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이 소세양을 서용하라는 명을 거둘 것과 사신에게 산디를 베풀 것을 청하다
대간이 원혼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신들이 듣건대, 소세양을 서용하도록 명하셨다 하니 경악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는 위인이 간사하고 시기심이 많아서 조정의 반열에 둘 수 없습니다. 신정(新政)의 처음에는 덕이 높고 학식이 많은 사람을 먼저 찾아야 마땅한데 직첩(職牒)을 주어 거두어 서용하라는 명이 이항(李沆)·소세양에게 먼저 미쳤으니, 아마도 소인은 전하의 마음을 엿보게 되고 군자는 마음이 떠나가게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인물을 진퇴하는 것은 삼공의 직임인데 삼공은 소세양의 정상을 환히 알고 있으니 하문하신 당초에 사실대로 아뢰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면전에서 순종하기만을 힘써서 천청(天聽)을 속였으니 대신의 도리가 진실로 이러한 것입니까?
한 소인이 나아오면 뭇 소인이 나아오게 되고 한 군자가 물러가면 뭇 군자가 물러가게 되므로 진퇴와 소장(消長)의 기틀이 바로 오늘에 달려 있는데, 전하의 하문이 이러하셨고 대신의 대답이 이러하였으니, 신들은 한심스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빨리 성명을 거두어 호오(好惡)를 바르게 보이소서.
오산(鰲山)200) 은 예부터 조사(詔使)를 위하여 베푸는 것이므로 혹 《조선부(朝鮮賦)》·《조선록(朝鮮錄)》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또 중국 사신의 시영(詩詠)에 퍼져 있기도 합니다. 이번에 조정의 의논이, 국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민폐가 염려된다 하여 특별히 폐하고 베풀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릇 조칙이 국내에 이르는 것은 곧 전하께서 처음으로 황제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맞이하여 예(禮)로 대접하는 절차에 있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줄일 수 없습니다. 더구나 오산은 큰 경사를 위하여 공경하고 근신하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본디 상사(喪事)와는 관계가 되지 않는데, 어찌 작은 폐단을 생각하여 베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詔使)가 데려오는 두목(頭目)은 거의 요동(遼東)의 광녕(廣寧) 사람이 태반이어서 전에 우리 나라에 왔던 자가 많을 것인데, 예전에 베풀다가 이제 폐한 것을 가지고 조칙을 맞이하는 예가 전보다 못하다고 의아해 한다면 조사도 반드시 혐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사상(私喪) 때문에 조칙을 맞이하는 예를 폐하는 것이 예를 아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선왕은 정성으로 사대(事大)하여 예를 갖추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이제 새 왕은 구례(舊禮)를 줄였으니 태만에 가깝지 않은가.’고 묻는 다면, 관계되는 바가 자가지 않아서 국가의 체모를 손상할 뿐더러 반드시 후회가 있게 될 것입니다.
예는 폐하지 않는 것이 귀중한 것이니 오산의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썼던 산디(山臺)의 강목(杠木)이 아직 있고 산릉(山陵) 때에 쓰고 남은 장목(長木)·생갈(生葛)도 많으니 대강 설치하여 간략하게 구례를 거행할 수가 있습니다. 신들도 어찌 민폐를 염려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일이 조칙을 맞이하는 대례(大禮)에 관계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원혼의 일에 대해서는 내 뜻을 이미 다 일렀다. 소세양은 문재(文才)가 있는 재상으로 침체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중국 사신이 올 때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으므로 대신과 의논하였더니 대신의 생각도 그러하였다. 대신 또한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는가. 또 일개 소세양을 거두어 서용한다고 해서 군자가 마음이 떠나가게 된다는데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일이 이미 정해졌으니 고칠 것 없다. 산디의 일은 내 생각도 그러하기에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대신도 해야 한다는 의논이 있었다. 아뢴 대로 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4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205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외교-명(明) / 풍속(風俗)
- [註 200]오산(鰲山) : 오산의 본의는 큰 바다 자라가 이고 있는 신선이 산다는 산. 여기서는 오산희(鰲山戲) 곧 산디놀음을 말하는 것으로, 오산을 상상하여 만든 대(臺) 위에서 가면을 쓰고 소매가 긴 옷을 입은 광대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연극하는 것인데, 특히 중국 사신이 오면 산디 도감(山臺都監)을 두어 이 일을 말게 하였다.
○己未/臺諫啓元混事, 且啓曰: "臣等聞命敍蘇世讓, 不勝駭愕。 其爲人憸邪媢嫉, 不可置在朝列。 新政之初, 宜先訪碩德鴻儒, 而給牒收敍之命, 首及於李沆、世讓, 竊恐小人, 窺殿下之淺深, 而君子解體也。 進退人物, 職在三公, 三公灼知世讓情狀, 下問之初, 所當直啓。 唯務面從, 以欺天聽, 大臣之道, 固如是乎? 一小人進則衆小人進, 一君子退則衆君子退, 進退消長之幾, 正在今日, 殿下之問如此, 大臣之對如此, 臣等不勝寒心。 請亟收成命, 以示好惡之正。 鰲山, 自古爲詔使設, 故或載諸《朝鮮賦》、《朝鮮錄》, 且播華使詩詠。 今者朝議, 以國哀未除, 且慮民弊, 特廢不設。 凡詔勑到國內, 乃殿下見君之始, 其迎候禮接之節, 雖微細, 不可減殺。 況鰲山爲大慶, 以表敬謹之意, 而元不關喪事, 豈可計小弊不設乎? 詔使帶來頭目, 率多遼東 廣寧之人, 曾到我國者必多, 若以舊設今廢, 爲訝迎勑之禮, 今不及前, 則詔使亦必爲嫌。 萬一問之, 其以私喪, 廢迎勑之禮, 以謂知禮乎? ‘先王事大以誠, 禮無不備, 而今新王, 降殺舊禮, 不近怠乎?’ 云爾, 則所關非細, 非徒虧損國體, 必有後悔。 禮以不廢爲貴, 不在鰲山大小。 舊用山臺杠木尙在, 山陵用餘長木、生葛亦多, 可以粗設, 略擧舊禮而已。 臣等亦豈不慮民弊, 事關迎勑大禮, 敢啓。" 答曰: "元混事, 予意已盡言之。 蘇世讓, 有文才宰相, 沈滯已久, 天使時, 意其可補一隅, 故議于大臣, 大臣之意亦如此。 大臣亦豈有他意乎? 且收敍一世讓, 而君子解體, 所未可知也。 事已定矣, 不須改也。 山臺事, 予意亦如此, 故議于大臣, 而大臣亦有可爲之議。 當如啓。"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4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205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외교-명(明) / 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