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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2권, 명종 즉위년 10월 10일 기해 1번째기사 1545년 명 가정(嘉靖) 24년

천거과를 혁파하는 일 등에 관해서 논의하다

금부가 아뢰기를,

"어제 조율(照律)한 사람을 【정유침이 전에 영비(永非)를 대신 들여보낸 일로 형신을 받았는데 이때에 조율하여 장 일백 도삼년으로 결단하였다.】 오늘 결장(決杖)하는 것이 마땅하나, 대행 대왕의 발인이 임박하였으므로 형을 집행하기가 미안합니다. 졸곡 후에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원상(院相) 이기가 아뢰기를,

"금부는 이와 같이 아뢰었지만 대역(大逆)에 관계되므로 오래 지체하여서는 아니됩니다. 다른 일을 생각하지 말고 결장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과연 다른 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결장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기가 또 아뢰기를,

"근일 정죄(定罪)하는 일에 있어 주상께서 성색(聲色)을 움직이지 않고 각기 가당하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인심이 다 심복하고 도성 안이 안정되었습니다. 단지 근자에 대간이 계속 논계하여 사람들이 다 의구심을 품고 있으니, 호오(好惡)와 시비를 일시에 결정하여야 하지만 인심을 안정하게 하는 것도 개과 천선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전한 이황(李滉)·장령 이천계(李天啓)·양근 군수(楊根郡守) 권물(權勿)·공조 정랑 이담(李湛)은 모두 김저(金䃴)와 다를 것이 없는데, 대간이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하여 아직 논계하지 않았고, 전 사인(舍人) 정황(丁熿)도 체직만 하였습니다. 함께 파직하소서.

그리고 근래의 폐습은 조정의 사류(士類)가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허명(虛名)만을 숭상하여 대중을 따르는 것을 옳게 여김으로써 이같은 일을 만든 것입니다. 대저 과거(科擧)란 지극히 공변된 일인데, 지난날 천거과(薦擧科)는 현량(賢良)으로 이름지어, 미처 한 편의 글을 이루지 못한 자라면 모르거니와, 한 편의 글을 이루어서 올린 자는 다 뽑았습니다. 이것이 어찌 과거의 본 뜻이겠습니까. 중종께서 그 부정함을 알았기 때문에 폐지한 것입니다. 인종께서 병세가 위중할 즈음에 현량과를 복과하라고 명하였으나, 선왕이 혁파한 것을 인종의 명이라 하더라도 쓸 수 없습니다. 더구나 흉도의 공초를 보면 인종의 병이 위중해졌을 적에 윤임 세부자가 입시하였는데 봉성군을 세우려고 하다가 부득이하여 계사(繼嗣)를 명하시라고 청하였다고 하니, 신의 생각에는 인종의 마지막 명교(命敎)가 다 윤임의 술책이지 인종의 본뜻은 아닌 듯합니다. 천거과를 혁파하소서. 그 중에 만약 쓸 만한 사람이 있다면 비록 과(科)로 이름하지 않더라도 발탁하여 쓸 수 있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근일의 일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다만 일이 망극한 중에서 나왔기 때문에 인심을 진정시키고자 할 뿐이다. 대체 이같이 큰 일을 윤임이 어찌 혼자서 하였겠는가. 당시 문사(文士)로서 윤임의 술책에 빠진 자도 있을 것이니, 부득이 좋고 나쁨과 옳고 그름을 분명히 밝힌 뒤라야 하겠다. 이황·이천계·권물·이담·정황은 아뢴 대로 하라. 천거과의 일은 그 당시 조광조(趙光祖)가 노성(老成)한 대신을 배척하며 자기에게 붙좇는 자는 발탁하고 자기와 달리하는 자는 물리친 것이다. 과거란 지극히 공변된 것인데 인심을 수합하기 위해 그렇게 하였으므로 중종께서 그 부정함을 알고 혁파하였다. 그 뒤에 더러 그 천거과의 회복을 청하거나 조광조의 복작을 청하는 자가 있었지만 인종께서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인종 때에도 이와 같이 아뢰는 자가 있었으나 윤허하지 않았었는데 병세가 위중해졌을 때 복과하라는 명이 나왔으니, 어떻게 그것이 정당한 것인지 알 수 있겠는가. 가령 인종의 본뜻이라 해도 일이 진실로 불가한 것이라면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이다. 나의 뜻도 이러하고 경도 이렇게 아뢰었으니, 아뢴 대로 윤허한다."

하고, 이어서 정원에 전교하기를,

"이기가 아뢴 천거과의 일과 나의 뜻을 가지고 대신에게 수의하여 아뢰라."

하니, 홍언필이 의논드리기를,

"상의 분부가 지당하고 이기가 아뢴 것도 마땅합니다."

하였으며, 윤인경이 의논드리기를,

"유인숙 등이 인종 때 늘상 천거과를 속히 아뢰어 복과시켜야 된다고 하였으나, 신은 마음속으로 중종께서 혁파한 것이고 비록 아뢴다 하더라도 주상께서 즉위하신 지 1년도 되지 않았으니 반드시 다시 거론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고, 시종(侍從)이 더러 조광조의 복작을 청하였으나 신은 설령 아뢴다 하더라도 아직은 중지하는 것이 옳고 이처럼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인종께서 승하한 뒤 복과하라는 명이 있자 더러 미편해 하는 자도 있고 더러 의혹해 하는 자도 있다가, 그뒤 흉인의 공초에서 나오자 인심이 더욱 의혹스러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일찍이 이기와 더불어 의논하다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의혹이 없지 않았습니다. 과연 아뢴 것과 같다면 혁파하는 것이 윤당하겠습니다."

하였다. 정원에 전교하기를,

"천거과는 혁파하고 그 중 쓸 만한 사람은 수서(收敍)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에 앞서 대간이 합사(合司)하여 근래에 다른 의논 내기를 좋아하는 자를 거론하며 과조를 나누어 죄를 의논할 즈음에 대사헌 최보한(崔輔漢)권물·이담을 지적하여 김저(金䃴) 등과 같이 아뢰려 하니, 좌우에서 말하기를,

"이 사람들의 행위에는 별로 지적할 만한 것이 없다. 만약 잘못 지적하였다가는 끝내 사리를 분명히 밝히기가 어렵고 무슨 재앙을 만들어 내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니, 최보한이 말하기를,

"지난 겨울에 대간으로 있을 때 크게 잘못한 일이 있소."

하였다. 이에 장령 이천계(李天啓)가 말하기를,

"대간으로 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면 나와 집의 경혼(慶渾)도 그 때 대간이었는데 어찌 알지 못하겠소. 무슨 일을 하였다는 것인지 공(公)은 분명히 말하시오."

하니, 최보한이 처음에는 말하기 어려워하는 듯하다가 마침내 말하기를,

"지금 우상 【이기.】 이 전에 정승에 제배될 적에 이 두 사람이 유인숙이 퍼뜨린 언문 편지 사건을 듣고 발의, 논박하였으니 이들을 죄주지 않을 수 없소."

하였다. 이천계가 곧 큰 소리로 말하기를,

"과연 그 일을 지적한 것이라면 내가 분명히 아는데, 진실로 이 두 사람이 발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일로 이 사람들에게 죄 줄 수는 없습니다."

하고, 또 경혼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공은 기억하지 못하오? 이것이 어찌 이 사람들이 한 짓이겠소. 만약 다른 잘못이 없이 이 일만으로 두 사람의 죄를 삼는다면 내가 보장하겠소. 진실로 이 사람들이 한 말이 아닌데 어찌 죄를 주려고 하는 것이오."

하니, 최보한이 당장 발끈하며 당황하여 말하기를,

"만약 이 말을 이 두 사람이 발의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발의한 사람이 있을 것이오, 지금 반드시 분명히 말해 주어야만 이 두 사람을 놓아둘 수 있지,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만둘 수 있겠소."

하였다. 이천계가 말하기를,

"아,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내가 설혹 발의한 사람을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 말이 분명히 두 사람만이 발의한 것이 아닌데도 장차 무고를 당할 것 같아서 이를 말했을 뿐인데, 어찌 당시 완석(完席)에서 논의한 것을 오늘날에 말하겠는가. 그날 같은 자리에서 논의한 것에 대해서는 후일에도 말할 수 없다. 전날 그 자리의 논의를 말하지 않았다 하여 나를 책하는 것은 진실로 부당하다."

하면서 말이 매우 강개하니, 좌우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고 최보한도 말이 막히어 마침내 이담 등에 대해 놓아두고 논하지 않았다. 정황은 사람됨이 우직하다고 최보한이 극력 말하였고 달리 발론하는 사람이 없어 즉시 중지되었는데, 이번 이기의 이 아룀이 있자, 최보한도 깜짝 놀라며,

"이담이야 진실로 면하기 어렵지만 이황이천계 같은 경우의 파직은 무슨 일 때문인가."

하였다. 최보한이기의 친척으로서 다 같이 지난날 뜻을 얻지 못하였던 사람이다. 당초의 발의가 다 이기의 숨은 사주였으며 흉계를 부려 사사로운 원한을 갚으려는 종적이 벌써 덮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천계의 한 마디 말로 물리쳐지게 된 것이 부끄러워 다시 굳이 고집하지 않고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며 몰래 서로 보고하여 덫을 놓고 함정을 판 것이다. 불측하게 남을 모함하는 것이 대개 이와 같으므로 사람들의 불안이 날로 깊어져 조석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런 흉계를 쓰면서 인심을 진정시키고자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 뒤 어떤 이가 이천계에게 말하기를,

"오늘날의 사세(事勢)는 벌써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공의 전날 언색(言色)이 너무 지나쳤으니, 사람들이 어찌 불안해 하지 않겠소."

하니, 이천계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말을 하면 화가 따를 것을 모르겠소. 그 사람들이 무고를 입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나의 화가 두려워 침묵을 지키고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차마 못할 바이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심하도다. 소인이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 행위여. 이천계·이담·권물은 모두 이기가 논박받을 때의 대간이다. 때를 타고 교묘히 중상하는 것이 마치 물여우가 모래를 물고 사람에게 뿜는 것과 같으니, 두려울 뿐이다. 이기가 사림(士林)을 배척하여 함정에 빠뜨리고 나서는 인심이 기묘년의 사람을 추앙하는 데에 앙심을 품고 조광조(趙光祖)를 원수처럼 미워하여 매번 조광조는 딴 마음이 있는 자라고 말하는 등 빙탄(氷炭)보다 심하게 서로 용납하지 못하였으니, 그가 현량과를 혁파하고자 하는 것은 형세상 그런 것이다. 윤인경과 같은 자는 그 악행이 이기처럼 심하지 않았으나, 기회를 타고 은총을 굳히려다 도리어 이기의 노예가 되어 그의 뜻을 부회(附會)함에 있어 못하는 짓이 없었다. ‘늙어서 죽지 않는 것을 적이라고 한다. [老而不死是謂賊]’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리라.

다시 천거과를 삭탈하였다. 【지난번 중종조에 남곤(南袞)·심정(沈貞)이 아뢰어 혁파한 것을 인종의 명으로 복과하였는데, 이 때 와서 이기가 다시 아뢰어 혁파하고 직첩(職牒)과 홍패(紅牌)를 환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350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己亥/禁府啓曰: "昨日照律人, 【鄭惟沈, 以前者永非代入事刑訊, 而至是照律決杖一百徒三年。】 今當決杖矣, 但大行大王發引臨迫, 用刑未安。 請於卒哭後決杖何如?" 院相李芑啓曰: "禁府雖啓之如是, 然涉於大逆, 不可久滯。 請不計他事決杖。" 傳曰: "果非他事之比。 決之可也。" 又啓曰: "近日定罪事, 自上不動聲色, 各當其可, 故人心咸服, 都下不驚。 但近者臺諫, 續續論啓, 人皆疑畏, 好惡是非, 可以定於一時, 而使人心自定, 亦爲遷善而改過矣。 典翰李滉、掌令李天啓楊根郡守權勿、工曹正郞李湛, 皆與金䃴無異, 而臺諫未及詳察, 時未論啓, 前舍人丁熿, 亦只遞其職。 請竝罷。 且近來弊習, 朝士不好學問, 徒尙虛名, 以從衆爲是, 致如此之事。 夫科擧, 至公之事, 向者薦擧科, 以賢良爲名, 而未及成篇者已矣 若成篇以呈, 則盡取。 是豈科擧之本意乎? 中宗知其不正, 故廢之。 至仁宗大漸之際, 命復其科, 先王所罷, 雖仁宗之命, 尙不可用。 況以兇徒之供觀之, 當仁宗病革, 尹任三父子入侍, 謀立鳳城君, 不得已請命繼嗣云, 臣意仁宗末命, 皆之術, 恐非仁宗本意也。 請罷薦擧科, 其中若有可用之人, 則雖不以科爲名, 亦可擢用。" 答曰: "近日之事, 予豈不知? 但事出於罔極之中, 故欲鎭定人心耳。 大抵如此大事, 尹任豈獨爲之? 當時文士, 亦陷於之術中者有之, 不得已使好惡是非分明, 然後可矣。 李滉李天啓權勿李湛丁熿, 如啓。 薦擧科事, 當其時, 趙光祖排斥老成大臣, 附己者進之, 異己者斥之。 科擧至公, 而欲收合人心, 故如是爲之, 中宗知其不正而罷之。 其後雖或有請復其科者, 或有請復光祖爵者, 中宗皆不允。 仁宗朝, 亦有如是啓者, 不允, 而復科之命, 出於大漸之中, 安知其正哉? 借曰仁宗本意, 事苟不可, 則在所當改。 予意亦然, 卿亦啓之, 依允。" 仍傳于政院曰: "李芑所啓薦擧科事, 竝以予意, 收議于大臣以啓。" 洪彦弼議: "上敎爲當, 而李芑所啓亦當。" 尹仁鏡議: "柳仁淑等, 仁宗朝常言薦擧科, 可速啓而復之, 臣於中心以爲, 中宗所罷, 雖或啓之, 主上卽位, 未經一年, 必非復立之時, 侍從或請復光祖爵, 臣以爲假令啓之, 姑停可也, 不可如是汲汲。 仁宗昇遐後, 有復科之命, 或有未便者, 或有疑之者, 其後又出於兇人之供, 人心尤疑。 故臣嘗與李芑, 論至於此, 不能無疑。 果如所啓, 罷之允當。" 傳于政院曰: "罷薦擧科, 其中可用之人, 收敍可也。" 先是, 臺諫合司論擧, 近來好生異議者, 分科議罪之際, 大司憲崔輔漢指點權勿李湛, 欲與金䃴等同啓, 左右有言: "此人等所爲, 別無可指。 萬一誤摘, 則終難辨釋, 不審有底作孽。" 輔漢曰: "去冬間爲臺諫時, 有大誤事。" 掌令李天啓曰: "若以爲臺諫時之事, 吾與執義慶渾, 亦爲其時臺諫, 豈不知之? 願公明言所爲何事。" 輔漢初若難言, 竟曰: "今之右相, 【芑也。】 前者拜相之時, 此兩人聽仁淑所播諺簡事, 發議駁之, 此不可不罪之。" 天啓卽大言曰: "果指是事, 則吾明知之, 固非此兩人之所發也。 不可以此罪此人。" 又顧慶渾曰: "公不記得耶? 是豈此人等所爲乎? 若無他見失, 而獨以是事爲兩人之罪, 則吾當保之。 固非此人之所爲, 豈宜擬罪乎?" 輔漢卽憤然作色遽言曰: "若以是言, 謂非兩人所發也, 則必有發言者。 今必明言之, 然後庶可置此兩人也, 不然烏可已乎?" 天啓曰: "吁! 寧有是事? 吾縱或記其發議之人, 只以其言, 明非此兩人之所發, 而將被誣也, 故言之而已, 豈以當時完席中所議, 言之于今日乎? 在他日, 亦不可言。 此日同席之所論, 則固不當責我以不言前日席上之議也。" 言甚慷慨, 左右色變, 輔漢亦語塞, 竟置李湛等。 丁熿輔漢力言爲人愚戇, 無他發論旋止, 今有李芑是啓, 輔漢亦愕然曰: "李湛等, 固難得免, 至如李滉天啓之被罷, 以何事歟?" 輔漢, 之族也, 俱是前日不得志之人也。 當初發論, 皆是之陰嗾, 而行胸臆, 報私怨之跡, 已不得掩, 則見黜於天啓之一言, 忸怩而不復强執, 外若從之, 而陰相告報, 互發機穽。 陷人不測者, 類如此, 人之危懼日深, 莫保朝夕, 用是而欲定人心者, 何意也? 厥後或有言於天啓曰: "今之事勢, 已至於無可奈何, 而公之前日言色, 過於俱厲, 人豈不危之?" 天啓曰: "吾豈不知言發而禍隨乎? 明知若人之被誣, 而畏吾之禍, 含默不白, 吾所不忍也。"

【史臣曰: "甚矣! 小人之報私然也。 李天啓李湛權勿, 皆是李芑被論時臺諫也。 乘時巧中, 有同含沙射人, 可懼也已。 排陷士林, 憤其人心趨仰, 己卯嫉光祖如讎, 每言光祖有異心者也, 甚於氷炭之不相容, 其欲罷賢良科, 勢所然也。 若如仁鏡之惡, 不至如李芑之甚, 而趨時固寵, 反爲之奴隷, 附會其意, 無所不至, ‘老而不死是謂賊’, 此之謂也。"】

復奪薦擧科。 【向在中宗朝, 南衮、沈貞爲之啓罷, 而仁宗命復之, 至是李芑復啓罷, 還收職牒紅牌。】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350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