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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101권, 중종 38년 7월 22일 을축 1번째기사 1543년 명 가정(嘉靖) 22년

김인후·이언적이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데에 유념할 것을 건의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검토관(檢討官) 김인후(金麟厚)가 아뢰기를,

"전에 조강(朝講)에서 신의 말소리가 작아서 분명히 아뢰지 못하였으므로 지극히 황공합니다. 기묘년 사람은 한때 한 일이 죄다 옳지는 못하나, 그 본심은 터럭만큼도 나라를 속인 것이 없는데도 마침내 무거운 죄를 입었습니다. 그 뒤에 죄 지은 사람 중에는 대역 부도(大逆不道)하여 죽어도 죄가 남을 자라도 세월이 오래되어 혹 복직(復職)된 자가 있는데, 기묘년 사람은 오히려 상은(上恩)을 입지 못하니, 신은 홀로 온편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뿐이 아니라, 그들이 한때 숭상하던 《소학》·《향약(鄕約)》의 글도 모두 폐기하고 쓰지 않습니다. 《소학》·《향약》자양(紫陽)주자(朱子)179) 와 남전(藍田)의 여씨(呂氏)180) 의 글이며, 주자·여씨는 다 성현(聖賢)인데, 어찌 그 글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의 선비는 속상(俗尙)에 빠져서 읽어서는 안 될 글이라 하여 버리니, 더욱 온편하지 못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기묘년 사람을 아주 불궤(不軌)181) 로만 논하므로, 지금까지도 이런 말은 사람들이 다 촉범(觸犯)이라 생각하여 꺼립니다. 그러나 신의 소견은 이러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저들이 마음을 쓴 것이 그르지 않다 할지라도 장차 나라를 그르치는 일이 있을 것이므로, 조정이 그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소학》·《향약》을 사람 때문에 폐기할 수는 없다."

하였는데, 특진관 이언적(李彦迪)이 아뢰었다.

"근래 강상(綱常)의 이변이 거듭 나타납니다. 무지한 짐승일지라도 사랑의 천성은 없지 않으므로, 효경(梟獍)182) 이 아니면 어미를 범하는 것이 없는데, 지금 사람들 중에는 도리어 짐승만도 못하여 부자·형제 사이에도 천륜을 끊는 자가 흔히 있으니, 이것은 일조 일석에 생긴 일이 아닙니다. 사림(士林)의 화(禍) 【기묘년 사람을 가리킨다.】 가 일어나고부터 인심이 퇴패(頹敗)하고 풍속이 훼란(毁亂)하여 사람들이 배우는 일을 하지 않고 음식과 남녀의 욕심만을 알기 때문에 비상한 이변을 자주 일으키니, 만세 뒤에 사책(史冊) 가운데에 어찌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겠습니까. 조종 때에는 교화를 밝히고 인륜을 두텁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 취재(取才) 때에도 《소학》을 모두 강(講)183) 하였고,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고 또 중외(中外)에 반포하여 권려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을 즐거워하여 다스림에 누를 끼치는 이변이 없었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에는 오로지 학문에 힘쓰고 도타이 사유(四維)184) 를 숭상하였으므로 그 전해온 풍속이 크게 변하는 데는 이르지 않았으나, 사림의 화를 겪고부터는 사람들이 다 교화를 말하기를 꺼려서 사습(士習)이 글러지고 풍속이 밝지 않기가 한결같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 쌓인 폐단을 하루아침에 갑자기 고칠 수는 없으나, 위에서 조종을 본받아 교화를 밝히고 인륜을 두텁게 하는 데에 유념하신다면, 아랫사람이 저절로 보고 느껴 변화하여 날로 착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101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6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변란-정변(政變) / 향촌(鄕村) / 윤리(倫理)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

  • [註 179]
    자양(紫陽)의 주자(朱子) : 주자의 이름은 희(熹). 아버지 주송(朱松)이 안휘성(安徽省) 흡현(歙縣)에 있는 자양산(紫陽山)에서 독서하였는데, 주희가 그 청사(廳事)를 자양 서당(紫陽書堂)이라 하였으므로 자양은 주희의 호(號)가 되었고, 후세 사람이 흡현에 자양 서원(紫陽書院)을 세웠다. 《소학(小學)》은 주희의 지시에 따라 문인 유자징(劉字澄)이 찬술한 것이다.
  • [註 180]
    남전(藍田)의 여씨(呂氏) : 송대(宋代)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사람 여대균(呂大均). 《향약(鄕約)》은 그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며, 뒤에 주희가 확충하였다.
  • [註 181]
    불궤(不軌) : 반역.
  • [註 182]
    효경(梟獍) : 효는 어미를 잡아 먹는 올빼미, 경은 아비를 잡아 먹는 파경(破獍)이라는 짐승. 흉악하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 [註 183]
    강(講) : 강독 시험(講讀試驗).
  • [註 184]
    사유(四維) : 예(禮)·의(義)·염(廉)·치(恥).

○乙丑/御晝講。 檢討官金麟厚曰: "前於朝講, 臣語音低微, 不能分明啓達, 至爲惶恐。 己卯之人, 其一時所爲之事, 雖不能盡是, 然其本心, 則無一毫欺國, 而終蒙重罪。 其後被罪之人, 雖大逆不道, 死有餘罪者, 日月已久, 則或有復職者, 而己卯之人, 尙不蒙上恩, 臣獨以爲未便。 非特此也, 其一時所尙《小學》《鄕約》之書, 幷棄而不用。 《小學》《鄕約》, 紫陽 朱子藍田 呂氏之書也, 皆聖賢之人, 豈其書不善? 而今之儒者, 溺於俗尙, 以爲不可讀之書而棄之, 尤爲未便。 不知者, 則己卯之人, 全以不軌論之, 故當今之時, 如此之言, 人皆以爲觸犯而諱之。 然臣之所見如此, 敢以啓達。" 上曰: "彼人之設心, 雖云不非, 而將有誤國之事, 故朝廷欲矯其弊而如是耳。 然《小學》《鄕約》, 則不可以人而廢之也。" 特進官李彦迪曰: "近來綱常之變, 疊見層出, 雖禽獸之蠢蠢, 慈愛之天不泯, 故非梟獍, 則無犯親之物。 今之人類, 反不如禽獸, 父子兄弟之間, 滅絶天倫者, 比比有之, 此非一朝一夕之故。 自士林之禍 【指己卯人】 起, 而人心頹敗, 風俗毁亂, 人無爲學之事, 而但知飮食男女之慾, 故屢致非常之變, 萬世之下, 史策之中, 寧不貽愧耶? 祖宗朝, 以明敎化、厚人倫爲本, 如《小學》之書, 至於取才時皆講, 而翻譯《三綱行實》, 又頒布于中外而勸勵之, 故人樂於爲善, 而無累治之變。 式至殿下卽位之初, 專務學問, 敦尙四維, 故其遺風餘俗, 不至於大變。 而自經士林之禍, 人皆諱言敎化, 而士習之訛謬, 風俗之不明, 一至於此。 此積累之弊, 不可一朝而卒革, 然自上法祖宗, 而以明敎化、厚人倫爲心, 則下人自然觀感變化, 而日趨於爲善之域矣。"


  • 【태백산사고본】 51책 101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6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변란-정변(政變) / 향촌(鄕村) / 윤리(倫理)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