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정유길과 교리 원호변이 고변하다
사인 정유길(鄭惟吉)과 교리 원호변(元虎變)이 함께 정원에 나아가 봉서(封書) 하나를 올리고 고변(告變)하기를,
"사연(辭緣)은 모두 봉서에 갖춰져 있으므로 따로 아뢸 말이 없습니다. 또 죄인 이홍남(李洪男)은 신(臣) 원호변(元虎變)에게는 매부가 되고 신(臣) 유길(惟吉)에게는 동서(同壻)가 됩니다. 어제 신들에게 그의 아우 이홍윤(李洪胤)의 부도(不道)한 죄상을 적은 편지를 보내왔는데 이를 보고 통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신들은 모두 시종신(侍從臣)으로서 이렇게 흉악하고 참혹한 말을 듣고 차마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군신간의 의리는 부자간과 같으므로 사적인 편지라고 하여 숨겨서는 안 되겠기에 봉함하여 아룁니다." 【이는 원호변과 정유길의 계사(啓辭)이다.】
하고, 우승지 원계검(元繼儉)은 아뢰기를,
"봉함한 편지를 신에게는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계사에 신의 이름은 쓰지 않았으나 신 역시 동참(同參)이 되므로 아룁니다." 【원계검(元繼儉)은 이홍남(李洪男)의 처숙부(妻叔父)이다.】
하니, 상이 정원에 전교하기를,
"죄인 이홍윤과 배광의(裴光義)를 속히 잡아오라. 풍성 부원군 이기, 좌의정 황헌, 우의정 심연원을 명초하라."
하였다. 상이 정유길 등이 입계한 봉서를 빈청(賓廳)에 내리면서 이르기를,
"사의(邪議)가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아 또 이와 같은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다. 이미 잡아오도록 명하였다."
하였다. 이기 등이 아뢰기를,
"국가가 역류(逆類)들의 죄를 다스림에 있어 너그러운 법을 많이 썼으니 두려워하여 절로 사라져야 마땅한데, 이와 같이 흉역스런 무리들이 오래도록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이홍남의 편지를 보니 지극히 통분스럽습니다. 이홍윤과 배광의를 잡아오면 자연 죄가 드러날 것이지만, 이홍남이 정유길 등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그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고변(告變)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저들이 변명없이 사실대로 공초(供招)한다면 모르거니와 혹 승복하지 않는다면 이홍남도 역시 빙추(憑推)해야 하니, 아울러 잡아오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인심이 이미 진정되었으니 사의도 마땅히 불식되어야 하는데 뜻하지 않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매우 한심스럽다. 이는 모두 나에게 덕화(德化)가 없는 탓이다.
이홍남을 잡아오는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봉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의 아우 이홍윤은 성품이 본시 강포하고 제멋대로여서 부모가 돌아가기 전부터 이미 난폭한 행위를 할 염려가 있었습니다. 지금 아버지는 돌아가고 또 어머니 상을 당했으며 고애자(孤哀子)051) 또한 유배 중에 【이홍남은 이약빙(李若氷)의 아들인데 을사년에 영월(寧越)로 귀양갔다.】 있기 때문에 함께 살 수 없어 더욱 거리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사적으로 서로 어긋난 일도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인데 더구나 형제란 천륜(天倫)의 지친(至親)으로 집안에서는 서로 다투는 일이 있더라도 밖에서 남의 업신여김은 막아야 하는 것이니 사은(私恩)을 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허물이 국가에 관계되면 연루시켜 좌죄(坐罪)하는 국법이 엄연히 있습니다. 화복(禍福)은 돌아볼 것이 못되지만 집안이 망한데다가 또 무거운 죄를 짓는다면 처자도 노비가 될 것이니 이 어찌 소소한 걱정이겠습니까? 더구나 군신의 대의는 영원히 변치 않는 떳떳한 이치인데 어찌 사은 때문에 공의(公義)를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 문제를 좌우(左右)와 의논하고자 합니다.
함창(咸昌)에 사는 배광의(裴光義)는 본시 술사(術士)로 지금 내 동생과 오가며 상종하는데 온 조정 경상(卿相)들의 점을 쳐서 그 길흉을 모두 말하였답니다. 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가운데서 광의가 ‘금상(今上)은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니 틀림없이 세조(世祖)를 본받을 것이다.’ 하니, 내 동생이 ‘폐왕(廢王)052) 의 살인이 갑자년과 을축년에 절정에 달하더니 마침내 병인년의 화가 일어났다. 금상 역시 오래 갈 수야 있겠는가?’ 하였으며, 그밖에 원망하고 비방하는 말들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말이 온 고을에 퍼진 지 이미 오래인데 고애자는 먼 곳에 있는 까닭에 일찍이 듣지 못하였고 친척 중에 식견이 있는 자가 나에게 전해 주기에 즉시 동생에게 하인을 보내어 그 연유를 묻는 한편, 그 말의 출처를 직접 캐묻기 위하여 빨리 오라고 하였더니 오려고도 않고 답서(答書)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두번 세번 하인을 보냈지만 여전히 막무가내였습니다.
내 아우는 본시 교만하고 건방져서 시골의 품관(品官)을 접대함에 자못 얕보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원망하는 자가 많았는데, 근래에 또 어느 품관 하나가 범마(犯馬)053) 했다는 이유로 아우에게 매를 맞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가 앙심을 품고 항상 큰 소리로 ‘저 자가 광의(光義)와 더불어 부도(不道)한 말을 하였다. 내가 장차 고변할 것이다…….’고 한다 합니다. 정말로 고변한다면 가문(家門)이 헤아릴 수 없는 화를 당할 것인데 어떻게 조처해야 이치에 합당하겠습니까? 자세하게 헤아려서 지시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들은 것을 내 자신이 조정에 아뢰려 해도 대궐이 천리나 떨어져 있고 식례(式例)도 몰라서 그저 방황만 할 뿐 나아가기 어려운 근심이 있습니다. 이밖에 형적(形迹)없이 선처할 대책은 없겠습니까? 형의 말없는 속요량에 맡기고 붓으로 일일이 형언하지 않겠습니다. 편지를 앞에 놓고 통곡만 할 뿐입니다."
사신은 논한다. 이 옥사에 연루되어 주륙(誅戮)당하거나 귀양간 자가 무려 40∼50인에 달하여 충주(忠州) 전체가 온통 비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이홍남이 꾸며낸 일이었다. 그런데 이홍남이 자손을 둔 것이 어찌 천도(天道)이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631면
- 【분류】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 가족-친족(親族)
- [註 051]고애자(孤哀子) : 자신을 가리킴.
- [註 052]
폐왕(廢王) : 연산군을 가리킴.- [註 053]
범마(犯馬) : 하마비(下馬碑)가 있는 지역에서 말에서 내지리 않는 것과 하급 관리가 상급 관리의 앞을 지나면서 말에서 내리지 않는 것.○丁巳/舍人鄭惟吉、校理元虎變、同詣政院, 以一封書, 上變告曰: "辭緣具於封書, 故別無啓辭。 且罪人李洪男, 於臣虎變爲妹夫, 於臣惟吉爲同壻。 昨日抵書於臣等, 錄其弟洪胤不道之狀, 聞之不勝痛憤。 事之首末, 未可的知, 臣等俱以侍從之臣, 聞此凶慘之說, 不忍容默。 且念君臣之間, 義同父子, 不可以私書而有所隱, 緘封以啓。" 【此元虎變、鄭惟吉啓辭也。】 右承旨元繼儉啓曰: "封內之書, 不送於臣處, 故臣名則不書於啓辭, 然臣亦同參以啓。" 【繼儉乃洪男妻叔父也。】 上傳于政院曰: "罪人李洪胤、裵光義, 斯速拿來。" 命招豐城府院君 李芑、左議政黃憲、右議政沈連源。 上以鄭惟吉等入啓封書, 下于賓廳曰: "邪議至今不殄, 又有如此駭愕事。 已令拿來矣。" 芑等啓曰: "國家治罪逆類, 多用寬典, 自當畏伏銷沮, 而如此凶逆之徒, 久而不絶。 今見洪男之簡書, 至爲痛憤。 洪胤、光義拿推, 則自有其罪矣, 且洪男之致簡於惟吉等者, 非欲令處置, 此乃告變之意也。 彼若無辭直招則已, 幸不承服, 則洪男亦當憑推, 請竝拿來。" 答曰: "人心今旣鎭定, 邪議宜息, 而不意有如此事, 至爲寒心。 此皆由予無德化而然也。 洪男拿來事如啓。" 其封書曰: "(金)〔舍〕 弟洪胤, 性本剛戾自用, 自親未亡時, 已有橫悍之憂。 今則嚴父見背, 慈母又喪, 孤哀亦在謫中, 【洪男, 乃李若氷子, 乙巳貶謫于寧越。】 不得同處, 尤無所顧忌。 私相違悖之事, 所不可傳於淸聽, 況兄弟, 天屬至親, 雖有閱墻之失, 外禦其侮, 而不當廢其私恩。 但所失有關於國家, 緣累竝坐, 邦有常刑。 禍福雖不足顧, 門戶破亡之餘, 又獲重罪, 則妻子亦被收孥, 憂慮亦豈小小耶? 且君臣大義, 如天經地緯, 何可以私恩, 而蔑棄公義乎? 以此欲議于左右。 咸昌居裵光義, 本術士也, 今與舍弟往來相從, 推占滿朝卿相, 歷言其吉凶。 且於稠人廣會中, 光義曰: ‘今上喜殺人, 必欲以世祖爲法也。’ 舍弟曰: ‘廢王之殺人, 極於甲子乙丑, 而終有丙寅之禍。 今上亦何能久御耶?’ 其他怨懟謗訕之語, 不可勝紀。 此言騰播於一鄕已久, 而孤哀以在遠地, 不得早聞, 親戚之有識者, 委傳於孤哀, 卽伻問其所以於舍弟, 且令速來, 親詰其言根, 則不肯來見, 亦不肯答書。 再三伻之, 其頑如舊。 舍弟素有驕桀之氣, 待鄕曲品官, 頗爲卑薄, 故怨疾者衆, 今又一品官, 以犯馬見捶曳於舍弟。 以此懷憤, 常大唱曰: ‘彼與光義, 有不道之言。 吾將告變。’ 云云。 若果告變, 則門禍必至於不測, 如之何處之, 則當於理耶? 幸詳度指示, 切仰切仰。 欲以所聞, 自達於朝, 則君門遠於千里, 且不知式例, 彷徨有難進之患。 此外, 別有善處無迹之策耶? 意在吾兄默照, 不能盡形於筆端。 臨紙徒自痛哭而已。"
【史臣曰: "逮繫誅竄, 無慮四五十人, 忠州一境, 遂爲空虛, 皆李洪男構成之事也。 洪男之有子若孫, 豈天道也?"】
-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631면
- 【분류】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 가족-친족(親族)
- [註 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