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붕을 풍기 군수에 제수하다
주세붕(周世鵬)을 풍기 군수(豐基郡守)에 제수하였다. 【옛 순흥부(順輿府)이다.】
사신은 논한다. 풍기는 안향(安珦)의 고향인데, 주세붕이 안향의 옛집 터에 사우(祠宇)를 세워 봄·가을에 제사하고 이름을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이라 하였다. 좌우에 학교를 세워 유생이 거처하는 곳으로 하고, 약간의 곡식을 저축하여 밑천은 간직하고 이식을 받아서, 고을 안의 모든 백성 가운데에서 준수한 자가 모여 먹고 배우게 하였다. 당초 터를 닦을 때에 땅을 파다가 구리 그릇 3백여 근을 얻어 경사(京師)에서 책을 사다 두었는데, 경서(經書)뿐만 아니라 무릇 정·주(程朱)의 서적도 없는 것이 없었으며, 권과(勸課)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에 형으로서 아우를 송사하여 그 재물을 빼앗으려는 백성이 있었는데, 주세붕이 그 백성을 시켜 제 아우를 업고 종일 뜰을 돌게 하되, 게을러지면 독촉하고 앉으면 꾸짖었다. 몹시 지치게 되었을 때에 그 백성을 불러 묻기를 ‘너는 이 아우가 어려서 업어 기를 때에도 다투어 빼앗을 생각을 가졌었느냐?’ 하니, 그 백성이 크게 깨달아 부끄럽게 여기고 물러갔다. 또 생원(生員) 이극온(李克溫)이 제 아우를 송사하여 다툰 일이 있었는데, 주세붕이 흰 종이 한 폭에 왼쪽에는 이(理)자를 쓰고 오른쪽에는 욕(欲)자를 써서 이극온에게 주고 찬찬히 타이르기를 ‘네가 곧거든 이 자 아래에 이름을 적고 너에게 욕심이 있었거든 욕 자 아래에 적으라.’ 하니, 이극온이 붓을 잡고 낯을 붉히며 머뭇거리고 결단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주세붕이 소리를 돋우어 ‘너는 생원인데 어찌 이와 욕을 분별할 줄 모르겠느냐, 빨리 적으라,’ 하니, 이극온이 곧 욕 자 아래에 적고서 간다는 말도 없이 달아났다. 주세붕이 5년 동안 벼슬을 살았는데, 정사를 행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다 헐뜯고 비웃었으나, 성신(誠信)이 점점 젖어들어서 오래되자 교화되니, 전일 헐뜯고 비웃던 자들이 다 감복하였다. 주세붕은 유가(儒家)의 찌끼만을 겨우 알아서 오활하게 처사하였는데도 사람들이 감화되는 것이 이러하였으니, 풍속이 경박한 죄는 백성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 【태백산사고본】 48책 95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466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출판-서책(書冊)
○丁未/以周世鵬爲豐基 【古之順興府也。】 郡守。
【史臣曰: "豐基, 安珦之鄕。 世鵬, 於珦之舊居, 爲建祠宇, 春秋享之, 名曰: ‘白雲洞書院。’ 左右有序, 以爲儒生棲息之所, 儲穀若干, 存本取利, 使郡中凡民俊秀者, 聚食而學焉。 當初開基時, 掘地得銅器三百餘斤, 貿書冊於京師, 而藏之, 非徒經書, 凡程、朱之書, 無不在焉, 勸課不怠。 嘗有民, 以兄訟弟, 謀奪其財。 鵬, 令民負其弟, 終日巡于庭, 倦則督, 坐則責, 至於困極, 招其民問曰: ‘爾當此弟年幼負鞠之, 時亦有爭奪之念乎?’ 民大悟, 慙而退。 又有生員李克溫, 訟其弟爭之, 鵬於白紙一幅, 左書理字, 右書欲字付克溫徐解之曰: ‘爾若直, 着名于理字下, 爾有欲心, 欲字下着之。’ 溫秉筆赧面, 遲回難斷。 鵬厲聲曰: ‘爾爲生員, 豈不知理欲之分乎? 其速着。’ 溫卽於欲字下着之, 不告而遁。 鵬五年居官, 行政類此。 其初, 人皆訕笑, 誠信漸洽, 久而乃化, 前日之訕笑者, 皆服之。 鵬僅得儒家之糟粕, 迂踈而處之, 人之見化若是。 風漓俗薄之罪, 其不在民也審矣。"】
- 【태백산사고본】 48책 95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466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출판-서책(書冊)