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명종실록 11권, 명종 6년 1월 19일 정미 4번째기사 1551년 명 가정(嘉靖) 30년

좌우 정승·양사·홍문관 장관을 인견하고 양종의 일을 불허하는 뜻을 말하다

상이 좌우 정승과 양사와 홍문관의 장관을 인견(引見)하였는데, 대왕 대비도 함께 나아가 수렴하였다. 자전이 이르기를,

"양종의 일로 온 조정이 여러날 논집하고 있으니, 위에서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지금 굳이 이교(異敎)를 숭상하여 믿고자함이 아니라, 근래에 국운(國運)이 비색하여 두 대왕018) 께서 계속하여 승하하셨고 게다가 해마다 흉년이 들어서 백성의 생활이 날로 곤궁해지고 있는데 박덕(薄德)한 내가 국정(國政)에 참여하면서부터 흉년이 거듭되고 재변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으므로, 생각이 거기에 미치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상심(喪心)이 되기에 백방으로 생각한 나머지 한 가지 폐단이라도 바로잡아 보려고 양종을 다시 세운 것이다.

중들은 날로 번창하고 군액(軍額)은 날로 감축되고 있으며 사찰은 도둑의 소굴이 되고 있는데 하루 아침에 중들을 핍박하여 모두 환속(還俗)하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니 만약 이들을 통솔하는 자가 있으면 늘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종조에서도 불교를 숭상하지는 않았으나 양종을 폐지하지 않았던 것은 다만 폐단을 구제하고자 했던 것이다. 내가 불교를 숭상해 믿는 것이 아니며, 또한 주상께서 함께 알고 있던 것도 아니다. 만약 고칠 만한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논란을 계속하지 않더라도 어찌 즉시 따르지 않았겠는가? 오늘의 책임이나 만세의 비난은 모두 나에게 있다. 내 한 몸 돌아보지 않고 오직 한때의 폐단을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니, 관심없이 내버려 두어서 백성이 모두 중이 되게 하는 것이 어찌 금지시키고 통솔하는 자를 두어 그 폐단을 구제하게 하는 것만 하겠는가? 단순하게 이단이라고 하여 배척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수령(守令)들이 탐욕을 부려서 백성들에게서 재물을 긁어들이고 있으니 백성이 중이 되는 이유는 실상 이 때문인 것이다. 성종조(成宗朝)에 부민고소법(部民告訴法)을 만들었는데, 이로부터 청렴하지 못한 수령들이 기탄 없이 방자한 행동을 하므로 그 폐단을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폐단이 이미 고질화되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므로, 심연원이 아뢰기를,

"소신처럼 덕이 없는 사람이 외람되게 정승 자리에 있으므로, 재변(災變)이 끊이지 않고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고 눈 위에 황충(蝗蟲)이 나온 것 등을 말한다.】 해마다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부역(賦役)에 시달리다 못하여 모두 중이 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대책을 널리 물어 강구한다면 어찌 그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이교(異敎)를 세워서 통솔하는 자를 두어 중이 되는 길을 막게 한단 말씀입니까? 전일에는 비록 양종이 없었어도 부역을 피하는 자가 모두 중이 되었는데, 지금 만약 이렇게 한다면 그 세력이 더욱 확대되어서 금지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조종조에서는 전조(前朝)019) 의 폐습으로 인하여 갑자기 고칠 수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후세에서 준수할 법은 아닙니다. 중종조(中宗朝)에 와서 그 폐단을 모두 혁신하여 그 다행함이 사실 컸습니다. 이제 성상의 학문이 날로 고명(高明)해 가므로 조정이나 민간에서 모두 지치(至治)의 날을 갈망하고 있는데, 그 지치의 교화가 아직 신임을 얻기도 전에 이교를 먼저 보여주고 있으므로, 온 나라의 신민들이 민망하고 답답함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제왕의 정치가 어찌 불씨(佛氏)에게 힘을 빌어서 이루어지겠습니까. 마약 이렇게 해서 폐단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찌 감히 이와 같이 논쟁을 고집하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이르기를,

"불교의 힘을 빌어서 국가를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중들이 너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폐단을 구제할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다시 고쳐서는 안 된다."

하였다. 이에 입시(入侍)한 신하들이 각각 양종을 다시 세우는 것은 옳치 않다는 뜻을 반복하여 진술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자전이 이르기를,

"나의 뜻이 이미 결정되어 끝내 고칠 수가 없으므로 오늘 굳이 내 뜻을 조정에 말하는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1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5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사상-불교(佛敎) / 인사-선발(選拔) / 군사(軍事)

○上引見左右相及兩司、弘文館長官。 大王大妃垂簾同御。 慈殿曰: "以兩宗事, 朝廷累日論執, 自上甚爲未安。 今者非敢崇信異敎, 邇來國運迍邅, 兩大王相繼賓天, 而加以連歲凶歉, 民生日困。 予以薄德, 與於國政, 饑饉荐臻, 災變連仍。 言念至此, 不覺喪心, 百計思之, 欲知一分之弊, 而復立兩宗耳。 僧徒日繁, 軍額日減, 寺刹爲盜賊之藪。 不可一朝驅迫僧徒, 盡令還俗, 若有統領, 則不得滋蔓矣。 祖宗朝, 亦非崇佛, 而不廢兩宗者, 只欲救弊耳。 予非崇信佛敎, 亦非主上所與知也。 若可改之事, 則雖不至此論執, 豈不卽從乎? 當今之責, 萬世之譏, 皆在於予。 予不顧一身, 欲救一時之弊, 與其置之度外, 而民皆爲僧, 曷若禁防而使有統領, 以救其弊乎? 徒以爲異端而斥之未便。 守令貪暴, 割剝生民, 民之爲僧, 職此由也。 成宗朝立部民告訴之法, 而自是之後, 守令不廉者, 恣行無忌。 欲矯此弊, 而弊已痼也, 亦未果焉。" 沈連源曰: "如小臣不德之人, 忝在相位, 故災變不絶, 【如白虹貫日, 雪上蝗蟲也。】 年連凶荒, 民困賦役, 皆入緇徒。 廣詢設策, 豈無其道? 而立異敎使有統領, 以杜爲僧之路乎? 前日雖無兩宗, 民之避役者, 尙皆爲僧。 今若如是, 則其勢益張而難禁矣。 祖宗朝則因前朝弊習而不能卒革也, 非後世遵守之法也。 中宗朝, 盡革其弊, 爲幸實多。 聖學日就高明, 朝野顒望至治, 而治化未孚, 先示異敎, 擧國臣民, 不勝憫鬱。 帝王之治, 豈借力於佛氏而致之乎? 若以此而可以救弊, 則豈敢如是論執乎?" 慈殿曰: "非欲借力於佛氏, 以治國家也。 僧徒滋蔓已極, 百爾思之, 救弊之策, 不可不爲, 故不可更改也。" 入侍之臣, 各陳不可復立兩宗之意, 反覆不已, 慈殿曰: "予意已定, 終不可改, 故今日敢言予意於朝廷矣。"


  • 【태백산사고본】 9책 11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5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사상-불교(佛敎) / 인사-선발(選拔)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