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에서 풍가이를 죽게한 은대의 죄를 정하도록 청하다
헌부가 아뢰기를,
"신들이 비답(批答)을 보건대, 지극히 미안합니다. 풍가이가 죽게 된 일은 그 종[奴]의 고장(告狀)의 사연에 ‘형장을 맞은 데를 더 때리고 가두고는 먹을 것을 안주어서 굶어 죽게 되었다.’ 하였고, 사간인 종[婢] 옥매(玉梅)·진덕(眞德)·앙이(仰伊)·금이(金伊)·금등(今等)이 ‘더 때린 뒤에 장고(醬庫)에 넣어 둔 지 스무 날째에 죽었다.’고 공초(供招)한 일에 있어서는 형장을 맞은 데를 더 때린 것은 검시하더라도 증거가 밝혀지지 않겠으나 가두어서 고의로 죽인 자취는 이미 뚜렷하며, 또 여성위(礪城尉) 송인(宋寅)의 두 종[婢]을 때려 죽인 일이 물의에 드러났으니, 일이 매우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아뢰었는데, 위의 분부에 ‘내인을 조옥(詔獄)에 가두고서 추고하는 것은 근래에 없던 일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은대(銀代)가 범한 것도 근래에 없던 일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궁중(宮中)·부중(府中)은 다 일체(一體)이므로 선악을 상벌하는 것이 달라서는 안 되는데, 이제 만약에 내인이라는 핑계로 죄가 있어도 묻지 않는다면,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 반드시 이 사람에게서 비롯되어 가정(家政)에 크게 누를 끼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는 잗단 억울한 일일지라도 늘 염려하시더니 은대가 죄 없는 사람을 몇 사람씩 함부로 죽인 일만은 치우치게 감싸서 국가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고 하시니, 임금으로서 백성을 인애(仁愛)하는 말에 어그러지는 바가 있으므로 매우 서운합니다. 또 풍개(豐介)가 의금부에서 결방(決放)된 뒤에 죽게 된 일은 처음에 바깥에서는 잘 알지 못하고 길에서 서로 전하기를 ‘위에서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형장을 가하여 죽게 하였다.’ 하여 물정이 의심하고 놀라와하였습니다. 이제는 죄인을 이미 알았는데도 곧 시원히 공론을 따르지 않으니, 바깥 사람들의 의심이 아마도 석연히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빨리 의금부에 내려 율문(律文)에 따라 죄를 정하소서."
하니, 답하였다.
"내인일지라도 대내(大內)에서 죄를 범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밖에서 사사로이 범한 것이니, 옥에 내린들 무엇이 방해되겠는가. 다만 때린 지 오랜 뒤에 죽은 것이고 더 때린 것이 아니니 옹주의 비명(非命)을 미처 구완하지 못한 것을 슬퍼한 탓일 것이다. 송인의 집 일은 듣기는 하였으나 뚜렷하지 않고, 대저 검시한 것이 아닌데 옥에 내리는 것은 사체에 어긋난 듯하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103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101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비빈(妃嬪) / 사법(司法) / 신분-천인(賤人) / 윤리(倫理) / 의약-의학(醫學)
○憲府啓曰: "臣等伏見批答, 至爲未安。 豐加致死事, 其奴狀辭以爲: ‘受刑處加打下, 拘囚絶食, 以致餓死。’ 云, 事干婢玉梅、眞德、仰伊金ㆍ伊今等招, 加打下後, 入置醬庫, 第二十日致死事納段。 受刑處加打下事, 雖檢屍, 必無左驗, 而拘囚故殺, 情迹則已著矣。 且礪城尉 宋寅兩婢子撲殺事, 物論顯發, 事甚駭愕, 故敢啓。 而上敎以爲, 內人囚詔獄推之, 近所未有也。 銀代所犯, 亦近所未有, 故不得不爾。 況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今若諉諸內人, 有罪不問, 法之不行, 未必不自此人始, 而大累家政矣。 自上雖小小冤枉, 常加軫念, 而獨此銀代, 濫殺無辜數人之事, 偏加曲護, 以爲非關國家, 有乖帝王仁民之言, 不勝缺望。 且豐介義禁府決放後致死事, 當初外間, 不能詳知, 道路相傳以爲, 自上令內需司, 加杖致死云, 物情疑駭。 今則罪人旣得, 而不卽快從公論, 外人之疑, 恐未能昭釋。 請速下義禁府, 依律定罪。" 答曰: "雖內人, 非如在內而犯罪也, 在外私犯, 下獄何妨? 但打之久, 然後死, 非加杖也, 必悲慟翁主之非命, 不及時救療之致也。 宋寅家事, 雖聞之而未著, 大抵非檢屍而下獄似異, 故不允。"
- 【태백산사고본】 52책 103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101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비빈(妃嬪) / 사법(司法) / 신분-천인(賤人) / 윤리(倫理) / 의약-의학(醫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