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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102권, 중종 39년 4월 12일 경진 3번째기사 1544년 명 가정(嘉靖) 23년

사간 경혼 등이 기묘 사화 때의 사람들에 대한 차자를 올리다

사간 경혼(慶渾)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시종이 올린 상소는, 널리 온 나라의 공론을 모아 만세에 시비를 확정하여 지하(地下)에 있는 사람들의 원통함을 씻어주고 사습(士習)을 바로잡게 하려 한 것으로, 말이 매우 간절하고 지극합니다. 전하(殿下)께서 진실로 허심 탄회하게 용납하여 받아주셔야 하는데, 신들이 삼가 비답(批答)하신 말씀을 보건대 서운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지난 기묘년에 조광조(趙光祖)가 전하께서 정신을 가다듬어 다스리기 도모하시는 때를 만나 전하께서 현명한 사람을 좋아하고 착한 말을 반가와하는 성의를 알고서, 스스로 이 몸이 요(堯)·순(舜)과 같은 임금을 만났으니 당(唐)·우(虞) 때와 같은 다스림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나이 젊고 기운이 예민하므로 하는 일마다 옛사람들이 한 것만 사모하여 때에 맞게 할 것은 헤아리지 않고 한갓 당시의 폐단을 바로잡기에만 힘썼습니다. 한 시대의 정치를 새롭게 하려면 경장(更張)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옛 헌장을 거지반 변경하게 되고, 선악을 구별하려고 생각하면 사람들을 선한지 악한지를 가리지 않을 수 없기에 자연 거슬림을 받는 경우가 많아 원망과 분노가 후세에까지 가게 됩니다. 인재를 뽑는 길은 오직 과거에 있지만 유일(遺逸)인 선비들을 진출시키려고 생각하여 현량과(賢良科)를 두었고, 훈적(勳籍)의 기록은 여러해가 된 것이지만 외람하게 기록된 잘못을 싫어하여 추탈(追奪)하자는 논을 제기한 것입니다. 【기묘년 봄 현량과를 설치하고, 또한 정국 공신(靖國功臣)은 허위로 참록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사등(四等) 공신을 추탈할 것을 계청(啓請)했었다.】

또 그와 함께 진출한 사람들이 반드시 모두 선한 것이 아니라 거개 신진(新進)으로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서로들 중도에 벗어나는 논을 숭상하여 괴이하고 격렬한 풍습을 조성, 조정이 안정을 잃게 되고 나랏일이 요란하게 되었던 것인데, 그런 다음에는 비록 억제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때 요란하게 된 것과 과격하게 한 책임을 논한다면 조광조가 진실로 죄를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마는, 그가 한 일을 본다면 모두 옛사람들이 남긴 뜻을 본받은 것이고, 그가 처신한 방법을 찾아본다면 조금도 사사롭거나 간사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있는 것만 알았지 가정이 있는 것은 몰랐고 임금이 있는 것만 알았지 자신이 있는 것은 몰랐으며, 뜻이 임금은 ·과 같은 임금을 만들고 백성은 ·의 백성처럼 만들려고 했을 뿐입니다. 무슨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가령 그의 마음에 일분(一分)이라도 사사로운 뜻이 있었다면, 한 사람의 이목은 속이기 쉬워도 만 사람의 이목은 속이기 어렵고 한때의 공론은 피할 수 있어도 뒷날의 공정한 기롱은 피할 수 없는 법입니다. 조광조의 마음을 논하는 사람들이 당시에도 딴 말이 없었고 후세에도 딴 의논이 없었으니, 그 사람이 간사한지 올바른지는 진실로 헤아릴 수 있는 일입니다.

조광조의 죄는 2∼3의 신하가 【남곤(南袞)·홍경주(洪景舟)·심정(沈貞) 등을 가리킨다.】 어두운 밤에 아뢴 말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광명 정대한 데에서 나온 것이 아닌데, 그 2∼3의 신하들이 과연 모두 간사한 마음이 없이 전하께 충성한 사람들입니까?

전하께서 이미 과격하게 하는 풍습을 열어놓은 것과 어지럽게 고치는 폐단을 일으켜 놓은 것으로 이미 죄를 가하고, 그 사람이 나라를 위한 충성과 간사함이 없는 결백한 마음을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끝내 드러내지 않으신다면, 만세의 공론이 장차 없어지고 그 사람의 눈이 지하에서도 감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신들이 조광조는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과격하게 한 풍습은 책해야 하고 어지럽게 고친 잘못은 죄주어야 한다고 여깁니다마는, 이미 그런 죄로 현륙(顯戮)을 받은 지가 어언 26년이나 지났습니다. 단지 그가 과격하게 한 죄만 책하고 그가 간사한 마음이 없는 것은 드러내지 않으시어 천위(天威)가 멎지 않고 지하의 원통이 씻어질 길 없으니,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의 호오(好惡)가 치우치는 데가 있어 중을 잃게 되는 것인가 싶습니다.

만일 그 당시에 천과(薦科)에 끼었던 사람 중에 그럴 만한 사람이 못되어 마침내 부도(不道)한 짓 한 것을 들어 조광조에게 죄를 가한다면, 잘못 추천한 죄를 면할 수 없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요(堯)임금같이 하면서 행동은 도척(盜跖)같이 하는 무리가 뒷날에 난을 만드는 음모를 세울 줄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겠습니까? 전하께서 이미 그의 과오를 아셨고 또한 그에게 간사한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아셨으면서 한갓 그의 죄만 다스리고 그의 마음은 따져보지 않으신다면, 조광조의 원통은 씻길 날이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요사이 사람들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고 유신 정치(維新政治)를 도모하기 위하여 오래 초야(草野)에 방치되었던 사람들을 【김안국(金安國)·김정국(金正國)·정순붕(鄭順朋)·신광한(申光漢)·유인숙(柳仁淑)·이청(李淸) 등이 모두 기묘년의 당(黨)에 연루되어 파산(罷散)되었었다.】 다시 조정의 반열(班列)로 복귀시킨 이가 많습니다. 바야흐로 그들과 함께 국정(國政)을 다스리는데 우로(雨露)와 같은 은덕이 유독 죽은 사람에게만 미치지 못하므로, 호오가 올바르게 되지 못하고 시비가 정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비로서의 행신을 조심하려고 뜻을 두는 사람들이 모두 조광조를 경계로 삼고 기절(氣節)을 화의 근본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투미(偸靡)한 습관과 나약하게 두려워하는 풍조가 순치(馴致)되었으니 장차 예교(禮敎)가 없어지고 선비들의 풍습이 크게 무너질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미 죽은 사람에게 은덕을 베푸는 것이 비록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사기(士氣)를 진작시키고 사습(士習)을 바로잡는 데에 있어서는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통쾌하게 공론대로 하시어 물정(物情)을 위로해 주신다면 이보다 다행함이 없겠습니다."

하니, 답하였다.

"기묘년 때의 여타 사람은 지엽(枝葉)들이라서 다시 쓰는 것이 합당하다. 조광조의 당초 마음은 비록 그러했다고 하지만, 마침내 조정을 요란하게 만들어 죄가 없지 않기 때문에 의논하는 사람들도 또한 죄가 없지 않다고 한 것이다. 만일 평소에 죄가 있다 하여 다스렸다면 죽은 뒤에 직첩(職牒)을 추급(追給)할 수 있겠는가? 죽은 사람에게 직첩을 주는 것은 비록 관계가 없기는 하나 국시(國是)가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 정해지지 못할 것이다. 만일 국시가 정해지지 않는다면 뒤폐단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윤허하지 않는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102권 58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67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사상-유학(儒學)

○司諫慶渾等, 上箚曰:

侍從上疏, 博採一國之公論, 欲定萬世之是非, 冀雪幽冤, 以正士習, 言甚切至。 殿下固宜虛心容受, 而臣等伏見批答之辭, 不勝缺望。 頃在己卯, 趙光祖遇殿下勵精圖治之日, 知殿下好賢樂善之誠, 自以爲身逢之君, 可復之治。 年少氣銳, 動慕古道, 不揆時措之宜, 徒務救時之弊。 思欲新一代之政, 則不能不更張, 而舊章率多撓改; 思欲旌別淑慝, 則不能不臧否人物, 而見忤者增多, 怨憤至於後世。 取人只在科第, 而思振遺逸之士, 則有賢良之擧, 勳籍之錄, 積有年紀, 而惡其冗濫之失, 則起追奪之論。 【己卯春, 設賢良科, 又以靖國功臣, 冗僞者多, 論請追奪四等功臣。】 且其所與而進之者, 未必皆善, 率多新進喜事之人, 爭尙過中之論, 以成詭激之風, 朝廷失於安靜, 國事至於紛擾, 然後雖欲裁之抑之, 自不能得也。 論一時紛更之事, 過越之責, 則光祖固不能辭其罪矣。 第以見其設施之事, 皆倣古人之遺意, 求其處己之道, 則無一毫私邪之心。 知有國而不知有其家, 知有君而不知有其身, 志欲君之君, 民之民而已。 豈有他意哉? 如有一分私意於其心, 則一人之耳目易欺也, 萬人之耳目難欺也, 一時之公論可逃也, 後日之公(譏)〔議〕 不可逃也。 論光祖之心者, 當時無異辭, 後世無異議, 則其人之邪正, 固可量焉。 光祖之罪, 成於二三臣 【指南袞、洪景舟、沈貞等。】 昏夜之啓, 而不出於光明正大, 則彼二三臣者, 果皆無邪心, 而忠於殿下者乎? 殿下旣以開過激之習, 起紛更之弊, 已加罪誅, 而其人爲國之忠, 無邪之心, 竟未暴白於今日, 萬世之公論, 將至泯沒, 而其人之目, 將不瞑於地下矣。 臣等非以光祖爲無罪也。 過激之習可責也, 紛更之失可罪也。 旣以其罪身被顯戮, 于今二十六年之久矣。 只責其過越之罪, 不表其無邪心, 而天威未霽, 幽冤莫伸, 則竊恐殿下之好惡, 有所偏而失於中也。 若以當時參於薦科者, 或非其人, 而終有不道之事, 加罪於光祖, 則謬薦之罪, 雖不得辭。 行之輩, 後日構亂之謀, 豈得以預知之乎? 殿下旣知其有過, 又知其無邪心矣, 徒治其罪, 不原其心, 則光祖之冤, 無時而得洩矣。 殿下近者, 滌瑕盪咎, 圖治惟新, 久廢荒野之人, 【金安國、金正國、鄭順朋、申光漢、柳仁淑、李淸等, 皆坐己卯之黨罷散。】 得還朝列者多矣。 方與共理國政, 而雨露之恩, 獨未及於朽骨, 故好惡不正, 是非靡定, 士之有志飭行者, 皆以光祖爲戒, 以氣節爲禍本。 馴致偸靡爲習, 畏懦成俗, 將至禮敎陵夷, 士風大毁。 殿下施恩於已死之人, 雖若不關, 其於作士氣正士習, 大有重焉。 伏願殿下快從公論, 以慰輿情, 不勝幸甚。

答曰: "己卯之時, 他餘人則枝葉也, 復用當矣。 趙光祖初心, 則雖曰然矣, 竟致擾亂朝廷, 其罪不無, 故議者亦曰, 非無罪也。 平時若以爲有罪而治之, 則死後追給職牒可乎? 於朽骨給牒, 雖不關矣, 然國是必由是而不定也。 若國是不定, 則豈無後弊乎? 是以不允。"


  • 【태백산사고본】 52책 102권 58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67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사상-유학(儒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