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에서 작은 소리로 아뢰지 말 것을 이르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창덕궁(昌德宮)에는 야대청(夜對廳)이 있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자주 야대(夜對)를 하였으나 이 궁궐에는 장소가 없으므로 으레 비현각(丕顯閣)에서 하게 되는데, 장소가 너무도 비좁다. 평상시 내가 보는 문적과 출납하는 문서들이 모두 여기에 있으므로 만일 소대(召對)를 하려면 부득이 이런 물건들은 치운 뒤에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름철에는 빽빽이 앉으면 찌는 듯이 덥다. 그래서 소대는 하고 싶으나 자주 하지를 못한다. 평상시 경연(經筵)은 사정전(思政殿)에서 으레 교의(交椅)에 앉아서 하고 야대의 경우는 편복(便服)으로 임하고 있다. 이후로는 사정전에서 교의나 상탑(牀榻)을 치우고 편하게 앉을 것이며, 입시하는 신하들도 앞에 가까이 와서 야대를 하게 할 것이니, 정원은 알아 두라.
또 경연관(經筵官) 【이중열(李中悅).】 이 ‘입시하여 일을 아뢰는 사람들이 낮은 소리로 계달하기 때문에 좌우에서 들을 수가 없다. 위에서도 잘 들리지 않아 상탑에 기대어 귀기울여 들으니 일에 온당하지 못하다.’ 하는데, 이른바 소인이 낮은 소리로 일을 아뢰어 좌우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는 경우에 사관(史官)이 입참(入參)한다면 필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는 높은 소리로 일을 아뢰게 할 생각이니 정원도 단속하라. 조종조(祖宗朝) 때는 문신(文臣)과 유생(儒生)에게 불시에 전강(殿講)333) 을 보였고, 또한 재상을 인견하여 야심한 뒤에 파한 적도 있었다. 이같은 일들을 지금도 해보고 싶으나 전강을 할 때에는 경기에서 으레 물선(物膳)을 바치므로 폐단이 있을 것 같기 때문에 자주 하지를 못한다. 조종조에서 전강할 때에는 음식을 간략하게 차렸는데, 근일에는 상차림이 너무 풍성하여 마치 잔치의 예와 같게 하기 때문에 사옹원(司饔院)도 쉽게 마련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전강도 자주 거행하지 못했다. 이후로는 전강할 때 경기에서 물선을 장만해 바칠 필요가 없고 입시한 재상에게 다만 쟁반에 간략한 음식을 차려 제공할 것을 사옹원에 이르라. 성묘조(成廟朝)에서는 상참(常參)334) 할 때에도 재상을 전상(殿上)으로 끌어들여서 술을 들기도 하고 강론을 하기도 하였으며, 이때에 드는 음식은 되도록 간략하게 하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풍성함을 힘쓴다. 그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을 할 수가 없다. 이 뒤로는 간략하게 차릴 것을 아울러 이르라.
윤대(輪對)335) 는 으레 1일·11일·21일에 하는데, 이는 조종조 때에 설립된 것으로 좋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평상시 대간과 시종 등 좌우에 드나드는 자들의 언어와 거조 및 인물의 현부는 다 알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집사(執事)에 이르기까지는 그들의 현부와 행동 거지를 두루 알 수는 없다. 윤대할 때 입시한 관원이 처음에는 소회를 진달하려고 했다가도 일단 들어와서 엎드리게 되면 어리둥절해서 앞으로 말해야 할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게 된다. 성종조 때에 소대에 입시한 어떤 관원이 아뢸 일을 잊고는 이에, 순청(巡聽)336) 의 지붕 모서리가 기울어졌으니 속히 바로잡아야 하겠다고 했었다. 또 아뢸 일을 적어서 신었던 신[靴] 사이에 넣어 두고 그것을 깜박 잊어 말할 바를 모르고는 이에, 신(臣)이 일찍이 화정(靴精)에 끼워 가지고 들어왔는데 잃어버렸다고 한 자도 있었다.
윤대할 때에는 꼭 말로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사서(四書) 등의 책을 가지고 들어오면 내가 아무 장(章)에나 부표(付票)하고 해당 윤대관이 그 음석(音釋)을 강론하라. 무사(武士)의 경우 《무경칠서(武經七書)》와 《진서(陳書)》 등을 가지고 들어오면 역시 부표하고 강론케 하리라. 그러면 그 사람의 현부와 행동 거지를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대신에게 의논하라."
사신은 논한다. 예부터 간신(奸臣)·첨사(諂士)로서 사의(邪議)를 함부로 주달하여 임금을 현혹시키는 자들이 어찌 다 사관이 없어서 감히 그러했겠는가. 더구나 일을 아뢰는 말은 모름지기 광명 정대하여 의리가 통창(通暢)하고 어세(語勢)가 분명하게 한 뒤에야 듣는 사람이 쉽게 감동할 수 있는 것이다. 낮은 소리로 주달하는 일은 실로 오늘날의 폐습인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99권 48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62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선발(選拔) / 재정-진상(進上) / 역사-사학(史學)
- [註 333]전강(殿講) : 대궐 안에서 임금이 친히 행하던 시험. 성종 때부터 경학(經學)의 쇠퇴를 막기 위하여 성균관(成均館) 유생과 학식이 많은 문신들을 대궐 안에 모아 삼경(三經)과 오경(五更) 가운데 임금이 친히 강을 받는 것.
- [註 334]
상참(常參) : 임금에게 국무(國務)를 아뢰기 위하여 의정 대신(議政大臣)을 비롯하여 중신(重臣)·시종신(侍從臣) 등이 매일 편전(便殿)에 모이는 일.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조의(朝儀).- [註 335]
윤대(輪對) : 각사(各司)의 당하관(堂下官)이 윤번제로 궁중에 들어가서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 《은대조례(銀臺條例)》에는 "매월 1일·11일·21일에 행하는데, 입시하면 성명·직책·이력 등을 차례로 아뢴다."고 되어 있고,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조의(朝儀)에는 "동반(東班)은 6품 이상, 서반(西班)은 4품 이상이, 각 관아(官衙)별로 매일 윤대한다."고 되어 있다.- [註 336]
순청(巡聽) : 야간의 순찰을 맡은 관청. 입직 위장(入直衛將)이 매일 궁성 안을 순찰하고 순찰 때 있었던 일을 아뢰었고, 총부랑(摠府郞)은 매일 폐문(閉門) 후에 동서로 나누어 순행하여 사건의 유무를 그 다음날 아뢴다.○丁未朔/傳于政院曰: "昌德宮則有夜對廳, 故古者屢爲夜對, 此闕則旣無其所, 例於丕顯閣爲之, 但極爲窄隘。 常時御覽文籍及出納文書, 皆有之, 若爲召對, 則不得已撤出此等物後, 可爲也。 如夏月則促坐薰熱, 是以雖欲爲之, 而不能屢也。 常時經筵則於思政殿, 例坐交倚, 夜對, 則以便服臨之, 今後於思政殿, 去交倚御榻而平坐, 入侍之臣, 亦近前以爲夜對, 政院其知之。 且經筵官 【李中悅。】 云: ‘入侍奏事人, 低聲啓達, 故左右不能參聽, 自上亦不能詳聞, 俯床以聽, 於事不當’ 云。 所謂小人低聲奏事, 使左右不得知者, 則史官入參, 必無如是之事矣。 然今後高聲啓事之意, 政院亦當檢之也。 祖宗朝文臣及儒生, 不時殿講, 亦有引見宰相, 夜分乃罷之時。 如此等事, 今亦每欲爲之, 而殿講時, 則京畿例進物膳, 似爲有弊, 故不果屢爲也。 祖宗朝殿講時, 凡膳羞, 皆從略爲之。 近日則盤筵甚盛, 有如宴例, 故司饔院亦未易能辦。 以此殿講, 亦未得頻擧也。 今後殿講時, 京畿物膳, 不須供進, 其入侍宰相, 只用錚盤排羞, 從略供饋事, 言于司饔院。 成廟朝常參時, 亦引入宰相於殿上, 或杯酒或講論, 饌羞務從簡約。 今則不然, 務爲豐盛, 故如此等事, 不能爲也。 今後從省爲之事, 幷言之。 輪對, 例於初一日十一日二十一日爲之。 此祖宗朝設立美意, 常時臺諫、侍從出入左右者, 言語擧措, 人物賢否, 皆可知也。 至於百執事, 則其人之賢否擧動, 不能周知。 輪對時入侍官, 初欲陳達所懷, 而及其入伏, 則荒迷失措, 盡忘其所將言者。 成廟朝, 有入侍召對之官, 忘其所啓之事, 乃曰: ‘巡廳屋角傾危, 宜速扶而正之’ 云。 又有將陳啓之事, 書置所着靴間, 而忘却不知所言, 乃曰: ‘臣曾挾入靴精而忘失’ 云。 凡輪對時, 不必以言陳說, 至於挾持四書等冊以入, 則予付標某章, 而當對官, 講其音釋, 武士則持《武經七書》及陣書以入, 則亦可付標講論, 而其人之賢否擧措, 亦可知之。 如是爲之何如? 大臣處議之可也。"
【史臣曰: "自古及近代, 奸臣謟士, 冒進邪議, 眩惑君聽者, 豈皆無史官而敢爾也? 況啓事之辭, 須光明正大, 使義理通暢, 語勢分柝, 然後聞者易爲感動。 低聲陳奏, 實當今之弊習也。"】
- 【태백산사고본】 50책 99권 48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62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선발(選拔) / 재정-진상(進上) / 역사-사학(史學)
- [註 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