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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9권, 명종 4년 3월 13일 계미 2번째기사 1549년 명 가정(嘉靖) 28년

황해도 해주의 교생 안세복 등이 감사 남궁숙의 잉임을 청하다

황해도 해주(海州)의 교생(校生) 안세복(安世福) 등이 상소를 올려 감사 남궁숙(南宮淑)의 잉임(仍任)을 청하니, 전교하였다.

"근래 백성을 염려하는 전지를 자주 내렸는데도 감사와 수령들 중 한 사람도 봉행한 사람이 없어 겉치레가 되어 버렸으므로 항상 마음 아프게 여겼었는데 지금 남궁숙의 일을 보니 매우 가상하다. 한 자급(資級)을 올려주고 백성들의 원에 따라 1년간 잉임하게 하라."

사신은 논한다 남궁숙(南宮淑)은 용심이 바르지 못하고 행사에 속임수가 많아서 겉으로는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는 것 같았으나 사실은 재능을 자랑하여 칭찬을 요구하는 자이다. 그리고 사적(私的)으로 은혜 베풀기를 힘쓴 결과 한두 사람의 인심(人心)을 샀는데 이들이 외람되이 상소를 올려 무거운 상까지 받았으니, 비단 명기(名器)를 욕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속이고 임금을 속인 죄가 극심하다. 이 그 뒤 전라 감사(全羅監司)가 되었을 때 신광한(申光漢)이 시를 지어 보내어 전송하기를, 해서(海西)에선 지금 다투어 축배드는데 호남(湖南)에서는 어느 곳에 비석을 물에 넣을고.038) 하였으니, 극심하게 비웃은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628면
  •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 [註 038]
    비석을 물에 넣을고. : 강렬한 명예욕을 나타내는 말. 진(晉)나라 두예(杜預)가 자신의 공적을 새긴 비석을 만산(萬山) 밑 못 속에 넣었는데, 물 속에 넣은 까닭은 산이 물로 바뀌고 물이 육지로 바뀌는 먼 후일을 생각한 때문이라고 하였다. 《진서(晉書)》 두예전(杜預傳).

黃海道 海州校生安世福等上疏, 請留監司南宮淑, 傳曰: "近來每下憂民之旨, 而監司、守令無一奉行, 徒爲文具, 常懷痛恨。 今見南宮淑之事, 至爲可嘉。 其加一資, 依民願, 仍留一年。"

【史臣曰: "用心不正, 行事多詭, 名爲盡心國事, 而其實無非衒能要譽。 務施私惠, 枉收一二人之心, 冒濫陳疏, 至授重賞, 非徒忝辱名器, 其欺人欺君之罪甚矣。 後爲全羅監司, 申光漢以詩送之曰: ‘西海卽今爭祝酒, (南湖)〔湖南〕 何處更沈碑。’ 其譏之也, 深矣!"】


  •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628면
  •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