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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11권, 명종 6년 6월 23일 경진 1번째기사 1551년 명 가정(嘉靖) 30년

봉상시 제조 이기 등이 문소전의 기명을 제도에 맞춰 작게 만들기를 청하다

봉상시 제조(奉常寺提調) 이기·임권이 아뢰기를,

"전일 문소전(文昭殿)의 기명(器皿)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을 신들이 자세히 의논 계청하여 즉시 윤허를 받아 완(椀)·보아(甫兒)·종자(鍾子) 등을 횡간(橫看)095) 에 따라 차례로 개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문소전의 제조(提調) 등이 또 탕완(湯椀) 12개를 개조하고 나머지는 다 옛것을 그대로 쓰겠다고 청했다 합니다.

대저 신자(臣子)의 마음에 조선(祖先)을 위해 풍후(豊厚)하게 하고자 함이 어찌 한량이 있겠습니까. 다만 천지(天地)의 생물(生物)이 스스로 정수(定數)가 있으므로 과람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성인이 제작할 때 반드시 정한(定限)을 두었던 것입니다. 주공(周公)《주례(周禮)》에 그 한제(限制)를 정하였으니 정(鼎)·조(俎)·등(㽅)·두(豆)와 같은 것도 각기 규구(規矩)와 척촌(尺寸)의 한계를 둔 것은 수용해 들어가는 수량을 무제한 남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왕자(王者)는 천하를 집으로 삼으니 그 자봉(自奉)함에 있어 비록 천하의 아름다움을 다한다 하더라도 부족할 바 없을 것인데 공봉하는 제구에도 정한을 둔 것은 모두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뜻인 것입니다.

향사(享祀)의 도리는 요컨대 성경(誠敬)에 있는 것이고, 선수(膳羞)096) 의 풍성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들이 과대한 것을 고치고자 함은 조종의 옛 제도를 고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磁器) 등속은 국가에서 정한 규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장인들이 임의로 구워 만든 것인데 말세의 사치 풍조로 인하여 다투어 풍대(豊大)한 것을 숭상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와서는 자기는 깨어지기가 쉽다 하여 유기(鍮器)로 대신하게 되었는데 당시의 유사(有司)가 그 체양(體樣)을 줄일 줄을 모르고 자기의 형체 그대로 만들어서 과대(過大)하기가 여전합니다. 이 제기가 만약 선왕이 정한 제도이던가 혹은 옛날 성현이 제작한 것이라면 고쳐서는 안 될 이치가 있겠지만, 요즈음 말속의 폐단과 장인의 제작을 그대로 사용하여 무궁한 폐단을 초래하고 있으니 횡간의 옛규정에 따라 고치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근년에 거듭 기근이 들어 온갖 물건이 떨어져서 이제는 모든 공진(供進)이 다 민력(民力)에서 나오는데 폐가 이에 이르렀는데도 굳이 지키고 고치지 않는다면 후일에 더 불어나고 퍼져서 마침내 구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기명이 작으면 남는 물건을 두기가 어렵다 합니다. 신들이 조종의 옛 규례를 자세히 상고해 보니, 모든 제사에 공진하는 물품은 항상 여유가 있게 한다는 것은 그 수량을 있는 대로 다 담는 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물품에는 반드시 정(精)한 것과 추(麤)한 것이 있는 법인데 원수(元數)에 여유가 있어야만 그 정하고 아름다운 것은 골라서 공진하고 그밖의 추말(麤末)한 것과 버린 찌꺼기는 제수(祭需)에 섞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 남는 물건은 간 곳을 묻지도 않으며 또한 둘 곳도 마련하지 않는다 하니 그 정규(定規)의 본의를 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신들이 가만히 생각하니 정성을 드리고 공경을 다한다 함은 기명의 과대나 제수의 풍후(豊厚)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요컨대 심신(心神)을 전일하게 하여 정결(淨潔)하게 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지금 다만 반완(飯椀)·탕완(湯椀) 12개만 고치고 나머지는 다 예전대로 한다면 일반 탕완은 체제가 아주 달라서 향사의 예절에 더욱 온편하지 않게 될 것이니, 다 고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조로 하여금 일체 조종조 횡간의 옛 규정에 따라 차례로 개조하여 만세의 무궁한 폐단을 제거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제사는 성경을 위주로 하고 일체 선왕의 옛 규정에 의거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뢴 바가 마땅하다. 다만 전자에 반탕(飯湯)의 자완(磁椀)은 과대한데 장(醬)은 매우 조금 넣기 때문에 맛이 알맞지 않다고 하기에, 반탕의 자완만을 개조하게 하였을 뿐이다. 담는 제물을 그릇에 알맞게 하는 것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 만약 자완을 다 개조한다면 남는 제물이 많이 생길 것인데 그것을 다른 데 쓰기는 미안하다. 거듭 헤아려 보았으나 다른 자완까지 다 고칠 수는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1권 55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8면
  • 【분류】
    식생활-기명제물(器皿祭物) / 공업(工業) / 재정-공물(貢物)

  • [註 095]
    횡간(橫看) : 세로로 이어 내려가며 적지 않고 항목에 따라 가로 벌여 적어서 한꺼번에 보기 쉽게 만든 문서로 지금의 일람표와 비슷하다. 횡간기(橫看記).
  • [註 096]
    선수(膳羞) : 제사 음식.

○庚辰/奉常寺提調李芑任權啓曰: "前以文昭殿器皿過大, 臣等詳議啓請, 卽蒙允下, 椀及甫兒、鍾子等, 依橫看, 次次改造, 而今者殿提調等, 又請改湯椀十二, 餘皆仍舊云。 大抵臣子之心, 爲祖先欲致豐厚, 豈有窮已? 但天地生物, 自有定數, 不可過濫, 故聖人制作, 必有定限。 周公《周禮》, 定爲限制, 如鼎、俎、㽅、豆, 各有規矩尺寸, 容入之數, 不可無限制而濫用故也。 王者以天下爲家。 凡所自奉, 雖極天下之美, 無所不足, 而供奉之具, 亦有定限, 皆所以敬天愛民之意也。 凡享祀之道, 要在誠敬, 不在膳羞之豐盛。 臣等欲改過大者, 非所以欲改祖宗舊制也。 磁器之類, 國家非有定規, 乃匠人任意燔造, 而末世奢侈, 爭尙豐大, 而及其後也, 磁器易破, 代以鍮器, 當時有司不知裁損體樣, 仍磁器之形而過大如前。 此器若先王定制, 或古先聖賢之制作, 則有不可改之理矣, 今者乃仍末俗之弊, 匠者之造而致有無窮之弊, 則改依橫看舊規, 有何不可? 近年飢饉荐臻, 百物凋耗, 凡所供進, 皆出民力。 弊至於此, 而膠守不改, 則末流滋蔓, 終無以救之矣。 又以爲器皿體少, 則剩餘之物, 置之爲難云。 臣等詳究祖宗舊規, 凡祭供之物, 常有餘裕, 非謂盡其數入盛也。 凡物必有精麤, 元數有餘, 然後方可擇其精美而供進, 其他麤末除滓, 不雜於祭需, 故剩餘之物, 不問去處, 亦不爲置處, 則定規本意, 於此可知。 臣等竊意, 致誠致敬, 不在器皿過大, 饌膳豐厚, 要在專一心神, 致其潔凈而已。 今只改飯、湯椀十二, 餘皆仍舊, 則一般湯椀, 體制殊異, 享祀之禮, 尤爲非便, 不可不盡改。 令該曹, 一依祖宗朝橫看舊規, 次次改造, 以除萬世無窮之弊。" 傳曰: "祭以誠敬爲主, 而一依先王舊規, 所啓當矣。 但前者, 以飯湯磁椀過大, 而所入之醬甚少, 以此味不適中云, 故但令改造飯湯磁椀耳。 所盛之物, 與器適中, 其來已久。 今若盡改磁椀, 則物多剩餘, 未安於他用。 反覆計之, 不可盡改他椀。"


  • 【태백산사고본】 9책 11권 55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8면
  • 【분류】
    식생활-기명제물(器皿祭物) / 공업(工業) / 재정-공물(貢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