궁은 바로 사왕(嗣王)을 위하여 설치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제왕들은 비록 검약함으로써 후왕(後王)들을 인도하더라도 오히려 사치로써 이을까 염려하였는데 더구나 지금 다시 그 제도를 더 넓혀서 규모를 크게 한다면, 뒤를 계승하는 후왕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도리에 더욱 위배될 것입니다. 상께서 옛규모보다 넓히려 하시는 이유는 옛규모가 너무 협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신들이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협착한 것에서, 선왕들이 땅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으며 재목도 넉넉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제도를 이와 같이 협착하게 한 것을 생각한다면, 선왕의 검소한 덕이 길이 후세에 전해질 것이며, 뒤를 계승한 후왕들이 선왕께서 이룩해 놓으신 법을 준수함이 무궁하게 될 것입니다.

신들이 어제 대신들이 아뢴 것을 보니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대내를 짓는 역사도 장차 크게 일으켜야 할 처지인데 지금 백성은 곤궁하고 재정이 고갈된 때이므로 때는 좋지 않고 역사는 거창하니 어찌 사리에 합당하겠습니까. 동궁을 짓는 일은 옛규모를 따르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생각에도 금부가 죄를 다스리는 것이 너무 태만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파직하는 것은 너무 무거우니, 행공 추고(行公推考)하라. 조율을 정지하는 것과 금화사(禁火司)에 대한 일은 모두 아뢴 대로 하라. 동궁의 자선당(資善堂)은 세자(世子) 상견례(相見禮) 때에 뜰이 매우 협착하여 사람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넓혀서 짓도록 명한 것이다. 그러나 옛 제도에 방해가 되는 곳은 줄여야 할 것이다. 내가 어찌 사치를 힘쓰겠는가. 지금 재목과 돌이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성명(成命)을 굳이 고칠 필요는 없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5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16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군사-금화(禁火) / 사법-재판(裁判) / 재정-역(役) / 건설-건축(建築)

○辛未/諫院啓曰: "大內失火, 千古所無之事。 自上修省之道, 固當曰天之示譴, 而有司之任, 則所當盤詰出火之人, 與夫先見其火之始起, 而不卽救者及不奔告之人, 而明正其罪, 以重其事, 下以快臣民之憤, 上以慰祖宗在天之靈也。 義禁府旣受推鞫之命, 則當於三日之內, 不計晝夜而坐, 須於罪人未及修飾之前, 多般窮詰, 期於得情, 乃其職也。 今至半月, 而只刑二三次, 乃成老獄, 使奸細之徒, 百般詐飾, 謀免其罪, 而視國家非常之罪, 有同尋常例推之事。 此果國有紀綱而如是乎? 其不念君上驚動遑遑之意, 怠棄職事甚矣。 禁府堂上及色郞廳, 請竝先罷後推, 其未推罪人等, 【宦官金錫鍊等。】 請停照律, 究竟獄事, 以定其罪。 禁火司, 乃爲救火而設, 則晝夜在于鍾樓之上, 而瞭望烟光火氣, 登時救滅, 乃其職也。 大內之火, 始於三更, 而不卽知之, 至於四更而後, 乃與凡人同入救之。 其不瞭望之罪, 昭著無疑, 而至今不治其罪, 物情皆以爲未便。 其日上直官員, 請先罷後推。 東宮失火, 雖在先王之朝, 改而新之, 適當今時。 其宮其室, 乃祖宗龍潛時所御之地, 其警咳羹墻, 後嗣後王, 追慕孝思之所在。 一朝而至於灰燼, 不幸之甚也。 今若棄其舊制, 而創立新制, 則是竝與追想羹墻警咳之所, 而永廢其迹, 是不幸中之又不幸也。 恐有妨於孝思之道也。 是宮, 乃爲嗣王而設, 則自古帝王, 雖以儉約導後王, 猶恐以奢繼之。 況復開廣舊規, 而侈大其制, 則尤有妨於垂範後嗣之道也。 自上欲廣舊規, 臣等非不知必因舊制之狹窄而然也, 然因其狹窄, 而思想先王, 地非不足, 材木非不有餘, 而制度之狹窄如是, 則先王之儉德, 永垂於不朽, 而後嗣之遵守成憲, 亦無窮矣。 臣等昨見大臣所啓, 必有深意。 況大內之役, 亦將大擧, 則今當民窮財盡之時, 時屈擧贏, 豈合事宜乎? 東宮造成, 請依舊規。" 答曰: "予意亦以禁府之治獄爲慢矣。 然罷職過重, 行公推考。 停照律及禁火司事, 皆如啓。 東宮資善堂, 於世子相見禮時, 庭甚狹窄, 人不能容, 故差令增造。 然舊制有妨處, 亦可損之。 予豈務侈? 今木石已備, 不必改其成命。 不允。"


  • 【태백산사고본】 11책 15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16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군사-금화(禁火) / 사법-재판(裁判) / 재정-역(役) / 건설-건축(建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