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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실록 2권, 인종 1년 6월 26일 정사 5번째기사 1545년 명 가정(嘉靖) 24년

상의 증세가 위급해지다

승지·사관 등이 상의 증세가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 경회문(慶會門)으로 가니, 약방 제조들이 먼저 와 있었고, 입직(入直)한 홍문관의 관원 유희춘(柳希春)·이원록(李元祿)도 따라왔는데, 내관(內官) 박한종이 나와서 말하기를,

"상의 기운이 매우 까라져 막 잠드셨는데 갑자기 헛소리를 하는 증세가 있고 기운도 끊어지려 하므로, 궁중이 허둥지둥 위구(危懼)하여 어쩔 줄 모릅니다."

하고, 윤흥인(尹興仁)이 나와서 말하기를,

"상께서 열이 극심하여 혀가 짧아지고 정신을 잃으셨는데 병세로 보면 오늘밤도 넘기기 어려우실 듯합니다. 이처럼 답답한 일이 있겠으며, 어떻게 구료해야 하겠습니까?"

하였다. 약방 제조와 승지·사관 등이 곧 경회루(慶會樓) 아래 수각(水閣)에 가서 문안하니, 박세거가 나와서 말하기를,

"상의 증세는 대개 더위에 상한 데다가 정신을 써서 심열(心熱)하는 증세는 있어 매우 지치셨는데, 약을 물리치는 것이 너무 심하여 광증을 일으키실 듯합니다."

하고, 김승보(金承寶)는 나와서 말하기를,

"의원(醫員)들이 ‘상께서 병이 위급하므로 마땅히 별각(別閣)의 고요한 곳에 피어(避御)하여 조리하게 해야 하고 의원들도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게 해야 한다.’ 하고 중궁(中宮)께서도 상께서 피어하기를 바라므로 곧 청연루(淸讌樓)453) 에 이어(移御)하였습니다. 옮기려 할 때에 따로 침석(枕席)을 장만하여 시인(侍人)들이 함께 부축하여 모시려 하니 상께서 스스로 일어나 기세가 점점 살아나는 듯하였습니다."

하고, 유지번(柳之蕃)·홍침(洪沈)은 나와서 말하기를,

"상의 옥체가 이제는 조금 낫고 열도 잠시 내려 미음을 드시며 ‘이것이 왜 이리 찬가.’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열이 날까 염려되므로 약시중은 떠나지 않습니다."

하였다. 윤인경 등이 상의 기후가 조금 낫다는 말을 들은 데다가 대내(大內)에 가까운 곳에서 오래 있는 것을 미안하게 여겨서 도로 경회문으로 나가서 기다렸는데, 밤 삼경(三更)에 이르도록 별다른 증세가 없으므로 윤인경 등이 물러갔다. 그때 대비(大妃)는 창경궁(昌慶宮)에 있었는데, 선전관(宣傳官)과 내관(內官)이 군사를 거느리고 유문 표신(留門標信)454) 을 가지고 와서 밖에서 문을 열라고 급히 외치므로 까닭을 물었으나 말하지 않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아뢰기를,

"상이 병환이 매우 위급하시어 나인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립니다."

하였다. 잠시 후에 대비가 가승지(假承旨) 조광원(曺光遠)에게 전교하기를,

"이제 들으니, 상의 병환이 매우 위급하시다 한다. 내가 궁을 나가서 의혜 공주(懿惠公主)의 집 【곧 수진방(壽進坊)에 있는 청원위(淸原尉)의 사제(私第)이다.】 에 머물러 쉬었다가 들어가서 살펴 보겠으니, 모든 일을 되도록 간략하게 바삐 갖추라."

하니, 조광원이 가주서(假注書) 안명세(安名世), 검열(檢閱) 윤결(尹潔)과 함께 곧 합문(閤門) 밖에 가서 병조(兵曹)·사복시(司僕寺)를 시켜 모든 일을 갖추게 하였다. 안명세·윤결 등이 조광원에게 의논하기를,

"이제 이렇게 늦은 밤에 대비께서 거둥하시는 것은 의리로 보아 지극히 미안합니다. 상의 옥체가 위급하시더라도 대비께서 친히 문안하시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다만 경동(驚動)만 더할 뿐입니다. 인심이 의구(疑懼)하고 경동하여 위아래가 황급하면 변고가 일어나는 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조광원이 말하기를,

"내 생각도 그러하다."

하고는, 곧 승전색(承傳色)에게 청하여 아뢰기를,

"이제 전교를 받고 모든 일을 곧 갖추게 하였습니다. 다만 상의 기후는 더위 증세로 말미암아 우연히 그러한 것이고 또 전하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는데, 이제 갑자기 자전(慈殿)께서 거둥하시면 인심이 매우 놀랄 뿐 아니라 상의 옥체가 더욱 경동되실 것이 염려됩니다. 또 장차 공주의 집에 머물러 쉬려 하셨는데, 상께서 이 일을 들으신다면 반드시 더욱 경동되실 것이니 의리로 보아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대비가 전교하기를,

"이제 문안하는 사람이 와서 상의 병환이 위급하다고 전하므로 내가 친히 가서 보려한 것이니, 모든 일을 그대로 갖추고서 문안하는 사람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라."

하였다. 그래서 윤결 등이 주서(注書) 이덕응(李德應)·안함(安馠)에게 바삐 글을 보내어,

"이제 대비께서 친히 가시려 하는데 다만 상의 옥체가 경동되실 뿐 아니라 인심이 불안하여 일이 옳지 않을 것이니, 이 뜻을 승지(承旨)들에게 의논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니, 이덕응 등이 회보하기를,

"영상(領相)과 정원(政院)이 함께 의논하였는데 ‘자전께서 한밤에 거둥하셔서는 안되니 곧 이 뜻으로 방계(防啓)해야 한다.’ 하였다."

하였다. 윤결 등이 그 회보를 조광원에게 보이고 말하기를,

"조정(朝廷)의 뜻도 이러하니 이제 다시 아뢰어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조광원이 다시 아뢰기를,

"이러한 한밤에 황급히 동가(動駕)하시면, 보고 듣기에 놀라울 뿐 아니라 여느 집에서 꺼리는 일로 말하더라도 미안할 듯합니다. 이제 이 뜻을 정원에 알렸더니 대신과 정원도 함께 의논하여 동가하셔서는 안 되겠다고 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신의 뜻이 그러하다 하니 이제 우선 멈추라. 그러나 공주의 집에서 머물러 쉬고 궁에 들어가려 하니, 이 뜻을 승지가 대신에게 가서 의논하라."

하였다. 조광원이 명을 듣고 나가기 전에 사인(舍人) 이천계(李天啓)가 삼공(三公)의 뜻으로 와서 아뢰기를,

"이제 듣건대 자전께서 이어(移御)하려 하신다 하니, 이러한 한밤에는 미천한 궁인(宮人)일지라도 움직여서는 안 되는데 더구나 자전이겠습니까. 또 상의 기후가 이제는 조금 나으니 결코 동가하셔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니, 자전이 답하기를,

"뜻밖에 상의 환후가 매우 위급하시다는 말을 듣고 여기에 멀리 있는 것이 미안하여 의혜 공주의 집에 가서 가까이 있으면서 문안하려 하였다. 이제 대신이 밤에 동가하여서는 안 된다 하니 우선 멈추고 가지 않겠다."

하였다. 그때 의장(儀仗)이 다 문밖에 있었으므로 조광원이 표신(標信)을 내어 파진(罷陣)하기를 청하니, 전교하기를,

"표신은 문안하는 내관(內官)이 오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내라."

하였다. 조광원이 아뢰기를,

"표신을 내지 않는 것은 문안이 오기를 기다려 다시 거둥하시려는 것입니다. 대신도 어찌 간단히 생각하여 아뢰었겠습니까. 또 의혜 공주의 집은 여염 사이에 있으므로 더욱이 거둥하셔서는 안 되겠으니 표신을 내어 파진하소서."

하니, 그제야 표신을 내리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표신은 내었다마는, 연(輦)과 교자(轎子)는 돈화문(敦化門) 밖에 두고 대령하라."

하였다. 그때 대간(臺諫)이 단봉문(丹鳳門) 밖에 와서 아뢰어 멈추게 하려 하였으나, 동가를 멈추었다는 말을 듣고 물러갔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72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253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군사(軍事)

  • [註 453]
    청연루(淸讌樓) : 경복궁(景福宮) 안 한복판에 있는 아미산(峨嵋山) 동쪽에 있다.
  • [註 454]
    유문 표신(留門標信) : 유문은 궁문(宮門) 또는 성문(城門)을 닫을 시각에 닫지 않고 기다리는 것. 표신(標信)은 궁문의 개폐(開閉), 통행이 금지된 야간의 통행 허가, 군국(軍國)의 긴급한 일에 대한 지시, 관원·군사의 징소(徵召) 등의 증명으로 쓰는 표. 표신의 종류에 선전표시(宣傳標信)·휘지표신(徽旨標信)·내지표신(內旨標信)·통행표신(通行標信) 등이 있으며, 모양도 원(圓)·방(方)·예(銳)·곡(曲) 등이 있다. 여기서 유문표신이라 한 것은 개문표신(開門標信), 곧 밤에 답힌 문을 열게 하는 표신을 말한 것이며, 개문표신은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만들고 일면에 개문(開門)이라 쓰고 다른 일면에는 임금이 친서(親署)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병전(兵典) 문개폐(門開閉)·부신(符信).

○承旨、史官等聞上證危急, 詣慶會門, 則藥房提調等已先至矣。 弘文館入直員柳希春李元祿亦隨之, 內官朴漢宗出言曰: "上氣甚沈困, 方入寢, 忽有譫語之證, 而氣亦將絶, 故宮中蒼黃危懼, 罔知攸措耳。" 尹興仁出言曰: "上熱極舌短, 不省人事, 以病勢觀之, 雖今夜亦似難過。 悶孰如之, 將何以救之?" 藥房提調及承旨、史官等, 仍就慶會樓下水閣問安, 朴世擧出言曰: "上證大槪傷暑, 而又有用心心熱之證, 困憊斯甚, 而拒藥則大强, 似將發狂。" 金承寶出言曰: "醫員等, 以上疾革, 當避御于別閤靜處調治之, 使醫員等, 亦得安心出入, 中宮亦欲上避御, 故卽旣移御于淸讌樓。 將移之際, 別設枕席, 侍人欲共爲扶侍, 則上自起立, 氣勢似漸蘇息。" 柳之蕃洪沈出言曰: "上體今則稍歇, 熱亦暫退, 少御米飮曰: ‘此物何其冷也?’ 然恐或有復熱之患, 故猶不離侍藥耳。" 仁鏡等聞上候稍歇, 以久入于近內之處爲未安, 還出于慶會門以待之, 夜到三更, 別無他證, 仁鏡等退。 時, 大妃御昌慶宮, 有宣傳官及內官率軍士, 持留門標信, 自外急呼開門, 問其故不言, 直入于內而言曰: "上疾甚危急, 內人等號哭聲徹于外。" 俄而大妃傳于假承旨曺光遠曰: "今聞上疾甚急。 予將出宮, 留憩于懿惠公主第, 【卽淸原尉 壽進坊私第。】 入而省視, 諸事從略, 急爲之備。" 光遠與假注書安名世、檢閱尹潔, 卽詣閤門外, 令兵曹、司僕(等)〔寺〕 備諸事。 名世等議于光遠曰: "今此暮夜, 大妃行幸, 於義至爲未安。 假令上體危急, 大妃之親問何益? 徒增驚動耳。 且人情疑動, 上下遑遽, 變故之生, 亦不可不慮。" 光遠曰: "我意亦如是。" 卽請承傳色啓曰: "今承傳敎, 諸事卽令備之。 但上候因暑證, 偶然如此, 且傳言未可取信, 而今遽有慈殿擧動, 非徒人心震驚, 恐上體益爲驚動。 且將留憩于公主(弟)〔第〕 , 使上聞此, 則必尤爲驚動, 於義何如?" 大妃傳曰: "今問安之人來傳, 上疾危急, 故予欲親往視之矣。 諸事可仍備之, 以待問安人之再來。" 於是等馳簡於注書李德應安馠曰: "今大妃欲親往, 非徒上體驚動, 人心不安, 事有不可, 此意議于諸承旨何如?" 德應等報曰: "領相及政院僉議云: ‘慈殿不可夜半動駕。’ 卽以此意, 防啓可也。" 等以其報, 示于光遠曰: "朝意亦如是, 今可再啓。" 光遠再啓曰: "如此夜半, 遑遽動駕, 非徒見聞駭愕, 以常家忌諱言之, 亦恐有未安也。 今以此意, 通于政院, 則大臣及政院, 亦共議曰, 不可動駕云, 故敢啓。" 傳曰: "大臣之意如此云, 今姑停之。 然將欲留憩于公主家而入宮, 此意承旨, 往議于大臣處。" 光遠聞命未及出, 舍人李天啓, 以三公意來啓曰: "今聞慈殿, 欲將移御, 如此夜半, 雖宮人之微, 不可動也, 況慈殿乎? 且上候今則稍歇, 決不可動駕。" 慈殿答曰: "不意聞上候甚急, 遠在於此未安, 故欲往于懿惠公主家, 在近問安。 今大臣以爲, 暮夜不可動駕云, 姑停而不行耳。" 時儀仗皆在門外, 光遠請出標信罷陣, 傳曰: "標信, 姑待問安內官之來而出之。" 光遠啓曰: "不出標信, 是欲待問安之來, 而復有擧動矣。 大臣亦豈偶然計而啓之乎? 懿惠公主家在閭閻間, 尤不可幸, 請出標信罷陣。" 於是下標信, 仍傳曰: "標信則出矣, 但輦及轎子, 置于敦化門外待令。" 時臺諫來在丹鳳門外, 欲啓止之, 聞停駕, 退去。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72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253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