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 시강원 보덕 정원이 세자에게 학문에 힘쓰고 근면할 것을 아뢴 표문
세자 시강원 보덕(世子侍講院輔德) 정원(鄭源)이 세자에게 글을 올렸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10월 19일 본원에 입직하였다가 마침 병이 들어 다음날 조강(朝講)에 입시하지 못하였는데, 곧 내관(內官)을 보내 존문(存問)하시고 따라서 주약(酒藥)을 주셨으니 매우 각별한 은전을 내리셨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미천한 몸이 외람되어 시강(侍講)의 장(長)에 있으니 몸을 돌이켜보거나 분수를 헤아려볼 때에 항시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보도(輔導)의 책임에는 조금도 도움이 없으면서 도리어 높은 은총을 받으니 그에 보답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충절을 피력하여 평생 사우(師友)에게 배운 것을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源)은 들으니 도(道)는 하늘에서 나와 사람의 마음에 갖추어지고 사물(事物)에 나타나는 것인데, 이를 밝혀 행하는 것은 적격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합니다. 대개 사람은 모두 자기에게 성(性)이 있음은 알면서도 그것이 하늘에서 나온 것으로 나와의 간격이 없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사물에 도(道)가 있음은 알면서도 그가 성(性)에서 말미암아 날마다 쓰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시경(詩經)》에 ‘하늘은 밝아서 네가 나간 곳을 굽어보고 하늘은 밝아서 네가 노는 곳을 환하게 본다.’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사람과 일체가 되어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것임을 말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서경》 태갑(太甲)에 ‘이 하늘의 밝은 명(命)을 돌아보라.’ 하였습니다. 대개 하늘이 부여한 것은 명(命)이고 사람이 받은 것은 성(性)이고 물(物)에 감동되는 것은 정(情)이고 성(性)·정(情)을 거느리는 것은 심(心)입니다.
대저 심이란 것은 도의 종주(宗主)여서 천하의 이치가 모두 여기서 나옵니다. 어떤 것에든 있지 않음이 없고 어느때든 그렇지 않음이 없습니다. 어떤 것에든 있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크게는 천지의 운행에 이르고 작게는 한 티끌의 미세함에 이르기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때이든 그렇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멀리는 고금의 변화에 이르고 가까이는 순간의 깜짝이는 시각에 이르기까지 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一)에서 만(萬)으로 확산될 경우는 체통(體統)이 찬연(燦然)하여 어지럽지 않고, 만에서 일로 축소될 경우는 근본(根本)이 혼연(渾然)하여 서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체(體)와 용(用)이 한 근원이고 현(顯)과 미(微)가 간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염계(濂溪)351) 가 그 체와 용을 논하기를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고 느껴서 천하의 일을 통한다.’ 하였습니다. 대개 그 용은 지극히 나타나지만 그 체는 지극히 은미한 것입니다. 그 체는 지극히 은미하기 때문에 고요한 것은 엿볼 수 없고, 그 용은 지극히 나타나기 때문에 감통(感通)한 것을 그래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 기틀됨이 어찌 은미하지 않겠습니까.
대저 기틀이란 움직임의 은미한 것이면서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이 그로 말미암아 나누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움직이기를 천리로써 하면 은미한 것이 나타나고 움직이기를 인욕으로써 하면 위태로운 것이 더욱 위태로와져 인욕이 우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 순간이라도 혹 살피지 못함이 있으면 도(道)에서 멀리 떨어지게 됨을 스스로 깨닫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태만하고 안일함을 두려워하며, 조심하고 쉬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힘써서 수렴하고 확립하여 항시 경외(敬畏)하는 마음을 간직합니다. 비록 사물은 이미 스쳐 가고 사려(思慮)는 아찍 싹트지 않은 잠깐 사이에도 스스로 각성하여 마음이 어둡지 않게 만들고, 그 기틀이 이미 움직이고 이 생각이 이미 싹틀 때에 이르러 남은 비록 모르더라도 그 가운데 밝은 마음, 곧 속이지 못할 것이 있다면 혼자 있는 어두운 방 가운데에서도 더욱 정신을 환기시켜 그 기미를 살피고 인욕이 싹트려고 하거든 곧 따라서 막아 끊어버려 연달아 흐르는 천리로 하여금 창달되게 하고 잠깐 동안도 간단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시경》에 ‘신(神)이 이르는 것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데 더구나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그 기미의 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싫어하거나 태만함이 있어 과감하게 지나쳐 버린다면 선악(善惡)·길흉(吉凶)의 숨길 수 없음이 이와 같기 때문에 자사(子思)는 《중용(中庸)》에서 계구(戒懼)·신독(愼獨)의 공을 미루어 천지가 제 위치에 놓이고 만물이 이루어지는 극도의 지경에까지로 부연하였습니다. 대개 그 중화(中和)의 도(道)를 극도로 하는 것은 당초 이 마음을 간직하여 살피는 일 이외의 일은 아닙니다.
진실로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순수한 이치에 오직 한마음으로 골똘히 생각해 마지않아서 밝게 천리를 궁구해 가되 털끝만큼도 치우침이 없으면 온갖 변화에 응하는 데 절도에 맞는 화(和)가 아님이 없을 것입니다. 크게는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붕우(朋友), 작게는 음식(飮食)·동정(動靜)에 있어 올바름을 얻는 것이 모두 이 중화(中和)가 충만하고 천리(天理)가 그 사이에 유행(流行)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한몸의 위육(位育)이 있고 한집의 위육이 있으며, 나라 그리고 천하는 모두 중화(中和)가 위육시키는 바 아님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中)이란 것은 성(性)의 덕(德)이며 도(道)의 체(體)요, 화라는 것은 정(情)의 정(正)이며 도(道)의 용(用)입니다. 이 때문에 중화(中和)란 대본(大本)을 세우고 달도(達道)를 행하는 것이니, 바로 천리의 주재(主宰), 곧 이 마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이에서 한마음의 큰 위력이 과연 천지를 제자리에 놓고 만물을 기를 수 있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그 단서를 구하여 힘쓰는 것은 실로 계구·신독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대개 본심(本心)의 선(善)은 그 본체가 매우 미약하여 기품(氣稟)에 구애되고 물욕(物慾)에 가리워 그 해독을 이겨낼 수 없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런 때문에 조존(操存)·성찰(省察)의 공부를 그 어느 하나도 폐지할 수 없으며, 이를 강명(講明)하는 길은 또 반드시 학문으로 말미암은 뒤에야 곧 확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문에 군자의 학문은 이치를 궁구하여 그 지식을 극도로 하는 것보다 우선적인 것이 없으며, 이치를 궁구하는 요령은 반드시 함영(涵泳)하여 그 이치를 함양(涵養)하는 데 달려 있고, 함양하는 힘은 또 경건하게 몸을 가짐으로써 그 근본을 세우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니, 이는 바꿀 수 없는 이치인 것입니다.
대저 천하의 물(物)에는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군신이 된 자에게는 군신의 이치가 있고, 부자가 된 자에게는 부자의 이치가 있고, 부부가 된 자, 형제가 된 자, 붕우가 된 자에서 출입(出入)과 기거(起居), 그리고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대하는 즈음에 이르기까지에도 각각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를 궁구함이 있다면 군신의 중대함으로부터 사물의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 소이연(所以然)을 알지 못함이 없어 조그마한 의심도 없을 것이며, 선(善)의 경우는 그를 따르고 악(惡)의 경우는 그를 버려 털끝만한 누(累)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바로 성현(聖賢)이 먼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나의 지식을 발전시키도록 한 바입니다.
대개 나의 지식에 가리운 바가 있으면 이치를 보는 데 지극하지 못함이 있어 이 마음의 양(量)을 채울 수 없을 것입니다. 진실로 사물의 이치를 이회(理會)하고 입신(入神)하여 참으로 활연(豁然)한 경지를 본다면 비록 불선(不善)을 하도록 몰아세운다 하더라도 자연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지식이 원만하지 못하면서 하루아침에 일을 대하여 억지로 안배(安排)하려 한다면 인욕(人欲)과 사의(私意)가 이미 그 속에 섞이어 있으니 비록 억지로 행하게 한다 하더라도 진실로 오래 견딜 수 없을 것인데 더욱이 어찌 태연스레 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때문에 이치를 궁구하고 몸을 살피는 공부는 본디 같이 진행되어야 하고 게다가 다시 사우(師友)와 강론(講論)하고 명변(明辨)하는 힘을 더한다면 순리(順理)로 와서 모든 의문점이 마치 얼음이 녹듯 확 풀려서 도에 통할 것입니다. 얼음 녹듯 확 풀려서 도에 통한다면 이 마음이 천하의 이치에 환하여 작위적인 게 없이 자연스레 행할 것이니 그 이치가 어찌 매우 간략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곧 이치를 궁구하여 그 지식을 극도로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히 비춰볼 밝은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니면서 한갓 심력(心力)만을 기울이고 심후(深厚)한 기상이 없다면 뜻은 쉽게 천착(穿鑿)되고 소견은 흔히 편협됩니다. 그런 때문에 사려(思慮)를 함양하고 의리(義理)에 함영(涵泳)하는 공부가 더욱 긴밀한 것입니다.
대개 이치를 궁구하지 못한 자는 정말 혼매(昏昧)하여 사리를 아는 바 없을 것입니다. 만일 이치를 궁구하는 자가 종일 사색하되 쫓기는 심정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함영하는 즐거움이 없다면 또 어떻게 깊이 믿고 자득하여 염증을 내지 않고 오래 견딜 수 있겠습니까. 비유컨대,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는 마음을 사시(四時)에 늘 가지고 있으므로, 가을과 겨울에 이르러 말라 떨어진 초목 등은 그 원기를 거두어 그 근간 속에 간직했다가 다음해 봄에 생기가 다시 돋아 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문에 능히 그 함양하는 공부를 극도로 이루어 항상 환기시켜 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한다면 천리가 저절로 붕창(弸暢)하고 심중에 즐기는 재미가 있게 되며, 심중에 이미 즐기는 재미가 있어 그렇게 오래 시일을 경과하면 천리에는 익숙하고 인욕에는 생소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욕 생숙(理慾生熟)의 설이 생긴 이유이며, 맹자가 이른바 ‘대저 인(仁)은 또한 익숙하게 하는 데에 있을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대개 존심 양성(存心養性)의 공부가 이미 익숙하면 천리가 발현되는 것이 심도가 있어서 일상 생활 중에는 오직 이 이치의 유행만을 볼 뿐이기 때문에 이 마음이 풍부한 여유를 갖게 되고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자득의 낙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니 이치를 궁구하는 요령은 반드시 함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란 자체가 출입이 무상한 것이므로 한번 자각하지 못하고 내달아 몸 밖의 물욕을 따른다면 한 몸에는 주인이 없고 모든 일에는 강령이 없게 되니, 비록 잠시 잠깐 사이라 할지라도 이미 이 몸의 소재를 자각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성인의 말씀을 반복하고 사리를 참고하여 의리의 지당한 귀추를 구하겠습니까?
진실로 기운 가지기를 신처럼 하여 항시 각성하고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며, 혼자 있을 때도 신명을 대한 것처럼 하고 드나들 때는 큰 손님을 접대하는 것처럼 조심한다면 총명(聰明)과 예지(睿智)가 다 이로 말미암아 나올 것이며 이것으로 하늘을 섬기고 상제를 제향하면 이것이 바로 자신을 반성하여 성스럽게 한 다음 천하에 통달시킨다는 도이니 성경(誠敬)이 미덥게 되면 자연 화육(化育)의 공을 이룰 것입니다. 옛적에 성인이 ‘경(敬)으로써 수신(修身)하니 백성들이 평안하였고, 독실하고 공손하니 천하가 화평하였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옛날 사상보(師尙父)가 무왕(武王)을 경계하는 말은 경(敬)과 태(怠)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어찌, 경건하면 이 마음이 일정하여 모든 선(善)이 다 갖추어지고, 태만하면 이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모든 선이 다 폐해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경(敬)·태(怠)가 신명(神明)에 있어서 그 효과가 이처럼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런 때문에 주자(周子)의 주정설(主靜說)352) 이나 정자(程子)의 주일훈(主一訓)353) 은 모두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고 주자(朱子)는 또 자세하게 반복 설명하였습니다. 혹 이에 힘써 잠깐 동안도 끊임이 없이 한다면 덕(德)은 온전해지고 욕(欲)은 스러질 것이니, 만세토록 서로 전하는 심법(心法)이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함양하는 공부는 또 경(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우는 데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가 없으면 모든 이치를 분별할 수 없으며, 본원(本源)을 함양하는 요점은 또 그 경(敬)을 확립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에서 경(敬)이란 동정(動靜)을 관통하고 내외(內外)를 합하고 종시(終始)를 관철하므로 감히 어기지 못할 것임을 알겠습니다.
이상에서는 이 마음의 공효의 극치(極致)를 말하여 이치를 궁구하고 함양하는 공부를 되풀이하였고, 끝으로 거경(居敬)의 근본 요점을 말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심학(心學)의 극치요 왕도(王道)의 요체(要體)이니, 예부터 성신(聖神)의 전수(傳授)가 실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저하(邸下)께서는 입극(立極)의 근본을 미루어 밝혀서 선성(先聖)의 계통을 이으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아아, 도통(道統)의 전승이 끊어진 지 오래이니 심학에 힘써서 그 종통(宗統)을 온전하게 할 자가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요(堯)·순(舜) 시대에는 군신이 협심하여 천명을 받들어 때에 맞게 하고 기미를 조심하였으며, 서로 전하는 데 이르러서는 요(堯)가 순(舜)에게 전수한 것은 ‘진실로 그 중도를 지키라.’는 것에 불과하였고, 순이 우(禹)를 경계함에도 역시 이 말로 하면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희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하게 하라는 세 마디의 말을 더 보태었으니, 요에 비해 더 자상합니다. 여기에서 요·순·우의 덕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아서 그 신화(神化)가 극치였는데도 오히려 이 심법을 가지고 서로 경계하면서 전수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천리의 전체를 극도로 궁구하고 인욕의 소멸을 살피게 되는 것이니, 천하의 이치가 여기에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
여타 한(漢)·당(唐)·송(宋) 이후로 다스려짐을 원하는 군주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에 뜻을 두지 않고서 한갓 공리(功利)만을 힘쓰고, 제왕(帝王)이 해야 할 궁리(窮理)·정심(正心)의 학문은 몰랐습니다. 이 때문에 허명(虛明)한 심지(心地)가 인욕(人欲)과 사의(私意)에게 침란(侵亂)을 당하여 그 공평 정대한 체질을 잃고 편당(偏黨)·반측(反側)·암암(黯闇)·시혐(猜嫌)이 날로 마음속에서 요란을 피웠는데 간위(奸僞)·참특(讒慝)의 해독 또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이것들은 다름이 아니라, 이치를 보는 것이 분명치 못하고 성의(誠意)가 지극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학문을 함에는 이치를 궁구하는 밝은 식견이 없고 도를 닦음에는 자신을 반성하는 성의가 없으며 마음에는 사욕이 있어 시비(是非)에 확연하지 못하므로 사변(事變)이 닥치는데 이 마음으로 막힘 없이 응하지 못하고, 천하의 이치를 나의 일신에 돌이켜서 여유 있게 가질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사의(私意)와 소지(小智)로 인의(仁義)를 일시 가장하여 정리(正理)를 해쳐 공평하지 못하고 천리와 인욕에 대한 취사 선택의 기준에 어두워서 진도(眞道)를 잃고도 분변하지 못합니다. 이런 때문에 도리가 그릇되고 정치가 문란하며, 풍속이 침체되고 사기(士氣)가 흩어져 이른바 천성(千聖)이 서로 전수한 심법의 요체가 이에서 다시 강명되지 않는 것입니다.
공자가 일찍이 이를 병통으로 여겨 관중(管仲)의 국량이 작음을 탄식하셨으니, 이는 대개 당시의 군주가 이미 제왕의 도리를 몰랐는데 관씨(管氏)조차 궁리(窮理)·성의(誠意)의 학문이 없어 한갓 사의(私意)와 소지(小智)만을 가지고 그 군주를 도왔으므로 그 군주를 왕도 정치의 영역에 이르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맹자(孟子)는 ‘오늘날의 제후(諸侯)는 오패(五覇)의 죄인이고, 오늘날의 대부(大夫)는 오늘날 제후의 죄인이다.’ 하였으니, 이에서 세대가 내려올수록 도가 더욱 어두워짐을 알 수 있습니다. 임금과 신하가 함께 지사(智詐)에 빠져서 그 정치의 효과가 도리어 패자(覇者)의 하위에 밑도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정자(程子)는 왕(王)·패(覇)를 분변함에 있어 그 처음을 살피라고 간곡히 경계하였으니, 그것은 대개 학술(學術)의 사(邪)·정(正)이 그 결과는 치란(治亂)·안위(安危)의 아주 동떨어지는 지경에 이르지만 그 단서는 다만 한 생각의 은미한 데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역(易)》에 이르기를 ‘호리(毫釐)의 차에 천리(千里)가 어긋나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상은 요(堯)·순(舜)·우(禹)가 서로 전한 심법(心法)의 요지 및 후세의 공리(功利)의 해독까지를 말하였습니다. 이는 학술의 사(邪)·정(正)으로 말미암아 그 치란과 안위가 나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저하의 강학(講學)·근독(謹獨)하는 공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기(修己)·치인(治人)하는 심법은 그 효능의 범위가 매우 포괄적이니, 저하께서는 살피소서.
아! 우리 국가의 창업에 대한 어려움으로 말하면, 처음에는 비록 무공(武功)으로 창업하였으나 조종(祖宗)이 준수하는 도(道)는 반드시 천성(千聖)이 서로 전하는 심법으로 말미암았으니, 그 길이 어찌 광명하지 않습니까?
태조께서는 신무(神武)의 성(聖)으로 비로소 창업하시고, 세종께서는 지중(至中)의 도(道)로써 중간에서 경영하시고, 성종께서는 정일(精一)의 학(學)으로써 완결지으셨고, 대전(大殿)께서는 지성(至誠)의 덕(德)으로써 뒤에서 이으셨으니, 창업하고 경영하고 완결하고 계승하는 등 네 성군(聖君)께서 협심하여 함께 도덕 정치를 이루었습니다. 우리 후인들을 모두 정도로 인도하고 조금도 결점이 없었으니,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서경(書經)》에 ‘크게 나타나도다. 문왕(文王)의 모책이여! 크게 이었도다 무왕(武王)의 공이여!’ 하였습니다. 대전(大殿)의 크게 드러난 모책을 생각할 때 후일 크게 이을 도리를 한 것은 저하의 일신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전께서 저하를 사랑하시는 마음에 저하께서 제학(帝學)을 배워 순(舜)·우(禹)를 계승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저하께서 사(邪)·정(正)을 밝게 살펴 그 뜻을 확립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저하께서 부단한 지성으로 쉬지 않고 왕도(王道)를 순전하게 하기를 어찌 바라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이와 같다면 어리석은 저의 진언은 바로 대전께서 자손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성심(聖心)을 크게 받잡고 저하께서 어버이를 높이며 그 뜻을 받드는 순효(純孝)를 조성(助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하께서 강학(講學)·근독(謹獨)하여 안팎으로 교양(交養)하는 길이 어찌 오늘날에 있어서의 가장 급히 서둘러야 할 공부가 아니겠습니까?
서연(書筵)이란 것은 바로 저하께서 날마다 빈료(賓僚)들과 더불어 도를 강론하고 덕을 함양하는 곳입니다. 상하가 서로 강론하여 천리·인욕의 기미를 분변하며, 체험하고 확충하는 실제의 공부를 하여 의리(義理)가 투철하고 덕업(德業)이 날로 진취되게 해야 하니, 이는 바로 요·순이 서로 전하던 정일집중(精一執中)의 법입니다.
생각건대 강론할 즈음에 저하께서는 너무 침묵하여 밝게 분변하는 공부를 볼 수가 없으니, 이것은 아마 저하께서 천품(天稟)의 순수하므로 학문 과정에서 밝게 분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래에서 성의로 마음을 감격시킬 학문이 없기 때문에 그 강론하는 것이 감발(感發)시킴이 없는 것입니까?
빈료들과 서로 성경(誠敬)으로써 미덥게 된다면 상하의 정의(情意)가 저절로 통하게 되고, 강마(講磨)하는 즈음에 단지 문의(文義)만을 해석할 뿐이 아니라면 사변력(思辨力)이 계속 강해질 것입니다. 원(源)은 지금 외람되이 서연(書筵)을 더럽히고 있은 지 이미 천도(天道)가 조금 변할 정도의 오랜 시일을 경과하였으나 저하의 학문이 한 가지도 진취됨을 보지 못하겠으니 제왕(帝王)의 궁리(窮理)·진덕(進德)하는 학문이 과연 이와 같습니까?
대저 성현의 말씀은 의리가 무궁한 것이니, 모름지기 의심나지 않는 대문에서 의심을 가져야 하고, 의심을 가지면 반드시 밝게 분변한 연후에야 날로 진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도의를 강론하는 자리에서 신분이 높다고 하여 즐겨 마음을 터놓고 하문(下問)함으로써 사변의 공부를 다하지 않으신다면 저하의 학업이 진취된 것인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덕(聖德)에 있어서도 별로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강론은 시간이 있고 장구(章句)는 한정이 있으니 진실로 사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성현의 은미한 뜻을 쉽게 엿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침묵이 비록 제왕의 덕이기는 하나 그것이 학문의 과정에 있어서는 큰 결점이 아니겠습니까?
또 사부(師傅)와 빈료(賓僚)는 도의를 강론하므로 조정의 신하들과는 처지가 다릅니다. 옛날의 큰 선비는 오히려 앉고 서는 데에서도 의심을 해봄이 있었으니, 그것은 성현의 도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에 보니 저하께서, 김안국(金安國)이 일찍이 이사(貳師)를 지냈다 하여 진강(進講)할 때에 반드시 뜰에 내려서 맞이하거나 전송하려는 뜻을 대전께 간접적으로 품달하여 소원을 이루고자 함으로써 스승을 높이고 도를 중시하는 예의를 보이셨습니다. 이는 저하의 학문이 이미 투철하기 때문에 지성(至誠)에서 발원(發源)하신 것이 이와 같았던 것입니다. 듣는 사람 중에 그 누가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저하는 예모(禮貌)에만 힘쓸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밝게 살피고 근신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하며 세속의 학문을 내치고 비상한 학업을 기필하며, 성의를 힘써 쌓아 일상 생활에서의 동정(動靜)·어묵(語默)이 반드시 천리를 따르게 함을 위주하고 경사(經史)를 보는 데 있어 날마다 빈료들을 불러서 되풀이 자문을 받아 의리의 정미(精微)함을 강구하고 고금의 득실을 확실하게 알며, 학문의 방법에 있어서 그 체요(體要)를 얻어 협흡(浹洽)하고 관통(貫通)하여 총명(聰明)이 날로 열리고 지기(志氣)가 날로 강해져서 결코 후일에 간사한 말에 동요되지 않는다면 그 성공(聖功)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덕(天德)에까지 상달(上達)될 것입니다. 정자(程子)가 ‘천덕이 있는 자에게는 왕도(王道)를 말할 수가 있으니, 그 요체(要諦)는 단지 근독(謹獨)하는 데에 있을 뿐이다.’ 하였으니, 그 뜻이 깊고 깊습니다.
이상은 서연법(書筵法)을 말씀드려 진덕(進德)·수업(修業)의 실질은 반드시 강학(冓學)의 공부에 힘입는다는 것을 밝혔으나 이것을 행하게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저하는 두려이 생각하소서.
《중용》에 ‘군자에게 미칠 수 없는 것은 바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데서의 행동이다.’ 하였습니다. 대개 사람은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밝은 곳에서는 그래도 공들여 착한 짓을 하거니와 유암(幽暗)한 속, 임석(衽席)의 위에서는 이 마음이 쉽게 태만해지니, 진실로 내심에 진실이 없고 외모에 위엄이 없다면 물욕이 나의 충심을 해쳐 천리(天理)가 행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때문에 옛날 성인은 비록 온종일 잠시 동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면서 쉽게 경홀할 수 있는 유독(幽獨)한 곳에서는 더욱 계신(戒愼)의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런 때문에 임금 한 마음의 사(邪)·정(正)이 밖으로 나타나는 그 징험은 집안 사람에게보다 더 우선하는 데가 없습니다. 그 다음 좌우 측근에게 미치고 그런 뒤에 조정에 도달하고 천하에 미치는 것입니다.
단정하고 엄숙함으로써 여자는 안에서 지위를 바로잡고 남자는 밖에서 지위를 바로잡아 상하가 질서 정연하고 내외가 엄숙하면 이는 가도(家道)가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조정에서 물러나와 조용히 쉬실 때에 궁첩(宮妾)·엄윤(閹尹)354) 등 좌우에 모시고 있는 자들이 각기 그 직책에 충실하여 위로는 불오(不惡)의 위엄355) 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대분(戴盆)의 경계356) 를 삼간다면 좌우가 바르게 될 것입니다. 뇌물을 받거나 청탁을 햄함으로써 전상(典常)을 어지럽히며 내외에 밀통하여 위복(威福)을 도둑질함으로써 내정(內政)을 문란하게 한다면 이는 가정(家政)이 엄숙치 못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궁(儲宮)은 위로 군부(君父)의 위엄이 있으나 아래로 만기(萬機)의 권세는 없기 때문에 전상을 어지럽히고 내정을 문란케 할 단서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양(儲養)의 도리가 혹 순명(純明)치 못하면 그 좌우에서 난을 꾸미는 조짐이 유밀(幽密)한 속에 몰래 쌓여서 후일 발발할 때를 기다릴 것이니,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대개 올바른 길은 매우 희미하고 간사한 길은 갈래가 많으니, 혹 희미한 길을 경홀히 여기고 조짐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이 마음이 보존되기 어렵고 기습(氣習)이 쉽게 나빠질 것인데 어떻게 저정(儲政)이 반드시 바르리라고 보장하겠습니까?
《역경(易經)》에 ‘신의를 가져 위엄을 보이면 마침내 길하리라.’ 하였으니 ‘위엄을 보이면 길하리라’는 것은 자신을 반성함을 이른 말입니다.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 지극히 순수하다면 크게 소리를 내거나 얼굴빛을 짓지 않아도 지극한 조화가 유행할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비록 임석(衽席) 위에서 조단(造端)하려고 한들 그리 되겠으며, 좌우의 간사함을 없애려 한들 그리 되겠습니까?
대저 자신을 반성하는 요령은 엄격히 자신을 다스리는 데 있고 자신을 다스리는 근본은 또 경홀히 여기기 쉬운 곳에 나아가서 능히 그 방심(放心)을 거두어 한 생각의 올바름을 구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상하가 등급이 없고 내외가 분별이 없어 참특(讒慝)의 발생과 간사(奸邪)의 선동을 열어 군덕(君德)의 누가 되게 하는 것은 어찌 방심 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불선(不善)의 움직임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비록 동관사(彤管史)357) 가 좌우에 벌여 있고 안조잠(晏朝箴)358) 을 날마다 이목에 접한다 하더라도 또한 어찌 자신을 다스리는 근본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런 때문에 옛날 군자는 내외의 법을 엄격히 하고 존비의 분수를 정하여 그 사은(私恩)을 끊고 그 척리(戚里)를 단속하는 것으로 경계를 삼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원(源)이 유독 근독 공부(謹獨工夫)를 강조하는 것은 대개 기미를 엄격히 살펴서 천리(天理)의 한 생각을 밝히려고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을 뿐입니다.
천리가 이미 밝고 한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면 대본(大本)이 이미 바르게 되고 중욕(衆欲)이 모두 사라지며, 가정(家政)이 자연 엄숙해지고 사경(邪徑)이 저절로 막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생각은 간사하기 쉽고 천리는 어둡기 쉬운 것이니, 잠시라도 살피지 않는다면 일상 생활 속에 모든 일이 그릇되어 천리로 맺어진 지친(至親) 사이도 변하여 소원해질 것인데, 어찌 유독 빈첩(嬪妾)과 좌우의 사이에 있어서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금 청금(靑禁)의 일은 본디 외부인이 생각할 곳이 아니나 그 은미한 것이 나타나는 이치는 마치 부험(符驗)이 있어 속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일동 일정(一動一靜)을 또 어떻게 밖에 가리울 수 있겠습니까. 삼가 들으니, 저하께서는 유밀(幽密)한 속에서 잠시도 방만한 일이 없고 좌우의 측근에 대해서는 그들의 능멸·참란하는 버릇을 두절(杜絶)하는 위엄이 있으며, 순효(純孝)의 지성은 이미 천심을 감격시키고, 우애(友愛)의 정의(情義)는 또한 원한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까지 미쳐갔습니다.
이는 비록 저하의 밝은 학문과 대전의 바른 교훈이 이룬 것이나 지덕(至德)의 순일함은 이미 요(堯)·순(舜)과 더불어 그 공이 같습니다. 《맹자》에 ‘요·순의 도는 효도하고 우애하는 것일 뿐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요순히 흠명(欽明)·준철(濬哲)의 공을 확충하여 그 인륜(人倫)의 지극함을 극도로 달성한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저하께서는 나의 지혜가 이미 밝다 하여 태만하지 말고, 나의 덕이 이미 순일하다 하여 경홀히 하지 말며 동정(動靜)·어묵(語默)에 있어서 항시 요·순의 마음을 구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소서.
힘쓸 곳에 더욱 힘쓰셔서 한 생각의 은미한 것도 반드시 삼가 살피되 이것이 천리인가 인욕인가 하여, 과연 천리라면 경건하게 확충하고 과연 인욕이라면 경건하게 극복하여, 소홀히 여겨 방사하기 쉬운 곳에 잠시라도 끊임이 없이 하소서. 내면을 살펴 조그마한 병통도 없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아도 남들이 존경하고 말하지 않아도 남들이 믿을 것이니, 효도하고 우애하는 덕이 중외에 빛날 것인데 어찌 사사(私邪)와 괴려(乖戾)가 끼어들 수 있겠습니까? 《시경》에 ‘네가 방안에 있는 때를 보아도 옥루(屋漏)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 하였습니다. 군자가 은미(隱微)한 것의 나타남을 알고 성(誠)의 가리울 수 없음을 아는 것이 이와 같으니, 어찌 두렵지 않습니까?
이상에서 말한 가정(家政)의 치법(治法)은 반드시 남들이 보지 않는 곳부터 힘써야 합니다. 이 미현(微顯)을 하나로 보고 내외(內外)를 같이 하는 도는 성공(聖功)에 있어서 더욱 정밀(精密)함을 가해야 하지만, 이를 행하게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저하는 이를 살피소서.
《중용》에 ‘지성(至誠)의 도는 앞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진실로 청명(淸明)을 몸에 간직하고 털끝만한 기욕(嗜欲)의 폐단도 없다면 성(誠)이 지극하지 않음이 없고 명(明)이 비치지 않음이 없어서 인사의 선악(善惡)·길흉(吉凶)과 국가의 상얼(祥孼)·흥망(興亡)을 모두 기미에 앞서 미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전일(專一)한 생각이 혹 지식(止息)되어 천리가 순전(純全)치 못하고 인욕이 섞인다면 이미 드러난 이치도 알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치이겠습니까?
주자(周子)의 《통서(通書)》에 ‘성(誠)이 정(精)하기 때문에 밝고 신(神)이 응(應)하기 때문에 묘(妙)하고 기(幾)가 은미하기 때문에 그윽하니[幽], 성(誠)·신(神)·기(幾)가 이루어지면 성인(聖人)이라 한다.’ 하였으니, 이는 성(誠)의 지극한 효험입니다. 이런 때문에 군자는 성(誠)을 귀중하게 여기니, 성(誠)은 천도(天道)이고 성(誠)해지려 하는 것은 인도(人道)입니다. 성해지려 하여 쉬지 않고 전일하여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으며, 순수하여 섞이지 아니하여 천리로 하여금 항시 심목(心目) 사이에 환하게 한다면 기미가 신묘하지 않음이 없고 이치가 통하지 않음이 없어 천도에 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성(誠)의 도(道)는 전일하지 않으면 지식(止息)되고 지식되면 무물(無物)의 상태에 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일할 때에는 지식될 것을 염려하고, 지식될 때에는 오래 유지할 것을 생각하여, 요컨대 그 기미를 신기롭게 하고 그 공용을 묘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성스럽고 지혜 있는 임금이 하늘의 강건한 운행을 본받아 마음을 전일히 하고 덕을 장구하게 유지하는 까닭입니다. 마음이 전일하지 못하고 덕이 장구하지 못하면 때로는 하기도 하고 때로는 중단하기도 하여 천리를 순전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역경(易經)》에 ‘천지의 도는 항구할 뿐이다.’ 하였으니, 제왕의 도도 그 덕을 항구히 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런 때문에 자사(子思)가 성(誠)의 공용(功用)을 논하기를 ‘지식(止息)하지 않으면 장구(長久)해지고 장구해지면 징험(徵驗)되고 징험되면 유원(悠遠)해지고 유원해지면 박후(博厚)해지고 박후해지면 고명(高明)해진다. 박후는 땅에 짝하고 고명은 하늘에 짝하고 유구는 무궁하다.’ 하였으니, 이는 어찌 한 생각이 무성 무취(無聲無臭)에 지식되지 않는 효험이 아니겠습니까. 원(源)이 ‘행하게 하는 것은 하나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 정성에 지극하지 못함이 있으면 만물이 지식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깊숙한 궁중에 처할 때 한 생각 한 행실을 혹 사특하게 하거나 빈사(賓師)를 대할 때 절실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는 공부가 없으면 이는 안팎을 교양(交養)하는 실상이 아닙니다. 정성으로써 굳건하게 해 나간다면 나타남과 은미함이 동일하고 안과 밖이 간격이 없어서 왕도(王道)가 행해질 것입니다.
천리에 간단(間斷)이 생기고 인욕이 섞이기 때문에 공리(功利)의 술책이 끼어들게 됩니다. 정성으로써 꾸준히 힘쓴다면 천리가 밝아지고 인욕이 사라져서 공리가 침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에 미진함이 있기 때문에 지식이 지극하지 못하고 존양(存養)·성찰(省察)하는 힘이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에 뜻이 진실하지 못합니다. 정성으로 두렵게 생각한다면 학문이 날로 진취되어서 덕을 가짐에 요동되는 바가 없게 되고 도를 행함에 유구하게 될 것이며, 중화 위육(中和位育)의 효험을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인의 명성(明誠)에 대한 훈계가 어찌 이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이상은 지성(至誠)의 도를 말하며 기미의 묘를 나타내고 그 이치를 성취 유형(聲臭有形)의 밖에까지 극론한 것이니, 천도(天道)와 인사(人事)의 극치가 여기에서 더할 게 없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저하는 유념하여 쉬지 마소서.
아, 예부터 군덕(君德)은 항시 일제(日躋)에서 이루어지고 매양 부단(不斷)에서 파괴되니, 일제란 성탕(成湯)의 용단이요, 부단이란 후세 임금의 나약함인 것입니다. 성탕은 의리가 있는 곳이면 용감하게 행하기를 마치 강물을 터놓자 곧 줄기차게 흘러서 다시는 막힘이 없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런 때문에 그 덕이 마치 해가 솟아오르듯 해서 성(聖)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때문에 성탕의 덕을 일컬은 말에 ‘성색(聲色)을 가까이 하지 않고 화리(貨利)를 늘리지 않았다.’라는 것이 있고 ‘의(義)로 이를 제재하고 예(禮)로 마음을 제어했다. 간언(諫言)을 따르고 거역하지 않았다. 허물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자신을 단속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하고 남에게는 완비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등이 있습니다. 지금 그 남아있는 말조차 매우 훌륭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저하는 깊이 살피시어 성덕(聖德)이 일제하는 용단(勇斷)을 내리고, 혹시라도 유유 범범(悠悠泛泛)하게 무사 안일하는 부단의 나약함을 보이지 마소서. 그러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원(源)은 이 한 편(篇)에 학문하는 차제(次第)의 이치를 갖추 말했습니다. 그런 때문에 처음에서는 심학(心學)의 공용을 말하여 위육(位育)의 효험을 밝혔고, 중간에서는 학술(學術)의 사정(邪正)을 말하여 천하 국가의 치란(治亂)과 안위(安危)의 징험을 구분하였으며, 끝에서는 지성(至誠)의 도를 말하여 기미(幾微)의 묘리를 다 밝혔으니, 이는 모두 성현의 은미한 뜻이요, 원(源)이 사사롭게 천착한 말이 아닙니다.
생각건대, 빈료(賓僚)의 진강(進講)에서 이미 진언하여 저하께서 벌써 그 정미한 뜻을 이해하실 터인데 어찌 용렬한 이 사람의 더럽히는 말을 기다리겠습니까. 그러나 오활(迂闊)하다 마시고 다시 밝게 살피신다면 제왕의 성품을 밝히고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길이 모두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아, 의리는 무궁하고 세월은 유한한 것입니다. 옛날 위 무공(衛武公)은 당년 95세에도 오히려 학문을 즐겨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나라에 잠경(箴敬)하여 규간(規諫)을 구하고 억계(抑戒)의 시(詩)를 지어 스스로를 깨우치되,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시를 밤낮 외우며 그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어찌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일체가 나의 힘을 쓸 데라고 여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때문에 그의 나이가 매우 많았어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 나이로 해서 조금도 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저하처럼 나이가 아직 덕이 성립되는 때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예덕(睿德)의 성취가 이미 위나라 무공이 미칠 바가 아닌데 학문을 좋아하고 스스로를 깨우치는 공부라고 어찌 유독 무공의 아래에 놓이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저하는 지성을 중단하지 마시고 이 마음의 천리로 하여금 잠시도 신명에 어그러짐이 없게 해서 그 확충하는 공부를 극도로 하소서. 이는 대전께서 오늘날 저하에게 바라는 지극한 뜻이요, 후일 종묘 사직(宗廟社稷)의 무궁한 복인 것입니다.
옛날 주자(朱子)를 경계하는 자가 ‘정심 성의(正心誠意)라는 말은 상(上)이 듣기 싫어하는 것이니, 삼가 다시는 말하지 말라.’ 하니, 주자는 ‘평생 배운 바가 다만 이 네 글자 뿐인데, 어찌 회피하여 임금을 속일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원(源)도 이것으로써 저하를 위하여 한 번 소회를 진언하고 회피하는 계책을 쓰지 않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저하는 밤중에든 새벽에든 아직 접물(接物)하기 전에 이를 마음에 체득하고 음미해 보신다면 옛날 사람이 미나리와 햇빛을 바치던 정성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99권 54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63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사상-유학(儒學)
- [註 351]염계(濂溪) : 주돈이(用敦頣)의 호.
- [註 352]
주정설(主靜說) : 송유(宋儒)인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頣)가 수창(首倡)한 수양법에 대한 설. 주정(主靜)이란 망상을 버리고 마음을 청정(淸靜)하게 갖는다는 것. 《태극도설(太極圖說)》.- [註 353]
주일훈(主一訓) : 역시 송유인 이천(伊川) 정이(程頣)가 주창한 수양 공부에 대한 가르침. 주일(主一)이란 잡념 없이 마음을 전일하게 갖는 것인데, 정주학파의 술어로써 경(敬)을 나타낸다. 《이정전서(二程全書)》.- [註 354]
엄윤(閹尹) : 환관의 우두머리.- [註 355]
불오(不惡)의 위엄 : 드러내어 꾸짖지는 않으나 엄한 위엄으로 소인 스스로가 두려워하게 한다는 뜻. 《역경(易經)》 둔괘(遯卦).- [註 356]
대분(戴盆)의 경계 : 행동과 목적이 서로 어긋나는 데 대한 경계. 사람이 머리에 동이를 이면 하늘을 바라볼 수 없고, 하늘을 바라보면 동이를 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일. 《한서(漢書)》 권62 사마천전(司馬遷傳).- [註 357]
동관사(彤管史) : 여관(女官)인 동사(彤史)를 가리킴. 옛날에는 여사(女史)가 적필(赤筆)을 가지고 궁중의 정령(政令)이나 왕비의 언행 등을 기록하였다.- [註 358]
안조잠(晏朝箴) : 늦잠을 경계하는 글.○世子侍講院輔德鄭源上書于世子曰:
去十日十九日, 入直本院, 適値病患, 翌日朝講, 未得入侍, 卽蒙遣內官存問, 仍賜酒藥, 特出于常。 竊念微身, 濫叨侍講之長, 顧躬揣分, 恒懷兢惕。 輔導之責, 少無絲亳之補, 反荷降眷, 罔知所以爲報。 是用披瀝愚衷, 以杼平生所得於師友者如左。 源聞道出於天, 具於人心, 而著於事物, 明而行之, 存乎其人。 蓋人皆知已之有性, 而不知其出於天, 而無間; 知事之有道, 而不知其由於性, 而日用也。 《詩》云: "昊天曰明, 及爾出王, 昊天曰旦, 及爾游衍。" 此言天之體物, 無一時之或遺也。 是故《太甲》曰: "顧諟天之明命。" 蓋天所賦爲命, 人所受爲性, 感於物爲情, 統性情爲心。 夫心也者, 道之宗, 而天下之理, 皆由是出, 無物不有, 無時不然。 無物不有, 故大而至於天地之運, 小而至於一塵之微, 不能外也; 無時不然, 故遠而至於古今之變, 近而至於一瞬之頃, 不能達也。 是故, 自一而萬, 則體統燦然而不可亂, 自萬而一, 則根本渾然而未嘗離, 體用一源, 顯微無間。 所以, 濂溪論其體用曰: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蓋其用至著, 而其體至隱。 惟其體之至隱, 故寂然者不可窺, 惟其用之至著, 故感通者尙可見, 其爲幾, 豈不微哉? 夫幾者, 動之微, 而天理人慾之所由分也。 動以天, 則微者著而天理明, 動以人, 則危者殆而人慾勝, 故抄忽之頃, 有或〔不〕 察, 不自覺於離道之遠也。 是以君子, 以怠惰荒寧爲懼, 以惕厲, 不息自强, 而收斂凝定, 常存敬畏, 雖當事物旣往, 思慮未萌, 介然之頃, 亦自警覺, 使爲惺惺不昧之地。 至於其幾旣動, 此念已萌, 人雖不知, 而昭晣於其中者, 有不可欺, 則於幽獨暗室之中, 尤當提起精神, 以審其幾, 而人慾之將萌, 便從而遏絶之, 使涓涓之天理, 有所條達, 而不使須臾之或間也。 《詩》云: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 以其幾微之際, 有一毫厭怠而敢過, 則善惡吉凶之有不可掩者如此。 是故子思於《中庸》, 推戒懼愼獨之功, 以極於位天地、育萬物, 蓋極其中和之道, 初非此心存省之外也。 苟能一念之不息於無聲無臭者, 昭格于天, 無一毫偏倚, 則酬酢萬變, 無非中節之和, 大而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 小而飮食動靜之得其正, 皆此中和之有以充塞, 而天理流行於其間。 是以, 君子有一身之位育, 有一家之位育, 而國而天下, 皆莫非中和之所以位育之耳。 然則中者, 性之德而道之體; 和者, 情之正而道之用。 所以中和者, 立大本而行達道, 是天理之主宰, 卽此心之謂也。 是知一心之大, 果可以位天地、育萬物, 其求端用力, 實不出乎戒懼謹獨之中, 蓋本心之善, 其體甚微, 而氣稟之拘, 物欲之蔽, 有不可勝其害者, 故存省之功, 固不可廢一, 而講明之道, 又必由學而後, 乃能充之。 故君子之學, 莫先於窮理, 以致其知, 窮理之要, 必在於涵泳以養其理, 涵養之力, 又在於〔居〕 敬以立其本, 此不易之理也。 夫天下之物, 莫不有理。 爲君臣者, 有君臣之理, 爲父子者, 有父子之理, 爲夫婦、爲兄弟、爲朋友, 以至於出入起居應事接物之際, 亦莫不各有理焉。 有以窮之, 則自君臣之大, 以至事物之微, 莫不知其所以然, 而無纖芥之疑, 善則從之, 惡則去之, 而無毫髮之累, 此聖賢所以先要窮事物之理, 以進吾知者。蓋吾知識有所蔽, 則見理有未至, 而無以充乎此心之量, 苟能於事物之理, 理會入神, 而眞見豁然, 則雖驅使爲不善, 自不爲矣。 若或知未至矣, 而一朝臨事, 强欲安排, 則人欲私意, 已雜其中, 雖使勉强行之, 固不能持久矣。 更安能泰然而行之乎? 是故窮理省察之功, 固當交致, 而更加朋師講論明辨之力, 則怡然理順, 渙然氷釋, 而通於道矣。 渙然氷釋, 而通於道, 則此心廓然, 於天下之理, 自然行其所無事, 其理豈不甚簡哉? 此則窮理以致其知者也。 然自非明睿所照, 而徒竭其心力, 無深厚之氣, 則意易鑿而見多偏, 故完養思慮, 涵泳義理之功, 尤爲緊密。
蓋其不能窮理者, 固昏昏冥冥而無所知矣。 如其窮理者, 又復終日思索, 意緖有所迫逐, 而無從容涵泳之樂, 則又安能深信自得, 持久不厭乎哉? 比之天地生物之心, 四時不息, 至秋冬凋落斂藏於其中, 乃能來春生意, 又復闖然發達, 故能極致其涵養之功, 常喚令此心不死焉, 則天理自當弸暢, 而中心有悅豫之味。 中旣有悅豫之味, 久則於天理熟, 於人慾生。 此理慾生熟之說所以起, 而孟子所謂, 夫仁亦在乎熟之而已矣者也。 蓋存養旣熟, 則天理之發見者深, 而日用之間, 唯見此理流行而已。 唯見此理流行, 故此心沛然而有裕, 其爲自得之樂, 有不可以語人者。 此則窮理之要, 必在於涵養者也。 然心之爲物, 出入無常, 一不自覺而馳騖飛揚, 以徇物慾於軀殼之外, 則一身無主, 萬事無綱, 雖其俯仰顧眄之間, 蓋已不自覺其身之所在, 而況反覆聖言, 參考事物, 以求義理至當之歸乎? 苟能持氣如神, 常自惺惺, 不貳以二, 不參以三, 處獨如對神明, 出入如見大賓, 則聰明睿智, 皆由此出, 以此事天饗帝, 無非體信達順之道, 誠敬所孚, 自然致化育之化也。 古者聖人, 修己以敬, 而百姓安, 篤恭而天下平者, 此也。 是師尙父之戒武王, 不出敬與怠, 是豈非敬則此心一, 而萬善俱立, 怠則此心二三, 而萬善俱廢歟? 敬怠之於神明, 其効逈別如此, 故周子主靜之言, 程子主一之訓, 皆爲人最切者, 而朱子又丁寧反覆之。 倘於是而用力, 無一息間斷, 則德全而欲泯, 爲萬世相傳之心法, 其不在玆乎? 此則涵養之功, 又在於敬者也。 然則學無窮理之功, 不能辨別衆理, 而涵養本源之要, 又未可不立其敬, 是知敬者, 貫動靜、合內外、徹終始, 不敢違者也。 右言此心功效之極, 以反覆窮理涵養之功, 終言居敬之本之要, 此心學之極致, 王道之體要, 自古聖神傳授, 實在於此。 伏願邸下, 推明立極之本, 以承先聖之統幸甚。 嗚呼! 道統之失其傳久矣。 有能用其力於心, 以全其宗統者乎? 思昔堯、舜之時, 君臣協心, 以勑天之命, 惟時惟幾, 而至其相傳, 則堯之所以授舜者, 不過允執厥中, 舜之戒禹, 亦以是命, 而益之以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之三言, 比堯加詳, 於此見堯、舜、禹之德, 峻極于天。 其神化極矣, 而猶以此心法, 相戒而傳之, 此其所以極天理之全, 而察乎人欲之盡者。 天下之理, 豈復有加於此哉? 自餘漢、唐、宋以來, 非無願治之主, 而莫克有志於此, 徒以功利爲務, 而不復知有帝王窮理正心之學。 是以, 虛明之地, 爲人欲私意之侵亂, 失其公平正大之體, 而偏黨反側, 黯闇猜嫌, 固日擾擾乎方寸之間, 而奸僞讒慝之害, 又不可勝言者。 是無他, 以其見理未明, 誠意未至也。 學無窮理之明, 道無反身之誠, 心有私係, 而不能廓然於是非之地, 故事變之來, 不能應之以是心而無窮, 天下之理, 不知反之吾一身而有裕。 於是, 未免有私意小智, 竊仁義之偏, 害正理而不公, 天理人慾, 昧取舍之幾, 喪道眞而莫辨。 是以, 道訛而政紊, 俗淪而士散, 所謂千聖相傳心法之要者, 於是不復講矣。 孔子嘗病此, 而嘆管仲之器小。 蓋以當時之君, 旣不知帝王之道, 管氏又無窮理誠意之學, 徒能以私意小智, 責其君上, 故不能致其主於王道故也。 孟子曰: "今之諸侯, 五覇之罪人也; 今之大夫, 今之諸侯之罪人也。" 是知世愈下, 而道愈晦, 君臣交陷於智詐, 而不知其治効, 反下於覇者之劣。 是以, 程子於王覇之辨, 戒之以審其初者丁寧。 蓋以學術之邪正, 其效至於治亂安危之有大相絶者, 而其端特在夫一念之微而已。 《易》曰: "差之毫釐, 謬以千里。" 可不愼哉? 右言堯、舜、禹相傳心法之要, 以及後世功利之害。 是由學術之邪正, 有以分其治亂安危之驗, 故下言邸下講學謹獨之工夫, 爲修己治人之心法, 其功用所括, 極無餘蘊。
伏願邸下, 警省之。 嗚呼! 惟我國家創業之艱, 始雖武定, 而祖宗遵守之道, 必由千聖相傳之心法, 其爲道, 豈不光明哉? 太祖以神武之聖, 創之於始; 世宗以至中之道, 經之於中; 成宗以精一之學, 成之於終; 大殿以至誠之德, 繼之於後。 夫創之、經之、成之、繼之, 四聖協心, 同底于道, 啓佑我後人, 咸以正罔缺, 厥惟艱哉! 《書》曰: "丕顯哉! 文王謨, 丕丞哉! 武王烈。" 思大殿丕顯之謨, 爲他日丕承之道, 其不在邸下之一身乎? 大抵大殿愛邸下之心, 豈不欲邸下緝熙帝學, 以繼舜、禹乎? 豈不欲邸下洞明邪正, 以確其志乎? 豈不欲邸下至誠不息, 以純王道乎? 誠如是也, 則愚之所陳, 乃所以大奉大殿貽謀燕翼之聖心, 而助成邸下尊親承志之純孝也。 然則邸下講學謹獨, 內外交養之道, 豈非今日最急之工夫乎? 夫書筵者, 乃邸下日與賓僚講道養德之地, 固當上下, 交相講論, 辨天理人欲之幾, 爲體驗擴充之實, 使義理融徹, 德業日進, 此堯、舜所以精一執中之法也。 第念講論之際, 邸下過於淵默, 未見有明辨之功, 是豈邸下天稟之粹, 而學問之功, 無待於明辨歟? 抑下無明誠格心之學, 故其所講論, 不能有以感發歟? 夫賓僚之間, 誠敬交孚, 則上下情意, 自相通豁, 講磨之際, 不但解釋文義, 則思辨之力, 不容自已。 源今濫忝講幃, 已經天道小變之久, 而未見邸下講問之一及焉。 帝王窮理進德之學, 果如是乎? 大抵聖賢之言, 義理無窮, 須於不疑處有疑, 疑必明辨, 然後乃能日進。 若於講道之地, 又以崇高, 而不肯開懷下問, 以盡思辨之功, 則不惟無以省邸下之進業, 其在聖德, 亦未必有益, 講論有時, 章句有限, 苟非思辨之功, 則聖賢微志, 未易窺測也。 然則淵默一事, 雖是帝王之德, 其於學問之道, 無乃大欠乎? 且師傅賓僚, 講其道義, 與朝著之臣不同。 古之大儒, 猶有致疑坐立之間者, 以聖賢之道在焉故也。 前見邸下, 以金安國曾經貳師, 進講之時, 必欲降階迎送, 轉達大殿, 期於得請, 以示尊師重道之禮。 此邸下所造之學, 已爲透徹, 故發於至誠者如此, 凡在聽聞, 孰不感動? 伏望邸下, 不獨於禮貌致力, 而必以明愼治心爲急, 黜世俗之學, 期非常之業, 而務積誠意, 日用之間, 語默動靜, 必循天理, 以爲之主, 而玩經觀史, 日召賓僚, 反覆詢訪, 以講義理之精微, 以確古今之得失, 庶於學問之道, 得其體要, 而浹洽貫通, 聰明日開, 志氣日强, 決無異日奸言邪說之所能動搖, 則其在聖功, 不自覺其上達天德矣。 程子曰: ‘有天德者, 便可語王道。’ 其要只在謹獨, 其旨深矣。 右言書筵之法, 以明進德修業之實, 必資講學之功, 然其所以行之者一也。 伏願邸下, 惕慮之。 《中庸》曰: "君子之所不及者, 其惟人之所不見乎!" 蓋人於陽明十目之地, 猶能著工做善, 而幽暗之中, 衽席之上, 此心易以慢忽, 苟非內有孚信, 外有威嚴, 則物欲得以賊吾之衷, 而天理有所不行, 故古之聖人, 雖終日乾乾, 不容一息之間斷, 而幽獨易忽之地, 尤致其戒愼之功。 是以, 人君一心邪正之驗, 著於外者, 莫先於家人, 而次及於左右然後, 有以達於朝廷, 而及於天下矣。 能端莊齊肅, 而女正位乎內, 男正位乎外, 上下秩秩, 內外斬斬, 此則家之正也。 退朝之後, 從容燕息, 宮妾閹尹, 陪侍左右, 各恭其職, 而上憚不惡之嚴, 下謹戴盆之戒, 則左右之正也。 至於納賄賂而行請謁, 以亂典常, 通內外而竊威福, 以紊內政, 此則家政之不肅, 有以啓之, 而在乎儲宮, 則上有君父之嚴, 下無萬機之權, 故無亂常紊政之端也。 然而儲養之道, 或未純明, 其左右構亂之漸, 潛畜於幽密之中, 以待他日之發, 甚可畏也。 蓋正路甚微, 邪徑多岐, 苟或忽微而不戒乎漸, 則此心難保, 而氣習易移, 安保其儲政之必正乎? 《易》曰: "有孚威如終吉。" 威如之吉, 反身之謂也。 蓋其反於身者至純, 則不大聲色, 而至化流行, 如或不能, 則雖欲造端乎衽席之上, 得乎, 雖欲無左右私邪之間, 得乎? 夫反身之要, 在於自治之嚴, 而自治之本, 又在於就其易忽之地, 能收其放心, 求其一念之正而已。 上下無等, 內外無別, 以啓讒慝之起, 奸邪之煽, 爲君德之累者, 何莫非放心中出來? 苟不復其不善之動, 則雖彫管之史, 列在左右, 晏朝之箴, 日接耳目, 亦何補於自治之本哉? 是故, 古之君子, 莫不以嚴內外之法, 定尊卑之分, 絶其恩私, 檢其戚里爲戒, 而源獨惓惓於謹獨工夫者, 蓋欲以(斫)〔硏〕 幾察微, 以昭天理之一念耳。 天理旣昭, 一念無邪, 則大本已正, 衆欲皆消, 而家政自肅, 邪徑自杜矣。
然一念易邪, 天理易昏, 苟或不察, 則日用之間, 百爲愆度, 雖天理之至親, 亦或變爲乖戾, 豈獨嬪妾左右之間哉? 今靑禁之事, 固非外人思量之地, 然其微著之理, 若符驗之有不可欺, 則一靜一動, 又安能掩於外哉? 伏聞邸下幽密之中, 無一息放過之私, 左右之侍, 有杜絶凌僭之嚴, 純孝之誠, 已孚於天心之感, 友愛之情, 亦及於抱冤之際, 是雖邸下學問之明, 大殿敎訓之正, 有以成之, 而至德之純, 已與堯、舜而同功焉。 孟子曰: "堯、舜之道, 孝悌而已矣。" 是堯、舜欽明濬哲之功, 有以充之, 而極其人倫之至者也。 伏望邸下, 勿以吾智已明而自怠, 勿以吾德已純而自忽, 語默動靜, 常求堯、舜之心, 以爲之本而已。 用力處益加用力, 使一念之微, 亦必謹而察之, 此爲天理耶, 人欲耶? 果天理也, 敬以充之; 果人欲也, 則敬而克之。 無一息或間於易忽得肆之地, 而內省不疚, 無惡於志, 則不動而敬, 不言而信, 孝友之德, 光于中外, 寧有私邪乖戾之或間乎? 《詩》云: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君子知微之顯, 知誠之不可掩者, 如此, 豈不懼哉! 右言家政之修, 必先用力於人所不見之地。 此一微顯, 合內外之道, 其於聖功, 尤加精密, 然其所以行之者一也。 伏願邸下, 省察之。 《中庸》曰: "至誠之道, 可以前知。" 苟能淸明在躬, 無一毫嗜欲之弊, 則誠無不極, 明無不照, 而人事之善惡吉凶, 國家之祥孽興亡, 皆可以先幾而預知之矣。 若一念或息, 而天理未純, 人欲雜之, 則已然之理, 且不能知, 而況其未至者哉? 周子曰: "誠精故明, 神應故妙, 微幾幽, 誠神幾曰聖人。" 此誠之極効也。 是故君子, 誠之爲貴。 蓋誠者, 天道也; 誠之者, 人道也。 誠之而不息, 一而無二, 純而不雜, 使天理常昭晣於心目之間, 則無幾而不神, 無理而不通, 可以合天道矣。 大抵誠之道, 不一則息, 息則入於無物, 故當一而慮息, 當息而思久, 要以神其幾而妙其功, 此聖智之君, 所以法天乾乾, 一其心而久其德者也。 心不一德不久, 則或作或輟, 而不能純乎天矣。 《易》曰: "天地之道, 恒久而已矣。" 帝王之道, 亦不過恒久其德而已。 是故, 子思論誠之功用曰: "不息則久, 久則徵, 徵則悠遠, 悠遠則博厚, 博厚則高明。 博厚配地, 高明配天, 悠久無疆。" 豈非一念之不息於無聲無臭之效耶? 源所謂行之者一者, 此也。 一有未至, 則萬物息矣, 故處深宮, 有一念一行之或邪, 對賓師, 無切問近思之功, 此非內外交養之實也。 以此乾乾, 則顯微如一, 內外無間, 而王道行矣。 天理有間斷, 而人欲雜之, 故功利之術, 得以相乘也。 以此自强, 則天理明、人欲消, 而無功利之侵矣。 窮理之功, 有未盡, 故知不至; 存省之力, 有未至, 故意不誠也。 以此惕念, 則學問日進, 執德而無所搖, 行道而致其久, 中和位育之效, 可以致矣。 聖人明誠之訓, 豈外乎此哉? 右言至誠之道, 以著幾微之妙, 而極其理於聲臭有形之外, 天道人事之極致, 至此無以加矣。 伏願邸下, 留神而不息之。 吁! 自古君德, 常成於日躋, 而每虧於不斷。 夫日躋者, 成湯之勇決也, 不斷者, 後世人主之懦弱也。 成湯於義理所在, 勇決行之, 若決江河, 沛然而無復礙滯, 故其德如日之昇, 而至于聖。 是以, 稱湯之德者, 有曰: "不邇聲色, 不殖貨利。" 有曰: "以義制事, 以禮制心。" 有曰: "從諫弗咈, 改過不吝。" 有曰: "憸身若不及, 與人不求備。" 今其遺語, 尙幸澟澟。 伏願邸下, 深泳而活省, 爲聖德日躋之勇, 毋或悠悠泛泛, 以成玩愒不斷之弱幸甚。 源於一篇之中, 學問次第, 備言其理, 故始言心學之功用, 以明位育之效, 中爲學術之邪正, 以分天下國家治亂安危之驗, 末言至誠之道, 以盡幾微之妙。 是皆聖賢之微旨, 非源穿鑿之私言也。 賓僚之進講, 想已開陳, 而邸下固已睿領其精微, 何待庸謬之塵瀆乎? 然不以爲迂, 而更加明省, 則帝王明性治心之學, 治國平天下之道, 盡(仕)〔在〕 是矣。 嗚呼! 義理無窮, 歲月有限。 昔衛武公, 行年九十有五, 而猶好學不倦, 遂箴敬於國, 以求規諫, 而作抑戒之詩, 以自警, 使人朝夕誦之, 不離於其側。 是豈非自有生至死, 無非吾着力之地, 故其年非不甚高, 而戒謹恐懼之心, 不以是而少衰, 而況邸下年未至德立之時, 而睿德之就, 已非衛武公之所可跂及, 其好學自警之功, 又安敢獨出於武公之下乎? 伏願邸下, 至誠不息, 必使此心, 天理無一息或歉於神明, 有以極其擴充之功。 此大殿今日有望於邸下之至意, 而異日宗社無疆之福也。 昔戒朱子者有曰: "正心誠意, 上所厭聞, 愼勿復言。" 朱子曰: "平生所學, 只此四字, 豈可回互而欺君乎?" 源亦以此, 爲邸下一陳所懷, 而不爲回互之計。 伏願邸下, 或中夜, 或淸晨, 未與接物之時, 體之於心, 而充味焉, 則可知古人獻芹曝之誠也。
- 【태백산사고본】 50책 99권 54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63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사상-유학(儒學)
- [註 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