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엄을 경기 근처에 부처하게 하다
삼공에게 전교하기를,
"구엄의 일은 대간이 여러날 논계(論啓)하였다. 그러나 나는 폐주(廢主)122) 의 절사(絶祀) 때문에 망설였는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였다. 삼공이 아뢰기를,
"구엄의 죄는 당시에 현저하지 않았는데도 공론이 이와 같으니, 원지(遠地)로 귀양 보내지는 않을지라도 부처(付處)123) 한다고 이름하여 하루 이틀 걸리는 곳에 보내면 물정(物情)은 점점 안정되고 폐주의 제사도 끊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원하는 대로 경기 근처로 내보내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구엄·신수경(申秀涇)·윤원로 세 사람은 그 죄가 일률(一律)에 해당되니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할 자들이다. 그러나 처음 꾀한 것은 이 세 사람만이 밖에서 주장한 것은 아니니, 오늘 임금을 업신여긴 죄를 바로잡고 전형(典刑)을 더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므로 윤원형(尹元衡)을 죄줄 수 없다면 이 몇 사람들은 죄를 묻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총애하고 그들의 노고에 보답해야 한다.
또 사신은 논한다. 신자(臣子)가 되어 그 임금이 불행하게 되도록 하고 심지어 성수(聖壽)를 미리 점쳤으니, 천지간에 용서받지 못할 부도(不道)의 죄이다. 그런데 여주(女主)가 조정에 있고 주상(主上)이 유충(幼沖)하니 권간(權奸)이 국병(國柄)을 제 마음대로 주물러 인종(仁宗)의 적신(賊臣)이 모두 무죄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죄주기를 그 죄대로 아니하여 마침내 천만세의 기롱이 유충한 임금에게 돌아가게 하였으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82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419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역사-사학(史學)
○庚辰/傳于三公曰: "具渰事, 臺諫累日論啓, 而予以廢主絶祀留難, 將何以處之?" 三公啓曰: "具渰之罪, 時未顯著, 而公論之發若此, 雖未遠竄, 名曰付處, 黜送于一二日之程, 則物情稍定, 而廢主之祀, 亦不絶矣。" 答曰: "從自願出送京畿近處。"
【史臣曰: "具渰、申秀涇、尹元老三人, 其罪一律, 皆不容誅者也。 然其始謀非此三人, 獨主張於外, 則今日正其無君之罪, 而加以典刑, 勢固難也。 故若不得罪元衡, 則數人者, 非獨在不問之類, 抑且尊寵而酬其勞矣。"】
【史臣曰: "爲臣子而欲其君上之不幸, 至於推卜壽算, 無將不道之罪, 所不容於覆載之間。 而女主當朝, 主上幼沖, 權奸擅弄, 仁廟之賊臣, 皆立於無罪之地。 罪之不以其罪, 遂使千萬歲之譏, 歸之於幼沖之主, 豈不痛心哉?"】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82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419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