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을 쳐 호소하는 자의 사연을 묻지 말고 지키는 관리를 추고하게 하다
정원에 전교하기를,
"평상시 징[錚]을 쳐 진소(陳訴)하는 자는 【이날 나이가 80에 가까운 어떤 사람이 징을 들고 몰래 궐정(闕庭)으로 들어와 사정전의 합문(閤門) 밖에 와서 쳤다. 그때 상이 경연에 나아갔었는데 그 소리가 어소(御所)에까지 들렸다.】 반드시 원통하고 억울함이 있어서 그 사연을 묻게 하고자 해서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묻는다면 뒤폐단이 있을까 염려스러우니, 묻지 말고 내쫓는 것이 좋겠다."
하니, 정원이 아뢰기를,
"지금 이 징을 친 자는, 광화문(光化門) 서협(西夾)에서 홍례문(弘禮門)과 근정문(勤政門) 동협(東夾)을 거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 각 문을 지키는 군사와 수문장(守門將)·내금위 장(內禁衛將)을 아울러 추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한 남자가 처소를 잃은 것으로도 왕정(王政)의 잘못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을 품고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 징을 친 자를 제 곳을 얻은 자라고 할 수 있겠으며 정치에 하자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가 호소하고자 한 뜻을 묻지도 않고 쫓아냈으니 이 사람의 뜻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맑은 교화에 젖어 편히 살고 즐거이 일하는 백성은 아닐 것이다. 대체로 임금이 계신 곳은 구중(九重)의 궁문 안으로, 당(堂) 아래는 천리나 되도록 멀다. 이 때문에 아랫 백성의 뜻이 통하지 못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등문고(登聞鼓)를 설치한 것은 비록 옛 성인(聖人)의 일은 아니지만 민정(民情)을 통하여 그들의 원통하고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한 가지의 일이었으니, 어찌 설치한 뜻이 없었겠는가. 지금은 특별히 등문고를 설치하는 것도 보지 못했고 또 북을 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듣지 못했으니, 이것이 어찌 한 백성도 원통하고 억울함이 없어서 그러했겠는가?.
전교하였다.
"징을 친 자가 만약 징을 숨겨 가지고 들어왔다면 문을 지키는 군사가 알지 못했을 듯하다. 실제로 먹은 마음은 없었더라도 우선 추고하게 하라."
- 【태백산사고본】 51책 100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661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사(宗社) / 역사-사학(史學)
○傳于政院曰: "常時擊錚陳訴者, 【是日, 有一人年近八十者擊錚。 潛入闕庭, 至思政殿閣門外擊之。 時, 上御經筵, 其聲徹於御所。】 必有冤悶, 欲其問之, 故如是矣。 然若問之, 則恐有後弊, 不問黜之可也。" 政院啓曰: "今此擊錚者, 自光化門西夾, 弘禮門、勤政門東夾入來云。 其各門守把軍士及守門將、內禁衛將, 請竝推考何如?"
【史臣曰: "一夫失所, 可以知王政之闕, 則今此抱冤鬱之情, 擊錚於至近之地者, 其可謂獲所, 而政治之無疵乎? 其所欲訴之意, 黜而不問, 則此人之情, 未可知也, 然固非沐淸化, 安生樂業之民矣。 大抵君門九重, 堂下千里, 故下情之不達, 固其所也。 登聞鼓之設, 雖非古昔聖王之事, 欲其通民情、伸冤枉之一端, 則豈無設之之意哉? 今者未見別設登聞之皷, 而亦未聞擊之者, 則是豈曾無一民之冤憫者, 而爲然乎?"】
傳曰: "擊錚者, 若懷錚入來, 則把門軍士, 似不能知。 雖實無情, 姑令推之。"
- 【태백산사고본】 51책 100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661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사(宗社)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