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 등이 흥경과 아오지보의 진을 바꾸는 일에 대해 아뢰다
풍성 부원군 이기(李芑), 좌의정 황헌(黃憲), 우의정 심연원(沈連源) 등이 병조·비변사와 함께 의논하여 아뢰기를,
"경흥(慶興)과 아오지보(阿吾地堡)의 진(鎭)을 바꾸자는 의논은 전부터 있어 왔느나 지금까지 시행되지 못한 데는 그 까닭이 있습니다. 경흥은 강가의 요새에 웅거하고 있어 무이보(撫夷堡)와 조산보(造山堡)가 상하에서 마주보이고, 적로(賊路)가 한눈에 다 보이니 방어의 형세로 보아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더구나 목조(穆祖)께서 처음 일어나신 땅이라 하여 조종조에서는 현(顯)을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킨 곳이기도 하니, 지금 옮기는 것을 가볍게 논의할 수 없습니다. 설령 진을 옮기더라도 반드시 구부(舊府)는 버릴 수 없어 강계(江界)의 만포(滿浦)처럼 거진(巨鎭)을 두고 첨사(僉使)를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곳에 거주할 아랫사람들도 부(府)가 있을 때와 마찬가지여야 할 것입니다.
육진(六鎭)의 군민(軍民)은, 자신의 본진(本鎭)에서 부방(赴防)하고 처자는 외촌(外村)에서 농사를 짓게 되어 있는 것이 예입니다. 그 부(府)의 군민 중에 조산(造山) 근처에 사는 자들은 진 옮기는 것을 싫어할 것이고 아오지 근처에 사는 자들은 편하게 여길 것인데, 그렇다면 진을 바꾸자는 논의도 대다수 군민의 청원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의 성(城)은 광활하고 보의 성은 협소하니, 넓은 것은 좁히고 좁은 것은 넓힌 뒤에야 비로소 서로 바꾸어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곤궁한 시기에 함부로 헛된 역사(役事)를 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강가의 요새에 있는 진을 버리고 내지(內地)로 철수하여 들어간다면 저들에게 약점만 보일 뿐입니다.
신들의 생각에는 경흥부가 이미 극도로 잔폐되었으니 사람을 채움으로써 정상을 회복시키는 일이 시급한 것이요, 두 진을 서로 바꾸는 것은 아무런 보탬이 없을 듯합니다. 【이 사항은 본도 감사의 장계가 있었기 때문에 논의할 것을 명했다.】 양계(兩界)의 자제(子弟)들로 내금위(內禁衛)·겸사복(兼司僕)·친군위(親軍衛) 등에 예속된 자를 번에 따라 상경(上京)시켜 시위(侍衛)하고 관광(觀光)하게 하는 것도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래 변방의 방비가 허술하여 방어상 지극히 긴요한 보(堡)에까지도 활을 가진 토병(土兵)이 부족한 실정이라 만일 급한 변이라도 생길 경우 방어책이 없습니다. 이들을 본진(本鎭)에 두어 급할 때 쓰게 하는 것이 긴중한 일이니 변방 방어책이 대략이나마 갖추어질 때까지는 이들의 상경을 중지시키고 각각 본진으로 돌려보내어 방어에 전력을 다하게 하소서."
하니, 그리하라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624면
- 【분류】정론(政論) / 군사(軍事)
○豐城府院君 李芑、左議政黃憲、右議政沈連源, 與兵曹、備邊司同議啓曰: "慶興與阿吾地堡換鎭之議, 自前有之, 而迄今未得施行者, 亦有所以。 慶興, 沿江據險, 撫夷、造山兩堡, 上下相望, 而彼地賊路, 一望無礙, 其於防禦形勢, 眞得其地。 況穆祖肇興之地, 在祖宗朝, 以縣陞號爲都護府, 今不可輕議移革。 設或移鎭, 必不棄舊府, 而置巨鎭僉使如江界之滿浦, 則下人之居其地, 無異於爲府之時矣。 六鎭軍民, 當身則在本鎭赴防, 妻子則在外村農作, 例也。 同府軍民, 居造山近地者, 以移鎭爲憚, 居阿吾地近處者, 以移鎭爲便, 然則不可謂之衆民之情願也。 府城則廣闊, 堡城則狹小, 必廣者狹之, 狹者廣之, 然後乃可相換而持守。 當此飢困之時, 不可妄興虛役。 況棄其據險沿江之鎭, 而撤入內地, 秪示弱於彼人耳。 臣等之意, 此府殘弊已極, 得人以實之, 以期蘇復爲急, 而兩鎭換地, 恐無所益。 【此一款因本道監司狀啓, 命議之。】 兩界子弟內禁衛、兼司僕、親軍衛等, 遞番上京, 侍衛觀光, 意亦有在。 然近來邊備虛疎, 雖防禦極緊之堡, 土兵之操弓者蓋寡, 脫有警急, 救禦無術。 此人等, 在本鎭緩急之用, 至爲緊重, 限邊備粗完間, 除上京各還本鎭, 專委防禦。" 傳曰: "可。"
-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6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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