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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3권, 명종 1년 4월 12일 무술 2번째기사 1546년 명 가정(嘉靖) 25년

윤인경 등이 이건양의 복초와 상중의 친시 등에 대해 아뢰다

삼공(三公)·육경(六卿)·삼사(三司)의 장관이 부름을 받고 빈청에 이르니 자전(慈殿)이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전교하기를,

"내가 부덕하고 박복한 사람으로 대환(大患)을 거듭 겪고 나이 어린 주상과 국사를 전임(專任)하고부터 항상 수많은 걱정을 품고 있으니 비록 잠시인들 어찌 감히 안심할 것인가. 어제 김로(金魯)가 아뢴 것을 보니, 이건양을 큰 죄로 다스리지 않았다하여 나와 주상이 인종의 승하(昇遐)를 다행하게 여기는 처사라고 하였다. 이건양은 금수와 다름없는 자이거늘 언어 사이의 일로 갑자기 큰 죄를 과한다면 신정(新政)에 있어 미안한 일이기 때문에 대신에게 의논하여 그 죄를 참작하여 결정했던 것이다. 조정이 차마 못할 일이라고 말하고 또 만세(萬世)를 두고 한없는 부끄러움이 있다고 말하니, 놀라움을 견딜 수가 없고 몸둘 곳이 없다. 부끄러워 땀이 흘러 다시 더할 말이 없다."

하였다. 윤인경(尹仁鏡) 등이 아뢰기를,

"김로가 그렇게 아뢴 것은, 이건양의 죄가 엄청난데도 아직도 그 죄를 바로잡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정이 어찌 위의 뜻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이건양은 그 죄가 크고 악이 극에 달하여 율에 의하여 죄를 정하지 아니할 수 없고 만약 율에 의한다면 반드시 추복(推服)한 뒤라야 그 죄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추복하여 율에 의해 죄를 정하소서."

하고, 대사헌 김광준과 대사간 조사수는 아뢰기를,

"김로가 아뢴 것은, 윤원로는 지친이라 위에서 단죄하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이건양으로 말하면 지친도 아니고 또 관작이 높은 것도 아닌데 그 죄마저 바로잡지 않기 때문에 인심이 울분(鬱憤)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죄가 같으니 김로가 비록 이건양만을 지적하였으나 어찌 윤원로를 제외한 것이겠습니까? 신하로서 두 마음만 가져도 그 죄를 바로잡아야 마땅한 것인데 하물며 이 두 사람의 죄악은 말로도 발설되었고 행동으로도 나타난 것이겠습니까? 만약 이들을 함께 중률(重律)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단지 오늘의 인심이 쾌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의심하는 자가 없지 아니할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의 죄악은 천지간에 용납될 수 없는 것인데도 끝내 찬출(竄黜)에 그치고 말았으니, 그것으로 어떻게 인심을 가라 앉히며 후인의 의심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을 함께 율에 의하여 죄를 정하소서."

하니, 인경 등에게 답하기를,

"이건양을 비록 대죄(大罪)로 단정하더라도 복초(服招)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

하고, 김광준 등에게는 답하기를,

"윤원로에 관해서는 조정 대신들도 차마 못할 일이라는 뜻으로 말하였으니 다시 거론할 것 없다."

하였다. 윤인경 등이 아뢰기를,

"이건양은 일죄(一罪)입니다. 반드시 복초를 받아 죄를 정해야만 죄상도 분명해지고 물정(物情)도 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복초를 받고 죄를 정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법으로는 복초를 받는 것이 당연하나 이건양은 그 정적(情迹)이 이미 드러났으니 복초받을 필요가 없다."

하였다. 윤인경 등이 아뢰기를,

"정적이 비록 드러났더라도 만약 복초를 받지 않으면 후일의 폐단이 무궁할 것입니다. 복초를 받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또 윤인경 등에게 전교하기를,

"이번 별시(別試)의 무과 전시(武科殿試)를 상중(喪中)에 친시(親試)한다는 것은 매우 미안스럽다. 전번에 경회루(慶會樓) 아래서 시험한 때도 있기는 하나 이는 한때 권장(勸奬)하는 뜻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별시는 그와 다르니 부득이 친시를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또 근래 들어 혼전(魂殿)에 한번도 상식(上食)을 못 올려 마음에 매우 미안하다. 오는 17일 아침 경사전(景思殿)에 상식을 올리고 이어 왕대비전에 문안하고 나서 영모전(永慕殿)에 주다례(晝茶禮)를 올릴까 하는데 이러한 생각이 어떻겠는가?"

하니, 윤인경 등이 아뢰기를,

"전시에 관하여 조종조의 전례를 상고해보니 국상 중에도 다 친시하였으므로 친시하심이 무방하겠고 상식에 있어서는 상의 분부가 지당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409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三公、六卿及三司長官承召, 詣賓廳, 慈殿以備忘記傳曰: "予以否德薄福之人, 重遭大患, 與幼沖之主, 專任國事, 當懷萬端憂念, 雖暫時, 豈敢安心乎? 昨觀金魯所啓, 因建陽不定大罪, 謂予與主上, 多幸於仁宗昇遐云。 建陽無異於禽獸者, 以言語間事遽定大罪, 則於新政未安, 故議大臣酌定其罪矣。 朝廷以不忍之言言之, 又言有萬世無窮之恥, 不勝驚愕, 處躬無地。 赧然慙汗之至, 無復可言。" 仁鏡等啓曰: "金魯, 以建陽之罪極矣, 而尙未明正其罪, 故如是啓之。 朝廷則豈不知上意乎? 建陽罪大惡極, 不可不依律定罪, 若依律則必當推服, 然後可正其罪。 請推服依律定罪。" 大司憲金光準、大司諫趙士秀啓曰: "金魯之啓, 以元老至親, 故自上難斷, 而建陽旣非至親, 又無尊爵, 而亦不正其罪, 故人心憤鬱云。 然二人同罪, 金魯雖指建陽, 亦豈舍元老哉? 人臣只有二心, 亦當正其罪, 況此二人之惡, 發於言而著於事? 若不同置於重律, 則非但當時人心未快, 後世亦不能無疑矣。 況其罪則不容於天地, 而竟止於竄, 此何以服人心而無後疑也? 請二人, 竝依律定罪。" 答仁鏡等曰: "建陽雖斷大罪, 不必取服。" 答光準等曰: "元老事, 朝廷大臣, 亦以不忍之意言之, 不須更論。" 仁鏡等啓曰: "建陽, 一罪也。 必取服而定罪之後, 罪狀分明, 而物情快矣。 請取服定罪。" 答曰: "大罪之人, 法當取服, 但建陽情迹已露, 不必取服。" 仁鏡等啓曰: "情迹雖著, 若不取服, 後弊無窮。 請取服。" 答曰: "如啓。" 又傳于仁鏡等曰: "今別試武科殿試, 喪中親試, 至爲未安。 前者有慶會樓下試之之時, 然此一時勸奬之意焉。 別試不同, 不得已親行乎? 且近來一未上食于魂殿, 心甚未安。 今十七日朝上食于景思殿, 仍問安于王大妣殿, 行晝茶禮于永慕殿, 此意何如?" 仁鏡等啓曰: "殿試事, 考祖宗朝前例, 則國喪皆爲親試, 親試無妨, 上食事, 上敎至當。"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409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