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104권, 중종 39년 9월 10일 병오 2번째기사
1544년 명 가정(嘉靖) 23년
사헌부가 김순고와 색승지 허백기의 추고를 청하였으나 색승지의 추고만 허락하다
헌부가 김순고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어제 정시(庭試) 때에 유생의 수가 5∼6천이나 되었으니, 넓은 장소가 아니면 수용할 수 없는 형세이므로, 정원(政院)은 명정문(明政門)을 열 것을 아뢰어야 할 것인데, 끝내 아뢰지 않았습니다. 또 광정문(光正門)도 늦게 열어서, 많은 유생들이 미처 들어가지 못할까 염려하여 좁은 장소에서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앞을 다투다가 밟혀서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였으니, 지극히 그릅니다. 색승지 【허백기(許伯琦).】 를 추고하소서."
하니, 답하였다.
"김순고의 일은 윤허하지 않는다. 색승지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 【태백산사고본】 53책 104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133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사상-유학(儒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