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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103권, 중종 39년 5월 14일 신해 1번째기사 1544년 명 가정(嘉靖) 23년

김광진·안위·남궁숙 등의 포장을 청하는 경기 관찰사 홍섬의 서장

경기 관찰사 【홍섬(洪暹).】 의 서장(書狀) 【*】 을 정원에 내리고 일렀다.

"김광진(金光軫)안위(安瑋)의 행적은 단지 ‘벼슬살이를 법대로 하고 부역을 균등하게 했다.’고만 했으니 향표리(鄕表裏)238) 1습(襲)을 내리라. 남궁숙(南宮淑)은 그의 행적을 보건대 평범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한 듯하니, 가자(加資)를 주어 표장하고 권면하는 뜻을 보이라."

【*서장은 다음과 같다. "양주 목사(楊州牧使) 김광진(金光軫)과 파주 목사(坡州牧使) 안위(安瑋) 등은 벼슬살이를 직책대로 하고 백성들의 부역을 균등하게 하였습니다. 안산 군수(安山郡守) 남궁숙(南宮淑)은 벼슬살이를 청렴 근신하게 하고 자봉(自奉)을 검소하게 하며 백성을 자식처럼 지성으로 사랑하고 부역을 균등하게 하여 권세있는 사람이라도 피하지 않으며, 상례 이외의 진상(進上) 물선(物膳)도 곤궁한 백성들이 갑자기 마련하느라 억울하게 허비하는 일이 있을까 염려하여 모두들 관(官)에서 자체로 준비하여 바쳤습니다. 지난 신축년(1541)과 임인년(1542)에 흉년을 구제할 때에는 친히 죽을 가지고 단기(單騎)로 촌락(村落)을 드나들며 마음을 다해 구제하여 온 지경이 이를 힘입어 완전히 살아나게 되었고 백성들이 조금이라도 원통하거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모두를 아들이 아비에게 호소하듯이 하여 서로의 심정이 막히는 간격이 없으므로, 서로들 명령대로 따르기를 언약하고 차마 속이지 않게 되어, 마치 옛적 순리(循吏)의 기풍이 있는 듯했습니다. 본 고을을 순찰할 때 품관(品官)·교생(校生)·백성들이 말 머리를 둘러싸고 백성을 애호한 것에 대한 뜻을 갖추 바쳤는데 실정을 자세히 살펴 보건대 허위로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백성들을 애호하여 돌보는 정성이 오래되어도 쇠퇴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포장(褒奬)하는 은전을 내려 여타의 사람들도 힘쓰게 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52책 10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86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人事)

  • [註 238]
    향표리(鄕表裏) : 토산 안팎 옷감.

○辛亥/以京畿觀察使 【洪暹】 書狀, 【"楊州牧使金光軫、坡州牧使安瑋等, 居官守職, 賦役均平。 安山郡守南宮淑, 居官淸謹, 自奉儉約, 愛民如子, 出於至誠, 差役之均, 不避權勢, 例外進上物膳, 慮窮民卒辦枉費, 故皆官(白) 〔自〕備納。 去辛丑、壬寅年救荒時, 親齎饘粥, 單騎出入村野, 盡心賑救, 一境賴以全活。 百姓等少有冤抑, 悉如子訴於父, 情無阻間, 相約從令, 不忍欺誑, 似有古循吏之風。 巡到本邑, 品官、校生、百姓等, 遮擁馬首, 具呈愛民之意, 審察其情, 似不出於虛僞。 字撫之誠, 久而不衰, 願特施奬典, 以礪其餘。"】 下于政院曰: "金光軫安瑋實跡, 只云居官守法, 賦役平均, 其賜鄕表裏一襲。 南宮淑則見其實跡, 似不偶然, 盡心爲之, 其給加資, 以示奬勸之意。"


  • 【태백산사고본】 52책 10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86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