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한의 체직, 정토사, 공상의 폐단 등에 대해 하교하다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신광한(申光漢)이 아뢰기를,
"참의(參議) 조사수(趙士秀)의 비복(婢僕) 등이 송초(宋礎)의 비자(婢子)를 살상한 사건을 형조에서 본부로 이관시켰는데, 조사수는 바로 신의 이성(異姓) 삼촌질(三寸姪)입니다. 형조에서 이미 낭청(郞廳)도 상피해야 한다고 이관시켰는데, 더구나 당상(堂上)이겠습니까? 신이 피하고 참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직에 있기가 미안하고 또 질병이 있어 임무를 감당할 수 없으니 체직시켜 주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송사(訟事)로 인하여 당상을 체직시킬 수 있겠는가? 더욱이 금부 당상(禁府堂上)은 일일이 피혐하지 않아도 되는 직이 아닌가."
사신은 논한다. 조사수는 벼슬이 높고 세력이 막강하여 이 옥사에서 그는 반드시 모면하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추관(推官)들도 모두 사수의 세력을 꺼리고 또 사전(赦典)이 있으면 반드시 방면될 줄을 알고서는 시일을 끌며 국문하지 않았으므로 끝내는 매 한대도 가하지 않고 방면하였으니, 과연 사람들의 예측한 바와 같았다. 그런데 사수는 당초 사명(使命)을 받들고 밖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돌아오면 반드시 계칙(戒勅)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정작 그가 돌아와서는 도리어 피살자의 가속(家屬)을 포박하여 고소한 죄를 장형(杖刑)으로 다스리고 또 갇혔던 비복을 시켜 침포(侵暴)를 자행케 함으로써 그 분노를 갚게 하였다. 사람을 죽이고 사형을 모면하는 것만도 이미 다행하다 이를 것인데, 어찌 차마 살해당한 집으로 하여금 감히 말도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어찌 사람들이 사수에게 기대한 바이었겠는가. 애석하도다.
하였다. 간원이 아뢰기를,
"경사전(景思殿)·영모전(永慕殿)의 친제(親祭)와 왕대비전의 문안은 바로 성효(誠孝)에 관한 것이니 마땅히 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유충(幼沖)한 주상께서 일기도 매우 차가운데 추위를 무릅쓰고 노동(勞動)하는 것은 매우 미안한 일이고, 또 중국 사신이 서울에 들어올 날이 임박하였으니 장차 대례(大禮)를 행하시려면 옥체를 더욱 조심하셔야 합니다. 사신이 되돌아가고 일기도 따스한 때를 기다려서 제례를 행하여도 무방하니, 13일의 거둥은 정지하소서.
의숙 공주(懿淑公主)의 제사는 본래 정해진 처소가 있는데도 사찰에서 행하는 것은 참으로 번독한 일입니다. 유생이 절에 오르는 일을 금하는 것이 비록 법전에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뜻은 조용한 곳에 가서 독서하려는 것에 불과한데 정거토록 하라는 분부까지 있었으니, 이 말씀이 한번 발표되자 사방의 선비들이 이 말을 듣고 해괴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신정(新政)의 벽두에는 호령 하나하나를 더욱 신중하게 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정거시키라는 명을 도로 거두고 아울러 정토사에서의 제사도 행하지 마소서.
공상(供上)하는 물품에 대하여 아래에 있는 자로서 본디 근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근년 이래로 흉년이 더욱 심하여서 온갖 물자가 고갈되고 있는데 생선의 경우는 반드시 준척어(準尺魚)로만 바치도록 독촉하여, 백성들이 매우 괴로와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분촌(分寸)이 미달한 것은 두 마리로 대납하게 하고 있어 조금은 편안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배징(倍徵)을 면치 못하니, 민생이 지탱하기 어려운 폐단은 전에 비해 다를 바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중국 사신의 지대(支待)로 용도가 매우 번거로운 때인지라 일일이 준척어를 얻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비록 척수에 차지 않는다 하더하도 쓰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두치가 미달된 것은 퇴짜를 놓지 말고 또한 배징하는 일도 하지 말게 하소서. 또 생치(生雉)는 그 가죽에 조금 상처가 있다 하더라도 사용하는 데는 해롭지 않은데 으레 퇴짜를 놓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민폐가 적지 않습니다. 퇴짜를 놓지 말게 함으로써 민생에게 일분의 혜택이라도 돌아가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정토사는 다른 절에 비할 것이 아닌데 무뢰배들이 분집하여 작폐하고 있다. 때문에 만일 범법 작란하는 자가 있을 경우 정거법(停擧法)을 가할 것이니 윤허하지 않는다. 친제를 근래 행하지 못하여 인자(人子)의 예도에 있어 매우 미안하므로 이를 행하려 하였는데, 아뢴 뜻이 타당한 것 같으므로 아뢴 대로 출행을 정지하겠다. 생치·생선에 관한 일은 영접 도감(迎接都監)에 이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379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인물(人物) / 재정(財政)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역사-사학(史學) / 가족-친족(親族) / 신분-천인(賤人)
○乙丑/知義禁府事申光漢啓曰: "參議趙士秀婢僕等, 傷殺宋礎婢子事, 自刑曹移于本府, 士秀卽臣異姓三寸姪也。 刑曹旣以郞廳, 相避移之, 況堂上乎? 臣雖避而不參, 在職未安, 且有疾病, 不能堪任, 請遞。" 傳曰: "豈因訟事遞堂上乎? 況禁府堂上非一二, 避之可也。"
【史臣曰: "士秀官高而勢腆, 是獄也, 人知其必免。 推官咸憚士秀之勢力, 且知有赦必宥, 淹延不鞫, 竟不加寸箠而放, 果如人之所料。 然士秀當初奉使在外。 人謂其還, 則必有戒飭之事, 及其還也, 反捕死者之家屬, 杖其告訴之罪, 又令被囚婢僕, 恣其侵暴, 以酬其憤。 殺人而免死, 已云幸矣, 忍令見殺之家, 不敢言耶? 此豈人之望於士秀者? 惜哉!"】
諫院啓曰: "景思、永慕兩殿親祭及王大妃殿問安, 固是誠孝之發, 在所當行。 但上體幼沖, 日氣甚寒, 冒寒勞動, 至爲未安。 且天使入京日迫, 將行大禮, 上體尤當愼攝, 待天使回還, 日氣亦暖, 行祭無妨, 請停十三日行幸。 懿淑公主祭祀, 自有其所, 行之寺刹, 固爲褻瀆。 儒生上寺之禁, 雖在法典, 其志不過就靜處讀書, 而至有停擧之敎, 此言一發, 恐四方之士聞之, 莫不駭怪。 新政之初, 一號一令, 尤不可不愼, 請還收停擧之命, 幷勿行祭於淨土寺。 供上之物, 在下者固不可不謹。 但近年以來, 凶荒尤甚, 百物凋耗, 至於生鮮, 必以準尺督納, 民甚苦之。 故分寸不準者, 代以二尾, 似可小便。 然又不免倍徵, 民生難支之弊, 比前無異。 況今當天使支待, 用度甚煩, 一一準尺, 得之尤難。 雖不滿尺數, 用之無妨, 二寸不準者, 請勿退, 亦勿倍徵。 且生雉, 皮雖小傷, 不妨於用, 而例退不納, 民弊不貲。 勿令點退, 以寬民生一分之惠。" 答曰: "淨土非他寺社之比, 而無賴之徒, 坌集作弊。 故若有犯科作亂者, 加以停擧之法耳, 不允。 親祭, 近未得行, 在人子之禮, 甚爲未安, 玆欲行之, 啓意似當, 依啓停行矣。 生雉、生鮮事, 言于迎接都監。"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379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인물(人物) / 재정(財政)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역사-사학(史學) / 가족-친족(親族) / 신분-천인(賤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