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를 문과는 경회루 아래에서, 무과는 모화관에서 치르게 하다
예조가 아뢰기를,
"기축년 【예종(睿宗)이 즉위한 이듬해이다.】 별시(別試)의 방방(放榜) 때는 허위(虛位)를 근정전(勤政殿)에 설치하였었고, 전시(殿試) 때는 경회루 아래에 친림하셨었습니다. 이로써 본다면 상중 삼년 안에는 정전(正殿)에 납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근자에 대신들이 신묘년의 예대로 근정전으로 납시도록 의논드렸으나 신묘년에는 대왕의 상이 아니었고 또 소상까지 지났었으니 그 예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 이번 전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묘년은 곧 정현 왕후(貞顯王后)의 상이 있은 이듬해이다.】
하니, 전교하기를,
"문과 전시는 기축년의 예에 의해 경회루 아래서 하고, 무과에 있어서는 대신들이 아뢴 대로 모화관(慕華館)에서 치를 것이다."
하였다. 정원이 승전색(承傳色)에게 사사로이 말하기를,
"대신들이 의계(議啓)한 일을 우리들이 고쳐 아뢸 수는 없으나, 중종조 기해년에는 재해를 당해 정전을 피하셨기 때문에 사정전(思政殿) 처마 아래에 납시어 출제(出題)하셨고 유생(儒生)들은 근정전 뜰에서 제술(製述)하게 하였으며, 무과는 경회루 아래서 하였었다. 지금 더구나 인종의 소상도 지나지 않았는데 모화관에 행행(行幸)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 같다. 기해년의 예대로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사신은 논한다. 신하로서 임금을 섬김에 있어 품은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개진하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좌우에 있는 처지로 이 같은 대례(大禮)를 당하여 옳고 그른 것을 분명히 밝혀 고해야 옳거늘 대신들의 마음을 살까 두려워하여 할 말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시사(時事)를 알 만하다.
하였다. 예조의 계목(啓目) 【*.】 을 입계(入啓)하니 윤허하였다.
【*예조의 계목은 다음과 같다."기축년 등록(謄錄)에 의하면, 별시 문무과(別試文武科)와 생원 진사(生員進士)의 방방(放榜) 때 근정전(勤政殿)에 허좌(虛座)를 설치하고 백관(百官)의 시위(侍衛)와 하례(賀禮)는 제외하고 다만 시신(侍臣)과 삼관(三館)만이 시위하였으며, 복색은 시신과 삼관 그리고 문무과 응방인(應榜人)들은 백의(白衣)에 오사모(烏紗帽)·흑각대(黑角帶)를 하고, 생원·진사는 백의에 흑두건(黑頭巾)·흑대(黑帶)를 착용하였고, 문묘(文廟) 배알 때는 길복(吉服)을 착용하였다고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위의 예에 의하여 행하고, 신은(新恩)의 집에서 경연(慶宴)하는 것은 전례대로 금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410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 역사-사학(史學)
○禮曹啓曰: "己丑年 【睿宗卽位明年。】 別試放榜時, 設虛位於勤政殿, 殿試時親御慶會樓下。 以此觀之, 喪三年內, 不御正殿。 近者大臣議請依辛卯年例, 御勤政殿, 辛卯年非大王喪, 而又過小祥, 其例不可循也。 今殿試何以爲之?" 【辛卯年乃貞顯王后喪明年。】 傳曰: "文科殿試, 依己丑年例, 於慶會樓下; 武科, 當依大臣所啓, 於慕華館爲之。" 政院私語承傳色曰: "大臣議啓吾等不可改啓, 中宗朝己亥年遇災避正殿, 故御思政殿簷下出題, 令儒生等, 於勤政殿庭製述, 武科於慶會樓下爲之。 況今未過仁宗小祥, 幸慕華館, 似未穩。 依己亥年例爲之, 則似當。"
【史臣曰: "人臣事君, 有懷必達。 而況在左右, 當此大禮, 明告是非可也, 而畏其見忤於大臣, 不敢盡言, 時事可知。"】
以禮曹啓目 【己丑年謄錄內, 別試文武科生員、進士放榜時, 勤政殿設虛座, 除百官侍衛及賀禮, 只侍臣三館侍衛。 服色則侍臣三館及文武科應榜人, 白衣、烏紗帽、黑角帶, 生員、進士, 白衣、黑頭巾、黑帶; 文廟拜謁時, 則用吉服云。 今亦依右例爲之, 新恩家慶宴, 依前例禁止, 何如?】 入啓, 依允。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410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