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 12권, 명종 6년 9월 29일 갑인 5번째기사
1551년 명 가정(嘉靖) 30년
윤개를 우의정으로 삼다
윤개(尹漑)를 의정부 우의정으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윤개는 파평인(坡平人)이다. 일찍이 김안국(金安國)에게 수업하였는데, 일을 논의할 때 세세하게 살피는 병통이 있었다. 상의 즉위(卽位) 초에 대신들이 윤원로(尹元老)를 외지로 귀양보내려고 하였는데, 윤개가 그 계획을 누설하였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모두 변변치 않게 여겼다. 을사년 공신에 참여되었다가 이때에 이르러서 이조 판서에서 우의정으로 승진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윤개는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며서 겉으로는 청렴하고 검소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실상 사치스럽고 화려하여 의복과 음식의 참람함과 저택의 호화로움을 당시에 따를 자가 없었다.
윤원형을 의정부 좌찬성으로, 신광한(申光漢)을 우찬성으로, 송세형(宋世珩)을 이조 판서로, 이명규(李名珪)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어계선(魚季瑄)을 지평(持平)으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2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46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