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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5권, 명종 2년 1월 25일 무인 2번째기사 1547년 명 가정(嘉靖) 26년

부제학 주세붕 등이 올린 학문을 권하는 상소의 내용

부제학 주세붕(周世鵬)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은 삼가 아룁니다. 하늘이 큰 재앙을 내려 두 성왕(聖王)께서 잇달아 승하하시어 나라가 경황이 없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다가, 전하께서 등극하신 이래로 영명하고 의젓하신 모습을 보여 날로 존경의 대상이 되며 학문을 부지런히 하심이 강론(講論)할 때에 나타나자 모두가 기뻐 뛰면서 조금이라도 더 살아 태평한 세월을 다시 보기를 바라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무엇으로써 이러한 인심의 기대에 부응하시겠습니까?

옛적 은 나라 왕 태갑(太甲)이 새로 즉위했을 때에 그의 신하 이윤(伊尹)이 고하기를 ‘왕께서는 그 덕[厥德]029) 을 이으셨는데 모든 것이 처음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임금이 다스림의 기반을 세우려고 한다면 즉위한 초기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초기에 삼가하여 기반을 만들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혜가 있는 이라도 그 후반에 잘할 수가 없습니다. 일찍이 천하의 일을 보건대 처음은 있고 끝이 없는 예는 많은데 처음이 없이 끝이 있는 것은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다스림의 도에만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학문의 근본 역시 처음에 달려 있기 때문에 옛적에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반드시 어린 나이, 곧 생각이 아직 흐트러지지 않고 욕심이 싹트지 않은 때에 했습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가르치면 버릇과 지혜가 자라나면서 마음과 더불어 변화하는 까닭에 자신도 모르게 성현의 영역에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만약 미리 가르치지 않고 사려(思慮)와 호오(好惡)가 안에서 생기고 뭇 사람들의 변언(辯言)이 밖에서 녹인 뒤에 비로소 배우게 한다면,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여 날아가는 기러기를 쏘아 잡을 생각이 마음속에 없지 않아서 끝내 발명(發明)하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발(發)한 뒤에 금지하면 굳게 막혀 금지되지가 않고, 때가 지난 뒤에 배우면 고생만 할 뿐 성공하기 어렵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새로 보위에 오르셨고 나이 아직 어리시니 다스림의 처음과 배움의 시초가 다 지금에 있습니다. 전하께서 이때를 놓치지 않고 힘을 쓰신다면 요순(堯舜)의 학문과 당우(唐虞)의 다스림을 오늘날에 재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시면서 이때를 놓치고 힘쓰지 않는다면 뒷날의 치란(治亂)의 기미가 여기서 결정될 것이니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요순의 학문이 있은 뒤라야 당우의 다스림이 있게 마련이므로 그 다스림의 근본을 구하는 것은 올바른 배움의 길을 얻는 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옛사람이 쓴 배움의 차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엔 《소학(小學)》을 익히어 흐트러진 마음을 거두어 들이고 그 덕성을 길러서 《대학(大學)》의 기본을 삼고, 자란 뒤엔 《대학》에 나아가 사리(事理)를 살피고 실천에 옮겨서[措諸事業] 《소학(小學)》의 공(功)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움의 대소(大小)는 그 나이의 소장(少長)에 따라 익히는 내용이 서로 다르지만 그 체용(體用)은 서로 처음이 되고 끝이 되는 것이니, 이 둘 중에 하나만 빠뜨려도 배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선 이미 차례를 따라 글을 읽고 강구(講究)하여 그 뜻을 통하셨으므로 학문이 높은 스승이나 선비라 하여도 거기에 더 더할 것이 없으니, 지금은 마땅히 마음에 본받고 몸으로 실천하여 그 효과를 거둘뿐이요, 분분한 강설(講說)에 다시 마음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하의 학문이 이미 성숙하였지만 만에 하나라도 혹 미진한 데가 있을까 염려하는 것은 신의 지극한 정(情)이며, 나의 학문이 이미 이룩되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미진한 곳이 있지나 않을까 하고 우려하는 것은 성인(聖人)의 지극한 덕(德)입니다. 더욱이 《소학》이란 책은 그 안에 천언 만행(千言萬行)이 갖추어 실리어 있지만 그 귀결점은 존심(存心)과 함양(涵養)의 공부에 불과할 뿐이고 보면 ‘경(敬)’이란 한 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대학(大學)》이란 책은 규모가 크고 절목(節目)이 자세하며 근본과 말단이 서로 의지하고 처음과 끝이 서로 기대어 내 몸을 수양하고 남을 다스리는 도리가 전부 여기에 있으므로 익숙하게 강론받고 정밀하게 살피지 않고서는 그 요령을 알기 어렵고 그 정밀함을 다하기 어렵습니다.

‘명덕(明德)’이란 신민(新民)의 첫 일이요, 신민은 명덕의 마지막 일이니, 명덕이 아니면 신민의 기본이 될 것이 없으며 신민이 아니면 명덕의 공을 거둘 수 없습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신민을 일삼지 않는 사람은 없으면서도 신민하는 도(道)가 명덕에 근본됨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신민할 즈음에 다만 법률과 형상(刑賞)만으로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 어찌 신민하는 도를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신민하는 위치에 계시니 신민하는 일을 행하시되 법률이나 상벌 따위의 말단적인 것에 구애되지 않고 명덕으로써 근본을 삼으신다면 아마도 배운 것을 저버리는 일이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억만년토록 끝이 없을 조선의 터전이 이로 인하여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 명덕하는 방법은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 수신(修身)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 또 힘써서 해야 할 차례를 따진다면, 먼저 마음에 밝혀갈 곳을 안 다음에 힘써 행하여 지극하게 되기를 구해야 하므로 격물·치지의 방법은 처음 마음을 쓰는 데에 있는 것이며, 내 마음의 지(知)를 이루는 방법은 또 물(物)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이 배운다는 것은 마음[心]과 이치[理]일 뿐입니다. 마음이 비록 한 몸을 주장하지만 그 체(體)의 허영(虛靈)함은 족히 천하의 이치를 주관하며, 이치가 비록 만물에 산재하여 있지만 그 쓰임의 미묘함은 실로 사람의 마음을 벗어나지 아니합니다. 마음과 이치는 서로 관통하여 간격이 없으므로 물(物)이 이미 바로잡혀지면 지(知)는 저절로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대학》의 첫 가르침이며, 《논어(論語)》의 박아이문(博我以文)과 《맹자(孟子)》의 박학상설(博學詳說) 및 《중용(中庸)》의 학문사변(學問思辨)과 더불어 모두 도에 들어가는 문이 되는 것입니다. 도에 들어가고자 하는데 그 문을 알지 못한다면 마침내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견문 넓은 사람들이 공연히 밖을 좇아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는 데만 힘쓰고 참된 이치가 일관되어 있는 곳을 찾지 않기 때문에 앎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은 더욱 막히고, 배움을 더욱 부지런하게 할수록 정신은 더욱 떨어집니다. 어찌 도를 보는 데 무익(無益)할 뿐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만약 힘쓰는 방법을 찾는다면, 주자가 이른바 ‘일의 드러난 것을 살피고 생각의 은미한 곳을 살피며 문자(文字) 가운데서 찾아보고 강론할 때에 찾아본다.’고 한 말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배우는 자가 이 방법대로 힘쓴다면 거의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마땅히 사물에 응접(應接)할 때 그일의 결과를 상고하고 한가롭게 홀로 있을 적에 생각의 은미한 곳을 살피며, 전에 강(講)한 글을 더 익혀서 강론(講論)할 즈음에 그것을 구하소서. 신심(身心)과 성정(性情), 인륜(人倫)과 일용(日用)은 물론, 천지(天地)·귀신·조수(鳥獸)·초목(草木)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먼 것도 찾지 못하는 것이 없고 아무리 숨은 것도 찾지 못하는 것이 없어서 탈연 관통(脫然貫通)함에 이른다면, 천지 만물에 대해서 의리의 지극히 정미한 곳을 알며 우리의 마음 또한 그 전체(全體)와 대용(大用)을 궁구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 뒤라야 뜻이 성실[意誠]할 수 있고, 마음이 바르게[心正]될 수 있으며, 몸이 닦여[身修]질 수 있습니다. 가제(家齊)·국치(國治)·천하평(天下平)도 이와 같이 한다면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팔조목(八條目)의 가르침은 마치 계단을 차례차례 오르는 것과 같아서 차례를 어지럽힐 수 없으며, 그 하나하나의 공효(功効) 또한 빠뜨릴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본원(本源)을 따져보면 격치(格致)의 실마리에서 나왔으므로 정성스럽게 혼자 여기에 뜻을 두고 감히 지리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천자(天姿)가 수미(粹美)하시고 총명한 덕이 이미 도(道)에 가까우시며 복잡한 정사(政事)는 모두 자전(慈殿)께서 총괄하고 계시니, 이런 때 전하께서 오로지 학문에 온 마음을 쏟으신다면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의 효과를 볼 날을 확실히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들이 경연(經筵)에서 상을 모시면서 전하의 학문을 보건대 날마다 고명(高明)해지고 끊임없이 도(道)에 가까와 짐을 보고 전하의 학문에 만의 하나라도 보탬이 될 만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대학》의 강(講)을 마친 이 때 격치(格致)의 설에 대하여 이미 아뢰고 남은 말을 주워모아 살피기를 좋아하시는 전하의 정성에 대비하오니 바라건대 전하께서 유념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제 소(疏)의 뜻을 보니 학문을 권면하는 방법이 지극히 간절하다. 내 비록 불민하나 항상 유념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478면
  • 【분류】
    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註 029]
    그 덕[厥德] : 탕 임금의 덕.

○副提學周世鵬等上疏曰:

臣等, 伏以天降鞠凶, 二聖繼陟,擧國遑遑, 罔知攸措, 及 殿下臨御以來, 見其有英明剛毅之姿, 日章乎瞻望之中, 文理密勿之學, 月就乎講論之際, 則莫不歡欣踴躍, 願更須臾無死, 庶幾復見(大)〔太〕 平之日月, 不知殿下, 將何以慰答人心之顒望乎? 昔太甲新卽位, 其臣伊尹告之曰: "今王嗣厥德, 罔不在初。" 蓋人君欲建致治之基, 在於卽位之初。 苟不能謹之於初, 以爲之基本, 則雖有智者, 無以善其後矣。 嘗觀天下之事, 有其初而無其終者蓋多矣, 未有無其初而有其終者也。 不特爲治之道則然也。 至於爲學之本, 亦罔不在初, 故古者敎人, 必於幼穉之時, 思慮未有所分, 嗜欲未有所萌。 及此時而學焉, 則習與智長, 化與心成, 而不自覺其馴致於聖賢之域矣。 若或敎之不豫, 及乎意慮好惡生乎內, 衆口辯言鑠於外, 然後始欲從事於學, 則鴻鵠將至, 思援弓繳而射之者, 未必不存於一心, 而終不能有所發明矣。 故記曰: "發而後禁, 則扞格而不勝, 時過而後學, 則勤苦而難成也。" 殿下新登寶位, 年在幼沖, 爲治之初, 爲學之始, 皆在此時。 殿下及此時而用其力焉, 則之學, 之治, 庶可復見於今日矣。 若或悠悠泛泛, 以度時月, 不能及時而致力焉, 則他日治亂之幾, 於是乎判矣, 可不懼乎? 然有之學, 然後有之治, 故求其爲治之本, 則又在於爲學之得其道也。 嘗觀古人爲學之序。方其幼也, 習之於《小學》, 牧其放心, 養其德性, 而爲《大學》之基本, 及其長也, 進之於《大學》, 察其事理, 措諸事業, 而牧《小學》之成功。 故學之大小, 雖有少長所習之異宜, 而其體用之相爲終始者, 不可闕一而爲學也。 殿下旣已循序而讀其書, 講究而通其義, 雖以老師宿儒, 無以加焉, 則在今但當體之於心, 牧其躬踐之效而已, 不須更進其講說之紛紜也。 然聖學已至, 而慮或萬一之未盡明者, 臣子之至情也, 吾學已至, 而慮或萬一之未盡知者? 聖人之至德也。 況《小學》之書, 雖有千言萬行之備載, 而要其歸則不過存心涵養之功而已, 則敬之一字, 足以盡之矣。 至於《大學》之書, 則規模之大, 節目之詳, 本末相資, 終始相須, 而修己治人之道, 全在於此, 非熟講而精察, 難以領其要歸, 而盡其精密矣。 明德者, 新民之始事, 新民者, 明德之終事, 非明德, 無以爲新民之基本, 非新民, 無以牧明德之成功。 世之人君, 莫不以新民爲事, 而不知新民之道,其本在於明德, 故其於新民之際, 徒以法律刑賞, 爲足以可治, 是豈知新民之道者哉? 殿下, 居新民之位, 行新民之事, 不屑屑於法律刑賞之未, 而務以明德爲之本, 則庶幾無負於所學, 而我朝鮮億萬年無(彊)〔疆〕 之基, 將自此而益鞏矣。 若其明德之方, 則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乃其道也。 而於是數者, 又求其用力先後之序, 則必先明諸心知所往, 然後力行而求至焉, 故格致之方在, 初用功之地, 而欲致吾心之知, 又在於卽物而窮其理。 蓋人之所以爲學, 心與理而已。 心雖主乎一身, 而其體之虛靈, 足以管乎天下之理, 理雖散在萬物, 而其用之微妙, 實不外乎人之一心。 心之與理, 相爲貫通而無間, 故物旣格則知自至矣。 此乃所以居大學之始敎, 而與論語所謂博我以文, 《孟子》所謂博學詳說, 《中庸》所謂學問思辨者, 同爲入道之門也。 欲入乎道而不得其門, 則終安能有所入乎? 世之博物洽聞者, 徒以循外而誇多爲務, 不求實理一貫之所在, 故識愈多而心愈窒, 學愈勤而精愈弊, 豈但無益於見道乎? 是故, 求其用力之方, 則朱子所謂: "或考之事爲之著, 或察之念慮之微, 或求之文字之中, 或索之講論之際者。" 無以加矣。 學者循是而用力焉, 則庶乎其不差矣。 伏願殿下, 當應事接物之際, 而考之於事爲之著, 當閑君獨處之時, 而察之於念慮之微, 溫繹前講之書, 而求之於講論之際。 使於身心性情之德, 人倫日用之常, 以至天地鬼神鳥獸草木之變, 無遠不尋, 無隱不求, 及其脫然貫通焉, 則其於天地之物, 皆有以知其義理精微之所極, 而吾心之德, 亦極其全體大用, 無不盡矣, 如此然後, 意可得以誠矣。 心可得以正矣, 身可得以修矣。 至於家之齊國之治天下之平, 則擧此而措之無難焉。 八條之敎, 如階級之陞序, 固不可亂, 而功亦不可闕也。 但推其本源之地, 則皆出於格致之緖餘, 故眷眷獨致意於斯, 而敢進其支離之說焉。 殿下天姿醉美, 聰明之德, 已近於道, 而萬幾之繁, 則方總于慈殿, 於此之時, 苟能專心致志於學問之功, 則明德新民之效, 庶可指日而見矣。 臣等職侍經帷, 伏見 聖學, 日就高明, 進道無已, 不可無一言以補聖學之萬一, 故今當《大學》講畢之後, 敢以格致之說, 拾其已陳之餘論, 以備好察之誠, 伏願殿下, 留神焉。

答曰: "今觀疏意, 勸學之方, 至切。 予雖不敏, 常加留心焉。"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478면
  • 【분류】
    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