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절사의 서장과 동봉한 황제 조서의 인본을 정원에 내리다
성절사(聖節使) 【홍춘경(洪春卿).】 의 서장(書狀) 【 신(臣)이 요동에 도착하여 들으니 4월 사이에 불이 나서 구묘(九廟)을 태웠는데 황제(皇帝)가 자신을 반성하는 조서(詔書)를 내렸는데, 행인사(行人司)의 행인(行人)이 지금 조서를 받들고 여기에 온다고 한다.】 과 동봉한 황제 조서의 인본(印本)을 정원에 내리고 이르기를,
"불이 나서 구묘를 태웠다니 대단히 경악스럽다. 우리 나라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를 정부(政府)와 예관(禮官)을 불러 의논하라. 그리고 조서를 보니 인묘(仁廟)에서 갑자기 불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른바 인묘는 어느 임금인가? 그리고 예종묘(睿宗廟)만 홀로 안전했다고 하였는데, 예종묘는 누구의 묘인가?"
하니, 정원이 회계하기를,
"인묘는 바로 홍희 황제(洪熙皇帝)이며 예종묘는 어느 황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상고하여 아뢰겠습니다."
하므로, 전교하였다.
"알았다 예종은 생각하건대 흥헌왕(興獻王)인 듯하나 확실히는 모르겠다. 또 제향소(祭享所)에 금화(禁火)하는 일은 평상시에도 가끔 적간(摘奸)을 하는 등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 문소전(文昭殿)과 연은전(延恩殿) 및 모든 제향소 관원을 불러 말하라."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는 조서한다. 짐은 생각하건대 아득한 옛날 세상엔 도가 높고 교화가 흡족하여 사람들은 순후하고 기후는 온화하였다. 그리고 임금이 되었던 자는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었고, 그때의 신하는 우(禹)이며 익(益)이었으니 오늘날 도저히 미칠 수가 없다. 세대가 내려오면서는 우(禹)·탕(湯)·문(文)·무(武)가 계속하여 일어났고 직(稷)·설(契)·주(周)·소(召)가 그들을 보좌하였으니, 또한 그위에 더할 수 없는 것이다. 아래로 한(漢)·당(唐)·송(宋) 때에도 그 사이에 훌륭하고 영특한 임금이 때때로 나타나기는 하였으나 끝내 상고(上古) 때처럼 훌륭하지는 못하였고, 혹 재해가 있었지만 절대로 오늘날과 같은 변(變)은 있지 않았다. 짐의 황조(皇祖) 고황제(高皇帝)께서는 하늘의 명에 응하시며 사람의 마음에 순종하시고, 중국을 회복하고 오랑캐를 소탕하셨으니 공덕의 성대함은 전에 없던 큰 공이었다. 짐은 번사(藩嗣)의 몸이었는데 황형(皇兄)이 승하하실 때에 짐에게 들어와서 대통을 이으라고 명하시어 짐이 천위(天位)를 이은 지 17년이 지났다. 그리하여 조상의 덕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여 먼저 태조(太祖)께서 남면(南面)하신 존위를 바루고 이 구묘(九廟)의 제도를 갖추어 존시(尊謚)를 더 올려서 추숭(追崇)의 예를 다하였다. 이 모두 두세 대신이 한가지로 힘써 도와준 공력에 힘입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짐이 다시 전례(典例)를 만든 것이 아니라 실지로는 본디 고도(古道)를 신임하여 거리낌없이 다한 것이므로 스스로 조상에 보답하는 정(情)을 조금은 다했다고 여겼는데, 어찌 오늘날의 재변이 있을 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올 4월 5일 저녁에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리기에 기쁘게 여겼더니 때마침 인묘(仁廟)에서 갑자기 불이 나 거세게 타는 데다가 강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대어 사람들이 손을 쓰지 못하고 서로 부르짖을 뿐 불길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인묘와 성조묘(成祖廟)의 신주가 탔고 동시에 태조(太祖) 및 소목(昭穆)의 나머지 신주까지 불이 붙어 타버렸고 예종묘만이 안전했을 뿐이다. 짐은 지난해 10월부터 병을 앓아 지금까지 원기가 회복되지 않아 정신이 전만 못하고 예전처럼 먹지를 못하여 기혈(氣血)이 모두 손상되어 있는데 이번에 이 주보(奏報)를 듣고 놀라 깊은 못에 떨어지는 듯하여 불 속에 뛰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특별히 구제할 만한 방도가 없었다. 결국 병세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병이 더해졌다. 그러나 병을 무릅쓰고 조종(祖宗)을 경신전(景神殿)에 봉안하여 위로해 드리고 공손히 죄주(罪奏)를 올려 상제께 사죄했고 삼가 태조(太祖)께 고하였다. 그리고 관리를 보내어 산천의 온갖 신령과 종실 제왕(諸王)에게 두루 제를 올려서 밝게 천하의 모든 신하들에게 보여 그들로 하여금 한 사람의 무거운 죄가 위로 7묘(廟)의 어서(御棲)217) 에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알게 하노라. 그 죄의 근원을 따져 보면 몸을 용납할 곳이 없다. 이에 관휼의 은전을 내려 나의 과오를 씻는 노력을 미리 보이노라.".】
- 【태백산사고본】 48책 95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477면
- 【분류】외교-명(明) / 군사-금화(禁火)
- [註 217]어서(御棲) : 신주를 말함.
○甲戌/下聖節使 【洪春卿】 書狀, 【臣到遼東, 聞四月間天火, 焚九廟, 皇帝下詔罪已。 行人司行人, 今擎詔書來此云。】 及同封皇帝詔書 【奉天承運皇帝詔曰: "朕惟邃古之世, 道隆化洽, 人淳氣和, 其爲君者, 曰堯曰舜, 而爲臣者乃禹乃益, 不可及矣。 降是, 禹、湯、文、武繼作, 有稷、契、周、召以佐之, 亦不可尙矣。 下而曰漢、唐、宋, 其間誼辟英君之時見, 終未若上古之休, 或多災害, 絶未有如今日之變者也。 朕皇祖高皇帝, 應天順人, 復夏掃穢, 功德之盛, 無前大烈。 朕以藩嗣, 當皇兄昇遐之日, 命朕入繼大統, 朕嗣天位, 十有七歲之間, 思報祖德, 先正太祖南面之尊, 備是九廟之制, 加薦尊謚, 用罄追崇。 賴二三大臣, 協恭力贊, 然非朕要更成典, 實本信任古道, 他悉罔忘。 自謂報答本源之情少盡, 詎意有今日之災變也? 今年四月五日夕, 初以恒暘之雨爲懽, 當時仁廟倐忽火起, 騷然暴作, 加以猛風四發, 人無措手, 相惕號籲, 莫容救護, 卽刻仁廟、成祖廟主, 同時延, 太廟及昭穆群廟, 秪存睿宗廟安全。 自昨冬孟月患疾, 至今元氣未復, 精神失舊, 飮食減昔, 氣血兩虧。 一聞奏報, 若墜深淵, 欲赴火中, 思無濟事, 且因病未痊復, 益加痛瘁, 力疾奉慰祖宗于景神殿, 祗戴罪奏謝于上帝皇, 袛告于太祖, 遣官徧祭百神、本根宗室諸王, 昭示天下臣庶, 使知一人之重罪, 致上延七廟之御棲按厥咎, 原無可容已。 爰援寬恤之典, 預示圖復之力。"】 印本于政院曰: "天火焚九廟, 至爲驚愕。 我國無乃別有當爲之事乎? 其召政府禮官議之。 且見詔書, 謂仁廟倐忽火起。 所謂仁廟, 何帝? 且云睿宗廟獨爲安全。 所謂睿宗何廟乎?" 政院回啓曰: "仁廟是洪熙皇帝也。 睿宗, 不知某皇帝, 當相考以啓。" 傳曰: "知道。 睿宗, 意是興獻王, 而未可的知也。 且祭享所禁火之事, 常時或爲摘奸矣, 每加謹愼爲當。 招文昭、延恩及一應祭享所官員, 言之。"
- 【태백산사고본】 48책 95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477면
- 【분류】외교-명(明) / 군사-금화(禁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