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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102권, 중종 39년 4월 29일 정유 5번째기사 1544년 명 가정(嘉靖) 23년

사헌부가 후릉을 봉심하는 일을 아뢰다

헌부가 아뢰기를,

"후릉(厚陵)의 정자각(丁字閣)이 전부 불탄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니, 봉심(奉審)하여 신(神)을 안정시키는 일을 조금도 늦출 수 없습니다. 대저 일은 경중이 있고 폐단은 대소가 있는 법입니다. 선왕(先王)의 능침(陵寢)이 다 재가 되었으니, 비록 이는 인간의 화재이기는 하지만 실로 천재(天災)나 다름없습니다. 무릇 신자(臣子)인 사람으로서는 마땅히 서둘러 달려가 봐야 할 것인데, 지금 소소한 역말의 폐해 때문에 즉각 봉심하지 않고서 재변을 심상하게 여겨 예를 폐하고 있으니, 선조를 받드는 의리에 어그러지는 일입니다. 영서(迎曙) 【역(驛) 이름이다.】 일로(一路)는 비록 북경(北京)에 가는 행차(行次)를 담당하게 되지만 경기(京畿) 안의 다른 찰방(察訪)들이 분장(分掌)하고 있는 길들이 또한 많이 있으니, 소소한 폐단을 헤아리지 말고 하루바삐 내보내어 봉심하게 하소서.

경상도 관찰사 이언적(李彦迪)과 의성 헌령(義城縣令) 남규년(南虬年)은 송사하는 사람 이헌(李軒)이 허물을 돌리니, 자기들의 사사로운 노여움으로 인해 이언적은 한두 차례 형문(刑問)하라고 즉각 환송하였고, 남규년은 멋대로 자기들에게 허물돌린 것을 형추(刑推)했습니다. 피혐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 차례나 형문하다가 형장 아래서 숨이 떨어지게 하였으니 매우 잘못되었습니다. 아울러 파직(罷職)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후릉은 마땅히 즉각 봉심하여 신(神)은 안정시켜야 하는데 지체하고 있어 과연 합당치 못하니 아뢴 대로 하라. 이언적·남규년의 일은 아뢴 뜻이 지당하니 모두 아뢴 대로 하라."

하고, 이어 정원에 전교하였다.

"왜노들이 사절(謝絶) 여부는 시급한 일이 아니니, 대신들이 후릉 봉심하기를 기다린 다음에 의논하도록 하라."


  • 【태백산사고본】 52책 102권 83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80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교통-육운(陸運) / 군사-금화(禁火)

○憲府啓曰: "厚陵丁字閣, 全數火燒, 事甚駭愕, 奉審安神, 不可少緩。 大抵事有輕重, 弊有大小。 先王陵寢, 擧爲灰燼, 此雖人火, 實是天災。 凡在臣子所當遑遑奔走, 而今以驛馬小弊, 不卽奉審, 玩災廢禮, 有乖奉先之義。 迎曙 【驛名。】 一路, 雖當赴京之行, 畿內他察訪分掌之路亦多, 請勿計小弊, 刻日發遣奉審。 慶尙道觀察使李彦迪義城縣令南虬年, 以訟者李軒歸咎, 乘其私怒, 彦迪則一二次刑訊事, 遽卽回送, 南虬年則任然刑推, 自己歸咎之事, 不但不避, 至於三次刑訊, 以致杖下殞命, 至爲非矣。 請竝罷職。" 答曰: "厚陵, 卽當奉審安神, 而至於稽緩, 果爲不當, 如啓可也。 李彦迪南虬年事, 啓意至當, 竝如啓。" 仍傳于政院曰: "倭奴謝絶與否, 非汲汲之事, 待大臣等奉審後, 議之可也。"


  • 【태백산사고본】 52책 102권 83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80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교통-육운(陸運) / 군사-금화(禁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