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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99권, 중종 37년 12월 27일 임인 1번째기사 1542년 명 가정(嘉靖) 21년

이언적이 모친의 봉양을 위해 지방관으로 가기를 원하니 윤허하다

우참찬 이언적이 사장(辭狀)으로 아뢰기를,

"신이 병든 모친을 멀리 떠나 있으니, 애타는 마음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감히 간절한 심정을 피력하여 성상의 위엄을 범하였는데도 성상께서는 부드럽고 다정하게 타이르시면서 조정을 떠나는 것은 허락치 않고 다만 왕래하면서 근친(覲親)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 명을 들으니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고, 감격한 끝에 눈물이 쏟아져서 무어라 표현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은 용렬한 사람으로 외람되이 성상의 은총을 받아 조정의 반열에 참여하였습니다. 천은(天恩)이 망극하고 권애(眷愛)가 비상하니, 분골 쇄신하여 노력한다 하더라도 성상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는데다 의리는 중대하고 몸은 가벼우니 어찌 목숨인들 아끼겠습니까. 다만, 모친의 나이가 이미 쇠경(衰境)에 들어 숙환이 날로 중해지더니 금년 봄부터는 기력이 현저하게 쇠약해지고 음식 맛도 전혀 모르며 현기증이 수시로 일어나 인사 불성이 되기까지 했고 묵은 냉증이 속을 괴롭혀서 몸을 뒤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쇠잔한 나이에 병이 많아서 남은 날이 많지 않으므로 금방 끊어질 듯한 기식(氣息)이 아침에서 저녁까지도 지탱하기 어려운 형편이니, 비록 억지로 벼슬에 종사하려고 하나 정리에 차마 못할 바가 있습니다. 만일 질병이 위독한 연후에 바야흐로 돌아가 시병하도록 허락하신다면 미처 봉양할 날짜가 없어서 영원히 무궁한 아픔을 품게 될까 염려됩니다. 이래서 감히 두세 번이나 무엄하게 우레 같은 위엄을 범해 가며 애절한 심정을 피력하여 성상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합니다.

신은 들으니, 충신은 효자의 가문에서 구한다 합니다. 자식이 되어 그 어버이에게 다하지 못한 바가 있다면 천지의 사이에 죄를 짓는 것인데, 어떻게 충성을 나라에 옮겨 몸을 잊고 절의를 다할 것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옛적 성왕(聖王)이 효(孝)로 정치를 하여 그 인효(仁孝)의 마음을 미루어 백성에 미쳐가서 그들로 하여금 모두 각자 그 정리를 다하게 하였으니, 대개 정교(政敎)를 베풀어 풍화(風化)를 잘하는 근본은 이보다 우선적인 것이 없습니다.

신이 삼가 국전(國典)을 상고하니, 3년에 한 번 근친하고 5년에 한 번 성묘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녹봉을 중히 여기고 어버이를 소홀히 대하도록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 남의 신하로 일단 나라에 몸을 맡겼으면 집안일을 돌볼 겨를이 없으므로, 비록 생존한 부모나 어버이의 묘소라 하더라도 관직에 있을 때는 자주 왕래함으로써 관직을 폐지시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버이 나이가 70∼80세가 된 경우는 돌아가서 봉양하도록 규정하였으니, 이는 인생이 이 정도의 나이에 이르면 해가 서산에 닿은 격이어서 목숨이 아침 이슬과 같아 이 때에 미처 봉양하지 못한다면 망극한 은혜를 갚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어버이가 그 자식에게 봉양받지 못하고 자식이 그 어버이에게 마음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어진 임금이 측은히 여기는 바라, 돌아가 봉양할 것을 차마 허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임금과 어버이는 하나이므로 본디 경중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에 일할 시일은 기니, 어느때에 몸을 내맡긴다 하더라도 오히려 늦지 않지만, 어버이의 은혜를 갚을 시일은 짧으니, 남은 나이에 봉양이 미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삼가 전하께서 저의 작은 성의를 애긍히 여기어 특별히 생성(生成)의 은혜를 내리사 신에게 목민(牧民)의 직임을 주어서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게 해주신다면, 미천한 신에게 맛난 음식을 장만하여 노쇠한 자친을 위로하는 행운이 될 뿐만 아니라, 성조(聖朝)에도 옛 전장(典章)을 준수하고 효리(孝理)를 중히 여기는 미덕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와 같은 성은을 헤아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신이 비록 밖에 있다 하더라도 어찌 감히 강호(江湖)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잊겠습니까. 오로지 함께 다스릴 것을 생각하여 밤낮으로 백성을 구휼하시는 성상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이 사장을 정원에 내리며 일렀다.

"이언적의 사장은 사세로는 들어주기 어려운 듯하다. 그러나 여러번 사직한 사연이 간절하기 때문에 윤허하니, 그 도의 감사나 수령 중에서 궐원이 생기는 대로 차임해 보낼 일로 승전을 받들라."


  • 【태백산사고본】 50책 99권 78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644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壬寅/右參贊李彦迪辭狀啓曰:

臣遠離衰病之親, 難禁迫切之情, 敢竭危懇, 干冒宸嚴, 伏蒙聖慈, 溫諭丁寧, 不許去朝, 只令往來觀省。 聞命震惕, 靡所自容, 感激隕涕, 不知所喩。 臣以庸陋, 濫叨誤寵, 坫冒朝列, 天恩罔極, 隆眷殊常, 殞首刳心, 不足以上報, 義重身輕, 曷惜軀命? 第以母年, 已迫衰暮, 沈痾日益深重, 今年春夏以來, 氣力頓覺羸瘁, 飮食亦不識味, 風眩時作, 或至昏憒不省, 宿冷攻中, 有時不能轉側, 殘年多病, 餘日無多, 奄奄氣息, 朝不保暮, 雖欲黽勉從仕, 情有所不忍。 若時疾病危篤, 然後方許歸侍, 恐無逮養之日, 永懷窮天之痛, 玆敢不避再三之瀆, 觸冒雷霆之威, 瀝血陳懇, 冀回天聽。 臣聞求忠臣於孝子之門。 爲人子, 而有所未盡於其親, 則負罪天地之間, 又何以移忠於國, 忘身盡節之可望? 古之聖王, 以孝爲治, 推其仁孝之心, 以及於民, 使皆各盡其情, 蓋施政敎善, 風化之本, 莫先於此。 臣謹按國典, 三年一覲親, 五年一掃墳者, 此非使人重利祿, 而薄於親也。 蓋人臣委質於國, 不暇顧私, 雖父母與親之丘壠在外, 亦不得頻數往來廢職, 及其親年七十八十, 則許令歸養者, 豈非以人生至此, 日迫西山, 命同朝露, 於是而養育未及焉, 則罔極之恩, 無時可酬? 親而不獲養於其子, 子而不盡心於其親, 此仁聖之所惻念, 而不忍不許歸者也。 竊念君親一體, 固無輕重之殊, 然事國時長, 尙捐軀而未晩, 報親日短, 恐不逮於餘齡。 伏惟殿下, 哀矜螻蟻之誠, 特垂生成之恩, 畀臣牧民之寄, 使畢將母之願, 則非特在微臣, 有供甘旨慰衰顔之幸, 抑亦於聖朝, 有遵舊章重孝理之美。 聖恩極此, 天地莫量。 臣雖在外, 何敢忘江湖憂國之念? 職思共理, 庶無負宵旰恤民之心。

下于政院曰: "李彦迪辭狀, 似難可聽, 但累辭懇切, 故允之。 其道監司守令中, 隨闕差下事, 奉承傳。"


  • 【태백산사고본】 50책 99권 78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644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