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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8권, 명종 3년 6월 24일 정묘 2번째기사 1548년 명 가정(嘉靖) 27년

능원위 구사안이 올린 좌랑 윤결의 행동에 대한 밀계

능원위(綾原尉) 구사안(具思顔)이 밀계(密啓)하기를,

"소신이 좌랑(佐郞) 윤결(尹潔)과 술자리에서 사귀게 되어 평범하게 서로 왕래한 지 지금까지 7∼8년이 되었습니다. 다만 그의 글재주만 아껴주었고 그의 마음씨는 알지 못했었는데, 근래에 와서는 그가 자주 시국을 원망하는 것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까닭으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라, 마음 속으로만 항상 의심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전과 같이 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봄에 죄인 안명세(安名世)가 처형되고 10여 일이 지난 후에 윤결이 신의 집을 찾아 왔습니다. 이때 소신은 다른 친구들과 대좌하고 있었는데, 윤결이 거나하게 취하자 까닭없이 신에게 말하기를, ‘안명세는 처형을 당할 때 조용히 처사(處事)하였으니 평소부터 지켜온 소양이 있는 사람이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좌우를 돌아보며 대답하지 않자, 윤결은 낯빛이 달라지며 훌쩍 나가버렸습니다. 신과 친구들은 윤결의 소행이 수상함을 괴이하게 여겼으나 술로 인한 망발이 아닌가 싶어 그냥 방치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번에 수찬(修撰)으로 논박을 입고 체직을 당한 후 소신이 마침 그의 집을 지나다가 들려 그를 위로 하였더니, 이 이르기를 ‘내가 논박을 입은 것은 한스럽지 않으나, 안명세 같은 사람은 그의 평생 소행이 지극히 단정하고 심지가 몹시 견고하여, 그의 사필(史筆)은 무슨 일이건 정직하게 썼었는데, 끝내 대죄(大罪)를 입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의 아우 윤준(尹浚)이 그 형을 인해 수시로 왕래하였는데 일전에 와서 말하기를 ‘원로(元老)가 화를 입은 것은 곧 자중지란(自中之亂)이다. 윤춘년(尹春年)같은 무리는 사귈 수 없는 사람이다.’고 하였습니다. 소신은 지친(至親)의 반열에 있는 사람으로 끝내 묵과할 수 없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사실을 보니 몹시 놀라운 일이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영상(領相)·좌상(左相)·풍성 부원군(豐城府院君) 및 의금부 당상(義禁府堂上)·양사(兩司)의 장관(長官)을 패초(牌招)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8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599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가족(家族) / 역사-사학(史學)

綾原尉 具思顔密啓曰: "小臣與佐郞尹潔, 杯酒相交, 尋常往來, 將七八年。 只愛其文墨。 不知其心術, 近年以來, 言似怨時者數矣。 不知某故而然也, 心常疑畏, 而依舊待之。 今春罪人安名世伏誅後十餘日, 來到臣家。 小臣與他友對坐, 而於酒半, 無端語臣曰: ‘安名世臨刑時, 從容處事, 平日有所守之人。’ 云云。 臣聞之, 不覺驚悚, 顧他不答, 作色遽出。 臣與他友, 怪所趨殊常, 但疑酒妄而置之。 頃以修撰, 被論見遞後, 小臣適過其門入慰之, 則曰: ‘吾之被駁, 不足嘆也, 如安名世平生所行至正, 所守甚固, 其於史筆, 隨事直書, 而竟蒙大罪, 痛惜痛惜。’ 云云。 且其弟尹浚, 因其兄, 亦時時來往, 頃者來語曰: ‘元老之被禍, 乃自中之亂。 如尹春年輩, 不可交也。’ 小臣在至親之列, 不可終默, 敢啓。" 傳曰: "見此啓事, 甚爲駭愕。" 仍傳曰: "領相、左相、豐城府院君及義禁府堂上、兩司長官牌招。"


  • 【태백산사고본】 6책 8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599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가족(家族)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