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 9권, 명종 4년 10월 2일 무술 4번째기사
1549년 명 가정(嘉靖) 28년
승정원이 구엄의 일로 아뢰었으나 불윤하다
정원이 아뢰기를,
"구엄이 성산(聖算)의 장단과 국맥(國脈)의 소장(消長)에 대해 점쳤으니 그의 흉패하고 부도한 정상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원로나 건양(建陽)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죄가 종사에 관계된 자가 천주(天誄)를 면하고 내지(內地)로 귀양간 데 대하여 물정이 모두 흔쾌하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아내가 교묘히 꾸며 상언을 올리자 방송할 것을 특명하셨으니 보고 듣기에 해괴한 일입니다. 속히 성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니, 답하기를,
"구엄이 비록 점쳤다고는 하나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차이가 있다. 또 연산의 제사를 맡은 사람이 끊어지게 되어 불쌍한 생각에서 놓아준 것이니 고칠 수 없다."
하였다. 【그 후 대간의 누차에 걸친 아룀으로 인하여 그를 폐주(廢主)의 능묘 곁으로 이배(移配)하도록 다시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100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67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