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파선하여 도착한 중국인들에 대한 문제를 의논하다
제주 목사 김윤종(金胤宗)의 계본(啓本)에,
"7월 18일 해질녘에 황당선(荒唐船) 한 척이 동쪽 대양(大洋)으로부터 와서 대정현(大靜縣) 지경에 정박하기에 신이 즉시 병마를 정제하고 달려가 진을 치고 변에 대비했습니다. 19일 이른 아침 황당선에 탔던 사람들이 육지에 내려 달아나므로 여러 겹으로 에워싸고 급히 체포해서 먼저 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모두들 중국 사람인데 무역 관계로 일본에 왕래하다가 바람을 만나 파선한 자들이었습니다. 항복한 자는 모두 3백 26명인데 간혹 글을 써서 보여 주는데 ‘만약 육로(陸路)로 본국에 귀환시킨다면 여기에서 죽느니만 못하니 배를 제공해 주시오.’라고 하여 그들의 말은 매우 주밀하였습니다. 외로운 절해 고도 가운데 오래 체류시키기도 온당하지 못하여 조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였는데, 즉시 삼공에게 명하여 의논하게 하니, 병조와 예조가 회계하기를,
"이들 표류 중국인과 흥양(興陽)에서 사로잡힌 자들을 합계하면 모두 6백여 인인데 지금 만약 모두 되돌려 보내기로 주문(奏聞)한다면 비록 사대하는 예에는 합당하겠으나 우리 인마(人馬)가 피곤하게 되어 일일이 보내는 폐단이 실로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그 순이냐 역이냐를 살펴본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뜻이 옳다. 속히 예조로 하여금 조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예조가 대신·병조·비변사와 의논하여 아뢰기를,
"제주에 표착(漂着)한 중국인 중에 먼저 스스로 육지에 내린 자가 13인이라고 하는데 이뿐이라면 실로 해송(海送)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만약 한 배의 인원이 전부 육지에 내린다면 해송하는 데 폐단이 많을 것입니다. 제주에 하서하여 주관(州官)으로 하여금 설득하여 본국으로 들여보내도록 하되, 아랫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의견인 듯이 말하기를 ‘너희들을 마땅히 중원(中原)으로 해송할 것이다.’ 한다면 저들은 필시 해송되는 것을 꺼려서 스스로 도망갈 것이니, 도망갈 때에 처음 육지에 내렸던 13인도 아울러 도망치게 한다면 매우 온당하게 될 것이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284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명(明)
○濟州牧使金胤宗啓本:
七月十八日日沒時, 荒唐船一隻, 自東大洋中, 來泊于大靜縣界, 臣卽整齊兵馬, 馳到結陣待變。 十九日早朝, 荒唐人等, 數多下陸奔竄, 重圍急捕, 先誘致一人而探問之, 則摠是唐人, 以貿販, 往來日本, 而逢風敗船者也。 凡降者三百二十六名, 有或書示曰: "若由陸路還歸本國, 不如伏死于此, 願給船隻。" 其言極爲綢繆。 孤單絶島中, 久滯未便, 處置極難云云。
卽命議于三公, 兵曹、禮曹回啓曰: "此漂流唐人, 竝興陽被擒者而計之, 則凡六百餘人, 今若一一遣還奏聞, 則雖於事大之禮得矣, 而以我疲困人馬, 一一解送, 弊實不貲。 然反覆審其逆順, 則勢不得不爾。" 答曰: "啓意可矣。 速令禮曹措置。" 禮曹與大臣、兵曹、備邊司議啓曰: "濟州漂泊唐人, 先自下陸者十三人矣, 止此而已, 則固當解送, 若一船之人, 盡數下陸, 則解送多弊。 請下書濟州, 令州官, 開諭入送, 令其下人, 如以其意言曰: ‘爾輩當解送中原。’ 云, 則彼必憚其解送, 自相遁去, 遁去之際, 仍使初下十三人幷遁, 則甚爲便當。" 答曰: "如啓。"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284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