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 판서 윤개 등이 대왕 대비의 탄일에 진전과 방물의 봉진하는 일로 아뢰다
예조 판서 윤개(尹漑)와 참판 홍섬(洪暹)이 아뢰기를,
"대왕 대비의 탄일은 바로 중종의 소상(小祥)이요 인종의 졸곡(卒哭) 전인데, 진전(進箋)하는 일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동지(冬至)의 진전과 방물(方物)은 이미 대전(大殿)에는 봉진(封進)하지 말도록 하였는데, 대왕 대비전에는 또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리고 중국인을 해송(解送)하는 일에 대하여 신들이 대신들과 의논하였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모두 남쪽 지방 사람으로서 추위를 견디지 못하므로 모두에게 유의(襦衣)177) 와 유고(襦袴)178) 를 이미 준비하여 주었는데도 근래 사망한 사람이 4인이고 병든 사람 역시 많으니 이는 한질(寒疾)로 인한 것입니다. 지금 그들을 해송한다면 요동 지방이 대단히 추운 데다가 바로 한겨울이어서 동상을 입게 되어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가에서 호송하는 의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서울·개성·황해·평안 등처에 분산 거접시켰다가 겨울을 넘긴 뒤에 들여보내면, 동상의 염려가 없음은 물론 필수품을 공급하는 폐단도 그리 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왕 대비의 탄일이 소상과 졸곡 전에 있으니 진전하지 말라. 동지의 진전과 방물도 삼전(三殿)에 모두 하지 말라. 나의 생각에는 중국인들이 수효가 많아 오랫동안 체류하면 필수품을 공급하기가 어려울까 염려되었는데, 조정의 의논이 이와 같으니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338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외교-명(明)
○禮曹判書尹漑、參判洪暹啓曰: "大王大妃誕日, 乃是中宗小祥, 仁宗卒哭前也, 進箋事何如? 冬至進箋方物, 已於大殿則勿爲封進矣, 大王大妃殿, 又將何如? 且唐人解送事, 臣等與大臣議矣。 唐人都是南方人, 性不耐寒, 襦衣、襦袴, 皆已備給, 而近來死者四人, 病者亦多, 是寒疾也。 今若解送, 則遼路極寒, 正涉窮冬, 將致凍傷, 靡孑遺矣。 如此則國家解送之意安在? 若於京中、開城、黃海、平安等處, 分置散處, 過冬入送, 則旣無凍傷之虞, 供給之弊, 亦不至甚矣。" 傳曰: "誕日在小祥卒哭前, 勿爲進箋。 冬至進箋方物, 亦於三殿, 幷勿爲之。 予意唐人數夥, 留久則恐其供給難矣, 朝議如此, 依啓。"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338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