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명종실록 8권, 명종 3년 11월 18일 기축 2번째기사 1548년 명 가정(嘉靖) 27년

함경 감사의 장계에 따라 양성(兩性) 인간 임성구지를 외진 곳에 살게 하다

함경 감사의 장계에,

"길주(吉州) 사람 임성구지(林性仇之)양의(兩儀)140) 가 모두 갖추어져 지아비에게 시집도 가고 아내에게 장가도 들었으니 매우 해괴합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성구지의 일은 율문(律文)에도 그러한 조문은 없으니 대신에게 의논하라. 성종 조(成宗朝)에 사방지(舍方知) 【*】 를 어떻게 처리하였는지 아울러 문의하라."

하였다. 영의정 홍언필이 의논드리기를,

"임성구지의 이의(二儀)가 다 갖추어짐은 물괴(物怪)의 심한 것이니, 사방지의 예에 의하여 그윽하고 외진 곳에 따로 두고 왕래를 금지하여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사방지(舍方知)의 일은 이러하다. 사방지란 자는 사천(私賤)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 어미가 여자아이의 의복을 입히고 연지와 분을 발라주고, 바느질을 가르쳤다. 장성하여서는 벼슬한 선비의 집안에 꽤나 드나들며 많은 여시(女侍)와 통하였다. 선비 김구석(金九石)의 아내 이씨(李氏)는 판원사(判院事) 이순지(李純之)의 딸인데, 과부로 있으면서 사방지를 끌어다 수놓는다고 핑계하고 밤낮으로 함께 있은 지가 거의 십년이 되었다. 천순(天順) 7년141) 봄에 사헌부에서 듣고 국문을 하였는데 그가 평소에 통하였던 여승[尼]에게 묻자, 여승이 말하기를 ‘양도(陽道)가 매우 장대하다.’ 하므로 여자아이 반덕(班德)에게 만져보게 하였더니 정말이었다. 상이 승정원 및 영순군(永順君)의 스승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 등에게 여러 가지로 시험하여 보게 하였다. 하성위의 누이는 이씨의 며느리였다. 하성위 역시 혀를 내두르며 ‘어쩌면 그렇게 장대하냐.’ 하였다. 상은 웃으시고 특별히 추국하지 말라고 하시며 이순지의 가문을 더럽힐까 염려된다.’ 하시고 사방지이순지에게 주어 처리하게 하니 이순지는 다만 곤장 십여 대를 쳐서 기내(畿內)에 있는 노자(奴子)의 집으로 보내었다. 얼마후 이씨는 몰래 사방지를 불러들였는데 이순지가 죽은 후에 더욱 방자하게 굴어 그침이 없었다. 그 뒤에 재추(宰樞)가 한가한 이야기 끝에 아뢰니, 상이 사방지를 곤장을 쳐 신창현(新昌縣)으로 유배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8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619면
  • 【분류】
    사법(司法) / 윤리(倫理) / 의약(醫藥)

咸鏡監司狀啓: "吉州林性仇之兩儀俱備, 嫁夫娶妻, 事甚駭怪。" 傳曰: "性仇之事, 律無其文, 其議于大臣。 成宗舍方知, 【舍方知者, 私賤也。 自幼, 其母爲女兒服, 傳脂粉, 學裁縫。 及長頗出入朝士家, 多與女侍通。 士人金九石妻李氏, 判院事純之之女也, 寡居引舍方知, 托以縫文, 晝夜與處, 幾十餘年。 天順七年春, 司憲府聞而鞫之, 逮訊其素所通尼, 尼曰: "陽道甚壯。" 令女兒班德捫模之, 果然也。 上令承政院及永順君 傅、河城尉 鄭顯祖等, 雜驗之。 河城之妹, 爲李氏媳婦。 河城亦吐舌曰: "何其壯也?" 上笑之, 特令勿推曰: "恐汚衊純之之門也。" 將舍方知與純之區處, 純之只杖十餘, 送于畿內奴子家。 旣而李氏潛召舍方知還, 純之卒後, 尤縱恣不已。 厥後宰樞, 因燕語白之, 上杖配舍方知于新昌縣。】 何以處置, 幷問之。" 領議政洪彦弼議: "林性仇之二儀俱備, 物怪之甚, 依舍方知例, 別置幽絶之處, 禁防往來, 使不雜處人類之間。"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6책 8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619면
  • 【분류】
    사법(司法) / 윤리(倫理) / 의약(醫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