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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15권, 명종 8년 7월 12일 병진 2번째기사 1553년 명 가정(嘉靖) 32년

자전의 뜻을 받들어 친정할 것을 밝히다

삼공에게 전교하기를,

"내가 하루 아침에 홀로 모든 기무를 결단하는 것은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매우 미안하다. 내가 다시 자전께 아뢸 것이니, 대신들도 아뢴다면 자전의 생각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하니, 심연원·상진·윤개 등이 회계(回啓)하기를,

"성상께서 굳이 사양하심은 비록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나, 자전께서 성상의 학문이 고명하고 나이가 장성하여 모든 기무를 홀로 결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귀정하신 것입니다. 신들 또한 자전의 분부가 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만일 굳이 아뢴다면 매우 구차하게 될 것입니다. 자전께서 비록 수렴 청정을 거두신 뒤에라도 큰일은 자전께 여쭈어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선 자전으로 하여금 편안히 정신을 기르시게 함이 큰 효입니다."

하였다. 상이 답하기를,

"자전의 뜻이 간절하시고 대신의 뜻 또한 이와 같아 형편상 어쩔 도리가 없으니, 억지로나마 따르겠다."

사신은 논한다. 대비는 처음에 중묘조(中廟朝) 때 대윤(大尹)·소윤(小尹)의 설(說)로 인하여, 상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지난날의 감정을 분풀이하고자 하였다. 이에 한결같이 윤원형(尹元衡)의 하는 바를 들어주어 사림을 모함해서 명유(名儒)와 열사(烈士)들을 거의 다 제거하였다. 이 때문에 7∼8년 동안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또 이교(異敎)를 신봉하여 다시 선과(禪科)를 설치하고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길을 크게 열어 놓아 국정을 어지럽혔다. 사람들은 모두 권력에 연연하여 임금에게 정권을 바로 돌려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루 아침에 귀정한다는 명령을 내리니,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다행으로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5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149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역사-사학(史學)

○傳于三公曰: "一朝獨斷萬幾, 反覆思之, 極爲未安。 予當更啓於慈殿, 大臣亦啓之, 庶幾回天之聽。" 連源尙震尹漑回啓曰: "自上固辭, 雖出於至誠, 慈殿以爲聖學高明, 春秋長盛, 萬幾可以斷, 故歸政。 臣等亦以爲聖敎至當。 今若强啓之, 極爲苟且。 雖撤簾之後, 事之大者, 猶可稟裁。 且使慈殿, 頣養精神, 是孝之大者也。" 答曰: "慈旨丁寧, 大臣之意又如此, 勢至於不獲已, 故勉從之矣。"

【史臣曰: "大妃始因中廟小尹之說, 當上卽位幼沖之時, 欲洩前憾, 一聽尹元衡所爲, 構禍士林, 名儒、烈士, 芟刈殆盡, 七八年間, 人皆重足。 又崇信異敎, 復設禪料, 大開利門, 變亂國政。 人皆謂係戀權柄, 不卽復辟, 而一朝有是命, 國人莫不幸焉。"】


  • 【태백산사고본】 11책 15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149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