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감 현조가 무일편을 쓴 병풍을 바치고 경계의 뜻을 담은 상소를 올리다
화성감(花城監) 현조(顯祖)가 무일편(無逸篇)100) 을 쓴 작은 병풍을 바치고 이어 상소를 올리기를,
"신은 어려서 작성(作成)의 교화를 입어 학문의 방향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하루는 친구와 마을에서 독서하다가 주인집에 무일편을 쓴 작은 병풍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편첩(編帖)이 다 찢어지고 자획도 떨어져나간데다 연기에 그을고 아동들이 더렵혀서 거의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신이 먼지를 닦아 낸 다음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그 규모나 체제로 보아 결코 일반 민가의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집 주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병풍은 어디에서 구한 것인지를 물었더니, 집 주인은 바로 선조(先祖) 때 방출(放出)된 궁인(宮人)의 후예이고 병풍은 선대(先代)부터 전해 내려온 것으로 당초 어떻게 해서 집에 있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무일편은 바로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경계한 글인데, 그 병풍 서두에 ‘어찌 꼭 성왕만이 알아야 할 것인가? 실로 천하 만세 임금의 귀감(龜鑑)인 것이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신의 생각에 이것은 틀림없이 당시에 송경(宋璟)101) 같은 신하가 있어 이것을 써 올린 것이거나 아니면 선왕(先王)께서 손수 써서 항상 좌우에 두고 수시로 보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았던 것인데 연산(燕山) 때에 버려둔 채 간수하지 않아 밖으로 유출되어 민가에서 천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인 듯하였습니다. 한심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즉시 값을 치르고 가져간 다음 더렵혀진 부분을 닦아내고 떨어져 나간 부분을 보수하여 옛 모양대로 개장(改粧)하여 겹겹으로 싸서 소중히 간직하였습니다.
삼가 전하께서 유충(幼沖)한 나이로 왕위를 이어받아 입정(立政) 초기부터 누차 구언(求言)하는 하교를 내려 양민(養民)의 정책에 깊은 관심을 두었으므로 삼대(三代) 시절의 정치가 오늘날에 다시 실현될 가망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여 대소 신민(臣民)들이 조야(朝野)에서 서로 경하하고 있으니, 주 성왕(周成王)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전하께서는 오늘의 성왕(成王)이요, 이 병풍은 옛날의 주공(周公)입니다. 성왕이 주공의 무일의 경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감옥이 텅 빌 정도의 아름다운 치적을 남기기 어려웠던 것처럼 전하께서 비록 인심(仁心)과 인문(仁聞)이 있다 하더라도 성왕의 정치를 본받지 않고서는 백성들이 그 은택을 입지 못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 병풍을 자리 곁에 두시고 언제나 눈여겨 보시면서 성왕이 주공의 교훈을 받아들인 것과 주공이 성왕을 경계한 뜻을 생각하시어 성왕의 마음을 가지고 성왕이 하던 일을 행하소서.
그리하여 한가한 틈에 혹시라도 나태한 마음이 생기면 이 병풍을 보시면서 임금 노릇하기가 어려운 점을 생각하시고 사치스러운 데로 흘러 검약(儉約)하는 마음이 해이해질 때는 이 병풍을 보시면서 백성들의 노고를 생각하여, 이 백성들이 지치(至治)의 은택을 입을 수 있게 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어리석은 신은 왕족의 후예이기에 더욱 감격이 지극한 것입니다."
사신은 논한다. 여기 바친 규경(規警)의 글과 그가 논한 간절한 말은 옛일을 원용하여 지금을 깨우친 것으로 임금의 잘못을 바루는 도리에 있어 제대로 된 것이다. 종실 중에도 이렇게 강개한 인물이 있을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였는데, 어필(御筆)로 답하기를,
"지금 상소를 보건대 내용이 절실하고 바쳐 온 무일편의 작은 병풍은 바로 옛 성현의 말씀으로 임금이 거울로 삼을 만한 글인데 임금을 사랑하여 경계한 뜻이 참으로 가상하다. 곁에다 두고 항상 유념하여 살피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112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67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
臣少蒙作成之化, 稍知學問之方。 一日與友人, 讀書于村落, 幸見主家有短屛, 錄書《無逸》, 編帖破裂, 字畫殘缺, 且爲烟火所染爍, 兒童所汚墨, 殆不可觀。 臣拂拭而熟視, 其規模體制, 決非凡人家物, 怪而問其主, 爲何如人, 與夫屛之所自出, 則曰, 主人乃先朝放出宮人之後也, 屛則其先世所傳, 不知厥初之所從來也。 臣竊料《無逸》, 乃周公戒成王之書也, 而篇序曰: "豈獨成王之所當知哉? 實天下萬世人主之龜鑑也。" 此必當時之臣, 有如宋璟者, 寫此以進, 抑先王之所手寫, 而常置諸左右, 孜孜覽省于此, 而恐如燕山之時, 棄擲不收, 流出于外間, 爲常家所賤歟? 寒心驚駭, 卽與其直而取之, 洗其汚補其破, 仍舊制而改粧焉, 十襲而寶重之。 伏見殿下, 以幼沖嗣位, 立政之初, 屢下求言之敎, 眷眷於養民之政, 三代之治, 將復見於今日, 而大小臣民, 相慶於朝野, 雖周之成王, 無以加矣。 第念殿下, 今日之成王, 此屛昔日之周公。 成王不有周公 《無逸》之戒, 則難致囹(圉)〔圄〕 空虛之美; 殿下雖有仁心仁聞, 而不效成王之政, 則民不被其澤矣。 伏願殿下設此屛於座側, 常目在之, 念成王受周公之訓, 思周公戒成王之意, 以成王之心, 行成王之事。 怠荒之心, 或生於宴安之隙, 則觀此屛而思爲君之難, 儉約之心, 或弛於侈用之際, 則觀此屛而念爲民之苦, 使斯民蒙至治之澤, 幸甚。 臣愚在維城末裔之親, 尤有所感激之至。
【史臣曰: "所獻規警之書, 所論切至之言, 援古諷今, 得於格君之道。 豈料宗室之中, 有此慷慨者乎?"】
御筆答之曰: "今觀上疏, 辭意切至, 所獻《無逸》短屛, 乃古聖賢之言, 爲人君可鑑之書, 而愛君進戒之意, 良用可嘉。 置諸座側, 常留省焉。"
-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112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67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