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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7권, 명종 3년 2월 19일 병인 3번째기사 1548년 명 가정(嘉靖) 27년

대신들이 정유·을사년에 적몰되지 않은 자들을 추론하길 청했으나 불허하다

영의정 윤인경(尹仁鏡), 좌의정 이기(李芑), 우의정 정순붕(鄭順朋), 좌찬성 민제인(閔齊仁), 우찬성 황헌(黃憲), 좌참찬 임권(任權), 우참찬 김광준(金光準), 이조 판서 윤원형(尹元衡), 한성부 판윤 최연(崔演) 등이 빈청(賓廳)에 모여 봉서(封書) 【봉(封)해서 들여간 것은 사관(史官)에게 내리지 않으면 열어볼 수가 없다. 그 대강은 아래에 나타나 있다.】 한 통을 가지고 입계(入啓)하기를,

"요즘 인심이 진정되지 않기에 신들이 종사(宗社)를 위해서 서계(書啓)합니다."

하니, 즉시 면대(面對)하겠다고 답하였다. 이윽고 상은 사정전(思政殿) 첨하(簷下)에 나와서 약간 동서(東西)로 향하여 앉고, 자전(慈殿)은 전상(殿上) 주렴[簾] 안에 나와 앉았다. 윤인경 등이 차례로 입시(入侍)하자, 자전이 대신들을 앞으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여 전교하기를,

"대신들이 종사를 위해 서계한 것이 어찌 범연한 계책에서 나온 것이겠는가. 그 가운데 이른바 ‘죄는 무거운데 벌은 가벼웠다.’는 말은 지당하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제와서 추론(追論)하는 것을 온편치 못하게 여긴다. 정유 삼흉(丁酉三凶) 【김안로(金安老)·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의 일에 대해서는 아뢴 뜻은 마땅하나, 선왕조(先王朝)에서 정죄(定罪)한 지 이미 오래인데 지금 어찌 다시 벌을 더하겠는가. 을사년의 일에 대해서는 다른 역적의 유와는 달리 윤임이 동궁(東宮)을 빙자하여 말을 날조해서 사람을 속인 것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그에게 속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그의 술책이 매우 높아서 전후로 그의 술책에 빠진 사람을 헤아릴 수도 없었다. 삼흉은 윤임의 말을 순종했으므로 선왕이 이미 그 죄를 정하였는데, 지금 또 그를 추론하여 가산을 적몰하고 처자를 종으로 삼는 것은 내 마음에 대단히 미안한 점이 있다.

이언적(李彦迪)권벌(權橃)은 모두 역적에게 속아 흉모(凶謀)가 골수에 깊이 들어갔다. 처음부터 한마음으로 같이 일을 했기 때문에 즉시 마음을 돌리지 않았고 역적에게 죄를 정한 뒤에도 도리어 불쾌한 마음을 품고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시비를 변란시켰으니, 죄는 있다. 그러나 처음엔 파직했다가 뒤에 찬축까지 했는데, 지금 또 죄를 더 준다면 일이 매우 구차하게 된다. 그 당시에는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윤임에게 속았으므로, 다스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다행히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종사(宗社)가 조금 편안해진 것이다. 이 일로 생각해보면 권벌이언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국의 조정이 모두가 그에게 속았는데, 일이 정해진 뒤에도 간혹 불쾌한 마음을 가진 자가 있는 것은 죄를 정할 때에 구차스러운 일이 많아 사체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내 생각에는 조정이 처음에는 비록 그에게 속았지만 이미 그 사실을 안 뒤에는 반드시 마음을 돌려 나라를 위하리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 위협에 못이겨 따랐던 자는 죄를 다스리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가 불행하여 연전에 이완(李岏)을 죄줄 때 많은 사람이 죄를 받았는데, 죄준 것이 구차스러웠기 때문에 인심이 더욱 의심을 품은 것이다. 지금은 의당 의심을 진정해야 하니 그 일을 다시 논해서 안 될 것이다. 허흡(許洽)허경(許坰)은 중종조(中宗朝) 때 과연 국가에 관계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찬출한 것인데, 인종 조(仁宗朝) 때 윤임이 용사(用事)하여 그를 석방한 것이다. 백인걸(白仁傑)의 일은 시비가 정해지지 않은 때에 속아 한 짓이니 역시 다시 논해서는 안 되며, 지금은 의당 인심을 진정시키는 것을 일삼아야 한다.

만일 임금은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을 제대로 하며, 아비는 아비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자식은 자식 노릇을 제대로 하여 군자(君子)를 등용하고 소인(小人)을 물리쳐서 조정이 당당해진다면 아무리 부도(不道)한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진실로 천지 사이에 용납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만일 스스로 죄에 걸려드는 자가 있으면 의당 그 죄를 다스릴 것이나, 지나간 일을 추론하여 죄를 더 주는 일은 내가 하고 싶지 않다."

하니, 윤인경이 아뢰기를,

"전교하신 뜻은 지당하십니다. 신들 또한 어찌 그것을 헤아리지 않았겠습니까. 요즘에 비록 죄를 다스려도 인심이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사를 위해 아뢰는 것입니다. 어찌 일을 좋아해서 죄를 더 주기를 청하겠습니까. 상교(上敎)에 ‘선왕조(先王朝)에서 정죄한 사람을 지금 추론할 수 없다.’고 하셨으니, 전교하신 뜻은 지당하십니다. 다만 김안로윤임이 서로 한 때를 만나 함께 흉모를 꾀했는데, 안로가 죄를 받은 뒤에는 사람들이 모두 그의 이름을 바로 불러 ‘안로’라 하고, 불초(不肖)한 사람을 가리켜서 반드시 ‘안로의 자식’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대역(大逆)055) 을 정죄한 후로는 천인(賤人)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소위 사류(士類)들까지도 그를 ‘아무 대감[某爺]’이라고 하니,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안로는 죄악이 극도에 달하여 진실로 율(律)대로 처벌했어야 마땅한데, 그때에 동궁(東宮)을 위해서 통쾌히 다스리지 못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인심이 분개하게 여겨 지금까지 그의 고기를 씹어먹으려고 합니다. 대체로 악을 제거해서 근본적인 일을 힘쓴 다음에야 인심이 저절로 진정될 것입니다. 신들 또한 어찌 범연하게 아뢰겠습니까. 부득이해서 아뢰는 것입니다."

하고, 이기가 아뢰기를,

"상교는 지당하십니다마는, 중의(衆議)가 이러하기 때문에 서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고, 윤인경이 또 아뢰기를,

"상교에 ‘정죄한 지 이미 오래되어 추론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마는, 《춘추(春秋)》의 법에 의하면 비록 천 년 전의 일이라도 모두 추론하였으니, 이것으로 문제를 삼아서는 안 됩니다."

하고, 정순붕이 아뢰기를,

"상교에 ‘인심을 진정시켜 국세(國勢)가 당당해지면 자연히 나라가 안정될 것이다.’ 하셨으니, 전교하신 뜻은 지당하십니다. 그러나 인심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고 국세 또한 당당하지 못하여 인심의 어긋나기가 지금보다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역적을 정죄한 후에도 간혹 불쾌하게 여기는 자가 있어, 역적의 정상이 의심할 여지없이 밝게 드러났는데도 지금까지 식견 있는 선비도 석연치 못하여 불쾌한 마음을 품고서, 윤임의 죄가 하늘에 닿는데도 도리어 ‘역적이 아닌데 세자(世子)를 빙자해서 역적의 죄를 얽어 만든 것이다.’고 하니, 그 뜻이 어찌 심각하지 않겠습니까. 윤임 같은 궁흉 극악(窮凶極惡)이 어찌 다른 일을 빙자해서 죄가 된 것이겠습니까마는 빙자해서 죄를 만든 것이라고 하니, 인심이 정해지지 않은 것을 여기에서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안로는 수악(首惡)이었는데도 율대로 처벌하지 않았으므로, 후인(後人)이 그가 무슨 일로 죄를 받은지를 모르니, 그의 죄를 명백하게 집어내어 바로잡아서 인심을 쾌하게 하소서."

하고, 이기가 또 아뢰기를,

"하나하나 소상하게 상달(上達)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사고(史藁)는 비록 한 사람이 기록한 것 같기는 하나, 조정이 모두 겉만 바꾸고 마음은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것입니다. 조박(趙璞)이 기록한 것은 시비가 뒤섞인 때의 일이고, 또 오래지 않아서 곧 파직되었으니 그 내막을 모를 듯합니다. 그래서 상께서 즉위하신 뒤에 윤임이 모역(謀逆)한 정상을 사람들이 모두 모르고 도리어 이를 의심스럽게 여겨 정죄(定罪)한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자가 많으므로 신들이 종사를 위하여 함께 의논해서 서계하는데도 상께서는 이토록 굳이 거절하십니다. 평상시에 대간이 아뢰는 말은 오히려 모두 따르시면서 신들의 말은 듣지 않으시니, 신들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대신이 종사를 위한 것이 어찌 범연한 계책이겠는가. ‘인심이 불쾌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 죄를 명백하게 집어내서 바로잡으려 한다.’고 아뢴 뜻은 타당하다. 그러나 어긋난 인심을 죄를 주어서 진정시킬 수는 없다. 당초에 난적(亂賊)을 다스리면서 사체에 맞지 않게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쾌한 마음을 가진 것이다. 윤임은 높은 술수로 사람을 속여 그 속임수가 사람들의 골수에 들어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그의 정상을 모르고, 도리어 윤임이 죽은 것은 혐의가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여겨, 마치 안명세(安名世)처럼 의심하는 자가 많다. 그러나 구차하게 죄를 정한다면 인심이 더욱 위구(危懼)할 것이니, 아무리 죄를 준다 할지라도 어찌 죄주는 것으로 인심을 진정시킬 수 있겠는가.

안명세는 저 역적과 한마음이었기 때문에 시비가 이미 정해진 뒤에 이와 같이 수사(修史)한 것이니, 어찌 장심(將心)056) 이 없이 그럴 수 있겠는가. 앞으로는 안명세의 일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죄를 더주고 싶지는 않다. 비록 삼흉(三凶)의 가산을 적몰하고 처자를 종으로 삼는다고 해서 인심이 어찌 이로 인해 더 정해질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인경이 또 아뢰기를,

"윤임의 일은 상께서도 환히 아시는 바인데, 안명세가 이렇게 기록하였으니 신자(臣子)로서 의당 경악을 금치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간혹 그를 추국한 것을 온편치 못하게 여기는 자도 있으니, 이 일로 보면 어찌 인심이 정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국운(國運)이 있어 흉모가 저절로 드러났고, 《보감(寶鑑)》 【《무정보감(武定寶鑑)》.】 을 찬(撰)하려던 바람에 사고(史藁)가 또 발견되었으니 이는 실로 천지신명의 도움입니다. 명세의 사건이 발각되었기 때문에 신들은 이를 인해서 함께 의논하여 삼흉을 추론하려는 것이니, 이는 실로 온 나라 신민(臣民)의 뜻입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대신이 그 죄를 분명하게 바로잡으려는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구차하게 죄를 더 준다면 인심이 더욱 위구하게 된다. 명세의 일 또한 어찌 근래에 모계한 것이겠는가. 처음부터 필시 온편치 못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한 것이다."

하였다. 인경이 또 아뢰기를,

"안명세의 사건이 드러났는데도 혹은 그를 죄주려 하지 않은 자도 있었습니다. 명세가 당시의 사관(史官)으로서 이렇게 기록하였으니, 만세 후에 어떻게 그 시비를 알 수 있겠습니까. 역적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으니, 어찌 크게 관계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이와 같이 저절로 드러난 죄는 어쩔 수 없지만, 때없이 구차하게 죄를 다스리면 인심이 더욱 정해질 수 없다. 앞으로는 환히 저절로 드러난 자는 다스리지 않을 수 없지만, 추론하는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이기가 또 아뢰기를,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으시니 상의 인덕(仁德)이 지극하십니다. 그러나 신들이 어찌 범연하게 아뢰었겠습니까. 권벌이언적은 이미 안명세의 입에 오르내렸으니, 참으로 죄주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죄주어야 할 것을 알고도 아뢰지 않으면 신에게 죄가 있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명세의 일로 말하자면, 어제 오늘에 기록한 것이 아니니, 비록 이와 같이 기록했다 할지라도 자연히 인심이 진정될 것이다."

하였다. 황헌(黃憲)이 아뢰기를,

"신이 정유년에 대사간(大司諫)으로 있으면서 삼흉을 정죄할 때에 그들이 국모(國母)를 모위(謀危)한 정상을 누군들 모르겠습니까. 다만 인종 대왕(仁宗大王)께서 그때 동궁(東宮)에 계시었으므로, 후인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잘못 의논하는 일이 있을까 염려하여 대사헌(大司憲) 양연(梁淵)과 함께 의논해서 그 죄명(罪名)을 분명하게 짓지 않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랬다가 이제 와서 죄를 더주자고 청하는 것은, 신에게 실로 죄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심을 진정시키려면 의당 수악(首惡)을 죄주어야 합니다. 세월이 아무리 오래되었다지만 악인을 주벌하는 데 있어 어찌 시기를 논하겠습니까. 요즘 죄를 받아 적몰(籍沒)된 자들이 어찌 모두 삼흉의 죄악을 알겠습니까. 삼흉은 역류(逆類)의 괴수들인데 아직까지 처자(妻子)가 보전되어 있으므로 물의가 분격하고 있습니다. 법을 쓰는 데는 의당 경중을 분간해서 반드시 그 뿌리를 통렬히 다스리고 중외(中外)에 효유하여 그 수악이었음을 알게 한 다음에야 인심이 유쾌할 것입니다.

그리고 권벌이언적은 모두 사리를 아는 사람으로서 시인(時人)들의 영수(領袖)가 되어 도리어 역적을 구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림(士林)이 그를 믿고 사관이 그를 칭찬하였으니, 이 사람들이 세상을 그르친 것입니다. 죄로 논한다면 애당초 그들이 주벌되지 않은 것은 국가에서 형벌을 매우 잘못 쓴 것입니다. 더구나 안명세의 옥사(獄事)가 일어난 후로는 민심과 시비가 더욱 정해지지 않은 듯하니 유난하지 마소서."

하고, 민제인이 아뢰기를,

"상께서 ‘어찌 사람 죽이는 것으로 인심을 정할 수 있겠는가.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물리쳐서 국세가 당당해지면 자연히 정해질 것이다.’ 하셨으니, 이는 실로 종사에 무궁한 복입니다. 그러나 삼흉은 죄악이 극에 달하였으니, 세월이 아무리 오래되었을지라도 그 죄를 추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정(輿情)이 이와같이 분개하고 있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권벌이언적은 죄상이 이미 안명세의 일기(日記)에 드러나 있거니와, 윤임의 처사를 매우 바르게 여기고 역적 구호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았기 때문에 조의(朝議)가 이처럼 격발한 것입니다.

지금 상교를 받고 보니 감격스러움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신 같은 희미하고 용렬한 생각에는 평상시에도, 상께서는 정통(正統)으로 즉위하셨고 또 성상의 자질도 매우 영명(英明)하시니, 만일 군신(群臣)이 마음을 합하여 덕(德)을 같이한다면 나라가 태평하고 곡식이 풍년들어서 인심이 저절로 정해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어찌 지금 이와 같이 인심이 안정되지 않을 줄을 헤아리기나 하였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경들은 삼흉의 죄를 추론해서 바로잡아 극악(極惡)함을 밝히려고 하니, 옳기는 옳은 일이다. 그러나 선왕조에서 이미 의정(議定)한 것인데, 비록 형벌을 잘못 썼다 할 지라도 어찌 추론할 수 있겠는가. 간혹 잡설(雜說)을 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윤임의 역적의 정상이야 누가 모르겠는가. 의리를 모르고 도리어 그를 역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사습(士習)이 잘못된 것이다. 윤임 같은 역적의 정상은 여느 역적과는 다른 점이 있다. 나와 인종(仁宗)은 의모자(義母子) 사이인데, 윤임이 술수를 부린 것이 뿌리가 깊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말려들었다. 요즘에 죄를 받은 사람이 너무 많으니 이제는 다시 논할 수 없다. 덕화(德化)로 세상을 다스려야지, 어찌 사람을 죄줄 수 있겠는가. 내가 박덕하여 덕화가 행해지기는 비록 기대할 수 없지만, 죄를 받은 자가 많은 것은 진실로 좋은 일이 아니니 모름지기 조용히 진정시켜 인심이 정해지도록 하여야 한다. 당초에 윤임이 아니었더라면 사림이 어찌 이토록 많이 다쳤겠는가. 항상 미안한 마음에 늘 슬퍼하고 탄식한다. 앞으로는 안명세처럼 스스로 드러난 자는 어쩔 수 없지만, 이미 정죄된 사람은 다시 논할 수 없다."

하였다. 윤인경이 또 아뢰기를,

"신정(新政) 초기에는 본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상께 권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죄는 용서할 만한 여느 죄와는 달리, 난역(亂逆)에 관한 일이라 엄히 다스리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고, 정순붕이 또 아뢰기를,

"군신(君臣)의 명분은 의리가 의당 정연해야 합니다. 난역죄(亂逆罪)는 태평한 시대에도 느슨하게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평상시라면 사림이 많이 다치게 되는 것이 과연 미안하겠으나, 이런 극악한 죄는 심각하게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온갖 죄 가운데 난역죄가 가장 무겁다. 그러나 이는 공연히 반심(叛心)을 낸 것이 아니라 윤임이 동궁을 빙자하여 사람을 속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거기에 빠져든 것이다. 처음부터 어찌 난을 지으려고 하였겠는가. 처음에 혹은 마음을 같이하고 일을 같이하기도 하고 혹은 얻지 못할까 걱정하고 잃을까 걱정하기도 하다가 과감하게 마음을 돌리지 못한 것이다. 군신 부자 사이에 난역보다 더 큰 죄가 없으나, 이 일은 또한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대신이 아뢴 뜻을 어찌 헤아리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기가 또 아뢰기를,

"상께서 즉위하신 후에 윤임이 모역(謀逆)한 정상을 사람들이 모두 모르고 있다가 이유(李瑠)057) 의 공초에 의해 비로소 인종을 ‘상왕(上王)’으로 봉하려 했던 모계가 드러났습니다. 당초 너그럽게 죄를 정한 것은 신들에게 이미 실수가 있습니다마는, 앞으로는 더 이상 구차하게 죄를 정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아뢰는 것입니다. 상께서 심각하게 다스리려 하지 않으시고 이토록 굳이 거절하시니, 신들은 명색이 삼공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데 만일 이렇게 신들의 말과 계책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신들이 비록 자리를 채우고 있은들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대신과 육경(六卿)이 모두 이 자리에 들어와 있으니, 상께서 대신의 말을 채용하셔야만 사람들 또한 그 영(令)을 들어 따를 것입니다.

상교에 ‘의당 덕화로 인심을 진정시켜야 한다.’ 하셨으니, 이 뜻은 지당하십니다. 그러나 사체가 이와 같습니다. 어찌 범연한 일을 가지고 밀계(密啓)까지 하였겠습니까. 사관도 이 일은 알 수 없는 것인데 마침 면대(面對)하였기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함께 의논해서 아뢰었는데도 윤허를 얻지 못한다면 물러간들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상께서 신들의 말을 들어주셔야만 신들이 그 소임을 다할 수 있습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아무리 대신의 말일지라도 예로부터 어찌 꼭 따르기만 하였는가. 아랫사람으로서는 아뢰는 것이 당연하지만, 위에서 혹 듣지 않은 것도 타당할 수가 있는 법인데, 어찌 들어주지 않았다 해서 ‘물러가 직사를 볼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갓 들어주지 않은 것만을 온편치 못하게 여긴다면 나는 더욱 온편치 않게 생각한다. 조정이 죄인에게 타당한 죄로써 죄를 주자고 청하는 것은 당연하나, 위에서 가부를 논하는 것 또한 어찌 옳지 않겠는가. 들어주지 않는다 해서 이렇게 말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을 듯하다."

하였다. 정순붕이 또 아뢰기를,

"인심이 정해지지 않은 것을 상께선들 어찌 모르시겠습니까마는, 신들은 이를 우려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하루 동안에 의논한 것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인심이 안정되지 못한 것을 상께서 모르고 계실까 염려하여 아뢰는 것입니다."

하고, 이기가 또 아뢰기를,

"신이 ‘채용하지 않으신다’고 아뢴 말은 매우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옛날의 대신(大臣) 가운데 주독(奏牘)058) 을 임금에게 아뢰었다가 임금이 노하여 그 주독을 찢어서 땅에 던져버리자 즉시 허리를 구부리고 그 찢어진 주독 조각을 주워 맞춰서 다시 임금께 올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들이 함께 의논하여 아뢰었는데도 이토록 굳이 거절하시는데, 만일 신들의 말을 그르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채용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당초에 정죄한 것이 구차스러웠기 때문에 이와 같이 아뢰는 것입니다마는, 인심이 위구할까 염려하시는 상교(上敎) 또한 마땅합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당초에 정죄해서 처치하는 데 타당성을 잃었다. 그것은 대체로 사람들이 모두 윤임의 술책에 속았었기 때문에 난적(亂賊) 다스리는 예로 다스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였다.

이기가 또 아뢰기를,

"윤임의 난역 행위를 조정에서 모두 모르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신들에게 무슨 공로가 있느냐고 여기고 있습니다. 잡된 의논이 이와 같이 많으니 의당 그 죄를 엄히 다스린 다음에야 인심이 석연해질 것입니다. 신들이 어찌 상께 사람 죽이는 일을 권하겠습니까. 사고(史藁) 가운데 윤임을 난역으로 기록한 곳이 없는데, 오직 정미년에 송인수(宋麟壽) 등을 죄주었을 때는 그들을 통렬히 다스리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뜻으로 기록한 사관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그 정상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신들은 사람들이 반역의 정상을 모르고 있는 것을 아뢰는 것이지, 대신을 죽이라고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위에서 어찌 경들이 생각하지 않고 아뢴 것이라고 여기겠는가. 아뢴 말은 마땅하지만, 죄를 주기가 구차스럽기 때문에 공정한 말로 말한 것이다."

하였다. 이기가 또 아뢰기를,

"조정이 함께 의논하여 모두가 이 말이 채용되기를 바라고 아뢴 것이요, 신 혼자만 아뢰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전교하신 뜻을 그르게 여긴 것도 아닙니다."

하고, 윤인경이 또 아뢰기를,

"상교가 이러하시니 신들은 물러갈 수가 없습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경들은 비록 이와 같이 아뢰지만, 위에서 가부(可否)를 논하여 용서하는 것 또한 어찌 소견 없이 하는 일이겠는가. 경들은 다시 헤아려 보라. 지금 비록 삼흉에게 죄를 더 준다 하더라도 어찌 이것으로 인심을 정할 수 있겠는가. 권벌이언적윤임의 술수에 속은 것이니 지금 다시 논할 수 없다. 인심이 정해지지 않기 때문에 경들이 종사를 위해 아뢰는 것인데, 내가 어찌 그 뜻을 모르겠는가."

하였다. 인경이 또 아뢰기를,

"고금의 역적 가운데 어찌 윤임 같은 자가 있겠습니까. 윤흥인(尹興仁)059) 의 자식에 대해 상께서 혼인을 의논하려 하자 윤임이 탐탁치 않게 여겼으니, 흉악한 마음을 이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니, 저전이 전교하기를,

"윤임이 동궁을 빙자하여 술수를 부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정상을 분명히 알지 못했다."

하였다. 이기가 또 아뢰기를,

"인종 대왕이 승하하시고 금상(今上)060) 이 즉위하시자 윤임이 더 이상 믿을 곳이 없게 되어 다시 흉역(凶逆)의 꾀를 부린 것이니, 이는 참으로 상교에 이른 바와 같이 세력을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못하는 짓이 없어 그런 것입니다."

하고, 윤원형이 아뢰기를,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임금의 미덕이니, 구차하게 정죄(定罪)할 수 없다고 하신 상교는 지당하십니다. 다만 신들이 오늘 빈청(賓廳)에 모여 종일토록 반복하여 의논하였는데, 만일 역란죄(逆亂罪)일 경우는 반드시 그 죄를 분명하게 집어내서 바로잡은 다음에야 인심이 쾌히 정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당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후세 사람도 그 죄상을 환히 알게 될 것입니다. 범연하게 아뢰는 것이 아니니 머뭇거리지 마소서."

하고, 임권이 아뢰기를,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은 임금의 큰 권병(權柄)입니다. 만일 범연한 일이라면 어찌 감히 사람 죽이는 일을 계청(啓請)하겠습니까. 악한 자를 주벌하는 데는 고금을 가리지 않는 법인데, 만일 정률(正律)로 죄주지 않는다면 후세에 어찌 사람들의 의논이 없겠습니까. 의심을 두고 결단하지 않으면 인심이 더욱 위구할 것이니, 속히 결단하심이 마땅합니다."

하고, 김광준이 아뢰기를,

"인심을 진정시켜 위구하지 않도록 하려 하신다는 상교는 지당하십니다. 다만 근래에 인심과 시비가 의당 크게 정해졌어야 할 것인데 지금까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고(史藁)를 쓴 사람의 경우, 시종 국문에 참여하여 그들의 역상(逆狀)을 자세히 아는 자도 그들의 역상을 부실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안명세의 생각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때의 연소배들은 아마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했던 듯합니다. 삼흉의 죄를 당초에 정률로 다스리지 못하였으니 후세에 어찌 내막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때는 형편상 그렇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죄를 분명하게 집어내서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조정이 대의(大義)를 들어 함께 의논해서 아뢰는 것이니, 상께서 의당 대신의 말을 쾌히 따르신 다음에야 인심이 정해지고 사체가 온당해질 것입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아뢴 뜻은 모두가 타당하다. 다만 김안로의 죄는 지금에 발단된 것이 아니라, 선왕조(先王朝)에서 이미 그 죄를 정한 것이니, 설사 추론(追論)한다 하더라도 어찌 이것으로 인심을 진정시킬 수 있겠는가. 윤임의 죄는 정유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주상(主上)이 즉위한 후에 그가 난역을 도모한 정상이 밝게 드러나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도 인심이 이와 같이 진정되지 않는 것은 애당초 그의 술수가 사람들의 골수에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어찌 삼흉의 죄를 분명하게 바로잡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아무리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추론하는 것은 매우 미안하기 때문에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삼흉과 권벌·이언적에게 지금 설령 죄를 더 준다 하더라도 어찌 이것으로 인심을 진정시킬 수 있겠는가. 내가 모르긴 하지만, 이미 오래된 일을 추론할 수는 없다."

하였다. 윤인경이 또 아뢰기를,

"이미 오래된 일을 공연히 추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로윤임과 결탁하여 이미 수악이 되었으니, 추론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고, 순붕이 또 아뢰기를,

"극악 대죄(極惡大罪)를 정률(正律)대로 죄주지 않으면 인심을 어찌 진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대역죄는 의당 분명하게 바로잡아서 다스려야 합니다. 근래에 인심이 정해지지 않고 의논 또한 많아서 그 사건을 알 만한 사람도 간혹 황당한 말은 하므로, 신들이 모두 우려하는 바입니다."

하고, 인경이 또 아뢰기를,

"윤임의 흉악한 정상은 이덕응(李德應)의 공초에서 역력히 드러났고, 윤흥의(尹興義)윤임의 친자식인데 그 사실을 또 숨김 없이 다 자복하였으며, 이유(李瑠)의 경우는 깊은 산곡(山谷)에 귀양가 있었기에 조정의 내막을 몰랐을 듯한데도 잡혀와서 공초한 내용이 이덕응의 말과 여합부절하였으니, 어찌 난역의 정상이 밝게 드러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요즘 인심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듯하니 난역에 관한 일은 상께서도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윤임김안로와 더불어 서로 결탁한 정상에 대해 그때는 사세가 곤란하여 그 죄를 분명하게 집어내서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지금 만일 그 사실을 중외(中外)에 효유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쾌하게 여기면서 반드시 ‘조정이 이제 이미 안로의 죄를 알았다.’고 할 것입니다."

하고, 순붕이 또 아뢰기를,

"정유년의 일은 정유년의 일대로, 을사년의 일은 을사년의 일대로 각 죄를 분명하게 밝힌 다음에야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누군들 그 사실을 모를까마는 그래도 석연치 못하여, 도리어 세자를 빙자해서 옥사를 만든 것이라고 하니, 더욱이 그 죄를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이기가 또 아뢰기를,

"추론하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얽매여서 죄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도리어 구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극심한 흉악범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말로만 효유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분명하게 그 죄를 집어내서 바로잡아야만 인심이 쾌하게 여기고 시비가 저절로 정해질 것입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이것은 지금의 일이 아니고 선왕조에서 이미 죄를 정한 것인데, 대신들이 이와 같이 아뢰니 시비 또한 저절로 정해질 것이다. 내 뜻은 굳이 추론하고 싶지 않다."

하였다. 인경이 또 아뢰기를,

"신들은 한두 사람이 아니고 정부(政府)와 육경(六卿)이 모두 여기에 들어와서 일국의 공론(公論)을 가지고 종사(宗社)를 위해 아뢰는 것이니,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하고, 순붕이 또 아뢰기를,

"소신의 아룀이 어찌 털끝만큼인들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만일 상께서 공론이라고 여기신다면 어찌 이토록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내가 경들에게 다른 뜻이 있다고 여긴 것이 아니다. 삼흉의 죄에 대해 그때에 비록 형벌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할지라도, 선왕께서 이미 정죄하신 일을 지금 다시 추론한다면 인심의 소동을 가져올 듯하다. 어찌 경들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고 여겨서이겠는가."

하였다. 순붕이 또 아뢰기를,

"선왕조에서 그들의 죄명(罪名)은 정하지 않고 그들의 몸만 죄주었으니, 이는 죄주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최근 4년 동안 계속해서 사람을 죽인 것이 비록 부득이한 일이기는 하였지만 늘 마음이 아팠었다. 지금은 인심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이같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인경이 또 아뢰기를,

"사세가 부득이해서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 일을 조정이 어찌 하기 좋아서 하겠습니까."

하고, 순붕이 또 아뢰기를,

"신들이 어찌 인심을 안정시키고 싶지 않겠습니까. 사세가 부득이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비록 불쾌한 일이 있어 이미 그 죄를 정했다 할지라도 진실로 위단(違端)이 있다면 어찌 추론하지 않겠는가. 안명세의 일 또한 새로 발생한 일이 아니고 이미 을사년에 한 일이었다. 권벌이언적은 모두 윤임의 술책에 빠져든 것이므로, 나는 그들에게 죄를 더 주고 싶지 않다."

하였다. 인경이 또 아뢰기를,

"찬집청(撰集廳)이 없었더라면 한 때의 일이 부실한 데로 돌아갈 뻔하였습니다. 사고(史藁)에는 입에 담지 못할 말이 많았으므로 끝까지 추궁해서 통렬히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순붕이 또 아뢰기를,

"사람들은 김안로가 국권을 독차지하여 정사를 어지럽힌 일만 알고 그가 대역죄를 지은 것은 모르고 있으니, 이는 그의 죄명(罪名)에 ‘국모(國母)를 모위(謀危)했다.’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고, 인경이 또 아뢰기를,

"비록 천년 뒤에라도 그 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인데, 더구나 이 일이야 무어 그리 오래되었습니까."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나의 뜻은 되풀이하여 다 말하였으니, 경들이 다시 의논하라."

하였다. 인경이 또 아뢰기를,

"난역죄는 아무리 상이라 하셔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일이라면 가부를 논할 수 있지만 이 일은 의논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만일 일반적인 난역죄라면 처음부터 극형을 면한 자가 있었겠는가. 이는 곧 온 나라 조정이 윤임의 술책에 빠진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그치고 만 것이다. 죄준 것은 비록 부족하지만 처음에 이미 구차하게 정한 것이니, 지금 다시 논할 수 없다."

하였다. 인경이 또 아뢰기를,

"온 나라가 비록 윤임에게 속았다 할지라도, 애당초 세력을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고 다시 스스로 불안을 느껴서 계책을 꾸몄던 것입니다. 신들이 처음에는 그 흉모를 자세히 몰랐기 때문에 짐작해서 아뢰었다가, 김명윤(金明胤)안세우(安世遇)가 진고(進告)한 다음에야 조정이 비로소 모두 경악했던 것입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속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난역이라 할지라도 어찌 차등이 없겠는가."

하였다. 윤인경이 또 아뢰기를,

"윤임·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은 모두 이미 복죄(伏罪)하였는데, 김안로는 수악(首惡)이었는데도 아직까지 그의 죄를 분명하게 집어내서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에 인심이 지금까지 분하고 답답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고, 순붕이 또 아뢰기를,

"조정의 대사(大事)에 관해서 신들이 공론을 가지고 아뢰는데도 상께서는 전혀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론이 어찌 여기에 그치고 없어져 버리겠습니까. 만일 공론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어찌 상께서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해서 물러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인경이 또 아뢰기를,

"지금은 비록 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후일에 어찌 말하는 자가 없겠습니까. 만일 다른 사람의 말만 힘써 따른다면 신들은 무슨 체면이 있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새로 발생한 일 같으면 말할 것도 없지만, 내 생각은, 결코 추론(追論)하고 싶지는 않다. 만일 따를 만한 일이라면 대신이 이토록 법에 의거해서 진계(陳啓)하는데도 듣지 않겠는가. 경들이 다시 의논하라. 만일 후일에 다시 흔단이 생긴다면 내가 그때야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하였다. 순붕이 또 아뢰기를,

"죄를 주어야 할 사람은 의당 즉시 죄를 주어야지, 후일을 기다려서 죄주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죄를 줄 만하면 죄주지 않겠는가. 이미 그 죄를 정했으므로 추론할 수가 없다. 아무리 오늘 죄주고 내일 또 죄를 준다 하더라도 어찌 이것으로 인심을 진정시킬 수 있겠는가. 반복하여 헤아려보니, 끝없이 치죄(治罪)하고 있기 때문에 인심이 더욱 진정되지 않은 것이다. 경들은 다시 헤아려 보라. 허흡(許洽)허경(許坰)의 경우는 역시 처음에 용서해서는 안 되는데 용서를 하였으니, 이들에 대해서는 아뢴 대로 하여도 괜찮겠다."

하였다. 이기가 또 아뢰기를,

"신들뿐만이 아닙니다. 공론이 끝내 반드시 끊이지 않아서 온 나라의 신민(臣民)들이 응당 함께 쟁론할 것입니다. 하늘이 비록 높아도 지기(地氣)가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하여 만물이 서로 편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신자의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면 일을 어찌하겠습니까. 신들은 죄주지 않는 일을 도리어 구차하게 여깁니다. 경중을 헤아려서 쾌히 따르소서. 신들은 상의 덕(德)을 입고자 합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반복하여 헤아려 보았으니, 만일 따를 만한 일이라면 어찌 쾌히 따르지 않고 경들로 하여금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하겠는가. 경들이 다시 의논해야 한다."

하였다. 이기가 또 아뢰기를,

"난역을 죄주자고 청한 것은 법에 의거해서 아뢴 것입니다. 어찌 김안로윤임을 치우치게 미워해서 그러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어찌 경들에게 애증(愛憎)이 있다고 여겨서 그러겠는가. 이 역적은 다른 역적과 다르기 때문에 경들이 아뢴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윤인경이 또 아뢰기를,

"윤임 같은 역적을 어째서 다른 역적과 같지 않다고 하십니까?"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윤임은 동궁(東宮)을 빙자하여 조정을 속여서 조정이 그의 술책에 빠졌기 때문에 아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하였다. 순붕이 또 아뢰기를,

"인심이 아직도 석연치 못하니 관계가 어찌 중대하지 않겠습니까. 공론이 이미 정해져서 확실한 일이기 때문에 아뢰는 것이니 망설이실 것이 없습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경들의 아뢴 말이 옳기는 옳지만,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스스로 반역한 사람들이 아니다. 윤임이 동궁을 빙자하여 교묘하게 인심을 선동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거기에 속은 것이다. 이 때문에 당초부터 악인의 위협에 못이겨 따른 사람은 죄를 주지 않아서 마음을 돌리게 했던 것이다. 권벌이언적은 모두 재상으로서 그 죄가 이와 같기 때문에 이미 극변(極邊)에 안치하라고 명하였으니, 설령 더 이상 논죄하지 않더라도 어찌 죄를 모르겠는가."

하였다. 인경이 또 아뢰기를,

"신들이 주로 아뢰는 것은 삼흉입니다. 당초에 죄를 정할 때, 중종 대왕께서 윤임을 명초(命招)하자 윤임이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생각해 보면 김안로윤임과 동모(同謀)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정률(正律)대로 치죄하지 않은 것은 이미 형벌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입니다. 수악(首惡)은 비록 이미 죽었지만 반드시 통렬히 다스려야 합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아무리 수악이라고는 하지만 그 역시 윤임에게 속은 것이다. 선왕조에서 어찌 범연하게 헤아려서 죄를 정했겠는가. 이미 정한 죄를 추론할 수는 없다. 경들이 물러가서 다시 생각하라."

하였다. 인경이 또 아뢰기를,

"신의 뜻은 이미 다 아뢰었습니다."

하고, 순붕이 또 아뢰기를,

"대역죄는 능지 처사(凌遲處死)하는 것이 각기 그 율이 있으니, 의당 그 죄로 죄주어야 합니다. 선왕조에서 그 죄를 분명하게 집어내서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사람들이 모두 ‘김안로는 재상으로서 국권을 제마음대로 하다가 죄를 입었다.’고만 말하여, 한사람도 그의 흉역(凶逆)함을 알고 있는 자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정유년 사람이 누구인지, 을사년 사람이 누구인지를 분변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난역(亂逆)의 정상이 있다면 아무리 해마다 죄를 준다고 한들 어찌 옳지 않겠습니까."

하고, 윤인경이 또 아뢰기를,

"《무정보감(武定寶鑑)》을 수찬(修撰)할 때는 의당 정유년의 일을 으뜸으로 실어야 할 것인데, 어찌 그 죄를 정하지 않고 수찬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지금 비록 그 죄를 다시 정하지 않고 선왕조에서 이미 정한 죄목을 가지고 찬집하더라도 무슨 해로울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이기가 또 아뢰기를,

"직접 면대하여 아뢰었으나 상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것은 신들의 정성이 지극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상께서 비록 ‘경들의 아뢴 말이 옳다.’고는 하셨지만, 아직까지 마음을 돌리지 않으신 것은 반드시 신들의 말을 옳지 않게 여기신 때문입니다. 참으로 옳다면 아무리 추요자(芻蕘者)의 말일지라도 의당 가려서 쓰는 것인데, 신들이 아뢴 말을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내 뜻은 다 말하였으니 경들이 물러가서 다시 헤아려 보라."

하였다. 이기가 또 아뢰기를,

"상께서 만일 무슨 이유로 옳지 않게 여긴다고 하신다면 신들은 물러가겠습니다."

하니, 자전이 전교하기를,

"만일 쾌히 따를 일이라면 어찌 이토록 망설이겠는가."

하였는데, 인경이 또 아뢰기를,

"일의 끝을 잘 헤아려서 처리하소서."

하였다. 계(啓)를 마치고 좌우에서 차례로 물러가는데 벌써 밤이 되었다.

【경연청(經筵廳)에 선온(宣醞)하였다. ○이때 대신들이 봉서(封書)를 가지고 밀계(密啓)하면서 ‘종사(宗社)를 위해 서계(書啓)합니다.’ 하였는데, 이것은 정유년과 을사년에 적몰(籍沒)되지 않은 사람들을 추론(追論)한 것이었다. 자전(慈殿)이 주렴을 드리우고 함께 들었는데 상(上)은 끝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자전이 대신의 말을 따르지 않자 좌우에서 모두 대신의 말을 따르라고 청하였는데, 민제인(閔齊仁)만이 유독 ‘어찌 꼭 사람을 죄주어서 인심을 진정시키겠습니까.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물리치면 인심이 자연 진정될 것입니다. 이것이 종사의 무궁한 복입니다.’ 하였다. 논계(論啓)할 때에 이기는 ‘상의 덕을 입고자 한다.’는 말을 하였는데, 남의 가산(家産)을 적몰해다가 제 자신이 그 덕을 입는다면 이것이 과연 종사를 위하는 일이겠는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통분하게 여겼다.】

사신은 논한다. 간악한 자들이 권세를 잡고 충량(忠良)한 사람들을 해쳤다. 이언적(李彦迪) 등은 이미 죄 없이 원방에 찬축되었는데, 다시 더 죄주자고 청하여 반드시 그들을 죽이고야 말려고 하였으니, 간흉의 화가 참혹하다 하겠다. 이미 계청(啓請), 면대(面對)하여 상께서 듣지 않으면 의당 스스로 물러가야 할 것인데도 더욱 독사 같은 독을 부리면서 천위(天威)를 지척에 모시고서 갈수록 사나운 어조로 말을 하다가, 자전의 전교에 노여움이 드러난 다음에야 마지못해 물러갔으니, 이기 등의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이때에 이르러 더욱 드러난 것이다.

사신은 논한다. 이기가 처음에는 윤원형(尹元衡)과 더불어 공모하여 사림(士林)을 살육하고 그 공으로 함께 공신(功臣)의 호를 받았는데, 그 일을 성사시킨 데는 실로 원형이 내부에서 도모한 힘이 컸다. 그런데 그후에 이기가 사림을 찬축할 때에는 간혹 원형에게 모의하지 않고 제 뜻만으로 자전께 아뢰어 시행하므로, 원형이기의 위권(威權)이 자기보다 우세함을 싫어하여 그의 위권을 깎아내리려고 하였다. 그러던 차에 이기이언적 등을 모살(謀殺)하려고 하자 원형이 그 사실을 미리 알고는 은밀히 대비(大妃)께 아뢰기를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인심을 진정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니, 대비가 그의 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기 등이 아무리 반복해서 논집(論執)하여도 끝내 윤허하지 않은 것이다. 대체로 선량한 사람을 원수 보듯이 하는 원형 같은 흉독한 위인이 어찌 선량한 사람 죽이는 것을 조금이나마 애석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겠는가. 다만 한때의 정권 쟁탈의 속셈 아래 이기의 꾀가 시행되지 않도록 하려는 데서 나온 처사였을 뿐인데, 그나마 사림의 화가 이 때문에 조금 늦추어졌으니, 아, 천행(天幸)이라 하겠다.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572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인물(人物) / 사상-유학(儒學) / 역사-사학(史學) / 가족(家族)

  • [註 055]
    대역(大逆) : 윤임을 가리킴.
  • [註 056]
    장심(將心) : 임금을 장차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하는 의사(意思), 즉 역심(逆心)을 뜻한다. 《공양전(公羊傳)》 장공(莊公) 32년에 "임금과 어버이에게는 장차 어떻게 하리라는 마음도 가져서는 안 되니, 그런 마음을 갖기만해도 주벌을 받는다[君親無將 將而誅焉]" 하였다.
  • [註 057]
    이유(李瑠) : 조선 성종(成宗)의 세째 아들 계성군(桂城君) 이순(李恂)의 양자인 계림군(桂林君)의 이름. 이는 본디 장경 왕후(章敬王后:중종의 제2계비)의 아버지인 윤여필(尹汝弼)의 외손으로, 대윤(大尹:윤임(尹任))과 소윤(小尹:윤원형(尹元衡)) 간에 정권 쟁탈전이 치열할 때 소윤 일파가, 대윤의 윤임이 계림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고 모략함으로써, 대윤이 숙청되고 계림군 역시 안변(安邊)까지 귀양갔다가 잡혀와서 참수되었다. 선조 때 신원되었다.
  • [註 058]
    주독(奏牘) : 임금에게 올리는 사찰.
  • [註 059]
    윤흥인(尹興仁) : 윤임의 아들.
  • [註 060]
    금상(今上) : 명종을 가리킴.

○領議政尹仁鏡、左議政李芑、右議政鄭順朋、左贊成閔齊仁、右贊成黃憲、左參贊任權、右參贊金光準、吏曹判書尹元衡漢城府判尹崔演等會賓廳, 以一封書【封入不下, 史官不得(后) 〔啓〕之。 大槪見下。】 入啓曰: "近來人心不定, 故臣等爲宗社書啓。" 答曰: "卽當面對。" 俄而上御思政殿簷下, 少東西向, 慈殿御于殿上簾內。 尹仁鏡等以次入侍, 慈殿令大臣等進前, 敎之曰: "大臣爲宗社書啓, 豈偶然計哉? 所謂: ‘罪重罰輕之言’, 至當。 然予意則以追論爲未便也。 丁酉三兇 【金安老、許沆、蔡無擇。】 之事, 啓意則當矣, 先王朝定罪已久, 今何更加乎? 乙巳之事, 非他逆賊之類, 憑東宮, 造言紿人太深, 故人無不見紿者, 其術極高, 前後陷其術中者, 何可量哉? 三兇聽從尹任之言, 而先王已定其罪, 今又追論, 籍沒家産, 妻子爲孥, 於予心大有未安。 李彦迪權橃, 皆見紿於逆賊, 兇謀深入骨髓。 初旣同心同事, 故不卽回心, 至於逆賊定罪之後, 反有未快之心, 熒惑人聽, 變亂是非, 罪則有之。 但初罷後竄, 今又加罪, 則事甚苟且。 當其時一國人心, 皆見紿於尹任, 治之甚難。 幸賴天佑神助, 宗社粗安。 以此思之, 非徒權橃李彦迪爲然, 一國朝廷, 莫不見紿, 事定之後, 或有未快之心者, 以其定罪時, 多有苟且, 不合事體故也。 且予意以爲, 朝廷初雖見紿, 旣知之後, 則必皆回心爲國, 故罔治其脅從矣。 國家無祿, 年前罪時, 人多被罪, 罪之苟且, 故人心益疑。 今當鎭定人心, 不可更論矣。 許洽許坰中宗朝, 果有關係國家之罪, 故竄黜矣, 仁宗朝, 等用事而放之。 白仁傑事則當是非不定之時, 見紿而爲之, 亦不可更論, 今當以鎭定人心爲事。 若君君臣臣父父子子, 進君子退小人, 而朝廷堂堂, 則雖有不道之人, 固不容於天地之間。 自今後若自發, 則當治其罪, 而追論加罪, 不欲爲也。" 尹仁鏡曰: "敎意至當。 臣等亦豈不計乎? 近雖治罪, 而人心不定, 故爲宗社啓之。 豈好事而請加罪乎? 上敎以爲: ‘先朝定罪之人, 今不可追論。’ 敎意至當。 但金安老尹任, 相遇一時, 共爲兇謀, 而安老被罪之後, 則人皆直名曰安老, 指不肖之人, 必曰安老之子。 近自大逆定罪之後, 賤人則已矣, 至於士類, 亦號爲某爺云, 未知何以也。 且安老, 罪大惡極, 固當依律, 而其時爲東宮, 不能快治也。 以此人心憤鬱, 至今欲食其肉。 大抵除惡務本, 然後人心自定。 臣等亦豈偶然啓之? 出於不得已也。" 李芑曰: "上敎則當矣。 衆議如是, 故不得不書啓。" 仁鏡又曰: "上敎以爲: ‘定罪已久, 不可追論。’ 《春秋》之法, 雖千載上事, 亦皆追論, 不可以此言也。" 鄭順朋曰: "上敎以爲: ‘鎭靜人心, 國勢堂堂, 則自然定矣。’ 敎意則當矣。 然人心尙不定, 國勢亦未堂堂, 人心之乖拂, 莫甚於此時。 定罪之後, 或不以爲快者有之, 逆賊情狀, 昭著無疑, 而至今有識之士, 尙未釋然, 不快于心, 罪滔天, 而反謂非逆, 乃憑藉而成之, 其意豈不深乎? 之窮兇極惡, 豈以憑藉而成罪乎? 以爲憑藉而成, 人心不定, 於此亦可見矣。 安老以首惡, 罪不依律, 故後人不知其以何事被罪也, 請亟明正其罪, 以快人心。" 李芑又曰: "不可昭昭箇箇而上達矣。 此史藁, 雖似一人所書, 然朝廷徒皆革面, 而不爲革心, 故如此矣。 趙璞所書, 在於是非混淆之時, 又未久而卽罷, 似不得知之。 自上卽位後, 尹任謀逆之狀, 人皆不知, 反以疑之, 以定罪爲不快者多, 臣等爲宗社, 共議書啓, 自上牢拒至此。 常時臺諫所啓尙皆從, 而不聽臣等之言, 臣等其能爲何事乎?" 慈殿敎曰: "大臣爲宗社, 豈偶然計乎? 人心以爲不快, 故欲明正其罪, 啓意當矣。 然人心乖拂, 不可以罪定之。 當初治亂賊, 不似事體, 故人有未快之心。 尹任術高紿人, 深入骨髓, 故人皆不知, 反以尹任之死, 爲積嫌所致, 如(安明世)〔安名世〕 之疑者居多。 然定罪苟且, 則人心益爲危懼, 雖日日罪之, 豈可以罪定人心乎? 名世則與彼同心, 故是非旣定之後, 修史如此, 豈無將心而然乎? 自今後如名世事則已矣, 不欲加罪於人也。 三兇今雖籍家財孥妻子, 人心豈可以此益定乎?" 仁鏡又曰: "尹任之事, 自上亦所昭知, 而名世以此書之, 在臣子所當驚駭, 而或有以推鞫爲未便云。 以此見之, 人心可謂定乎? 幸値國運有祚, 兇謀自露, 《寶鑑》 【《武定寶鑑》。】 將撰, 史藁又現, 此實天地之佑也。 名世事發, 故臣等因此而共議, 欲追論三兇, 此乃一國臣民之意也。" 慈殿敎曰: "非不知大臣欲正其罪之意, 苟且加罪, 則人心益爲危懼。 名世之事, 亦豈近間之謀? 自初必有未便之意, 故如此書之矣。" 仁鏡又曰: "名世事著, 而或有不欲罪之者。 名世以當時史官, 如此書之, 萬世之下, 何能知其是非乎? 將以逆賊, 歸之不實, 豈不大關乎?" 慈殿敎曰: "如此自著者已矣, 治罪苟且而無常, 則人心益不可定。 今後若燃犀自照者, 則不可不治, 追論則決不欲爲之。" 李芑又曰: "不嗜殺人, 自上仁德至矣。 臣等亦豈偶然啓之? 權橃李彦迪, 已登於名世之口, 誠不可不罪也。 知其可罪而不啓, 臣則有罪, 故啓之。" 慈殿敎曰: "名世之事, 非昨今所書, 雖曰如此, 自然定矣。" 黃憲曰: "臣於丁酉年爲大司諫, 三兇定罪之時, 其謀危國母之狀, 孰不知之? 第以仁宗大王方在東宮, 恐後世不知其實而有議也, 與大司憲梁淵共議, 不爲名言其罪而定之。 而今乃有請, 臣實多罪。 然欲定人心, 當罪首惡。 日月雖久, 誅惡豈論其時? 近來被罪籍沒者, 豈皆知三兇之惡乎? 三兇以逆類之魁, 尙保妻子, 物議憤激。 用法當分輕重, 必痛治其根本, 曉諭中外, 使知其首惡, 然後人心快矣。 權橃李彦迪, 皆以識理之人, 爲時人領袖, 反救逆賊。 故士林信之, 史官褒之, 皆此人誤之也。 以罪論之, 初不被誅, 失刑甚矣。 況自名世獄事之出, 人心是非, 尤似不定, 請勿留難。" 閔齊仁曰: "自上以爲: ‘豈可以殺戮定人心乎? 進君子退小人, 而國勢堂堂, 則自然定矣。’ 此實宗社無彊之休也。 然三兇罪大惡極, 日月雖久, 不可不追論其罪。 輿憤如此, 故啓之。 權橃李彦迪, 罪狀已著於名世日記, 以尹任處事爲甚正, 以救逆賊爲己事, 故朝議如此其激發也。 今承上敎, 不勝感激。 如臣迷劣之意, 常時亦以爲自上以至正卽位, 聖質又出於英明, 若群臣協心而同德, 則時和歲豐, 人心自定矣。 豈料至今不定如此乎?" 慈殿敎曰: "卿等欲追正三兇之罪, 以明極惡, 是則是矣。 先朝業已議定, 雖曰失刑, 豈可追論乎? 雖間有雜說者, 之逆狀, 誰不知之? 其不知義理, 反以爲非逆者, 士習之誤也。 之爲賊, 有異於他。 予與仁宗, 義母間也, 作術根深, 故易惑人聽。 邇來罪人已多, 今不可更論。 治世以德化, 惡可以罪人爲哉? 如予薄德, 德化之行, 雖不可望, 被罪者多, 實非美事, 要當靜鎭而定之也。 當初若非尹任, 則士林多傷, 豈至此乎? 常懷未安, 每爲傷歎。 今後如名世之自發則已矣, 已定之罪, 不可更論。" 仁鏡又曰: "新政之初, 固不可以殺戮勸上也。 但此罪, 非如他罪之可恕, 亂逆之事, 不可不嚴治也。" 鄭順朋又曰: "君臣名分, 義當截然。 亂逆之罪, 雖在治世, 不可緩治。 常時則士林多傷, 果爲未安, 若此極惡之罪, 不可不深治。" 慈殿敎曰: "百罪之中, 亂逆爲重。 然此則非無端而生叛心也, 憑東宮紿人, 故人皆見陷。 初豈欲造亂乎? 初或同心同事, 或患得患失, 不能決然回心。 君臣父子之間, 罪無有大於亂逆, 而此則亦有間焉。 大臣啓意, 予豈不計乎?" 李芑又曰: "自上卽位後, 尹任謀逆之狀, 人皆不知, 之供內, 始著封上王之謀。 當初定罪從寬, 臣等已有所失, 今後更不欲苟且定罪, 故如此啓之。 自上不欲深治, 牢拒至此, 臣等備位三公, 若不言聽計從, 則雖備員, 能爲何事乎? 大臣六卿, 莫不入此, 自上採用所言, 然後人亦聽從其令。 上敎以爲: ‘當以德化, 鎭定人心。’ 此意至當。 然事體如此。 豈偶然至於密啓乎? 史官亦不得知之, 適爲面對, 故乃得知之。 共議啓之, 而不得蒙允, 則雖退何爲? 自上言聽然後可盡其任。" 慈殿敎曰: "雖大臣之言, 自古亦豈必從乎? 自下啓之當矣, 自上不聽亦當, 豈可以不聽之故, 謂退不能莅職乎? 徒以不聽爲未便云, 於我意, 益以爲不便。 朝廷以罪罪之之請, 固宜, 而自上論可否, 亦豈不可乎? 以爲不聽, 而如是言之, 予意恐其不然也。" 鄭順朋又曰: "人心不定, 自上亦豈不知? 臣等憂慮已久, 非一日所議。 人心之不靖, 恐自上不知故啓之。" 李芑又曰: "臣之不爲採用之啓, 至爲過越。 古之大臣, 有以奏牘, 啓於其君, 君怒裂其牘擲地, 卽俛拾綴補以更進者。 臣等共議啓之, 牢拒至此, 若不以臣等之言爲非, 則採用爲當。 當初定罪苟且, 故如是啓之。 恐人心危懼, 上敎亦當。" 慈殿敎曰: "當初定罪, 處置失宜。 蓋以人皆見紿於術, 故不能以亂賊之道治之。"

李芑又曰: "尹任之亂逆, 朝廷皆不知之, 故反以臣等, 爲有何功乎。 雜議之多如此, 當嚴治其罪, 然後人心釋然矣。 臣等豈勸上殺戮乎? 史藁中, 無以尹任爲亂逆處, 唯於丁未年宋麟壽等加罪時, 有以不能深治爲恨而書之者, 此則知其情狀者也。 臣等以人不知叛逆之狀啓之, 非勸殺大臣也。" 慈殿敎曰: "自上豈以卿等爲不思而啓之乎? 所啓則當矣, 加罪苟且, 故以公言言之矣。" 李芑又曰: "朝廷共議, 幸希採用而啓之, 非但臣之啓也。 且非以敎意爲非也。" 仁鏡又曰: "上敎如此, 臣等不可退也。" 慈殿敎曰: "卿等雖啓之如此, 自上論可否而原之者, 亦豈無所見乎? 卿等更量之。 今雖加罪三兇, 豈可以此能定人心乎? 權橃李彦迪, 見紿於尹任之術, 今不可更論也。 人心不定, 故卿等爲宗社啓之, 予豈不知乎?" 仁鏡又曰: "古今逆賊, 豈有如尹任者乎? 興仁之子, 自上欲爲議婚, 而也不肯, 兇惡之心, 以此亦可見矣。" 慈殿敎曰: "憑東宮而爲術, 故人不能灼知其情狀。" 李芑又曰: "仁宗大王昇遐, 今上卽位, 無復所恃, 而更爲兇逆之謀, 誠如上敎所謂患失之心, 無所不至而然也。" 尹元衡曰: "不嗜殺人, 人主之美德, 定罪不可以苟且, 上敎至當。 但臣等今日會賓廳終晷, 反覆議之, 若涉於逆亂之罪, 則必明正其罪, (後然)〔然後〕 人心快定。 非但一時後世之人, 亦可洞知其罪狀矣。 非偶然而啓之, 請勿留難。" 任權曰: "賞善罰惡, 人主之大柄。 若偶然事則豈敢以殺戮之事, 陳請乎? 誅惡, 時無古今, 若不以正律罪之, 後世豈無人議乎? 持疑不決, 則人心益爲危懼, 速決爲當。" 金光準曰: "欲令人心鎭定, 而不爲危懼, 上敎至當。 但近來人心, 是非當大定, 而今尙不定。 至於史藁之中, 終始參鞫, 細知其逆狀者, 亦以不實書之。 非獨名世之意爲然, 一時年少諸輩, 恐亦皆然。 三兇之罪, 當初不能以正律治之, 後世豈能知之? 其時則勢然矣, 今可明正其罪, 故朝廷擧大義共議啓之, 自上當快從大臣之言, 然後人心定而事體得矣。" 慈殿敎曰: "啓意皆當。 但安老之罪, 非發於今時, 先王朝已定其罪, 設使追論, 豈可以此定人心乎? 尹任之罪, 非但丁酉年也。 主上卽位之後, 其爲逆狀, 昭著無疑, 而人心之不定如此者, 以初陷其術, 深入骨髓故也。 豈以三兇之罪, 不能明正而然也? 反覆計之, 追論深爲未安, 故不能從之。 三兇權橃李彦迪, 今雖加罪, 豈可以此定人心乎? 予未之知也, 已久之事, 不可追論。" 仁鏡又曰: "已久之事, 非無端追論。 安老締結尹任, 而旣爲首惡, 不可不追論。" 順朋又曰: "極惡大罪, 不依正律而罪之, 則人心豈能定乎? 況大逆之罪, 所當明正而治之。 近來人心不定, 議論亦多, 可知其事者, 亦或爲荒唐之言, 臣等共爲憂慮。" 仁鏡又曰: "尹任兇狀, 歷歷於李德應之供, 興義, 親子也, 而盡服無隱, 至於, 竄於巖谷之間, 朝廷之奇, 似不能知, 而及其拿推所供, 與德應等之言, 如合符節, 亂逆之狀, 豈不昭昭乎? 且近來人心, 似尙不定, 亂逆之事, 自上亦不可容赦也。 尹任金安老, 相爲締結之狀, 其時勢難, 不能明正其罪, 今若曉諭中外, 則人皆快之, 必謂朝廷, 今已知安老之罪也。" 順朋又曰: "丁酉則丁酉, 乙巳則乙巳, 各罪分明, 然後人心無疑矣。 人誰不知, 而尙未釋然, 反以爲憑藉而成, 尤不可不明其罪。" 李芑又曰: "不欲追論, 善則善矣。 然拘此不治, 則反涉苟且。 窮兇極惡, 不可以言曉, 必當明正其罪, 然後人心乃快, 而是非自定矣。" 慈殿敎曰: "此非今時之事, 先朝已定其罪, 大臣如此議之, 是非亦自定矣。 予意不欲强爲追論也。" 仁鏡又曰: "臣等非一二人, 政府及六卿, 皆入于此, 將一國公論, 爲宗社而啓之, 豈有他意乎?" 順朋又曰: "小臣之啓, 豈有一毫他意乎? 若以爲公然, 則豈至此不聽乎?" 慈殿敎曰: "予非以卿等, 有他意也。 三兇之罪, 其時雖曰失刑, 先王已定之事, 今更追論, 則恐致人心之騷動也。 豈以卿等, 爲有他心乎?" 順朋又曰: "先朝不定其罪名, 但罪其身, 是與不罪無異也。" 慈殿敎曰: "邇來四年間, 殺人連連, 雖不得已, 每有傷心。 今則欲安定人心, 故如此不從也。" 仁鏡又曰: "勢不得已殺戮之事。 朝廷豈樂爲之?" 順朋又曰: "臣等豈不欲安定人心乎? 勢不得已也。" 慈殿敎曰: "雖有不快之事者, 已定其罪, 苟有違端, 豈不追論? 安名世亦非新發之事, 必乙巳時所爲也。 權橃李彦迪, 皆陷於尹任之術, 予意不欲加罪也。" 仁鏡又曰: "不有撰集廳, 一時之事, 將歸於不實之地。 史藁多有不可道之言, 不可不推根而痛治也。" 順朋又曰: "人但知安老專權亂政之事, 而未知有大逆之罪也, 以其罪名, 無謀危國母之言故也。" 仁鏡又曰: "雖千載, 可正其罪, 況今豈久乎?" 慈殿敎曰: "予意反覆盡言, 卿等更議之。" 仁鏡又曰: "亂逆之罪, 雖自上亦不得容赦也。 他事則可論可否, 此則不必議也。" 慈殿敎曰: "若他餘亂逆, 則初豈有免者乎? 此則一國朝廷, 皆陷於尹任之術中, 故止此而已。 罪雖不足, 初已苟且, 今不可更論也。" 仁鏡又曰: "一國雖曰見紿尹任, 初以患失之心, 更有不自安之計。 臣等初未能詳知其兇謀, 故以斟酌啓之, 及其金明胤安世遇進告, 然後朝廷始皆驚愕。" 慈殿敎曰: "人心皆見紿之故也。 雖曰亂逆, 豈無間乎?" 仁鏡又曰: "尹任柳灌柳仁淑, 皆已伏辜, 而金安老以首惡, 尙未能明正其罪, 故人心至今憤鬱。" 順朋又曰: "朝廷大事, 臣等將公論啓之, 而天聽邈然。 公論豈止此而泯滅乎? 若不泯滅, 則豈以不聽而退去乎?" 仁鏡又曰: "今雖不聽, 臣等之言, 後日豈無言者乎? 若勉從他人之言, 則臣等有何光乎?" 慈殿敎曰: "若新發則已矣, 予意決不欲追論也。 若可從之事, 則大臣至此據法陳啓而不聽乎? 卿等更議之。 若後日更有釁端, 予復何言?" 順朋又曰: "可罪之人, 則當卽罪之, 俟後罪之, 恐亦不可。" 慈殿敎曰: "若可罪則不罪之乎? 已定其罪, 不可追論。 雖今日罪之, 明日罪之, 豈可以此定人心乎? 反覆計之, 治罪不已, 故人心尤爲不定也。 卿等更量之。 如許洽許坰, 初亦不可赦而赦之, 此則雖如啓亦可也。" 李芑又曰: "非但臣等也。 公論終必不絶, 一國臣民, 應共爭之。 天雖高, 地氣上昇, 故可以交泰。 若以臣子之言, 專不聽從, 則於事何如? 臣等以不罪之事, 反爲苟且。 願計輕重而快從。 臣等欲蒙上德也。" 慈殿敎曰: "反覆計之, 若可從之事, 則豈不快從, 而使卿等至此乎? 卿等須更議也。" 李芑又曰: "請罪亂逆, 據法之啓也。 豈偏憎安老尹任而然乎?" 慈殿敎曰: "豈以卿等, 有愛憎而然乎? 此賊與他逆賊不同, 故不從卿等之啓耳。" 仁鏡又曰: "尹任之賊, 何謂不如他賊乎?" 慈殿敎曰: "擧東宮欺朝廷, 而朝廷見陷, 故啓之。 不然何言?" 順朋又曰: "人心尙未釋然, 機關豈不重且大乎? 公論已定, 的當之事, 故啓之, 不必留難。" 慈殿敎曰: "卿等之啓, 是則是矣。 但此人等, 初非自叛之人也。 憑東宮, 巧陷人心, 故人皆見紿矣。 以此當初罔治脅從, 使之回心矣。 權橃李彦迪, 皆以宰相之人, 其罪如此, 故已命極邊安置, 雖不加論, 豈不知罪乎?" 仁鏡又曰: "臣等之主啓者, 三兇也。 當初定罪時, 中宗大王命招尹任, 逗遛不進。 以此思之, 安老尹任同謀故也。 其時不依正律, 已爲失刑。 首惡之人, 雖已死矣, 必當痛治。" 慈殿敎曰: "雖曰首惡, 亦見紿於也。 先朝豈偶然計而定罪乎? 已定之罪, 今不可追論。 卿等退而更思之。" 仁鏡又曰: "臣意已盡啓之。" 順朋又曰: "大逆之罪, 凌遲處死, 各有其律, 當以其罪罪之。 先朝不能明正其罪, 故問人則人皆曰: ‘安老以宰相, 擅權而被罪。’ 無一人知其兇逆之極也。 以此丁酉、乙巳人, 不能分辨也。 苟有逆節, 雖年年罪之, 豈不可乎?" 仁鏡又曰: "《武定寶鑑》修撰時, 當以丁酉爲首, 豈可不定其罪而修之乎?" 慈殿敎曰: "今雖不更定其罪, 以先朝已定之罪撰集, 亦何妨乎?" 李芑又曰: "面達而不能回天, 臣等之誠未至故也。 自上雖曰: ‘卿等之啓是也。’ 尙不回天, 則必以爲不是也。 苟曰是也, 雖芻蕘之言, 亦當擇採, 臣等之啓, 豈不聽從?" 慈殿敎曰: "予意盡言之, 卿等退而更量。" 李芑又曰: "自上若曰, 以某故爲不可, 則臣等當退。" 慈殿敎曰: "若快從之事, 則豈至此留難乎?" 仁鏡又曰: "願計厥終而處之。" 啓訖, 左右以次退, 日已夜矣。 【仍宣醞於經筵廳。 是時, 大臣等以封書密啓曰: "爲宗社書啓。" 此追論丁酉及乙巳未籍沒人。 慈殿垂簾同聽, 上終始不言。 而慈殿竟不從, 左右皆請從大臣之言, 閔齊仁獨曰: "豈必罪人而定人心哉? 進君子退小人, 則自然定矣。 此宗社無彊之休也。" 論啓之時, 李芑有欲蒙德分之語, 沒人之産, 而己蒙其德, 是果爲宗社之事乎? 聞者莫不痛之。】

【史臣曰: "豺狼當國, 賊害忠良。 李彦迪等, 旣無罪遠竄, 更加請罪, 必欲殺之後已, 奸兇之禍慘矣。 旣啓請面對, 自上不聽, 則當自退去, 而益肆蛇蝎之毒, 咫尺天威, 辭氣愈厲, 至於慈殿怒色, 見於俯答之言, 然後乃敢退去, 李芑等無君之心, 至是益著矣。"】

【史臣曰: "李芑初與尹元衡合謀, 戕殺士林, 俱冒功臣號, 而其事之成, 實藉元衡內圖之力。 其後於竄逐士類之際, 或不謀於元衡, 而獨以己意, 啓簾中而行之, 元衡惡其威權出己上, 欲裁損之。 及謀殺李彦迪等, 元衡預知之, 密白于大妃曰: ‘不可以殺戮, 鎭定人心。’ 大妃納其說, 故等雖反覆論執, 而終不允。 夫以元衡之慘毒, 仇視善良, 豈有一毫顧惜之心哉? 特出於一時之爭權, 不欲謀之得行, 而士林之禍少紓, 噫! 可謂天幸也已矣。"】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572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인물(人物) / 사상-유학(儒學) / 역사-사학(史學) / 가족(家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