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상이 이조와 의논하여 국장 도감을 설치하다
좌·우상이 또 이조와 함께 의논하여 국장 도감(國葬都監)을 설치했는데, 좌찬성 이기, 호조 판서 임백령, 병조 판서 정옥형을 제조로 삼고, 군자감 정 임호신(任虎臣),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 이세장(李世璋), 사성(司成) 원계검(元繼儉), 군기시 부정(軍器寺副正) 권철(權轍), 선공감 부정(繕工監副正) 전공간(全公侃), 제용감 부정(濟用監副正) 이영(李瑛), 예조 정랑 정유인(鄭惟仁), 공조 좌랑 유창문(柳昌門)을 낭관으로 삼았다. 또 산릉 도감(山陵都監)을 설치했는데, 공조 판서 유인숙(柳仁淑),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황헌(黃憲), 이조 판서 신거관(愼居寬)을 제조로 삼고 군기시 정 정원(鄭源), 사재감 정(司宰監正) 김성성(金瑞星), 상의원 정(尙衣院正) 윤선지(尹先智), 사예(司藝) 김충렬(金忠烈), 예빈시 첨정(禮賓寺僉正) 이원우(李元祐), 호조 정랑 유세귀(柳世龜), 형조 정랑 임건(任楗), 직강(直講) 이춘령(李春齡), 사의(司議) 성세영(成世英), 선공감 주부(繕工監主簿) 권황(權煌)을 낭관으로 삼고, 우의정 윤인경을 총호사(摠護使)로, 동지중추부사 송겸(宋㻩)을 수릉관(守陵官)으로, 완산군(完山君) 수계(壽誡)를 대전관(代奠官)으로, 내시 임세무(林世茂)를 시릉관(侍陵官)으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처음에 최보한(崔輔漢)을 수릉관으로 삼았는데, 보한이 갑자기 꺼리는 생각을 품고 병이 있다고 핑계대고 심지어는 다리를 들어서 좌우에 보이기까지 하여 기어이 고쳐서 수릉관을 면하고야 말았으니, 심하다. 높고 중한 작록(爵祿)이었다면 그가 필시 사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미루어본다면, 이런 일도 차마 하는데 무슨 일인들 차마 못하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53책 105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158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左、右相又與吏曹同議, 設國葬都監: 以左贊成李芑、戶曹判書林百齡、兵曹判書丁玉亨爲提調, 以軍資監正任虎臣、弘文館典翰李世璋、司成元繼儉、軍器寺副正權轍、繕工監副正全公侃、濟用監副正李瑛、禮曹正郞鄭惟仁、工曹佐郞柳昌門爲郞官。 設山陵都監: 以工曹判書柳仁淑、知中樞府事黃憲、吏曹參判愼居寬爲提調, 以軍器寺正鄭源、司宰監正金瑞星、尙衣院正尹先智、司藝金忠烈、禮賓寺僉正李元祐、戶曹正郞柳世龜、刑曹正郞任楗、直講李春齡、司議成世英、繕工監主簿權煌爲郞官, 以右議政尹仁鏡爲摠護使, 以同知中樞府事宋㻩爲守陵官, 以完山君 壽誡爲代奠官, 以內侍林世茂爲侍陵官。
【史臣曰: "初以崔輔漢爲守陵官, 輔漢遽懷憚厭, 托以有疾, 至於擧脚以示左右, 期於必改而後已, 甚矣! 高爵重祿, 則輔漢必不辭矣。 推是心, 是可忍, 孰不可忍也?"】
- 【태백산사고본】 53책 105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158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