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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실록 1권, 인종 1년 윤1월 22일 을유 3번째기사 1545년 명 가정(嘉靖) 24년

대간이 능호와 전호의 변경에 대해 아뢰다

대간이 아뢰기를,

"희릉(禧陵)·영경전(永慶殿)166) 은 다 장경 왕후(章敬王后)의 구호(舊號)를 그대로 쓰는 것이니 존비(尊卑)와 경중(輕重)의 뜻에 어긋납니다. 구례(舊例)가 있다고는 하나 옛사람이 ‘낮은 것을 높은 데에 원용(援用)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만고의 떳떳한 도리이니 억견(臆見)으로 경솔히 바꿀 수 없습니다. 살았을 때에 섬기는 것이나 장제(葬祭)는 다 예(禮)를 따라야 마땅한 것으로 예에 어긋난다면 효도라 할 수 없는데, 어찌 구례를 따르고 상례(常例)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능과 전의 호를 고치소서."

하니, 답하기를,

"선왕 때에는 구례를 따른 일이 잦았거니와 조정이 의논해 아뢴 것도 그러하였으므로 내 생각에 예로부터 범연하게 생각하여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져 곧바로 따랐던 것이다. 이제 대간이 논한 것이 이러하니, 곧 정부의 당상관 전수(全數)와 예조의 당상관 전수와 육조의 참판 이상과 한성부의 당상관과 정승을 지낸 사람을 불러 의논하라. 그런 뒤에 조처할 것을 결정하겠다."

하였다. 영의정 윤인경(尹仁鏡), 좌의정 유관(柳灌), 우의정 성세창(成世昌), 병조 판서 정옥형(丁玉亨), 예조 판서 임권(任權), 공조 판서 허자(許磁), 호조 판서 임백령(林百齡), 판윤 윤사익(尹思翼), 공조 참판 강현(姜顯), 좌윤 박우(朴祐), 우윤 홍섬(洪暹)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능과 전의 호를 처음 의논할 때에 고례와 본조의 전례를 살폈는데, 내상(內喪)이 먼저 있어서 능과 전의 호가 이미 있을 경우에는 대왕이 승하하였을 때에 그 구호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쓴 때가 많았었기 때문에 전규(前規)를 열기(列記)하여 여쭈어 정하였으니, 이제 고칠 것 없겠습니다."

하고, 예조 참판 정만종(鄭萬鍾), 호조 참판 심연원(沈連源), 병조 참판 신영(申瑛), 예조 참의 김익수(金益壽)가 의논하여 아뢰기를,

"능과 전의 호를 그대로 쓰는 것이 선왕 때의 구례이긴 할지라도 예에 있어서는 미안하니 고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윤인경의 의논에 낙점(落點)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194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註 166]
    영경전(永慶殿) : 혼전(魂殿)의 이름.

○臺諫啓曰: "禧陵永慶殿, 皆襲章敬王后舊號, 有乖於尊卑輕重之義。 雖云有舊例, 古人云, 卑不可援尊, 此萬古經常之道, 不可以臆見輕易變易。 生事葬祭, 皆當以禮, 苟失於禮, 不可以爲孝, 豈可循舊例, 而棄常例也? 請改陵殿之號。" 答曰: "在先王朝, 因循舊例屢矣, 朝廷之議啓, 亦如此, 故予以爲自古豈偶然計料而然乎, 卽從之。 今者臺諫所論如此, 卽招政府堂上全數、禮曹堂上全數、六曹參判以上、漢城府堂上、曾經政丞, 以議然後, 處置事發落。" 領議政尹仁鏡、左議政柳灌、右議政成世昌、兵曹判書丁玉亨、禮曹判書任權、工曹判書許磁、戶曹判書林百齡、判尹尹思翼、工曹參判姜顯、左尹(朴佑)〔朴祐〕 、右尹洪暹議啓曰: "始議陵殿號時, 考古例及本朝之例, 內喪在先, 己有陵殿之號, 大王之薨, 多用其舊而不改, 故列書前規, 啓稟而定之, 今不須改也。" 禮曹參判鄭萬鍾、戶曹參判沈連源、兵曹參判申瑛、禮曹參議金益壽議啓曰: "陵殿號因襲, 雖先王朝舊例, 於禮似爲未安, 改之爲當。" 落點于尹仁鏡議。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194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