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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7권, 명종 3년 3월 28일 계묘 6번째기사 1548년 명 가정(嘉靖) 27년

소대하자 시강관 정유길이 정전법에 대해 아뢰다

상이 소대하였다. 시강관 정유길(鄭惟吉)이 아뢰었다.

"정전법(井田法)080) 을 지금은 시행할 수 없지만, 만일 전지(田地)를 한정하여 함부로 점유하지 못하게 한다면 겸병(兼幷)하는 폐단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한조(漢朝)에서는 시행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고, 전조(前朝) 【고려(高麗).】 에서는 시험해 보았으나 성취하지 못하였으니, 지금 시행하려 하면 반드시 장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겸병하는 폐단이 이루어져서 부자는 전지가 서로 잇닿아 있고 가난한 사람은 송곳 하나 세울 땅도 없습니다. 똑같은 왕의 백성으로 부유함과 가난함이 서로 같지 않으니 어찌 크게 공변된 왕정(王政)의 도(道)이겠습니까. 임금이 된 이는 의당 백성의 어려운 생활에 유념하여야 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57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농업-전제(田制) / 역사(歷史)

  • [註 080]
    정전법(井田法) : 중국 고대의 전지 제도(田地制度). 일정한 전지를 정(井)자 모양으로 구획(區劃)하여 중앙의 1백 묘(畝)는 공전(公田), 밖의 8백 묘는 사전(私田)으로 하였다. 그 사전은 여덟 집에 나누어 주어 경작하도록 하고 중앙의 공전은 여덟 집이 공동으로 경작하여 공전에서 수확되는 곡식을 세금으로 바치고 사전에서의 수확은 개인 소득으로 하게 하였다.

○上召對。 侍講官鄭惟吉曰: "井田之法, 雖不能行之於今, 若令限田, 毋得濫占, 則庶無兼幷之弊。 朝行之而未終, 前朝 【高麗。】 試之而未就, 今欲行之, 必有礙滯之患。 然兼幷成弊, 富者田連阡陌, 貧者無立錐之地。 一是王民, 豐約不同, 豈王政大公之道乎? 爲人主者, 當留念於小民之艱難。"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57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농업-전제(田制)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